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범죄하면 (삼상 2:12-26)

2017.4.19 수요예배 설교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제사를 모욕하고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 일에 바빴다.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경외해야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할 제사장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들은 행실이 나빴고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삼상 2:12). 이들이 하나님을 몰랐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몰랐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은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잘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지 못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들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주님을 위해 섬기라고 세워진 직분인데 오히려 복음의 거침돌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어떻게 이들은 죄를 지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작은 죄에서부터 출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속담처럼, 이들은 점점 죄를 짓는 일에 담대해졌을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제물에 손을 대고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악한 일을 서슴치 않고 저지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죄라 할지라도 두려워해야 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것이 이미 간음한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새겨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죄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엘리 제사장은 자신의 아들들에게 훈계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버지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아들들이 아버지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이시기로 뜻하였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기록한다(삼상 2:25).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이시기로 작정하셨고 그래서 그 아들들이 돌이키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죄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성경은 죄의 책임이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다고 가르친다(약 1:13). 가룟 유다의 배반을 통해서 십자가의 구속이 이루어지지만, 예수님께서 자기를 파는 자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신 것과 같다(마 26:24).

성경은 왜 죄의 책임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 있을 수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무리 악한 일이 발생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통제 없이 발생하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시기 위해서이다. 악이 이 세상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그 모든 악이 하나님의 통제 없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심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악은 결국 하나님의 통제 속에서 제압당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질 것임을 확신시켜 주시기 위해서이다.

그런 점에서 성경은 엘리 제사장 가정의 악행을 기록하면서, 다른 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 사무엘이 여호와 앞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삼상 2:21, 26). 그렇다. 엘리 제사장 가정의 악행이 온 세상에 악취를 품어대고 있을 때, 사람들은 절망할 것이다. 이 세상에 아무런 소망이 없다고 느낄 것이다. 가장 거룩해야 할 성직자들의 타락은 그런 감정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무엘은 자라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역사를 세워나가시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엘리 제사장 시대와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판치는 세상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절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주셨기 때문이다. 누가복음에서는 사무엘서의 기록과 비슷하게 이렇게 기록한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절망적으로 보일 때에도 우리는 절망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도 온 세상을 주관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계시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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