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에서 살아남기 (행 27:27-44)

바울 사도가 탄 배는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거의 파선 직전까지 가게 되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그 배에 탔던 모든 사람들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사실 그 배에 탄 사람들이 한 사람도 잃지 않고 무사할 것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자가 바울 사도에게 예언해준 내용이었다(행 27:22).

그러나 그렇게 무사히 살아남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해야만 했다. 첫째, 해변에 가까이 접근했을 때 암초에 배가 걸려 파선하지 않도록 닻을 내려 밤이 새기까지 기다려야 했다(행 27:29). 밤중에 잘못 더 진행했다가는 암초에 걸릴 수 있었고, 그러면 배가 파선할 위험이 있었던 것이다. 둘째, 사공들이 구명정을 내려서 도망치려고 할 때, 한 사람도 도망치지 못하도록 그 구명정을 매단 밧줄을 끊어버렸다(행 27:31-32). 셋째, 바울 사도는 오랫동안 먹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릴 것을 권하였다(행 27:33-36). 넷째, 다음 날 아침에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지점에 배가 멈추게 되자, 군인들이 죄수들을 죽이려고 했는데 백부장이 그것을 막았다(행 27:41-42). 마지막으로 모두가 헤엄을 쳐서 바닷가로 갈 것을 명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널판조각이나 짐을 붙들고 헤엄을 쳐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행 27:43-44).

하나님께서 아무 생명도 잃지 않고 구원을 얻을 것을 예언해주셨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운명에 자신을 맡기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했다. 이것이 성경적인 방법이다.

종종 신자들 가운데에는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신뢰한다면 이 세상의 것에 절대로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병원에 가지 말아야 하고, 약도 먹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은 절대로 건전한 성경적 관점이라고 할 수 없다. 대단한 믿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잘못된 믿음이다. 기도하지 않고 또는 하나님을 전혀 신뢰하지 않고 나만의 방법만을 추구하는 것이 세속적인 방법이고 불신적인 방법이라면,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전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신앙이라 할 수 있다.

바울 사도는 이번 일로 인하여 아무도 목숨을 잃지 않고 모두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언을 들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전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한 것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살기 위한 노력을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병을 고쳐 주실 것을 기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병원에 가지 않거나 약을 거부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주실 것을 믿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자를 창세전에 미리 택하셨고 그런 사람들은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되어 있다고 해서(행 13:48)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등한시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는 사실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헛수고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낙망하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다. 마치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면 가을에 수확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 때문에 수고로이 씨를 뿌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2017.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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