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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탄한 자랑 (약 4:13-17)

아침 안개과 같은 인생인데 굳이 계획을 세우며 살아가지 말고, 그저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여러분들은 계획을 철저하게 세우는 편입니까? 아니면 계획 없이 그냥 되는 대로 행하는, 그런 형이십니까? 예를 들어서 휴가를 갈 때나, 여행을 갈 때,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는 그런 형이십니까? 아니면 그냥 큰 계획 없이 그냥 되는 대로 닥치는 대로 즉흥적으로 모든 일을 행하는 그런 형이십니까?

저는 어떤 형이라고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주로 아주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는 편입니다. 여행을 간다고 하면 미리미리 시간 계산을 다 해서, 언제 어디서 렌터카를 빌리고, 어디서 식사를 하고, 어디서 무엇을 구경하고, 어떤 일들을 할 것인가? 그리고 입장권도 미리미리 알아보고, 거의 완벽하게 출발할 때부터 돌아올 때까지, 완전하게 계획을 세우는 그런, 제가 그런 형입니다.

예전에 우리 교회 주일학교 학생들과 함께 미국으로 어드벤처 캠프를 떠난 적이 있었는데요. 떠나기 전에 미리 몇 달 전부터 계획을 철저하게 세웠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세웠기 때문에, 그때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UN 본부에도 들어가 봤고, 백악관 안에도 들어가 봤고, 또 뮤지컬 구경도 할 수가 있었는데요. 이런 데들은 그냥 가서 입장권을 사려고 하면 들어가려고 하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몇 달 전부터 예약을 하지 않으면, 다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조차 구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미리미리 구해놓고 미리미리 예약을 다 해 놓아야 갈 수 있는 곳이었는데요. 이렇게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모든 일을 진행하는 것은 정말 아주 유익합니다. 왜냐하면 그 계획에 따라 움직이면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별로 없고, 최대한 대로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그런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단점도 있습니다. 그건 뭐냐 하면, 한 번 세워 놓았던 그 계획 가운데 어느 것 하나가 펑크가 나버리면, 모든 계획이 망가져 버린다고 하는 그런 단점입니다. 예를 들어서 비행기가 연착이 된다고 한다면, 그다음부터 모든 게 망가져 버리는 겁니다. 렌터카 빌리는 거, 호텔 등등, 어디 방문하기로 했다고 하는 것들 모든 것들이 다 줄줄이 망가져 버리게 되는 그런 단점이 있는 것이죠.

종종 여행을 하다가 보면 어떤 일들이 망가져 버릴 때 저는 정말 좌절해 버립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습을 제 아내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수많은 계획을 세우는 것 가운데서, 그 어느 것 하나가 펑크가 나고 제대로 안 될 때, 제가 정말 절망하고 당황스러워하는 것을 제 아내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것 하나 망가졌기로서니, 그거 하나 조금 늦었기로서니, 뭐 그렇게 당황하느냐고 저를 다그치는데요. 그런데 제 마음 가운데는 그거 하나만 망가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하나 펑크가 남으로 말미암아 연쇄 효과가 벌어질 것을 다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비 효과가 이루어져서 그다음 모든 스케줄들이 한꺼번에 다 망가져버리는 그런 것을 미리 알기 때문에, 그 순간에 당황하게 되는 것이고, 패닉(panic)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어떤 것이 좋을까요? 계획을 미리미리 세워놓고 철저하게 해 나가는 게 좋을까요? 계획을 그냥 느슨하게. 아니면 계획을 아예 세우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되는 대로 그렇게 그때그때 해결하면서 하는 것이 좋을까요? 어느 게 훨씬 더 좋을까요? 장단점들이 다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말하기가 어려운데요. 나름대로 장단점들이 다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계획을 철저하게 세운다고 할지라도, 좀 마음의 여유를 가져서, 어떤 거 하나가 망가지더라도, 크게 당황하지 않기만 한다고 하면 미리 계획을 다 세워놓는 것이 좋을 것이기도 하고요. 아니면 그냥 여유롭게 그냥 시간을 즐기는 것이 더 유익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떤 종류의 교훈을 우리들에게 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야고보서 4장 13절에서부터 16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1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야고보서 4장의 말씀을 우리가 함께 읽었는데요.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리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잠깐 있다가 사라져 버리는 그런 아침 안개와 같은 것인데, 우리의 인생이 긴 것이 아니라, 정말 잠깐 있다가 사라져 버리는 인생인데, 무슨 대단한 계획을 세우고, 무엇인가를 해내는 것은 “다 부질없는 일이다”라고 말씀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1년짜리 보궐 선거에 나가는 후보가 30년 뒤에 계획을 하고 공약을 내건다고 한다면, 우스운 일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잠깐 있다가 없어질 인생인데, 뭔가 대단한 계획을 세우면서 산다고 하는 것은 정말 부질없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그런 계획을 살 것이 아니라, 그냥 다 주님께 맡겨버리고,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하지만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괴로워할 것도 없고, 억울해할 것도 없고, 그냥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인데요. 그렇지 않고 우리가 만일 내 뜻대로 무엇인가 해내겠다고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내 힘으로 해낸다고 하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리고 그런 개혁을 이루겠다고 하는 것은 다 허탄한 자랑이고, 하나님께서 오늘 밤에 불러 가신다고 한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세워놨던 모든 계획들을 다 포기해버리고, 그냥 다 놔두고 가야 되는 그런 허망한 인생이 무엇인가를 해내겠다고 계획을 세운다고 하는 것은 허탄한 생각이오. 허탄한 자랑이라고 오늘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고, 오늘 밤에 죽을 수도 있는 인생이, 한 치 앞을 볼 수도 없는 인생이 뭔가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무슨 원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 그건 다 부질없는 일이다. “허탄한 자랑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그러니까 이 말씀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무런 계획 없이 살아야, 그게 옳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수고하는 것 다 부질없는 일이니까, 그냥 될 대로 돼라. “그냥 인생을 아무렇게나 살아라”라고 말씀해 주시는 그런 의미의 말씀이 아닙니다.

제가 여러 번 강조하는 것처럼,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는 성경의 어느 한 부분만 읽을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항상 골고루 살펴보아야 한다고 여러 번에 걸쳐서 말씀드렸습니다. 이 문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인생을 살아가는 이 문제에 대해서, 오늘 야고보서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냐면, 그런 거 다 부질없는 짓이다. 너희가 무슨 계획을 세우느냐? 그냥 주님께서 허락하신 대로 그냥 살아가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러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계획으로, 아무렇게나 “될 대로 돼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 다른 곳에서는 정반대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 전체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우선 요셉이라고 하는 사람은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풍년이 있는 7년 동안의 곡식을 잘 모아 두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준비하고 계획하는 가운데, 앞으로 6년이 다가올 텐데, 7년간의 극심한 흉년이 있을 텐데, 그 흉년을 위해서 지금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요셉이 바로 왕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계획할 게 뭐 있습니까? 우리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허망한 것인데, 부질없는 것인데, 풍년이 들면, 마음껏 흥청망청 먹고살다가, 흉년이 들면, 그냥 배곯으면서, 그냥 절약하면서 살면 되는 것이지, 준비할 게 뭐가 있습니까? 계획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그냥 그냥 살면 됩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가지고 바로 왕에게 충고하기를, 지금 이제 7년간의 풍년이 될 텐데, “그 풍년의 기간에 흉년을 대비해야 된다”라고, 준비하고 계획하고 그 계획에 따라서 모든 일들을 해나가지 아니하면 안 된다고 충고하였습니다.

광야에 살던 이스라엘 민족들은 만나를 먹었는데요. 매일매일 주시는 그 만나를 먹었습니다. 매일 주시는 그 만나를 먹는데, 금요일이 되면 토요일인 안식일을 위해서 이틀 치 만나를 거두어야 한다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토요일 안식일이 되면, 만나가 내리지 않을 거니까, 만나가 내리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금요일에 미리 이틀 치 만나를 거두어 두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일 안식일에 아무것이 내리든 말든 상관하지 말고, 오늘 내리면 오늘 마음껏 먹고, 내일은 안 내리면 내일은 굶을 굶으면서 지내고, 그렇게 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며 지금 준비해야 될 것은 준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전쟁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서 미리 평화의 시절에 마병을 준비하는 것이 옳다고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잠언서 21장 31절 말씀에 보면,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에게 달려 있을 거니까, 끝까지 마병을 준비할 게 뭐가 있느냐?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해 주면 승리하는 거고, 하나님께서 폐하게 하시면 폐하게 되는 거니까, 마병 같은 거 준비할 필요 없다. 지금 뭐 하려고 마병을 준비하느냐?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전쟁을 이기게 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달려 있다고 할지라도, “너희가 지금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라”라고 권면하고 계시는 겁니다.

따라서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묵상한다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계획을 세우고 미리미리 준비하고 대비해서, 그래서 미래의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지금 준비하는 것은 아주 현명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은퇴를 한다고 한다면, 은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금 아직 힘이 있을 때 은퇴 이후를 준비하는 것은 현명하고 바람직한 일입니다. 성경은 그냥 우리가 “될 대로 돼라.” “그냥 살다 보면, 이렇게 살 수도 있고, 저렇게 살 수도 있으니까, 힘들면 힘든 대로 살고, 좋으면 좋은 대로 살고, 그냥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살면 된다.”라고, “그렇게 무책임한 삶을 살아도 된다.”라고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 전체의 가르침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가지고, 지금 우리가 아직 힘이 있을 때, 미리미리 준비하고 미래를 대비하며,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 성경 전체를 통해서 가르쳐주시는 지혜의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우리가 살펴본 야고보서 4장 13절에서부터 16절의 말씀에서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너희가 무슨 계획을 세운단 말이냐? 어느 도시에 가서, 장사를 해서 돈을 남기겠다고? 그게 무슨 소리냐? 너희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마침 안개와 같아서, 허망한 것인데, 그냥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허락하시는 대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렇게 살 것이지, 무슨 허탄한 자랑을 하느냐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인데요.

이 말씀의 의미는, 그러니까 우리가 인생을 무책임하게 아무런 계획 없이, “될 대로 돼라” 하면서 살아도 된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이 아니라, 이 말씀은 우리의 교만함에 대한 말씀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는 교만함이 있는데요. 내가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내가 그 계획대로 밀고 나가면, 그리고 당연히 성공할 것이고, 그래서 이것은 나의 자랑이고, 이것이 내 똑똑함, 내가 아주 현명했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다고 하는 그런 교만한 마음이 우리들 안에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수고하고 애쓴 것에 대해서, 그 수고하고 애쓴 만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수고하면 수고한 만큼의 결과를 얻는 거예요. 하나님이 계셔서 이 세상을 바르게 움직이고 계시기 때문에, 공의롭게 움직이고 계시기 때문에, 수고하며 애쓴 자들에게는 그만큼의 보상이 있게 되는 것이고, 게으른 사람들은 아무런 것도 얻을 수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지배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일인 것이죠. 수고한 자에게 보상이 있는 이유, 장사를 열심히 한 사람에게 그만큼의 수학이 생기고,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에게 좋은 대학이 갈 수 있는 이유, 왜 그렇습니까?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만일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다스리지 않는다고 한다면, 아무리 수고해도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엉뚱한 결과들만 나타나게 될 것인데요. 따라서 수고한 대로 소득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은 우리가 감사해야 될 이유가 되는 것이죠. 하나님 앞에서 감사해야 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종종 사람들은 하나님을 계산해 놓지 않습니다. 내가 계획을 잘 세웠고, 내가 똑똑해서, 내가 뛰어나서, 무엇인가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 불신앙의 사람들입니다. 그런 불신앙의 사람들을 향해서 들려주시는 경고의 말씀이, 내가 계획을 세우고 밀어붙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느냐? 너희의 인생이 무엇인 줄 아느냐? 아침 안개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지 않는다고 한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시편 127편 1절의 말씀 아주 유명한 말씀이죠.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에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우리가 계획을 세우지 말라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 준비하지 말라고 하는 그런 말씀이 아니라, 그리고 우리가 인생을 될 대로 대로 하면서 그냥 막무가내로 살아도 괜찮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따라 철저하게 밀어붙인다고 할지라도, 어느 순간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막으시거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틀 때가 있는데, 그때 분노하거나 슬퍼하거나 좌절할 게 아니라, 그 순간에 “주의 뜻이면, 주의 뜻이 이루어지리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한다고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는 실패의 경험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내가 수고하고 애썼는데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반응을 하게 됩니까? 좌절하게 되는 거죠. 정말 나는 새벽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열심히 장사를 했는데, 망해버렸어요. 우리 학생들의 경우는 정말 1년 내내 열심히 공부하고 했었는데, 망해버렸어요. 좋은 대학에 갈 수가 없게 됐어요. 내가 최선을 다하고 열정을 다했는데, 아무런 결과를 얻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갖게 됩니까? 분노하게 되고, 때로는 좌절하게 되고, 절망하기가 쉽게 되겠는데요.

그런데 특별히 그렇게 실패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갈 길이 가로막히는 것이, 내가 수고를 덜해서가 아니라, 어떤 불의의 세력 때문에 그런 어려움을 겪게 될 때는 정말 참을 수가 없는 것이죠. 미칠 것만 같은 거지요. 나는 수고했는데, 악한 자들이 와서 내 앞길을 막아버리고, 악한 자들이 오히려 더 잘 되는 그런 모습을 보면 정말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야고보서 4장에서 들려주시는 교훈이 무엇이냐 하면, 그런 그 순간에도 “주의 뜻이면 우리가 이것을 하기도 하고, 저것을 하기도 하겠습니다.” 고백해야 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 4장에 나와 있는 이 표현에 한번 주목해 보셨으면 좋겠는데요. 여기서 누구의 뜻이라고 표현하고 있죠? 주의 뜻! 주의 뜻이면, 주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우리가 이 현실에서 만나는 것은 무엇을 만납니까? 억울한 일을 만나는 거죠. 불의한 일을 만나는 겁니다. 불의의 세력에 의해서 좌절되는 겁니다. 사기꾼에 의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고, 친구인 줄 알았는데 배신해버리는 사람에 의해서 내 길이 계획이 막혀버리는 것이고, 때로는 건강의 문제, 때로는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우리의 길들이 막힐 때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성경 말씀은 뭐라고 표현하냐면, “주님의 뜻이라면,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행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다시 말하자면 지금 불의의 세력에 의해서 내 앞길이 막혔는데, 사기꾼에 의해서 완전히 내 재산을 다 털려버렸는데,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주님의 뜻이라면,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섭리하시고 계획하시는 가운데 일어난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고요. 그러면 그때 어떻게 해야 되는가? 분노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슬퍼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 무엇이 정답입니까? 오히려 기뻐하고 오히려 감사하는 게 정답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질문을 던져야 됩니다. 주님, 주님께서 저의 길을 이렇게 막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들려주시는 말씀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거예요. 우리들의 앞길이 막힐 때, 좌절하고 절망할 게 아니라,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죠.

바울 사도의 예를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소아시아 지방을 여행했습니다. 2차 전도 여행을 하는 가운데 바울 사도는 루스드라라고 하는 곳을 방문했다가, 부기아와 갈라디아와 무시아를 거쳐,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는데, 자꾸만 길이 막히는 겁니다. 전도의 길이 막히는 겁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전도하라, 복음을 전하라고 해서 지금 전도의 길에 나섰는데, 전도의 문이 자꾸만 막히는 거예요. 길이 안 열리는 거예요. 전도하기가 어려워지는 겁니다. 그런데 그 상황을 뭐라고 표현하냐면 사도행전 16장 7절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시아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바울 사도가 지금 비두니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는데, 예수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아서 못 가게 됐다는 겁니다. 지금 전도하러 가야 되는데, 예수님의 영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영이 가로막았다고 하는 거 허락하지 않았다고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비두니아로 가려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시면서, “바울아, 바울아, 거기는 가지 마라.”라고 말씀해 주셨을까요? 음성을 들려주셨을까요? 아니면 그 마음 가운데 사도 바울의 마음 가운데, “거기 가지 마라”라고 하는 그 세미한 그 느낌을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해 주시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하는 그런 의미일까요? 아니면 교통편이 막혀서 못 가게 되고, 마차를 예약해 놨는데, 마차가 캔슬(cancel)돼 버리고 갈 수가 없게 돼 버리거나, 회당에 가서 말씀을 전하기로 했는데, 회당에서 연락 오기를 “바울 선생님, 우리 회당 모임 취소됐으니까, 오지 마세요.” 했거나, 코로나가 발병돼서 우리 못 모이니까, 오지 말라고 했거나, 아니면 그 비두니아로 가려고 하는데, 바울 사도의 몸이 아파서 꼼짝도 못 하고, 열이 펄펄 끓으면서, 그런 상태에서 못 가게 된 그런 상태를 말하게 된 것일까요?

모든 가능성들이 다 가능합니다. 주님께서 직접 말씀을 들려주셨을 수도 있겠고, 아니면 사도 바울의 마음 가운데, 그런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마는 아마도 교통편이 막혔거나 회당에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거나, 바울 사도가 아파서 가려고 했지만, 못 가게 된 그런 상황을 만나게 되었고 여러 가지 장애물들을 만났을 가능성이 많은데요. 바울 사도에 그렇게 그런 상황에 대해서, 사도행전 16장 7절에서 표현하시기를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 바울 사도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해야 되는데, 못 전하게 되는 그 상황 가운데서 좌절한 게 아니라, 그 가운데 묵상하고 또 묵상합니다. “주님, 왜 이 길이 자꾸만 막힙니까? 나는 복음을 전하고 싶은데, 나는 이런 원대한 꿈을 꾸고 싶은데, 왜 이 길이 막힙니까?” 그러는 가운데 주님께서 꿈의 한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마케도니아의 한 청년을 보는 환상을 보게 됐는데요.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라고 하는 그런 환상을 보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지금의 터키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원래 계획을 세웠었는데, 거기서 자꾸 뭐가 막히니까, 결국 어떻게 됐냐면 지금의 그리스 지방으로 유럽으로 건너가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아시아에서 사역을 하다가 자꾸만 막히니까, 이제는 유럽으로 건너가게 되었는데, 지금 이렇게 유럽으로 건너가게 된 것이 교회사적으로 본다고 한다면 복음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게 되는 신의 한 수와 같은 움직임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계획을 세웠던 것들이 망가진다고 할지라도, 분노하거나 좌절할 것이 아니라, 그 계획이 망가졌을 때 그것을 우리가 알 수 없게 되었을 때,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겠다고 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하며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인도하심에 따라갈 수 있는 그 마음의 자리를 남겨 놓아야 합니다. 내가 세운 계획, 이대로 해서,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해서 내 인생을 이렇게 살겠다고 하는 그 계획이 나의 우상이 돼 버리면 안 되는 거예요. 종종 계획을 철저하게 세우는 사람들은 그게 우상이 돼버려요. 그래서 그 계획대로 안 맞아 들어가면, 정말 절망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패닉(panic)하게 되는데, 오늘 성경 말씀이 무엇을 가르쳐주냐면, 그게 너의 계획이 우상이 되지 말라. 계획을 다 세워놓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막히고 하나님께서 다른 길로 인도하신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신다고 한다면, 우리의 계획을 포기하고, 그것을 포기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겸손함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야고보서 4장의 말씀이 16절까지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17절도 연결돼 있어요. 4장 17절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갑자기 뜬금없는 말씀이 덧붙여진 것처럼 보입니다. 조금 전에는 무슨 이야기를 했습니까?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갑작스럽게 17절에서는 딴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사람이 선을 행할 줄도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 그게 죄”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데요. 이 17절의 말씀은 그 앞에 부분과 전혀 별개의 말씀이 아닙니다. 17절의 말씀을 어떻게 시작하냐면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13절에서부터 16절의 말씀을 해 놓고, 이 말씀에 근거해서 이러한 것이니까, 그러므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선을 행하지 못하는 이유, 그것은 우리가 악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선을 행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선을 행하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선을 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내 코가 석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당면한 과제가 내 앞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내가 선을 행하기보다는, 내가 세워놓은 계획이 있어요. 이 계획에 따라서 이렇게 움직이고 이렇게 움직이고 이렇게 움직여서, 그 계획대로 살아야 내가 성공한다고 하는 그런 마스터플랜(master plan)이 나에게 있어요. 그런데 선을 행해야 되는 일들을 보면, 선을 행하지 못하는 겁니다. 왜? 지금 이 마스터플랜에 따라 움직여야 되는데, 내 계획에 따라 움직여야 되는데, 지금 내 계획에는 이 선을 행할 수 있는 여력이 없어요. 지금 이 계획을 세워야 하니까, 이 계획대로 따라야 되니까요. 그래서 선을 행하지 않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선순위에서 밀려버리기 때문에, 지금 내게는 계획대로 따라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보면 강도 만난 사람이 쓰러져 있는데, 그 옆을 제사장도 지나가 버리고, 레위인도 그냥 지나가버립니다. 왜 이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지나가 버렸을까요? 그것은 모릅니다. 성경에 써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들의 마음속을 들어가서 알아볼 시간도 없고, 그 사람들이 왜 그냥 지나갔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상상해 보는 추측을 하다 본다면, 선을 행하지 못한 이유, 그 강도 만난 자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 이유가, “바빠서 그랬을 것” 같아요. 지금 바빠요. 약속 시간에 맞춰서 빨리 가야 돼요. 내 계획이 있어요. 내가 지금 해야 될 일이, 당면한 일이, 시급한 일이 있어요. 그런데 내 앞에 갑자기 튀어나온 강도 만난 사람을 보니까, 그 사람을 도와주면 모든 계획들이 다 무너져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멈춰 섰습니다. 그 길은 지금 내가 계획을 세워놓고 마스터플랜(master plan)을 짜 놓고, 이렇게 그렇게 해서 내가 이런 여행을 하겠다고 하는 여행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놓고 가던 길이었는데, 강도 만난 사람을 보니까, 그 여행 계획을 다 취소해버렸어요. 그 모든 계획을 다 포기해 버리고, 강도 만난 그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엎드리는 거예요. 선한 사마리아에는 재정을 어떻게 어떻게 쓰겠다고 하는 나름대로의 재정 사용 계획이 있었어요. 이 데나리온을 가지고 이것을 하겠다. 저것을 하겠다. 선물을 사서 우리 딸아이에게 주겠다. 선물을 사서 사랑하는 아내에게 주겠다. 수많은 계획을 세워놓고, 이 재정 계획을 수립하고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강도 만난 사람을 만난 거예요. 근데 그 강도 맞는 사람 앞에서, 모든 재정 계획을 포기해 버렸어요. 내가 세운 계획을 포기해버렸어요.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냐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갑작스럽게 보여주시는 그 사명 앞에서, 내 계획을 우기고 끝까지 내 계획을 밀고 나갈 게 아니라, 주의 뜻이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한다고 하는 그런 믿음의 고백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내 계획에 없고, 내가 예상치 못했던 갑작스럽게 해야 될 선한 일, 정말 사랑해야 될 그런 일들에 이건 내 플랜(plan)에 없었다. 내 계획에 없었다. 지금 나는 다른 일을 해야 되니까, “할 수 없다”라고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갑작스럽게 주시는, 그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그 사명에, 놀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갑작스러운 사명들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날마다 보여주고 계시는데, 그 사명을 외면해 버리고, 내가 세워놓은 계획 어느 도시에 가서 장사해서 일을 보겠다. 그래서 성공하겠다. 내 계획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멋지게 내 계획을 수행하고, 그래서 내가 성공했다고 하는 것이 그게 자랑거리예요? 그게 자랑거리냐고요? 내가 세운 그 완전한 계획을 내가 하나도 흐트러뜨리지 않고, 완벽하게 수행해서, 내가 성공했다고 하는 게 그게 자랑거리냔 말이에요? 그건 허탄한 자랑거리예요. 허탄한 자랑. 우리는 하나님께서 갑작스럽게 보여주신 그 사명 앞에 우리의 계획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게 사랑이고, 그게 믿음이고, 그게 우리 성도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어요. 특히 어머니들은 그렇게 살았어요. 처녀 때 가지고 있었던 여러분들의 꿈이 무엇입니까? 훌륭한, 정말 멋진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하는 꿈과, 멋진 시인이 되고 싶기도 했고, 아름답게 나 자신을 꾸며보기도 했고, 그래서 행복한 삶을 살겠다고 꿈을 꾸던 여인들이, 자신의 삶 앞에 갑자기 애기가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그 아이를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내 꿈을 다 포기해 버렸어요. 세계 최고가 되겠다고 하는 그런 꿈들도 다 포기해버리고, 내 진액을 다 쏟아서 그 아이를 사랑하는 일에 내 모든 것을 다 집어넣었어요. 갑작스럽게 내게 주어진 그 행복 덩어리, 그 아이를 사랑하기 위해서, 내 모든 것을 다 희생해버린, 물론 우리 여성들이 앞으로도 더 많은 자기 발전과 개발과 하는 것들이 필요합니다마는, 그런데 그게 의미 없는 일이 아니라, 사랑이었던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바로 그게 우리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서 해주신 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저 하늘 위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영원한 행복을 누리면서 그냥 그곳에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보시고 죄악으로 인하여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외면하시지 않고, 저 높은 곳에서부터 이 낮은 말 구유에까지 오셨고, 우리들의 죄를 지시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위에서 피 흘려 주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 때문에 살아났다고 하는 사실을 마음속에 기억하면서, 오늘 또 우리의 모습들을 돌아볼 수 있는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옹고집으로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내 길을 막으시고 하나님께서 갑자기 보여주시는 그 사랑의 사명 앞에, 믿음으로 “아멘”으로 순종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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