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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와 질투라는 색안경(삼상 18:6-12)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며 이것이 아주 위험하다는 점이 우리 모두를 긴장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혹시라도 감염될까 두려워하여 마스크를 끼기도 하고 손을 잘 씻기도 하는 등 예방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하게 영적인 바이러스가 있다. 영적인 바이러스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치명적이라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코로나19에 대해서는 과도하다시피 대비하면서도 영적인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둔감하다는 사실이다.

영적인 바이러스 중에서도 시기와 질투의 바이러스가 있는데, 코로나19가 누구에게나 감염될 수 있듯이 시기와 질투의 바이러스도 면역력을 가진 사람이 없다. 심지어 주님을 따르기로 결단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쉽게 감염되고 만다. 한번은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에게 찾아와 자신의 두 아들을 주님의 양 옆자리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그 소리를 들은 다른 제자들은 시기와 질투에 휩싸여 분노하였다. 주님을 따르겠다고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던 그들인데, 시기와 질투의 바이러스에 너무나도 취약했다.

사울 왕도 그랬다.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르고 개선하게 되었을 때, 여인들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면서 노래했다. 이 말은 사울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다윗과 더불어서 함께 높이는 노래였다. 하지만 사울은 그 노래에 시기와 질투의 바이러스가 발동하였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다윗을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 결과 사울 왕은 기쁨이 사라져버렸다. 모두가 기뻐할 때, 그리고 누구보다도 기뻐해야 할 사울 왕이 골리앗의 죽음 앞에서도 기뻐할 수 없었다. 이 모두가 시기와 질투의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우리의 삶에서도 기쁨이 사라져버렸다면, 내가 시기와 질투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은 아닌지 체크해 보아야 한다.

더 나아가 사울은 더 이상 다윗을 친구나 동료로 둘 수 없었다. 다윗을 적으로 간주해버렸다. 그 결과 정작 중요한 순간에 다윗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시기와 질투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다른 사람을 적으로 삼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기 자신이 당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결국 사울 왕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죽게 되었는데, 다윗이 자기편이었다면 그런 불행한 결과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시기와 질투의 바이러스는 자신을 죽이는 요인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 제목은 시기와 질투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이어야 한다. 축구팀 선수들이 서로를 시기하고 질투하면 그 축구팀은 이길 수 없다. 그런데 모든 공동체는 다 같은 팀이다. 가족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다. 그 안에서 시기와 질투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그 공동체는 망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 제목은 시기와 질투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는 것을 시기하지 않으신다. 물론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시지만, 그 질투는 우리가 사탄의 꼬임에 빠져 망해가는 것에 대한 질투이고, 잘 되는 것에 대한 질투가 아니다. 부모는 자식이 더 잘되면 질투하지 않고 오히려 더 기뻐하듯, 하나님은 우리로 인하여 기뻐하시는 분이시며,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면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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