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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살아가는 데, 왜 여전히 고통이 있는가?

믿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문이다. 불신하고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총이 내 것이 될 수 없지만, 문을 열면 그 축복이 우리의 것이 된다. 이게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길이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예수님을 믿으면 고생이 끝나고 행복이 시작될 줄 알았는데, 왜 우리들의 믿음의 길은 고난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베드로전서 4:12-13에서 해주고 있다. 우리가 만나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고 하신다. 고난이 오는 게 정상인 것이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프니까 인생이란 말이다. 사도행전 14:22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그렇다면 고난을 당할 때 어떤 반응을 보여주어야 할 것인가? 절망하고 원망하고 불평할 게 아니라,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에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으니 말이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5:3에서 환난 중에도 기뻐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바울은 실제로 그렇게 하였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약함을 기뻐하였다. 한글 성경으로는 약함을 “자랑”하는 것으로 번역해 놓았는데, 헬라어 “카우카오마이”는 기뻐한다는 뜻이다.

어떻게 환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는가? 그 이유는 환난이 환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롬 8:28). 그래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 구절을 해설하면서, 환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해야 한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환난 “때문에” 기뻐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환난은 백신과 같다. 백신을 맞으면 아프다. 하지만 그 백신 때문에 큰 병에 걸리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코로나가 시작되었을 때, 백신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리고 백신이 출시되었을 때 기뻐했다. 환난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우리에게 좋은 선물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기뻐해야 한다. 이것이 성경 전체를 통해서 교훈하는 내용이다(마 5:11-12; 고후 4:17-18; 약 1:2).

사탄은 환난을 통해서 우리가 절망하고 낙심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하나님은 환난을 통해서 믿음이 연단되고 소망을 얻게 하기를 원하신다. 환난 중에 낙심하면 사탄에게 굴복하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환난을 통해서 우리는 인내를 배우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진짜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가운데 소망을 얻어야 한다.

물론 힘들다. 쉽지 않다. 고통스럽다. 그래서 예수님도 십자가를지지 않을 수 없는지 물으셨고, 십자가 위에서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하셨다. 하지만 십자가로 끝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결국 사망에서부터 건져주셨다.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마다 우리는 그런 부활을 기억하며 예배를 드린다. 그러면서 우리도 소망을 바라본다. 지금 당장 내 눈에 보이는 고통을 넘어서 말이다.

연관 설교: http://www.jjvision.org/?p=1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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