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물결 같은 목소리로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며 세워주는 교회 (빌 2:1-4)

비단물결 같은 목소리로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며 세워주는 교회 2017.3.12

우리는 어떤 교회를 꿈꾸는가? 우리는 교회에서 위로받기를 원하고 힘을 얻기를 소망한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교회에서 푸대접을 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먼저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기를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자신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기 원하고 위로를 받기 원하면서, 정작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는 비난을 일삼는다면 아주 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칭찬할 점을 찾기보다는 단점을 찾는 것이 쉽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다른 사람이 정말 잘못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들의 관점이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해심이 부족한 게 우리의 모습이다. 다른 사람에 대하여 쉽게 비난의 말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똑똑한 것처럼 착각할 때가 많은데, 실상은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사랑이 부족한 아주 저급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뿐이다.

우리는 어떤 교회를 만들어나갈 것인가? 비단물결 같은 목소리로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며 서로를 세워주는 교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바리새인이 아니다. 바리새인들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일에 앞장섰을 뿐이고 영적인 교만이 가득한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예수님을 이들을 향해서 책망하셨다. 결코 바리새인과 같은 신앙인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우리 교회에 영적인 리더십 그룹을 선택할 때가 있을 텐데, 우리는 비난과 책망을 일삼고 잘난척하는 사람들이 선출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불만을 표시하는 교만한 불평분자들에 따라 움직이는 공동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안타깝게도 교회의 역사가 길어지면,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없이 그저 신앙생활에 전문가가 되어버린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이 교회의 주도권을 잡는 경우가 생긴다. 우리는 그런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문제는 모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잘 안다. 내가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내가 먼저 참고 인내해야한다는 것을 잘 안다. 내가 먼저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우리의 문제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우리의 문제는 나의 사랑이 가장 필요한 사람을 향해서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내가 손을 먼저 내밀어야 하는데,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이다. 참고 인내해야 하는 순간에 폭발해버리는 것이 우리의 한계이다. 희생해야 할 순간에 나의 욕심만을 찾는 것이 우리의 문제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예수님이 필요하다. 이 사망의 몸에서 우리를 건져내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피를 쏟으신 예수님의 은혜뿐이다.

더욱 큰 문제는 나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없으면서 상대방에게만 그렇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해서는 한 없이 관대하면서도 상대방에 대해서는 아주 까다로운 엄격한 기준을 들이미는 한, 그 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 그 어느 누구도 그러한 비판적 관점에서 자유로울 완벽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전한 관계의 출발점은 우리가 모두 죄인이며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 있다.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서 현대판 바리새인들이 득실대고 있다. 자신들의 신앙생활은 아주 뛰어난 것으로 착각하면서, 상대방을 향해서는 비난을 일삼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우리는 교회가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아니라 죄인들이 모인 공동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마치 병원에는 환자들이 몰려드는 것처럼, 예수님은 영적인 병자들을 모으셨다. 성도들은 우리들의 유일한 영적인 의사이신 예수님에게 나아가 치유를 받아야 한다. 그 치유는 마지막 날에야 완성될 것이다. 지금 이 때에는 완벽하게 완성된 사람은 없다. 여전히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한 사람들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를 사랑으로 감싸주어야 한다. 약점과 단점들을 보게 된다면, 비난거리로 삼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감싸주어야 할 부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회 내에서 서로가 서로를 향해서 반창고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 교회는 비단물결 같은 목소리로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며 세워주면서 영적으로 성숙해져 나가도록 돕는 일이 필요하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 다양한 사람들 중에는 안타깝게도 적극적으로 공동체의 관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밖에서 비아냥거리고 불평하고 비난하는 일을 주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사회에든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그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비아냥거리며 딴지를 걸 때, 그들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커서 그들의 주장에 이끌리기 쉽다는데 있다. 그런데 정말 성경적으로 바른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목소리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교회의 정책과 목표와 방향을 설정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면서 순종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지, 이들의 말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광야의 이스라엘 민족들는 그들 사이에서 불평을 일삼던 잡족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이런 모습이 오늘날의 교회에서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옆에서 비난하고 책망하는 사람들의 말 속에도 선한 의도가 들어 있을 수 있다.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살펴본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악한 의도를 가지고 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교회를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성도를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잘못된 길로 가면 안 된다는 일종의 신념도 있었다. 하지만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옆에서 비아냥거리고 책망하고 비난하는 방법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으며, 오히려 역효과만을 가져 왔다는 점이다.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예의가 결여된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처럼,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내 방식을 강요하는 것은 교회를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정당화한다고 착각하곤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진리를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은 어떤 방법이든지 다 괜찮다고 착각하곤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강간이나 스토킹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듯, 내가 사랑하고 있다면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상대방에게 예의바르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선물을 할 때에는 좋은 포장지에 싸서 전달한다. 좋은 선물을 쓰레기통에 넣어서 주지 않는다. 내가 교회를 위해서 또는 가정을 위해서 또는 공동체를 위해서 좋은 제안이 있다면, 예의를 갖추어 전달해야 한다. 책망과 비난으로 진리를 전달하는 것은 쓰레기통에 선물을 던져넣는 것과 같다. 우리 교회는 서로 예의를 갖추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내가 혼자 잘난 것처럼 교만한 자세로, 또는 주장하는 자세로 비추어져서는 안 된다. 항상 겸손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비단물결 같은 목소리로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며 세워주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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