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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의로운 심판 (롬 2:1-11)

지금 우리는 로마서의 말씀을 살펴보고 있는 가운데 있는데요. 지난 시간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모두가 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혹시 기억이 나십니까? 기억이 나실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그러한 지난주에 살펴본 말씀에 이어서, 오늘 읽은 말씀은 다시 한번 우리 사람들은 그 누구도 죄가 없는 사람이 없고, “다 죄인들이다”라고 하는 사실을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죄를 지적하면서, “저런 나쁜 사람, 저 아주 몹쓸 사람” 하면서 비난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게 비난하는 사람도 똑같은 죄를 짓고 있는, 너무나도 모순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인 것이고, 그러한 인생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라고 하는 것을 오늘 본문에서 다시 한번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번 우리가 질문을 던져봤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을 것이고, 죄를 지은 모든 인생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성경에서 표현하고 있는데요. 정말일까요? 정말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하는 것이 정말 맞는 이야기일까요?

성경 말씀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계시고, 그리고 그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선을 베푼 자에게는 상을 내리시고, 악을 행한 자에게는 심판하신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정말 맞는 이야기인가?” 하는 그런 질문을 던져 던져보고 싶습니다.

최근에 넷플릭스라고 하는 곳에서 한국 드라마가 또다시 출시가 되었는데요. 연상호 감독이 만든 <지옥>이라고 하는 영화가 출시되어서, 지난번에 나왔던 <오징어 게임>에 이어서 또다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고 하는 뉴스를 아마 혹시 들어보셨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도 궁금해서 한번 도대체 어떤 드라마인가 하고 살펴봤습니다. 어떤 드라마이냐면, 천사가 나타나서 어떤 사람에게, “당신은 몇 년 몇 월 며칫날 몇 시에 죽는다”라고 예고를 미리 합니다. 그러면 정말 그 시간이 되면, 지금 화면에 나오는 것처럼 죽음의 사자가 셋이 나와서, 그 사람을 죽여버린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로 진행되는 것이 <지옥>이라고 하는 드라마입니다. 이제 화면을 치워져도 괜찮겠습니다. 제가 봤는데, 재미는 좀 없어요. <오징어 게임>보다는 재미가 좀 없는데, 그런데 그 드라마 통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종교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지옥이라고 하는 주제, 심판이라고 하는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참아가면서 끝까지 다 봤습니다.

그런데 그 드라마를 통해서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무슨 얘기를 하냐면, “하나님의 심판 같은 거, 없다”가 드라마의 결론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고통스러운 일들, 어떤 사람은 병을 얻게 되고, 어떤 사람은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정말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렇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에 의해서 통제되어서 악한 자들에게 심판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다 보면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의 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이고, 공의로운 심판 같은 것은 없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강하게 말하고 있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좀 반기독교적인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드라마가 바로 지옥이라고 하는 드라마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을 봤습니다. 연상호 감독은 이 드라마를 통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냐면, “여러분, 쫄지 마세요. 하나님이 없는 겁니다. 하나님이 심판하는 거 아닙니다. 그냥 재수 없어서 그런 일 당하는 겁니다. 괜히 쫄지 마시고, 그냥 자유롭게 살라”고 하는 것이 이 드라마에서 말하고 있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계시는가? 심판하시는 하나님, 공의로운 하나님이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라고 하는 그 질문에 대해서, 우리 크리스찬들이야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것을 믿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계시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불신자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건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이 세상을 바라볼 때, 이 세상이 엉망진창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일 선하신 하나님, 그리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다고 한다면, 그러면 악한 사람에게는 심판을 내리시고, 그리고 선한 사람들에게는 보상을 해주는, 그래서 정말 이 세상이 참 공의롭게 돌아가고, 하나님이 계신 것처럼, 통치자가 있어서, 그 통치자의 뜻대로 정말 잘 돌아가면, “하나님이 계시는구나”라고 하는 것을 알 텐데, 이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 엉망진창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는 그런 추측을 하게 만드는 겁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안전한 나라입니다. 길거리를 걸어 다녀도 안전하고, 우리가 생활하는 데 전혀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는 공권력이 살아 있어서, 경찰력이 뻗치고 있어서, 악한 사람들이 마음껏 활개를 치지 못하는 것이죠. 하지만 저 개발도상국에 가면, 정말 낙후된 나라에 가면, 마치 정부가 없는 것 같아요. 깡패가 온갖 나쁜 짓을 하고 있어도, 마약 단체가 그렇게 나쁜 짓을 하고 있어도, 전혀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그래서 마치 무정부 상태와 같은 그런 나라들이 있는데, 그런 나라에 가면, “이런 나라에는 정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구나”라고 사람들이 느끼게 되는 것처럼, 어쩌면 이 세상이 온 세상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그 하나님의 공권력을 발휘해서, 정의를 바로잡고, 악한 자는 심판하고, 선을 행한 자에게는 상을 내리시는, 그런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진다면, “하나님이 계시겠구나”라고 생각하겠는데, 근데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는 겁니다. 악을 행한 사람 정말 파렴치한 사람은 아무런 고통을 당하지 않고 떵떵거리며 살다가 천수를 누리고 죽어요.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선을 행하는 사람, 의를 위해서 수고한 사람들, 정말 착하게 살려고 했던 사람들은 아무런 것도 누리지 못하고, 고난 속에서 힘들게 살다가, 그리고 정말 억울하게 죽어가는 그런 모습들을 우리가 목도하게 되면서, “과연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 맞습니까?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심판하시는 게 맞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죠.

그런 질문들에 대해서 이 <지옥>이라고 하는 드라마는 우리를 향해서 외치는 겁니다. “속지 마! 하나님은 없어! 하나님의 심판 같은 건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이런 문제에 대해서, 오늘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성경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성경의 이야기는 아주 일관적인 대답을 우리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성경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고,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한 자에게는 심판하시고, 선을 행한 자에게는 상을 내리신다고 하는 것이 성경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일관적인 메시지입니다.

오늘 읽은 로마서 2장 4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혹 내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라고 쓰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 말은 지금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당장 심판하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사람들이 죄를 짓고, 악을 행하고, 정말 심판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마치 계시지 않는 것처럼, 아무런 심판을 하고 있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아무런 감정이 없는 재판관, 심판관이 아니라,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할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또 기다리신다는 거예요. 그냥 잘못했으니까, “넌 불합격” 처리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넌 잘못했으니까, 지옥”하고 끝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너, 그러다가 망한다. 셋 할 동안에, 잘 들어. 하나! 둘! 하고 셋 하지 않고, ‘둘 반’ 그러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당장 심판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경의 가르침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참고 기다리시면서, 회개할 것을 기다리면서, 우리들에게 기회를 더 주시고, 또 주시고, 또 주시는 것인데, 그러한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없는 줄 알고 착각하면서 뻔뻔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말씀이, 오늘 4절에서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하나님을 보면서 오해하는 것이죠. 착각하는 것이죠. “내가 죄를 지어도, 아무 문제 없구나! 내가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안 계시기 때문이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내가 이렇게 악한 일을 행해도, 하나님께서는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래서 계속해서 죄를 짓는 일을 계속하는 겁니다. 왜냐? 심판이 없는 것 같으니까요.

대표적인 예가 어디에 나오냐면, 창세기에 나옵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라멕이라고 하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라멕은 자기 두 부인을 향해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창세기 4장 23절에서부터 24절 말씀입니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 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라멕이 가인을 본 겁니다. 그런데 그 가인이 자기 동생을 쳐 죽인 살인자인데, 하나님께서 그 살인자 가인을 심판하지 않고 보호하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괜찮구나!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하는 것은 없구나! 내가 사람을 죽이고, 다른 사람이 나를 때렸다고, 내가 저 사람을 죽여도 아무 문제없다! 하나님은 나를 심판하지 않는다!”면서 뻔뻔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 대표적인 예가 라멕이라고 하는 사람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뻔뻔한 사람이 정말 사악한 라멕과 같은 사람이 성경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라멕과 같은 사람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어요.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인데, 미워하면서도 죄책감이 없어요.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심판하지 않으니까, 괜찮은가 보다. 미워해도 괜찮은가 보다 하면서, 계속 미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거죠. 신실하게 삶을 살고 있지 않으면서, 마음에 두려움이 전혀 없는 거예요. 왜? 지금 당장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으니까, 주님께서는 형제를 용서하라고 하셨고, 원수를 용서하라고 하셨지만, 우리가 용서하지 않고, 마음속에 옹졸한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으면서도,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지금 당장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냥 뻔뻔하게 계속 미워하면서, 계속 미워하고, 살인을 마음속에 살인을 하면서, 용서하지 않으면서도 괜찮은 줄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슬쩍슬쩍 거짓말하고, 슬쩍슬쩍 속이고, 슬쩍슬쩍 내 것이 아닌 것을 내가 마음껏 편취하면서도, 거리낌 없이 살아가면서, 사람들 앞에서는 거룩한 척, 가장 신실한 척,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들을 향해서 드라마 <지옥>에서는 한 술 더 떠서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괜찮아. 하나님, 없어! 괜찮아. 하나님이 심판 안 해.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만나는 것은 그냥 어쩌다 보니까 만나는 거야. 교통사고 당했다고 어떤 어려움이 있다고, 그때마다 마음속에 좀 쫄리지? 내가 혹시 죄를 지어서 이런 것은 아닐까? 내가 오늘 신앙생활 잘 못해서 이런 건 아닐까? 그런 두려운 마음이 들 때, 그것은 순 가짜야! 저 사이비 종교가 너희들을 착취하기 위해서 만든 거짓 프레임이니까, 그 말에 속지 말고,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 그냥 믿고 나가라”라고 하는 것이 어쩌면 이 드라마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물론 사이비 종교 단체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서 우리를 편취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이 드라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당장 우리들에게 심판이 없다고 해서, “하나님이 안 계시다”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요?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세상에 심판이 없다.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 정말 살인마가 같은 사람이 정말 파렴치한 같은 사람이 떵떵거리면서 잘 살다가 아무 문제 없이 천수를 누리고 죽는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결론이 하나님은 전혀 심판하지 않는 그런 하나님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그런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요?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하는 겁니다. 첫 번째 가능성은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아무 일 안 일어난다고 하는 가능성입니다. 거짓말이야!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거, 거짓말이고, 하나님이 심판한다고 하는 거, 거짓말이고, “그냥 이 세상은 저절로 돌아가는 거야”라고 하는 가능성이 하나입니다.

근데 그 가능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그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계시지만,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또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또 참고, 또 참고 계시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고 하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우리가 이 두 가지 가능성 중에서 어떤 것이 옳다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은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것을 믿는데요. 그 이유는 성경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증거가 온 세상에 널려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우리 집에 다녀가면, 자취하고 있는 그 청년의, 자취하고 있는 어떤 학생의 집에 어머니가 다녀가게 되면, 다녀갔다고 하는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증거가 방 안 구석구석에 다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고 하는 증거가 온 세상에 곳곳에 넘쳐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 것이고,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양심에 그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하나님의 법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등등, 여러 가지 이유를 보면,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일관적이죠. 로마서 2장 6절에서부터 8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여러분 믿으십니까? 이것을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고 심판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도 있고, 안 믿을 수도 있는데요. 안 믿으면 마음은 편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지 아니하면, 겁낼 것이 없습니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 마음 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믿으면, 하나님이 사라져버리죠? 어떻게 되나요? 우리가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믿으면, 하나님이 없어져 버리나요? 그게 아닌 거죠. 우리가 눈을 감고 보지 않으면, 없어지나요? 이 세상에 고통과 슬픔이 있어서, 그걸 놔두고 멀리 떠나면, 그 문제가 없어지나요? 아니요. 우리가 동굴 속으로 숨어 들어가면, 문제가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있어요. 그대로 있어요.

제가 아주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인데,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꿩이라고 하는 새를 잡으려고 하면, 그렇게 별로 어렵지 않다고 해요. 꿩을 잡으러 막 쫓아가면, 그 꿩이 막 도망가다가 조그마한 구멍을 발견하면, 머리를 팍 쳐박고, 가만히 있는답니다. 자기의 머리를 구멍 속에다 집어넣으면, 더 이상 사람이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까, 안전하다 하고, 안심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쫓아가서 그냥 잡기만 하면 된대요.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우리 인간들이 어떤 생각을 하냐면,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해, 하나님이 없어진 줄 알아요. 심판하신 하나님이 안 계신 줄 알아요.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가르쳐주고 있지 않는 거죠. 저는 건강검진을 잘 안 받아왔었는데요. 미국에 살면서 거의 병원에 가본 적이 없고, 그래서 사람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건강상에 문제가 있나요? 없나요?” 그러면 제가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저, 아무것도 없는데요. 당뇨도 없고, 콜레스테롤도 없고, 혈압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왜? 검사를 안 했으니까, 몰라요. 그런데 검사를 안 해서 모르면, 없는 게 아니고, 검사를 안 해서 없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가보면 암이에요. 괜찮은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가보면 당뇨예요. 검사 안 하면, 마음은 편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질병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듯,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면, 마음이 편할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를 향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결국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가요? 지난 시간에도 살펴보고, 오늘 말씀 가운데서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거룩한 척 하는 사람일지라도, 사실은 그 사람이 비난하고 욕하는 그런 행위를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에요. 거룩해 보이는 저 사람은 죄가 없을까요? 착해 보이는 저 사람은 죄가 없을까요? 이 강단 위에서 설교하는 목사는 죄가 없을까요? 그게 우리들의 문제이고,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들에게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 우리들의 문제인데, 해결책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해결책이 없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아니하면, 성탄절이 다가오는데요. 예수님께서 저 높고 높은 곳에서부터 낮고 천한 말 구유에 내려 오셔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이 세상에 그 누구도 단 한 사람도 거룩한 사람이 없고, 모두가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드라마 <지옥>을 보면, 연상호 감독의 지옥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반기독교적인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오히려 복음을 더 잘 드러내 주는 장면이 하나 등장합니다. 그것은 천사가 나타나서 이 사람에게 죽음을 예고하고, 저 사람에게 죽음을 예고하고 그래서 죽음의 사자들이 와서 그 사람을 죽이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런데 한 아기에게 천사가 나타나 삼일 뒤에 죽을 거라고 하는 예고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 모습을 산모가 자기 아기를 카메라로 찍으러 갔다가 보게 된 거예요. 그리고 거기서 충격을 받습니다. 아니, 도대체 우리 아기가 무슨 잘못이 있어서 죽는단 말인가? 거기서 혼란을 느끼고 당황스러운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항변해 보았자,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처럼 그렇게 죽음의 예고를 받은 사람은 반드시 죽게 돼 있는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그 예고한 갓난아기가 죽을 수밖에 없는 바로 그날, 예고한 날이 됐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사자가, 셋이 아주 시커먼 괴물들이 나타나 가지고, 죽음의 사자가 그 아기를 죽이려고 하는 그 장면 가운데서, 엄마와 아빠가 그 아이를 꼭 막 껴안고 지키는 거예요. 우리 아기 데려가지 말라고, 우리 아기 죽이지 말라고, 꽉 껴안았는데, 그런데 어떻게 되느냐면, 그 죽음의 사자가 결국 누구를 죽이냐면, 엄마 아빠를 죽이고 불에 태워 죽여버리고, 그 엄마 아빠의 품속에 있는 아기는 살아납니다. 저는 그 광경을 보면서, 무슨 죽음의 사자가 이렇게 실수를 해? “엉터리 드라마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근데 그게 바로 우리가 갈망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 아기를 죽일 수 없어서, 그 부모가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면서까지 살리는 그 장면을 보면서, 저게 부모의 사랑이구나! 그런데 우리는 부모가 사랑을 해도, 살리기보다는 죽일 때가 더 많아요. 나는 사랑으로 한 일인데, 아이들은 그것 때문에 더 고통스러워하는 일들이 더 많아요. 결국 우리들에게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영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게 무엇이냐면, “어디 우리를 살릴 수 있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우리를 살려줄 구세주가 어디에 있느냐?”라고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인데요.

우리는 정답을 압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저와 여러분들을 안으시고, 우리의 죄로 인하여 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그냥 지옥불에 떨어지도록 방치해 두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우리가 당해야 될 그 십자가를 우리 주님께서 대신 지시고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들이 구원을 얻게 된 줄로 믿습니다.

지난 11월 13일 미국 미시간주에서는 경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5명이 탑승을 했는데,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다 죽고 한 사람이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11살 여자 아이가 살아났는데요. 어떻게 살아났는가? 뉴스는 말하기를 그 비행기가 추락하는 순간에, 아버지가 그 아이를 꼭 껴안고 놓지 않고, 죽는 그 상황까지 껴안고 있다가, 아빠는 죽고 아이는 살렸다는 거에요.

오늘 우리들의 삶은 마치 죽음의 예고를 받은 아기처럼,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하여 영원히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 소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값없이 은혜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찬 예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성찬 예식은 바로 그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흘리신 피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주님께서 나를 위해 내어 주신 목숨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다시 깨닫는 은혜의 방편이 될 것입니다. 이 성찬 예식에 참여하는 가운데, 주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기억하고, 또 그 은혜를 받았으니, 이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소망한다고 하는 다짐을 하면서, 이 귀한 예식에 참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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