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욕으로 구하는 기도 (약 4:1-3)

2020년 10월 25일 주일예배설교

우리가 기도하면 들어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 그래서 수많은 믿음의 위인들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의 기도 제목에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왜 우리의 기도에는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는가?

이에 대하여 성경은 여러 가지로 대답한다. 첫째, 기도의 응답이 없는 게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이다. 둘째, 만일 우리에게 죄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 만일 우리가 의심하고 있다면 응답이 될 수 없다. 넷째,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 정욕에서 비롯된 것일 때 응답되지 않을 것이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무엇이든지 구하면 들어주시겠다고 해놓고, 정작 기도가 응답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허탈한 느낌이 들게 한다. 마치 보험을 들면 모든 질병에 보상해준다고 해놓고, 막상 질병 때문에 보상을 요청하면 이런 저런 이유로 보상해주지 않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가 없을 수 없고, 믿음도 늘 흔들리고, 욕심이 개입되지 않기가 어려운 데, 이런 기도를 응답하지 않는다면 기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일까?

우리가 기도하면 무조건 들어주시지 않고 우리에게 죄가 있는지, 목적이 무엇인지, 믿음이 있는지를 따지시는 분이시기에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참되신 하나님이시다. 이 세상 거짓 종교에서의 신은 그런 것을 따지지 않는다. 그냥 그 신들을 우리의 정성으로 달래기만 하면 무조건 응답하는 게 이 세상의 거짓 신들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결과가 어떠할 것인지를 따지시는 분이시다. 연탄을 구매한 후에는 석쇠불고기를 해 먹을지, 아니면 자살할지를 따지지 않고 연탄을 팔기만 하면 되는 장사꾼과는 다른 분이다.

정욕으로 구하는 기도는 무엇이고, 정욕으로 구하지 않는 기도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히 신앙적인 목적만 갖다 붙이면 되는 게 아니다. 십일조를 많이 하게, 주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성공하게 해달라고 하면 정욕으로 구하는 기도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정욕으로 구하는 기도란 물질이나 성공을 우상으로 간주하고 드리는 기도이다. 물질이나 건강이나 성공이 우상이 되어버리면, 결국 하나님은 수단으로 전락해버리는 것이고, 그런 욕심에서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정욕으로 구하는 기도란 나의 헌신과 결단이 없이 요행만을 바라는 기도일 것이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는 일이 없이 그저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거나, 희생하는 일이 없이 가정의 변화와 행복이 있기를 구하는 것은 사실 정욕으로 구하는 기도일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만점짜리일 수는 없다. 그래서 중단할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엄격한 심판자로서 따지시는 게 아니라, 사랑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 아들을 우리게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아버지 되신 하나님 앞에 엎드리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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