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두 아들 야곱과 에서는 쌍둥이 형제죠. 그 쌍둥이 형제는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사랑해 주고, 서로 아껴주어야 하는 관계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죠. 형제간의 갈등이 폭발해서, 형 에서가 동생 야곱을 죽여버리겠다고 하는, 그런 지경에 이르게 됐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인가요? 야곱이 형에서의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가 버렸기 때문일 겁니다. 장자권을 빼앗아 버렸고, 또한 아버지의 축복도 속여서 가로챘기 때문에, 화가 잔뜩 난 에서는 동생 야곱을 죽여버리겠다고, 그렇게 벼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는 어떻습니까? 여러 분들의 자녀들 가운데, 여러 형제자매들을 두고 있다고 한다면, 이 형제들끼리 서로 막 서로 싸우고, 그런 경험을 해보지 않으셨습니까? 제게는 두 딸이 있는데, 큰아이하고 둘째 아이하고 나이 차가 4살 반 차이가 나는데도, 얼마나 둘이 싸우는지 몰라요. 동생도 지지 않고, 언니랑 그렇게 막 심각하게 많이 싸웠는데, 하루는 우리 큰아이가 둘째 아이를 향해서, 분노를 이기지 못하면서, 죽여버리겠다고, 이 둘째를 죽여버리겠다고, 막 화를 내면서, 막 분노가 폭발해 버리는 그런 일도 있었는데, 얼마나 참 부모로서 그걸 보는 게 참 안타까웠던지, 참 난처했던 그런 시절이 있습니다. 사춘기 때 그랬던 거죠. 다행히 지금은 성년이 돼서, 지금 부모도 없고 하니까, 미국 땅에서 서로 의지하면서 서로 돌봐주고 아끼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에서와 야곱의 관계는 그렇게 쉽게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형이 동생을 죽이려고 하는 이 상황 가운데서, 어머니 리브가는 이 야곱을 멀리 피신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동생 야곱을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죠?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겁니다. 지금의 이스라엘 땅에서부터 저 이라크 지역에까지 가야만 하는, 그렇게 먼 곳에 가서 피신해 있어야 되는 그런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죠.
오늘 우리가 읽은 창세기 28장의 말씀은, 그렇게 해서 야곱이 부모의 집을 떠나서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먼 여행을 가는 도중에 있었던 이야기를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서 하란을 향해서 가게 되었는데, 그 가는 길 가운데, 날이 저물어서 하룻밤을 자야 되는 상황이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잠을 자야 되는데, 잠을 자야 될 그 상황이 언제 어디였는가? 아무것도 없는 광야 한 들판에서, 정말 그 주변에 아무런 집도 없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 잠을 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노숙을 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야곱은 돌을 찾아서, 돌로 베개를 삼고 그곳에서 잠을 자게 되는 참 안타까운 처량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낯선 곳에서, 들판에서 잠을 자게 된 야곱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정말 처량하게 생각이 되었을 겁니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신세가 되었는가? 아버지 어머니의 집에서 따뜻하게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들판에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것도 편안한 곳이 아니라,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자야만 하는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면서, 한탄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아주 처량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또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했을 것 같아요. 들판이니까 무슨 위험이 있죠? 들짐승들의 위험이 있는 겁니다. 독사라도 나타나면 어떡합니까? 전갈이라도 나타나면 어떡합니까? 아니면 여러 가지 사나운 맹수들이 다가오면 어떡합니까? 아주 무서운 마음도 들 수가 있었을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외로웠을 겁니다. 따뜻한 가정을 떠나서, 여기는 어딘가? 나는 누군가? 정말 슬픈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미래에 대한 걱정도 많이 있었을 것 같아요. 과연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내 앞길의 인생은 어떤 일이 펼쳐지게 될 것인가?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채서, 그래서 축복 기도를 받았기는 하지만, 그러나 당장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정말 깜깜한 현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그런 미래가 불투명한 현실 앞에서 야곱의 마음은 굉장히 착잡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무슨 일이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육신의 아버지, 육신의 어머니를 떠나서 홀로 남겨졌지만,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겁니다.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늘의 하나님이죠. 영적인 아버지인 것이죠. 내 육신의 아버지에게서는 멀리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러나 하늘의 아버지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너를 버리지 않는다. 내가 너를 지키고 돌보겠다고 하는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해 주시는 장면이 오늘 창세기 28장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잠을 자는 데 꿈속에서 놀라운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땅과 하늘 사이에 층계가 있는 거예요. 우리 한국말 성경에는 사닥다리라고 번역이 돼 있는데, 아마 계단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맞을 겁니다. 계단에서, 계단이 있어서 하늘에서부터 땅에까지 천사가 내려올 수가 있고, 또 땅에서부터 하늘에까지 연결이 되는 그런 계단이 보이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야곱이 실제적으로 눈으로 보았던 것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땅만을 보면서 살았던 것이죠. 이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면서 살았는데, 그래서 이제 아버지의 집에서부터 멀리 떠나게 될 때, 이제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이제 나는 아무도 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 놀랍게도 하늘의 문이 열리고, 하늘의 문이 열리고, 층계가 만들어지면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로 사람이 하나님에게로 연결이 될 수 있는 그 연결고리가 생기는 그런 환상을 보게 된 것이죠.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께서 야곱을 향해서 놀라운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창세기 28장 13절에서부터 15절 말씀에 이런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또 본 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서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내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내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내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내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내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엄청난 이야기를 들은 거예요.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여호와라. 하나님인데, 어떤 하나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 그리고 이삭에게 나타났던 하나님, 그,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아브라함 할아버지의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고, 아버지의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하나님이 할아버지와 아버지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도 되신다고 하는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죠. 그래서 이 하나님이, 이 순간에 자기 자신의 하나님 지금까지 부모님의 신앙을 가지고서, 부모님이 들려준 신앙생활을 해 왔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게 되면서, 그 하나님이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된 것이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놀라운 약속을 해주십니다. 이 땅을 너에게 주겠다. 너와 내 자손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이 원래 누구에게 해주었던 약속이죠?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 이삭에게 해주었던 약속입니다. 그 옛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이끌어 오시면서, 가나안 땅을, 이 땅을 너와 네 후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는데, 그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그냥 흐지부지되고 사라져 버리고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이삭에게로 연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야곱에게도 연결되고, 야곱에게뿐만 아니라, 또 누구에게로? 또 연결이 돼요. 야곱의 자손들에게로 연결이 되고, 그 자손들이 얼마나 많아져요? 땅의 티끌같이 엄청나게 많아져서, 그 모든 백성들이 이 땅을 차지하게 될 거라고 하는 엄청난 은혜의 약속을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난 다음에 야곱은 기뻤을까요? 어땠을까요? 기뻤어요. 이 야곱은 놀라웠을까요? 정말 놀라웠어요. 정말 감격하게 된 것이죠. 왜냐하면 나는 이제 나 혼자 남았구나. 나는 이제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야 되나? 앞길이 막막했던 그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너는 혼자가 아니라 내가 너를 지킬 것이다. 너를 안전하게 인도하고, 안전하게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듣게 될 때에, 야곱의 마음 가운데 너무나도 기쁘고,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에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었던 것이죠.
이 경험을 하고 난 다음에 야곱이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오늘 읽었던 창세기 28장 16절의 말씀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 고백 속에는 어떤 말이 담겨 있는 것입니까?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요? 야곱이 생각하기에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 하나님? 저 가나안 땅 아버지의 집에 있는 하나님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내가 그 아버지의 집에서 떠나오는 그 순간, 이제는 나는 외톨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야곱이 발견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야곱의 집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여기에도 계시는구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 안 계신 곳이 없는 하나님, 이 세상 어느 곳이든지, 늘 그곳에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내가 나 혼자 있다고 할지라도, 내가 외롭게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은 바로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고, 내가 어디를 가든지 거기에는 바로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정말 중요한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고대 세계에는 신에 대해서 생각하면, 그 신들이 각기 존재하는 영역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신은 산의 신, 어떤 시는 강의 신, 어떤 시는 광야의 신, 어떤 시는 바다의 신, 그래서 우리가 전쟁을 한다고 하면, 산에서 전쟁할 때는 산의 신에게 빌어야 되고, 바다에서 전쟁을 한다고 하면 바다의 신에게 빌어야 하고, 고대 고대 세계의 사람들은 그 지역에 맞는 그 신들을 늘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에요? 안 계신 곳이 없는 하나님이에요. 저 가나안 땅에만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이 세상 온 어디든지, 다 주님께서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내가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저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지만, 그 길이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는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이 꿈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이 야곱의 경험이 오늘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도 한 사람 한 사람 다 경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 안 계신 곳이 없는 하나님입니다. 교회당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에도 계시고, 우리 직장에도 있고,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항상 그곳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고,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든지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담대하게 믿음으로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의 예를 찾는다고 한다면 모세의 어머니를 들 수가 있어요.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아기를 낳은 다음에 3개월 동안 숨겨서 길렀습니다. 바로 왕이 모든 남자아이들을 태어나면 다 죽이라고 하는 그 지엄한 명령 앞에서, 이 요게벳이라고 하는 여인은 모세를 낳고 아기를 숨겨서 기르다가, 이제는 더 이상 발각될 그런 위험에 처하게 되자, 이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에서는 그 순간에 어떻게 하죠? 갈대상자를 만들어 그 아이의 모세를 넣고 어디다 보내요? 나일강에 놓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죠? 죽을 수 있어요? 어떻게 되죠? 이 아이를 잃어버릴 수 있는 거예요. 하지만 여기에서 있는 마음 믿음이 뭡니까? 하나님이 계시다. 하나님이 보호하고 계시다. 아빠 엄마가 도와줄 수 없지만 아빠 엄마의 힘은 딸리지만, 내 힘으로 도와줄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거라고 하는 사실을 믿고 이 아이를 갈대상자에 넣어서 하나님의 손에 맡기게 된 것이죠.
오늘 우리들도 그런 믿음을 가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나요? 다 할 수 없어요. 저 미국에 있는 우리 딸아이들을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하나님이 거기에도 계셔요. 하나님이 저 서울에도 계셔요. 하나님이 어디든지 계시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이 24시간 일주일 내내 그 아이들을 늘 감시하고 늘 지킬 수 있어 그럴 수가 없겠지만, 그래서 우리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고, 내가 이곳에 있으면 저곳에 있을 수 없고 능력이 부족해서 해줄 수 없을 수 있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언제나 어디서나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주님 앞에 온전히 맡기는 그런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야곱은 그래서 꿈에서 깬 다음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어떻게 했습니까?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되는 것이죠. 창세기 28장 20절에서부터 22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며,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 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이 야곱은 이 꿈의 하나님을 만난 다음에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는데요. 소위 말해서 서원 기도를 하는 겁니다. 하나님 정말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하신다고 한다면, 지금 내가 도망자의 삶을 살고 있는데,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가고 있는데, 그 험난한 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저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셔서, 그래서 무사히 나중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만드신다면, 하나님 내가 베고 잤던 이 기둥이, 이곳이 하나님의 전이 되게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재단이 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있는 것이고요.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모든 것 가운데서, 10분의 1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하는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 말씀을 우리가 종종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이렇게 야곱이 하나님 앞에 서원하면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하나의 흥정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조건을 내걸고 “하나님, 하나님이 이거 이거 해 주시면, 제가 이렇게 할게요.” 그렇게 하나님에게 거래를 제한하는 것 흥정하는 것이라고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종종 우리 크리스천들 중에는 서원 기도를 마치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하나님 내가 이거 할 테니까 하나님은 나한테 이거 주세요. 하나님 내가 하나님한테 이거 바칠 테니까, 하나님은 나한테 이거 주세요. 그렇게 해서 마치 물물 교환하듯이, 흥정하듯이, 하나님과 거래하듯이, 서원 기도를 오해하시는 분들이 너무나도 많아요. 그래서 어떻게 기도하냐면, 하나님 제가 로또 복권 하나 살 테니까, 1등 당첨하게 해 주시면 제가 교회당을 짓겠습니다. 혹시 그렇게 기도하신 분 계신가요? 그런 분도 계세요. 알고 보니까 있어요.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사업을 하는데 사업 성공하면 제가 선교사님들 많이 돕겠습니다. 하나님 이 병에서 낫게 되면 제가 목회자의 길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해주시면 그러면 내가 이렇게 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면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 잘 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철저하게 서원 기도에 대해서 오해하신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에게는 흥정이 될까요? 안 될까요? 거래가 될까요? 안 될까요? 안 돼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쉬울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 이거 줄 테니까, 이거 주세요” 하면서 하나님이 호기심이 당길 만한 걸, 우리가 뭘 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전 재산을 하나님 앞에 바치면, 하나님께서 그것이 너무나도 탐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까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아쉬울 게 아무것도 없는 하나님이 믿습니까? 사도행전 17장 24절에서부터 25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누구시니?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십니다. 하나님이 무엇인가 부족해서, 그것 좀 내놔라. 하나님이 무엇인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것 좀 주면 좋겠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달라고 달라고 하면서, 무엇인가를 얻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결코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세요? 그 자체로 완전하신 하나님, 그 자체로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으신 하나님, 그 자체로 영광이 풍성하신 하나님, 그 자체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시어서, 그래서 하나님에게 아쉬운 게 아무것도 없어요. 뭔가 아쉬운 사람이 있어야, 우리가 물물 교환을 하죠. 뭔가 아쉬운 게 있는 사람하고 딜이 되는 거죠. 그런데 아무것도 아쉬운 게 없는 사람한테는 이게 물물 교환이 안 되는 거예요. 흥정이 안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100만 장자가 있다고 합시다. 그 100만 장자한테 가서 아저씨 내가 1만 원 줄 테니까 나한테 1시간만 시간 내줘요 하면 내줄까요? 아니요. 100만 장자가 무슨 만 원이 필요해서 시간을 내주겠어요? 전혀 소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하나님 아무것도 아쉬운 것이 없는 하나님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서원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 내가 목회자가 될 테니까, 하나님 내가 교회당을 지어줄 테니까, 하나님 내가 선교 사역을 할 테니까, 이거 주세요 하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는 제안일 뿐입니다. 오늘 야곱이 하나님 앞에 서원 기도한 것은 흥정한 게 아닙니다. 야곱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말한 것은 흥정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이제는 내가 이렇게 살겠습니다”라고 하는 결심을 하는 거고 결단을 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나의 다짐인 것이죠. 하나님께서 이 야곱에게 놀라운 은총을 베풀어 주셨어요. 이 야곱이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길래, 하나님께서 이런 놀라운 은혜의 말씀을 해 주시는 거죠? 야곱은 아주 대단한 사람이었나요? 야곱은 아주 훌륭한 사람이었나요? 아니요. 야곱이 누구냐 하면 거짓말한 사람이에요. 속임수를 쓴 사람이에요. 부족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형이 죽이고 싶어 하는 그런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 누구에게 내놓아도 감히 설 수 없는 그런 부족한 사람일 수밖에 없는 게 바로 야곱인 것이죠. 우리랑 똑같아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축복처럼 이삭에게 주셨던 축복처럼 야곱에게도 똑같이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고 말씀해 주셨을 때, 야곱의 반응이 무엇이냐면, 하나님 정말입니까?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놀라운 은혜를 주신다는 말, “그 말이 정말입니까?”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정말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셔서, 정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셔서, 내가 가는 그 모든 길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해 주시 시겠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저를 안전하게 이 길로 돌아오게 우리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은혜를 베풀어 주 시겠다는 말입니까? 정말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 내가 이제부터는 이 기둥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인도해 주신다고 한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 가운데서,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 가운데서 “10분의 1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다짐의 고백을 하는 것이, 이 야곱이 했던 서원 기도의 내용인 거죠.
야곱이 하나님 이거 주면 내가 이거 줄게요. 하나 뉘앙스가 다르죠. 하나님이 이거 나한테 주면 내가 이거 줄게요 하고 흥정하고 조건을 제시하고 계약을 하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야곱은 그 순간에 충격을 먹은 거예요. 나 같은 연약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정말로 사랑해 주신다는 말입니까? 정말로 나와 함께해 주신다는 말입니까? 정말 하나님의 말씀처럼 나와 함께 하셔서 저를 이곳으로 보내주셔서 보내주신다고 한다면 안전하게 지켜주신다고 한다면 하나님 이제는 내가 예전처럼 살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내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거라고 하는 말은 무슨 이야기예요? 내가 있는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겠다는 겁니다. 나의 일생이 이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겠다고 하는 그런 고백인 것이죠. 내가 가진 모든 것 가운데서 10분의 1을 드리겠다고 하는 말씀은 무슨 말이에요? 내가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돈이 나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알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며 살겠다고 하는 그런 의미예요. 그래서 이 야곱의 고백이 무엇이냐면 이제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반응으로 이런 믿음의 고백이 나온 줄로 믿습니다.
종종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는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하나님 내가 예배 드려줄 테니까, “하나님, 나한테 복 주세요.” 이렇게 말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예배가 고프신 분이 절대 아니에요. 하나님 내가 이만큼 드릴 테니까, 하나님 나한테 복 주세요. 물질이 아쉬운 분이 하나도 아니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예배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을 위해서요.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아니하고, 돈을 숭배하거나, 정치를 숭배하거나, 아니면 명예를 숭배하거나, 이 세상에 썩어질 것들을 숭배하게 된다고 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배신을 당하게 될 겁니다. 정말 썩어질 것들을 우리가 섬기게 되면 결국 우리는 망하게 될 겁니다. 고통을 당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런 썩어질 것들을, 아무런 유익하게도 해주지 못할 것들,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들을 섬기지 말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너희의 삶이 풍성해지라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을 위해서 우리에게 예배하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참된 하나님을 제대로 예배하게 될 때, 우리의 삶에는 기쁨이 넘치고, 우리의 삶이 행복해지고, 우리가 좋아지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예배하라 말씀하시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헌신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이 세상에 돈을 우상으로 섬기면서 살면, 결국 피폐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돈을 우상으로 섬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섬기는 삶 가운데서,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살라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이런 말씀을 해 주시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이 야곱의 믿음의 고백을 보면서 우리도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실 우리도 주님께서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어요.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신 그 엄청난 사랑을 우리가 받았다고 한다면, 주님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이제는 주님과 함께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그런 고백들이 저희들의 입 가운데서 나타나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마치 야곱이 집을 떠난 것과 같은 상황들이 있습니다. 지금 아무런 문제가 없는 분들도 있겠지만, 우리의 인생 가운데는 언제나, 야곱이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그래서 광야 한가운데서 잠을 자야만 했던 것과 같은, 그런 상황을 우리가 언제든지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이냐면, 하나님 그 옛날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사다리가 있고 층계가 있고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했던 그 환상을 우리들에게도 좀 보여주옵소서 그런 갈망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이미 그렇게 하셨어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 높은 곳에서부터 우리를 위해서 내려오셨어요.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 주셨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어요. 따라서 오늘 우리가 그 주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의 고백을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위해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셨던 말씀이 무엇이냐면,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지금 내가 고아와 같고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서 우리를 향해서 해 주시는 말씀이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이지요. 따라서 그 어떤 상황과 순간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면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그 옛날 야곱이 꿈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천사의 그 환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보면서 감사와 감격 가운데 일어서서 그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기억하면서 감사하면서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