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와 갱신을 통해 삶의 전 영역을 새롭게 하는 교회

회개와 갱신을 통해 삶의 전 영역을 새롭게 하는 교회 2017.7.31

구원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생각하기를 구원이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을 받았는가 받지 못했는가를 질문하고,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것이며,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구원에 대한 개념이다.

구원은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로만 판단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는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우리가 어떤 입장권을 손에 넣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어느 날 몇 시에 열리는 축구 경기의 입장권을 손에 넣었다면, 더 이상 축구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서 더 해야 할 일이 없다. 축구 경기가 열리기 전에 어떤 삶을 살든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중에 입장권만 확인하고 우리를 그 경기장 안으로 넣어줄 것이니까 말이다. 천국에 가는 것도 즉 구원을 받는 것도 천국 입장권을 확보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마지막 날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 하나만을 가지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반쪽짜리 구원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원 개념을 가지게 될 경우, 이 세상에서의 삶이란 아무런 중요성을 가지지 못하게 되며,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고 하는 율법폐기론 또는 율법무용론에 빠지게 된다. 실제로 초대교회 시절에 복음을 이런 식으로 오해한 경우가 있었다. 바울 사도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다고 전했을 때, 사람들은 그러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되고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에 대한 바울 사도의 대답은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 6:2)였다.

구원은 단순히 천국에 들어가는 입장권을 확보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으로 보는 것이 옳다. 이러한 점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탕자의 비유이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을 떠났다. 그 결과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다. 나중에 탕자는 회개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그 탕자를 다시 맞이하여 예전의 아들의 신분으로 온전히 회복시켜 주셨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아버지의 아들이 되었으니 다시 아버지의 집을 떠나 허랑방탕하게 삶을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아버지의 집에서 아들 됨의 신분을 누리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구원이다. 참된 믿음과 참된 구원을 단순히 예수님을 믿어 나중에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회복되어 그 관계가 주는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자애로움 때문이다. 아무리 탕자가 철저하게 타락했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사랑은 그 아들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인가 내놓을만한 장점이 있어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와의 축복의 관계를 지속해 나가야 한다. 다시 아버지의 집에서 떠나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주님의 신부가 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청혼하여 결혼에 성공한 이후에는 이제 배우자에게 사랑을 표현하지 않아도 되는가? 마치 물고기를 잡은 후에는 더 이상 미끼를 던지지 않는 것처럼? 만일 그렇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결혼의 목적은 결혼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결혼의 목적은 함께 같이 살아가면서 행복을 누리는데 있다.

교회 안에는 물론 참된 성도와 거짓 성도가 있다. 장인어른의 돈을 노리고 사랑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처럼 속여 결혼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성도들 중에는 거짓 성도가 있을 수 있다. 그런 거짓 성도들의 삶에서는 참된 회개의 열매가 나타날 수 없다. 하지만 참된 성도의 삶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이 당연히 나타나게 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전 영역에서 회개와 갱신을 이루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의 삶을 개혁해 나가야 한다. 만일 우리가 다 된 줄 알거나, 선 줄로 안다면 넘어질 것이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서 잘못한 것이 있으면 회개해야 하고,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점점 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2017.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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