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가까이하라 (약 4:4-10)

2020년 11월 1일 주일2부예배 설교

세상과 벗이 되어 사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라고 야고보서 4:4에서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세상과 벗이 되어 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맨발의 성자 최춘선 할아버지처럼 재물을 다 버리고, 이 세상에 아무런 소망을 두지 않고, 오로지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 지난 기독교 2천 년의 역사 가운데,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수도원 운동을 일으켰는데, 이들은 이 세상의 가족을 떠나고 직업을 버리고 수도원에 들어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에 정진하며, 수도원 안에서의 노동에만 매진하였는데, 이렇게 세상에 관한 관심을 아예 버려버리는 것이 가장 고상한 신앙적인 태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성경 전체를 살펴본다면, 이러한 태도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다음에 보시기에 좋았다고 선언하셨다. 이 세상은 더럽고 악해서 내어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선하고 좋은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류 최초의 조상인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시고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사명을 주셨다. 그리고 이 사명은 인류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취소되지 않았다. 홍수 이후의 노아에게도 똑같은 사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쓴 편지에서 우리가 이 세상과 단절하고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하면서 살아가야 함을 인정하였다(고전 5:10).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불신자들과 교류할 수밖에 없고, 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매매하고, 어울려 그 사이에서 살 수밖에 없다.

세상과 벗이 되지 말라는 말씀은 아예 속세를 떠나 수도원이나 산속으로 들어가서 오로지 영적인 일에만 매달리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악을 행하며 살지 말라는 말씀이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이 신앙인이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죄를 지으며 악을 행하며 산다. 물론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한다고 해서 갑자기 성자(聖者)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죄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넘어지는 것과, 아예 방탕한 삶을 사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세상과 벗이 되지 말라는 말씀은 우리가 악을 행하며 살지 말 것을 당부하는 말씀이다.

우리는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을까? 의외로 그 대답은 간단하다. 사탄의 유혹을 당할 때, 우리가 거부하면 된다. 야고보서 4:7에서는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피하리라”라고 하였다. 우리가 마귀를 과대평가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죄를 짖는 것은 우리가 마귀의 유혹에 우리의 마음을 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을 마귀의 유혹에 열지 않으면, 마귀의 할아버지라 해도 우리 안에 들어올 수 없다. 결단하며 살아야 한다. 주님의 음성을 기억하며,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한 결단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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