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을 떠난 하나님 (삼상 4:12-22)

2017.6.7 수요예배 설교

엘리 제사장은 전쟁에서 패했다는 소식과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과 언약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으로 넘어져 죽었다. 이러한 내용을 읽을 때 우리는 일종의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엘리 제사장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예언 그대로 하나도 틀림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허투루 주시는 말씀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볼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소망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동시에 구원의 약속도 해주셨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구원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우리가 노력하면 그런대로 거룩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점에 있지 않다. 우리는 그 누구도 합격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비느하스의 아내는 아기를 낳으면서 죽고 말았다. 그리고 그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영광이 떠났다는 의미이다. 즉 하나님이 더 이상 이스라엘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 아이의 모습은 마치 이스라엘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다. 아버지 없는 아기의 신세가 되어버린 이스라엘 민족이다. 하지만 정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떠나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 같지만,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돌아간다면 우리는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주시지 않았던가?

경고와 축복 (삼상 3:15-21)

2017년 5월 10일 수요예배 설교

1. 엘리 제사장은 영적인 갈망이 없었다.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면서 영적인 욕심이 있어야 했던 것이 아닌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주여 내게도 은혜를 베풀어주옵소서” 그렇게 갈망해야 헀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우리들은 엘리 제사장을 닮았다.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한 욕심은 있는데, 영적인 축복에 대한 욕심이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신호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은혜를 사모해야 한다.

2. 엘리 제사장은 자신의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을 사무엘을 통해서 듣게 되었는데도 너무나도 태연하다.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라고 말했다. 이건 신앙이 아니다. 정상적인 사람이 보일 반응이 아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우리가 회개하고 나아가면 뜻을 돌이키사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 아닌가? 하나님의 경고는 우리로 하여금 돌아오라는 애타는 신호이다. 우리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늦었다고 할 그 때가 아직 우리에게 기회가 있는 때이니까 말이다.

3. 주님이 엘리 제사장 같지 않은 것이 감사하다. 하나님은 자식이 죽든 말든 너무나도 태연했던 엘리 제사장과 같지 않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라면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이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소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