교회와 가정과 직장과 쉼의 영역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교회와 가정과 직장과 쉼의 영역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2017.7.13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 중세 시대에는 성(聖)과 속(俗)의 이원론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신부가 되거나 수녀가 되는 것을 거룩한 일이고 아주 고귀한 일이지만,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는 것은 세속적인 일이며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능하면 사람들은 종교적인 일을 하기를 원했다. 신부가 되거나 수녀가 되거나 수도사가 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미사(예배)를 드리는 것은 거룩한 일이지만 생업에 매어달리는 것은 세속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한 편으로 바람직한 생각이고,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가져왔던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 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라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이 세상에서의 것들이 결국 우리들에게 유익한 것이 아니라, 참된 생명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로지 이 세상의 것들만을 추구하며 세속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안타까운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부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노아 시대에 살던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홍수가 나기 전까지, 그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삶만을 살았을 뿐, 영적인 일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영적인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예배를 사모해야 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우리 교회는 그런 점에서 전심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영적인 일에 관심을 쏟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성전 문지기로만 살면 다 되는 것일까?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과 찬송하고 기도하는 일에만 매어달리면 다 되는 것일까? 그러면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일까? 중세 시대에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농사짓는 것보다 성직자가 되는 것이 거룩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세상일은 가치가 없는 일이지만 종교적인 일이야말로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이스라엘 민족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매어 달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드리는 제사를 싫어하셨다. 이사야 1장에서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사울 왕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가인도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셨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철저하게 금식도 하고 기도도 하고 구제도 했지만, 위선자들이라고 책망을 받았다. 제사장이 되면 다 된 것이 아니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이었겠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들이 될 수 없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딤후 3:5). 입술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같았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었던 것이다(사 29:13).

우리들은 직분을 사모하는 경향이 있다. 목사가 되고 사모가 되면 가장 최고의 신앙의 단계에 올라가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장로, 집사, 권사가 되는 것을 열망하기도 한다. 가족 가운데 누군가 임직을 하게 된다면 정말 신앙적으로 최고의 영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니다. 우리가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는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사는가이다. 

또한 우리는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하는 일의 가치를 평가절하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종교적인 일을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쌍둥이 생각으로 동전의 양면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별로 가치가 없는 것이고, 그저 직업이 가지는 가치란 돈을 벌어서 그것으로 헌금을 하여 주님의 일에 동참하게 되면 그때에서야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가정생활을 하는 것도 이것은 단순히 이기적인 삶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쉼을 누리는 것도 사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고린도전서 10:31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셨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예배하는 자리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과 같은 일을 통해서도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쉼도 하나님의 축복이다. 물론 게으름이나 나태함은 옳지 않은 것이다.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을 향해서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하면서 책망했던 것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망각하거나 외면해버리고 나태함을 보인다면 그것은 악한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도 6일간의 청지창조 후에 쉬셨다. 그리고 제7일을 거룩하게 하셨다. 쉼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방편이다. 쉼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기쁨을 얻게 되는 것이며, 쉼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가정도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며 사명이다.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가는 것, 성경적인 가정을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며,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고, 성경적인 부부상을 세워감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바대로 살아가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다. 시편 19:1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라고 하였다. 어떻게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가?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맞게 움직일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의 현장은 교회만이 아니다. 성도들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가정과 직장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부모는 자신들에게 맡겨진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양육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직장에서도 우리가 성실하게 일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쉼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는데,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즐기면서 안식하는 것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다.

우리 교회가 지향해야 할 것은 단순히 교회의 성장과 부흥만이 아니다. 사실 교회는 어떤 단체를 지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이다. 어떤 단체로서의 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 부흥이라기보다는,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의 영적인 성장이 진정 참된 교회의 부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체로서의 우리 교회의 성장과 발전이 필요없다는 뜻이 아니다. 건물도 있으면 좋겠고, 더 넓은 주차장도 있었으면 좋겠고, 더 좋은 시설들도 있었으면 좋겠고, 교인들도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하지만 교회가 성장해 가는데, 그 구성원이 영적인 성장을 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대한민국이 세계 몇 대 경제대국이 되어 가는데, 그 국민의 생활수준은 여전히 비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전인적인(holistic) 성장이다. 교회의 영역에서만 열심을 내고 그래서 단체로서의 교회가 성장하는 것 같은데, 성도들이 정작 6일 동안 살아가는 직장에서와 7일 동안 살아가는 가정에서 실패하고 있다면 그것은 참된 성장이라 할 수 없다. 세속적인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영적인 일을 등한시해서도 안 되겠지만, 일상의 중요성을 망각한 채 그저 종교적인 일에만 열정을 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사명의 현장이 어디인지 우리는 분별해야 한다. 그래서 나에게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모인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 사명의 현장이 교회이든, 가정이든, 직장이든 그 어디이든 말이다.

2017.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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