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아주 예전에 즐겨 부르던 복음성가가 있다.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이라는 노래이다.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버리는 것, 버리는 것,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더 가지지 않는 것. 이상하다 동전 한 닢, 움켜잡으면 없어지고 쓰고 빌려주면 풍성해져 땅 위에 가득하네.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버리는 것, 버리는 것,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더 가지지 않는 것. 자 내일 걱정이랑 버리고 모든 염려 주님께 맡기세.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더 가지지 않는 것.”

움켜쥐면 없어지고, 베풀면 오히려 더 많아진다는 이 가사가 정말일까? 성경에는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잠 11:24)의 말씀이 있는데, 정말 이 말이 사실일까?

내가 미국에 유학하러 갔을 때 같이 공부하던 신학생들 중에서 확연하게 다른 모습을 보인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누군가 부탁을 하면 기꺼이 기쁨으로 들어주는 사람이었고, 또 한 사람은 머뭇거리면서 잘 들어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한국에 가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부탁을 한 적이 있다. 혹시 한국에서 미국으로 들어올 때 우리 부모님이 전달해주는 물건을 하나 가지고 들어올 수 있느냐고 말이다. 수고스럽게 만든다는 사실 때문에 주저하면서 부탁을 하면, 그 사람은 오히려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짐을 손으로 들고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비행기가 실어오는 것인데, 그게 무슨 힘이 드는 것이겠느냐면서, 다른 부탁은 없느냐고 오히려 내게 물었다.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면서 말이다. 나는 그 사람을 보면서 참 고맙다고 생각했다.

또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도 한국에 가게 되었을 때 그 사람에게 역시 비슷한 부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반응은 첫 번째 사람과는 전혀 달랐다. “글쎄요. 제가 가지고 오는 가방에 자리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머뭇머뭇 거리며 내가 그 부탁을 철회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그에게 많은 혜택을 제공하기도 했고 그 동안 친하게 지낸다고 했었는데, 그의 태도는 언제나 친절을 베푸는 일에 미온적이었다.

내가 유학하던 그 시절부터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적극적으로 사랑을 베풀기를 원했던 그 사람과 늘 받기는 좋아했지만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기는 미온적이었던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적극적으로 사랑을 베풀기 원했던 그 사람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뿐만 아니라 벌써 유명한 인물이 되어 있다. 하지만 사랑을 베풀기를 꺼려하고 미온적이었던 그 사람을 칭찬하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고, 현재 그의 모습은 그가 되려고 했던 목표에서부터 아직 멀리 있는 것만 같다.

단편적인 평가일 것이고, 사실 그 사람이 어느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것에는 다른 수많은 요소들이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고, 또 다른 사람이 어느 정도 힘든 길을 걸어가는 데에는 다른 수많은 요소들이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기에 과도하게 단순화하여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사랑을 베푸는 자가 오히려 더 많은 유익을 누린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사탄의 음성에 종종 속아 넘어간다. 나의 것을 챙기고, 나의 권리를 챙기고,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노력해야만 그래야 겨우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유혹의 소리에 속아 넘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계산을 하고 산다. 혹시 내가 손해 보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조금도 손해 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인생을 사는 사람은 언제나 실패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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