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분쟁하면 (막 3:20-30)

스스로 분쟁하면 2020.10.4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먼저,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들었다. 그렇게 몰려든 사람이 너무나도 많아서 예수님께서 식사할 겨를도 없을 지경이었다(막 3:20). 그런데, 예수님의 친족들은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기 때문에 나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한 그들의 얄팍한 지식이 주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는 것을 방해하였고, 결국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의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그 기적을 목격했다. 그래서 주님께 나아갔더라면 그 기적이 자신들의 것이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난해버렸다. 이것이 아쉽다. 그들도 만일 주님 앞에 나아갔더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기적이 그들의 것이 될 수도 있었을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은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다.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 서기관처럼 마음을 닫아버린다면, 예수님이 우리 앞에 있어도 아무런 은총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믿음의 눈을 달라고 말이다. 마음의 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을 향해서 스스로 분쟁하면 나라가 설 수 없다고 답변하셨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다투고 싸우면 그 공동체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성경은 서로 사랑할 것을 권면하면서,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다(갈 5:14-15).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화목하지 않으면 그 가정은 깨어지게 되어 있다. 교회도 성도와 성도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것은 어느 공동체이든지 마찬가지이다.

지금 서기관들은 예수님과 싸우려 들었다. 그것은 결국 망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예수님을 적으로 간주할 게 아니라, 주님으로 모신다면 아주 큰 유익을 누릴 것인데, 그들은 안타깝게도 적으로 간주하고 싸우려 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동료로 간주해야 한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하기 시작하면 머지않은 시간에 내가 광야 한복판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상황을 만나게 될 것이다. 결국, 사람들을 적으로 대한 최대의 피해는 자기 자신이 당하는 것이다. 이웃을 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은 우리를 망하게 만들려는 사탄의 계략임을 깨달아야 한다. 사울 왕은 다윗을 적으로 간주했다. 동료로 간주했더라면 많은 유익을 누릴 수 있었을 터인데, 안타깝게도 그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사탄은 종종 우리 자녀들의 마음에 교회에 있는 사람들을 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선생님이 나를 미워하고, 전도사님이 나를 싫어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런 말을 듣게 된다면, 그런가 보다 할 게 아니다. 그것이 사탄의 전략임을 깨닫고 지혜롭게 자녀들의 마음을 바꾸어 교회의 교사들과 전도사님과 친구들을 적이 아닌 친구들로 볼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으셨다. 심지어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할 때에도, 우리를 원수로 간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녀로 삼아주셨다. 그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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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4 주일 9시 예배 실시간 방송

2020년 10월 4일(주일) 오전 9시 예배는 오전 8:45부터 방송이 송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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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제자들 (막 3:13-19)

열두 제자들 (막 3:13-19)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부르신 것에서 몇 가지 특징을 알 수 있다. 첫째, 제자를 10명이나 15명이 아닌 12명을 뽑으신 이유는 아마도 이스라엘을 대치하는 영적인 이스라엘의 대표들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둘째, 12명의 제자들은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어부출신도 있었고, 세리 출신도 있었고, 열심당파도 있었다. 우리나라식으로 말하면 독립군과 친일파가 모두 주님의 제자가 된 셈이다.

예수님께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신 이유는 이 세상의 단 한 사람도 놓치기를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정말 다양하다. 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주님께서는 어떤 일정 수준의 사람들만을 부르시지 않았다. 복음은 누구에게나 다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양하지만 하나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가 되는 것을 획일화로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획일화의 방법은 그 그룹 안에 들지 못한 사람을 소외시켜버린다. 하나가 되는 방법은 획일화가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그 어떤 단체에서도 나와 다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데서 하나가 될 수 있다.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부르신 목적은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배우게 하기 위해서였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에게서 배우라고 말씀하셨다(마 11:29-30). 이러한 배움은 다른 종교에서의 배움과는 차이가 있다. 다른 종교에서의 배움이란 구원의 수단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단계에 올라간 자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배워서 어느 단계에 올라가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배우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삶의 방식을 배우라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성숙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만일 내가 영적으로 성숙하는 진보를 이루지 못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 탓이 아니다. 환경 탓이 아니다. 최고의 스승이신 주님의 12제자 중에서도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이 나왔다. 아무리 척박한 환경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도 위대한 인물들은 나오게 되어 있다. 우리는 주님께 기도하며 나아가야 한다. 영적인 성숙을 위해서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