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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된 다윗(삼하 2:1-7)

사울이 죽었을 때, 모든 정보들이 다윗에게로 모였다. 이 상황에서 다윗은 이러한 정보들을 근거로 국가의 권력을 잡으려면 잡을 수도 있었다. 예전에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었을 때, 정보를 가장 빨리 접할 수 있었던 사람이 우리나라의 권력을 찬탈했던 것처럼 말이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였기 때문에, 그러한 사실에 근거해서 밀어붙이면 밀어붙일 수 있었다. 하지만 사울이 죽었을 때, 다윗이 제일 먼저 한 일은 하나님께 묻는 일이었다. 하나님, 유다의 성읍으로 올라갈까요? 어디로 갈까요? 자신의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하나님께서 축복해줄 것을 물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앞에 엎드렸던 것이다. 이 점이 사울과 달랐다. 사울은 자신이 계획을 세워놓고, 하나님이 그 길을 축복해주길 바랬다. 하지만 다윗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이 먼저였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구약 시대에는 우림이나 둠밈을 통해서, 에봇을 통해서, 제비뽑기나 꿈이나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그러한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 목회자의 조언을 구할 수는 있지만, 목회자는 구약 시대의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전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만일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그 곁을 떠나는 것이 좋다. 우리가 꿈을 의지할 것도 아니다. 성경에서 꿈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적이 있지만, 모든 꿈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것일 수 없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을까?

그것은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갈 때 가능하다. 우리는 성경을 깊이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서 알아가야 한다. 그러면 우리들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말씀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마치 오랫동안 같이 산 부부는 말하지 않아도 무엇을 원하는 지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다윗은 결국 헤브론으로 가서 왕이 되었다. 전체 이스라엘 민족의 왕이 아니라, 일부 유다 족속의 왕이 되었다. 아주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왕이 되기 전과 된 후가 크게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왕으로 즉위하기 전에도 왕노릇 했었다. 고난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적으로부터 구해주었다. 다윗이 가는 곳에 평화가 깃들고 안전이 보장되었다. 항상 하던 그 일을 하다가 왕이 된 것이다. 이것이 또한 사울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사울은 왕이었지만 왕 같지 않았다. 

다윗은 사울의 시신을 묻어준 야베스 사람들을 축복해주었다. 그들은 사울 왕으로 인하여 목숨을 건진 족속이었기 때문에 끝까지 사울을 위해서 좋은 일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다윗은 그들을 축복해주었다. 원수로 취급하지 않았다. 왜? 그것이 바로 왕의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왕은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정치인을 보면 그게 없어서 아쉽다. 선거철에는 표를 구걸하지만, 당선되고 나면 국민들은 안중에 없는 것이 국민들만 불쌍하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왕이시다. 우리를 사랑하사, 목숨을 내어주시기까지 하신 참된 왕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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