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앞에서도 (고후 8:16-24)

2020년 11월 29일 주일예배 설교

바울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구제헌금에 동참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면서 구제헌금을 전달하는 일에 세 사람을 보내겠다고 하였다. 구제헌금을 전달하는 일에 세 사람을 동원한 이유는 단순히 강도의 위험에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뿐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조심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종종 교회 내에서 재정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믿어주었다가 일어난 사고가 많다. 재정 사고를 일으킨 사람들을 믿어 준 이유는 그들이 평소 정말 신실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주님께 헌신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는 결과를 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재정을 전달하는 일에 신실한 디도를 선발하여서, 그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기지 않았다. 그는 정말 신실한 사역자였고 믿을만한 사람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디도 외에 두 사람의 신실한 형제들을 같이 보내어서 재정을 전달하는 일을 하게 만든 것이다.

물론 사람을 믿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만일 의심하기만 한다면 그 어느 공동체도 바로 서지 못할 것이다. 믿어주고 신뢰하는 관계가 형성되어야 그 공동체는 바로 설 수 있다. 하지만 믿어주고 신뢰한다는 것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정당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의심하거나 오해할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더 나아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늘 넘어지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성경적 관점으로 본다면, 사람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다. 그래서 타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언제든지 타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다윗도 밧세바라는 여인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그런 위대한 인물도 쉽게 무너질 수 있었다면, 우리들은 얼마나 더 쉽게 무너지겠는가?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바른 길을 가르쳐 줄 선생님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바른 길로 가지 못하는 것은 몰라서가 아니다. 알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약함이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필요하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셨고, 그래서 우리가 죄의 용서를 받게 된 것이다.

우리가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고, 더 나아가 교회가 필요한 것이다. 교회가 필요한 것은 우리가 연약하여 넘어지기 때문에 넘어졌을 때에 다시 일으켜 세우고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다. 교회 내에서 문제가 일어나면, 신앙을 저버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로 그러한 사실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함을 더욱 깨달아야 하고, 또한 회복을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항상 기도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주여 진실하게, 신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