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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법과 본성 (롬 2:12-16)

질문을 하나 던져보고 싶습니다. 가장 쉬운 질문인데요.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까요? 한번 대답 한번 해주실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우리가 구원을 받죠?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고, 예수님이 아닌 다른 길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하는 것은 우리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여러분 그걸 믿습니까? 예수님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다! 예수님만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 기독교의 핵심적인 교리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우리들은 이 교리를 잘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교리는 이해할 수 없는 교리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들을 때, 질문을 던집니다. 만일 예수님을 믿는 것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한다면, 다른 길로서는 도무지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고 한다면,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조차 받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라고 하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들어보지도 못하고, 예수님에 대해서 전혀 듣도 보도 못한 그 사람들은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겠는가?”하는 그런 질문입니다.

우리가 늘 던지는 질문이 무엇이냐면, 그 옛날 시대에 살던 사람들, 다시 말하자면 세종대왕 같은 사람들이나, 이순신 장군 같은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전혀 예수님이 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알지도 못하는 그런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고 하는 이유로 지옥에 간다고 한다면, 이것처럼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아니, 들려주고,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예수님에 대해서 알려주고, 믿었냐 믿지 않았느냐를 물어본 다음에, 그런 다음에 그 사람들이 거부했기 때문에 지옥에 간다면, 그래도 이해가 되겠는데,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어요. 예수님에 대해서 전혀 알지도 못한 그 사람이, 당신의 죄가 무엇인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간다고 하면, “이것처럼 억울한 일이 어디에 있겠느냐?”라고 하는 질문입니다. 그런 질문들을 많이 받아보셨습니까? 아마 많이 받아보았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이런 질문이 나오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복음에 대해서 제대로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이 나오는 겁니다. 복음에 대해서,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이 복음에 대해서, 어렴풋하게는 알고 있지만 제대로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질문들이 나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먼저 분명히 해야 될 것이 하나가 있는데요. 만일 우리가, 만일 어떤 사람이 지옥에 간다면, 만일 어떤 사람이 영원한 심판을 받아서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태로 빠지게 된다면, 그 사람은 왜 지옥에 가는 것이며, 왜 그 사람은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겠습니까? 왜, 만일 어떤 사람이 영원한 멸망을 받고 영원한 심판을 받아야만 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크리스천들은 종종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건 예수님 안 믿어서 그래요”라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그 대답은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대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을 알려드린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데 그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고, 악하게 살았기 때문에 지옥에 갈 만큼 나쁜 짓을 하고 악하게 살았기 때문에, 그는 지옥에 가는 겁니다. 영원한 심판을 받는 겁니다. 그게 끝입니다.

만일 아무개가 지옥에 간다면, 그 사람이 왜 지옥에 가는가? 죽어서 영원한 멸망을 당한다면, 그 사람이 왜 영원한 멸망을 당하는가? 악하게 살았기 때문에 멸망당하는 겁니다. 그게 끝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유는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고, 그 명령을 지켜야만 하는데, 지키지 않고 거부했기 때문에, 그 에덴동산에서 쫓겨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우리 가운데 어떤 한 사람이 죽어서 영원한 멸망으로 가게 된다고 한다면,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죄를 지어서 그렇습니다. 악하게 살아서 그렇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2021년에 살던 어떤 사람이 지옥에 갔다, 영원한 멸망을 받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죄인이기 때문에 영원한 멸망에 들어가는 겁니다. 착하게 살지 않았고,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 살지 않았고, 악하게 살았기 때문에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이스라엘에 살던 어떤 사람이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악하게 살았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는 착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하게 되는 겁니다. 만일 지금부터 천 년 전에 살던 한국의 어떤 사람이 지옥에 간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악하게 살았기 때문에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에 저 아메리카 대륙에 살던 어떤 원주민이, 그 사람이 죽어서 지옥에 간다면, 그 사람이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악하게 살았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며 살았고 죄악을 저지르며 살았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겁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누가 지옥에 가는가? 누가 영원한 멸망을 받는가? 악하게 산 사람들이 멸망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순신 장군이, 만일 세종대왕이 지옥에 갔다고 한다면, 이건 제가 가정으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누가 천국에 갔다. 누가 지옥에 갔다고 하는 말을 우리가 함부로 재단에서 말할 것이 아닙니다. 누가 천국에 갔다. 누가 지옥에 갔다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달린 것이지, 우리가 쉽게 우리가 표면적으로만 보는 그것만 가지고 저 사람은 천국에 갔을 것이다. 저 사람은 지옥에 갔을 것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짐작을 할 겁니다. 아 이 사람이 구원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많다. 이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고 추측할 수는 있겠지만 단정해서 말하는 것은 아주 교만한 일이고, 어설픈 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요. 아무튼 만일 이순신 장군이 지옥에 가고, 만일 세종대왕이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면, 가정으로 말한다면, 왜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착한 일도 많이 하고, 위대한 일도 많이 했겠지만, 그들의 삶 전체가 그들의 삶이 완벽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죠. 그들이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어느 누구가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되었을 때, “나 억울해요.” “내가 천국에 가야 되는데, 왜 내가 지옥에 왔어요?”하면서, 억울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없어요. 왜냐하면 자기가 지은 죄가 낱낱이 드러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두가 다 죄악을 저질렀고, 악하게 살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긋나게, 완벽하지 못하게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래서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된 것이고,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내가 억울하게 지옥에 왔다. 억울하게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되었다고 항변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하는 말은 그다음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말하는 그 의미가 무엇이냐면, 영원히 멸망을 받게 된 우리가 어떻게 그 멸망을 받을 수 있는 상황 가운데서 빼내질 수 있겠는가? 우리가 죄를 지어서 악하게 살아서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그 상황 가운데서 누가 우리를 빼내 줄 수 있겠는가? 어떻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이 지옥의 영원한 멸망 가운데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는가?라고 할 때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그 영원한 심판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형수가 있다고 합시다. 그 사형수는 정말 포악한 죄를 저질러서, 너무나도 악한 죄를 저질러서 사형 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사형수는 반드시 사형 집행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태인데요. 이 사형을 받게 되어 있는 이 사람이 사형을 받지 않고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그것은 대통령이 사면령을 내리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사면령에 서명을 해서, 아무개는 사형수지만, 내가 특별 사면을 내리니까, 사형을 면제시키고 석방한다고 하는 그 사면령에 서명을 대통령이 하면, 그러면 그 죽음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대통령의 사면을 받는 것은 은총입니까? 권리입니까? 그것은 은총이죠. 내가 당연히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대통령을 향해서 “사면해 줘! 내가 사면받을 자격이 있다”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겁니다. 사형수가 대통령을 향해서, “나 사형수인데, 나 빨리 사면 안 하고, 뭐 해?”라고 대통령을 향해서 항의할 수 있느냐면, 항의할 수 없어요. 사면해 줄, “사면을 받는 것이 내 권리야”라고 주장할 수가 없어요. 죽으면서 내가 억울하게 죽었다고, 사면을 해,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데, 그런 사면을 받을 권리를 못 받아서, 내가 억울하게 죽었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겁니다. 왜? 그 사람이 죽는 것은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죽는 것이지, 사면이라고 하는 것의 권리를 받지 못해서 죽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옆 사람은 대통령이 사면해 주었는데, “왜, 나는 사면하지 않았느냐?”라고 항의할 수 있냐면, 항의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만이 우리가 구원을 받는 유일한 길이라고 하는 이 복음은, 그것에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 전제가 무엇이냐면,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지어서 다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된 그 사람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만이, 그 은총을 받아들이는 자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지, 아무 잘못도 안 한 사람인데, “너 예수 안 믿었으니까 지옥 가”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조폭들이 서로 싸우고 있다고 가정을 합시다. 조폭들 두 파가 나뉘어서, 한 허름한 창고 건물 안에 서로가 그 안에 들어가서 문을 잠가놓고 서로 두 패로 나뉘어서 막 싸우고 있습니다. 조폭들이 막 때리고, 막 하면서, 두 파가 치고받고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는 가운데 한쪽 조폭에서 화가 나가지고,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어요. 그래서 그 창고 건물에 불이 막 나기 시작한 겁니다. 조폭들이 그 안에 갇혀 있고, 그 문은 닫혀 있는데, 그 창고 건물에 불이 나서 이제 그 안에서 싸우던 조폭들이 다 죽임을 당하게 된 겁니다. 마약 때문에, 서로 화가 나서, 막 싸우고 있는 그 조폭들이 불이 나서 막 죽게 되어 있는 그 순간에, 때마침 지나가던 어떤 한 사람이 불이 난 것을 보고, 그 창고 건물로 달려가서 문을 부수기 시작했어요. “저 안에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면, 큰일 났겠구나.”해서 그 사람이 그 문을 다 부수고, 문을 열어보니까, 그 안에서 서로 죽는다고 막 난리가 났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아이고” 그 안에서 지금 죽게 된 그 사람을 살려내기 위해서, 그 사람이 그 불길 속으로 들어가, 한 사람을 꺼내서, 쓰러져 있는 사람 꺼내 가지고 와서 살려내고, 또 들어가서 또 한 사람 살려내고 하다가, 그 사람이 결국 그 구원하던 사람이 그 속에 들어가서 질식해서 죽게 됐습니다 한 몇 사람은 살리고, 그런데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살리지 못하고, 자기도 그 안에서 죽어버렸다고 한다면, 그 죽은 사람은 자기를 구원해내지 아니하고, 죽어버린 그 사람에게 “왜, 나는 구원해 주지 못했느냐?”라고 책임을 전가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그건 자기 잘못으로 죽은 거예요. 조폭들이 사악한 마음으로 서로 싸우다가, 불내고 싸우다가, 자기 잘못으로 죽은 거예요.

그런데 살아난 사람은 왜 살아났는가? 아무 관계도 없는 지나가는 사람이 불쌍하게 여겨서, 뛰어들어가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그 사람들을 살려서 그 사람들이 살아난 거예요. 복음이 무엇이냐면,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우리 인류는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어요. 하나님의 법칙대로 살지 못했어요. 하나님의 법칙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에, 다 멸망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다 망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다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을 구원해 주셨고, 누구든지 예수님의 구원의 은총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구원을 받게 되는 놀라운 기회가 주어지는 것인데, 그런 기회를 못 받았다고 “나는 왜 그런 소식도 못 들었느냐?”라고 항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망하게 된 사람들이 따질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왜 나한테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려주지 않았느냐를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들이 항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무엇이냐면, “나는 하나님의 법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다.” 하나님의 법을 나에게 알려주었다고 한다면, 내가 그 하나님의 법대로 살았을 텐데, 나는 하나님의 법에 대해서 전혀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악을 행한 것이고, 그래서 그 성경 말씀을 나에게도 주셨다고 한다면, 이 성경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준 것이지, 저 아프리카에 있는 사람들이나, 저 아메리카의 대륙에 살던 사람들이나, 아니면 이 아시아에 살던 사람들은 전혀 그 성경 말씀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이나 이런 사람들은 전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행동하지 못했다고 항변할 가능성은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가능성에 대해서 오늘 성경 말씀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로마서 2장 12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릇 율법 없이 범죄 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 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심판을 받고 망하는데, 심판을 받고 망하는데, 어떻게 망하는가? 이스라엘 민족은 율법을 받았어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율법을 주었기 때문에, 그 분명하게 기록된 그 율법을 보면서 그 율법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망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율법을 받지 않은 그 사람들은 어떻게 망하는가? 율법을 받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법이 없으면 죄도 없으니까, 우리는 무죄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아니라는 거예요. 율법을 받지 않았어도, 그 율법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망한다. 왜 망하는가? 14절에서부터 15절 말씀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분명한 율법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율법을 받지 않은 다른 나라 사람들, 이방인들, 전혀 구약 말씀을 받지 못한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율법을 받지 않아서 하나님의 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본성에,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님의 법을 심어 놓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을 받아 들어서 읽지 않아도, 우리는 무엇이 선한 일이고 무엇이 악한 일인가를 자동으로 압니다. 선한 일을 행하면, 기뻐요. 사랑을 하면, 좋아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면, 기분이 좋아요. 왜? 우리의 본성에 사랑을 베풀면 행복하게 되어 있어요. 자비를 베풀면, 오히려 기쁨이 넘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우리들의 마음을 옹졸하게 하고 악을 행하고,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고 남의 것을 훔치고 사람들을 못살게 굴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불편함이 있어요. 찜찜해요. 두려워요. 왜? 성경이 말하지 않아도, 성경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이미 우리들의 마음속에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법을 우리들의 마음속에 새겨놓았기 때문에, 모두가 다 하나님의 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저 인디언들도, 원주민들도 하나님의 법을 모르냐 하면, 알아요.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거 알고 있고, 거짓말하면 나쁘다는 거 알고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편취하면 안 된다는 거 알고 있고, 간음하면 안 된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데,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말씀에 따라 사느냐 하면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에, 모두가 그 법에서부터 본성의 법에서부터 불합격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받았지만, 율법을 받았기 때문에 자동으로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착각하기를 우리가 설교를 들으면 우리는 저절로 착한 사람이 되는 줄로 생각해요.

그렇지 않아요. 설교를 하면, 그 사람은 자동으로 착하게 되는 사람인 줄로 착각을 해요. 아니에요. 설교를 하든, 설교를 듣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든, 하나님의 말씀을 듣든, 듣거나 전하는 사람이 자동적으로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오늘 성경 말씀은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율법을 듣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그래야 그 사람이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인데, 이방인들은 그 율법을 받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무엇이 선한 일이고 무엇이 악한 일이라고 하는 것을 아는 것인 것이고,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다 죄를 범하여, 다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우리들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예수님이 필요한 겁니다.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셔야 했는가? 만일 우리가 열심히 착하게 살아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오실 이유가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에, 모두가 다 죄악을 저질러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여서,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서,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살아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지금이라도 착하게 살면 지금부터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살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것이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생각이고, 가장 그럴듯한 생각인데 안타깝게도 그런 방법으로 성공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착하게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으로 선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아, 선하게 살아야지! 착하게 살아야지! 사랑하며 살아야지!” 그런 마음이 들지만, 그런데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돼요. 설교 듣고 나가면서 싸우잖아요. 안 되는 게 우리들의 문제예요. 제가 전하고, 제가 전한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게 보이잖아요? 안 되는 게, 문제인 거예요.

그 문제가 어디에 쓰여 있습니까? 로마서 7장 21절에서부터 24절 말씀 가운데 쓰여 있어요.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선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게 아니에요.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착하게 살고 싶어요. 그런데 그게 마음뿐이에요. 원수를 용서한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좋은 생각이에요. 정말 멋진 생각이에요. 그런데 나에게 원수가 생기면, 그런 생각이 안 떠올라요.

그런데 이 세상의 모든 수많은 종교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냐 하면, “지금이라도 열심히 살라”라고 말하는 것이 이 세상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좀 더 착하게 살아봐라” “좀 더 열심히 도를 닦아라.” 더 열심히 도를 닫고, 더 열심히 노력하게 된다면, 언젠가는 당신도, 언젠가는 당신도 도의 경지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열심히 살다 보면, 당신도 부처의 반열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당신도 열심히 노력하면, 경지에 올라갈 수가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열심히 열심히 도를 닦고, 열심히 노력하고, 열심히 선하게 살면, 언젠가는 당신도 올라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욕심을 끊어버리세요. 마음을 비우세요. 가족관계의 인연을 끊어버리고 저 산속에 들어가 보세요. 돈을 다 내버리고 무소유로 살아보세요. 쾌락을 버려보세요. 선을 행하고, 그리고 신에게 돈을 많이 바치고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당신이 지금은 나쁘지만, 점 점 점 점 올라가서, 결국에는 정말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열심히 노력하면, 당신도 올라갈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이 세상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근데 그게 되냔 말이에요? 안돼요! 착하게 살게 되기는커녕, 우리는 살도 못 빼요! 살도 못 빼는 인생이 어떻게 착하게 살겠다고 결심해서 착하게 살아요? 이 세상 그 어떤 종교로도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놓여 있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새로운 길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오셔서, 구렁텅이에 빠진 우리를 건져 주시는 겁니다. 우리의 힘과 우리의 능력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그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 있는 우리를, 우리 주님께서 건져주시었다고 하는 것이 복음인 것이고,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성탄절이 되는데,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종종 저는 동물들이 잡혀있는, 덫에 걸리거나, 또는 여러 가지 가시에 걸리거나 해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그 동물을 구조해주는 그 영상을 흥미롭게 보는 적이 있는데요. 그 영상을 보면, 사슴이 다니다가 덫에 걸려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거예요, 어떤 짐승이 수렁에 빠져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거예요. 근데 어떻게 하면 살아날 수 있습니까? 그때부터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그래서 내가 몸집을 키우고, 힘을 키워서 빠져나갈 수 있는가? 몸부림치면 몸부림칠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져가는 것이 그 동물의 모습이고, 사슴의 모습이고, 더 다칠 수밖에 없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정말 마음씨 착한 한 사람이 등장해서, 그 불쌍한 짐승을 살려주기 위해서 다가가는 겁니다. 다가가서 낚싯줄을 끊어주고, 덫을 끊어주고, 그 동물을 해방시켜주려고 하는데, 자기를 해치려고 하는 줄 알고, 그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을 물어버려요. 뿔로 받아버려요. 독수리가 찍어버려요.

근데 바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시고, 저 높고 높은 곳에서부터 낮고 천한 이곳에,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이 사실을 오늘 또 기억하면서, 늘 감사하며 “이 사랑을 받은 우리가 이제는 주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하는 그런 감격과 결단들이 우리 가운데 넘쳐나야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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