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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주일설교

마지막 남은 카드 (왕하 7:3-8)

2021년 6월 6일 주일예배 설교

진퇴양난이라는 말이 있다.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아주 곤란한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가운데, 반드시 이런 상황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우리 성도들에게는 진퇴양난이라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모든 방향이 꽉 막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을 향해 가는 도중에 홍해 바다를 만났다. 그리고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를 향해서 원망하기 시작하였다. 이 급박한 상황에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을 찾아도 모자라는 판에 비난의 화살을 지도자를 향해 쏘아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마리아 성 밖에 살던 네 사람의 나병환자에게도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먹을 것이 떨어졌는데, 사마리아 성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성안에는 이미 기근이 심하여 먹을 것이 떨어진 지 오래였다. 그 자리에 그냥 있을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이들은 놀라운 결단을 하였다.

첫째, 그들은 그 누구를 희생양으로 삼아 비난하지 않았다. 둘째, 그들은 모든 소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도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아람 군대에 투항하기로 하였다. 투항한다고 해서 길이 열린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0.00001%의 확률이라도 있으면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이들의 결단이 신앙적 결단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에게서 배울 게 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바르고 정확한 판단이다. 그들이 가만히 있다가는 죽을 것을 알았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는 그런 상황인식이 없다. 마치 천년만년 살 것처럼 생각하고 안일하게 지내다가 급작스럽게 종말을 맞이한다.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은 채. 우리는 지금 기회가 있을 때 대비해야 한다.

놀랍게도 아람 군대에는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환청으로 인하여 놀라서 도망하였다. 먹을 것을 그대로 남겨둔 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놀라운 축복을 준비해놓으셨다. 그리고 그 초대에 응하기만 하면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된다. 아람 군대에 먹을 것이 쌓여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주님의 초대에 응하여야 한다. 주님께로 가면 풍성한 축복이 기다리고 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잘못된 서원 (삿 11:29-33)

2021년 5월 30일 주일설교 예배

입다의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다면 자기 집 문을 열고 마중 나오는 자를 하나님께 번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원을 하였고, 그 결과 입다는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을 번제물로 바쳤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일이 오늘날 발생했다면, 어떤 광신도가 어처구니 없는 황당한 일을 했다고 당장 뉴스에 보도될 것이다.

도대체 입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기를 원하시는가? 정통적으로는 하나님께 드린 서원은 아무리 손해가 된다 할지라도 반드시 지켜야 함을 배워야 한다고 해석한다. 화장실을 가기 전의 마음과 다녀온 후의 마음이 다른 게 사람인데, 하나님께 한 약속은 결코 어겨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이 이야기를 통해서 배울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해석의 난점은 하나님은 결코 사람을 죽여서 제사를 드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하나님은 잔인하고 무자비한 폭군이 아니라, 사랑이 많으시고 긍휼이 많으신 우리들의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다. 결코 하나님은 우리들을 짓밟아버리면서 좋아하실 하나님이 아니시다. 그게 참되신 하나님이 이 세상의 거짓 종교의 신과는 확연하게 다른 점이다.

입다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사용된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였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가 행한 모든 일들이 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옳은 일이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사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기 소견에 좋은대로 행동했던 어리석은 사람들이었다.

입다가 했던 서원은 잘못된 서원이었다. 서원이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이제는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다짐하며 결단하는 것이다. 마치 야곱이 벧엘에서 했던 서원처럼 말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해주시겠다는 약속을 들었을 때, 너무나도 감사하면서 정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신다면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서원을 하였다. 하지만 입다는 하나님과 흥정하였다.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신다면, 번제를 드리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이러한 서원은 하나님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행위이다. 이러한 서원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리 만무하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입다에게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하셨다. 그런데 그 개선의 행령에 환영하러 나온 사람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외동딸이었다. 그때 입다는 회개하여야 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신앙적 완고함 가운데, 자신의 딸을 죽이고 말았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완고함 속에서 잘못되고 불행한 일들을 반복하는 게 우리들의 잘못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하셨다. 그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에브라임 신드롬 (삿 8:1-3)

2021년 5월 23일 주일예배 설교

기드온이 300명의 용사와 함께 미디안 군대를 물리치고 대승을 거두고 돌아왔을 때, 예기치 못한 사람들을 만났다. 일반적이라면 개선행렬을 환영하고 환호하는 무리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기드온이 만난 무리는 기드온을 비난하고 다투는 에브라임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일들은 우리들에게 낯설지 않다.

주님께서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칭찬하고 인정하기보다는 깎아내리고 비난하는 일에 더 익숙하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앞에 간구해야 한다. 부정적인 시각보다는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을 흠집을 내고 비난하기보다는 칭찬하고 격려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헌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기뻐하고 격려하기보다는 깎아내리고 흠을 찾는 것을 에브라임 신드롬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에브라임 신드롬은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구약에서는 사울에게서 볼 수 있는데,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쳤을 때 함께 기뻐하고 좋아하기보다는 적이라 생각하고 죽이려 하였다. 신약에서는 가룟 유다에게서 볼 수 있는데, 예수님에게 향유를 부은 여인을 보면서 비난하였다. 자신이 그렇게 헌신적이지 못하였고 충분히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성하기보다는 비난하는 데 더 빨랐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이렇게 기드온을 비난한 것은 아마도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미디안과의 전쟁에 함께 따라나서지 못하고, 나중에서야 왜 우리들을 부르지 않았느냐고 비난한 것이다. 면피용 발언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순간에 기드온은 그들을 칭찬하고 인정하여서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내가 한 일보다 너희들이 한 일이 더 크다고 추켜세운 것이다. 어떻게 기드온은 그럴 수 있었을까? 첫째, 자신이 전쟁에서 이긴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둘째, 기드온은 누가 적군이고 누가 아군인가를 잘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 에브라임이 싸움을 걸어오고 있지만, 에브라임은 적이 아니라 같은 편이다. 미디안 민족은 자기들끼리 싸우다 망했는데, 기드온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았다.

우리도 항상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아군인가? 적군인가? 안타깝게도 가정에서, 교회에서, 공동체에서, 사회에서 아군을 적으로 간주하고 싸우는 일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의 진정한 적은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 편으로 알고 감싸주어야 한다.

감사한 것은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적으로 간주하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십자가 위에 달리신 주님을 향해서 욕하고 비난하던 무리들을 향해서 주님은 12 영이 더 되는 천사를 동원하여 멸절시키지 않으셨다. 오히려 이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았다. 그러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차별 없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