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합의 믿음 (히 11:31)

2020.10.11 주일오전예배 설교

라합은 다윗 왕의 고조할머니며, 예수님 조상의 명단 가운데 있는 여인이다. 그런데 이 여인의 출신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깜짝 놀라게 된다. 먼저 라합은 가나안 사람이었다. 이방 사람이라는 게 지금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하나님의 회중에 들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아래 있는 사람으로 간주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더 나아가 라합은 기생이었다. 물론 이 여인의 실제 직업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 방법이 없다. 아마 몸을 파는 여인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냥 주막 여주인 정도로만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출신 성분 자체는 그리 떳떳하지 못한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라합이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의 고조할머니였고, 예수님의 조상 가운데 있다는 것이 놀랍다. 더구나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라합의 믿음을 하나의 예시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도대체 어떻게 이 여인이 믿음의 모범으로 제시될 수 있었을까?

라합은 하나님에 대해 설명을 들은 것도 없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권유를 받은 적도 없다. 그가 들은 것은 소문뿐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원하셨고 애굽과 아모리를 물리친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직 참되신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 앞으로 가는 것밖에는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초대는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진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동으로 하나님을 찾게 되어 있다. 또한 우리에게 양심이 주어져 있고, 온 세상에 하나님의 지문이 찍혀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초대가 들려질 때, 사람들은 세 가지 방법으로 반응한다. 첫째는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하나님은 없다고 믿는다. 둘째는, 하나님을 모방한 가짜 신을 만들고 그 앞에 절한다. 오직 자신들에게 복을 주는 용도만 가지고 있는 우리 입맛에 맞는 가짜 신을 섬긴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반응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초대에 순종하며 마음을 여는 반응이다. 이것이 바로 라합이 보인 반응이었다. 그 결과 라합은 다른 여리고 성 사람들이 망할 때, 함께 망하지 않았다. 믿음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 믿음이 실제적으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라합의 경우,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숨겨주는 것으로 그의 믿음이 나타났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그때 우리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길이다.

믿음과 증거 (히 11:1-3)

2017.4.30 주일오전예배 설교

“어머니와 고등어”라는 노래를 부른 김창완은 냉장고 속에 놓여 있는 고등어를 보고서도 어머니의 사랑을 발견한다. 거기에 고등어가 놓여 있는 것은 내일 아침에 어머니가 고등어를 구워주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 자연만물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는 것이 옳다. 어쩌다보니까 우연히 이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과 계획 가운데 이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믿음으로 우리는 이 세상이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임을 안다. 그런데 그 믿음은 허황된 것이 아니다. 우리 집 냉장고 속에 고등어가 들어가 있는 것은 바다 속의 고등어가 혼자 헤엄치고 기어서 그 안으로 들어간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신 증거들을 보여 달라고 요구한다. 이미 온 세상에 그 증거가 널려 있는데도 말이다. 엄마 아빠가 진짜 나의 친부모인지 증거를 요구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물론 보다 확실한 믿음을 위하여 때때로 필요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증거를 요구하기보다 부모의 사랑을 누리는 일이 필요하다. 히브리서 11장은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담대하게 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