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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재판 (눅 23:13-25)

오늘 본문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주는 그런 판결을 했다고 하는 그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헤롯도 예수님의 죄를 발견하지 못했고, 빌라도도 예수님이 죄가 없다고 하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무죄 판결을 하고 풀어주는 것이 정상적인 재판이겠지만, 놀랍게도 빌라도는 엉터리 이상한 판결을 내리고야 맙니다. 아무 죄가 없는 사람을 향해서 때려서 보내겠다고 제안을 하더니만, 결국 소리 지르는 군중들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서, 그래서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어서,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주었다고 하는 그런 역사적인 오명을 빌라도가 가지게 되었습니다.

참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재판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재판장의 자리라고 하는 것이 어떤 자리입니까? 그 자리는 바로 정의를 추구해야 하는 자리일 것입니다. 악을 행한 자에게는 형벌을 내려야 하고, 그리고 억울하게 무죄하게 고발당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무죄 판결을 해서 정의를 세우는 일이 재판장이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만일 재판장이 그렇게 재판을 바르게 하고 정의를 이룬다고 한다면, 그렇게 재판을 내리는 그 재판장의 일이 곧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일이 되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오해, 우리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 중에 하나가 무엇이냐면, 신앙적인 일, 종교적인 일, 그런 것은 하나님의 일이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고 하는 그런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되고, 사모가 되는 것은 거룩한 일이지만, 그런 일이 아니라 일반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님들 가운데 보면, 내가 가정을 돌보는데 열심을 내고 또 직장에서 열심히 생활은 하지만,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은 많이 하지 못해서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죄송해요. 제가 하나님의 일은 하지 못하고, 이 세상의 일들만 하게 돼서, 너무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그렇게 이 세상의 일이 너무 바빠서 하나님의 일 교회 일을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그런 마음을 표현하는 성도님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물론 그러한 생각이 어느 정도 맞는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의 관심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잘 먹고살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잘 살 것인가에만 우리의 초점이 맞춰져 있고, 우리들의 관심이 거기에만 쏠려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우리의 영적인 관심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태도일 것입니다. 누가 그런 태도를 가졌었습니까? 바로 노아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를 갔는데, 즉 일상의 일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런 일상에 대해서는 열심히 살았지만, 그들이 보여주지 않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영적인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이죠. 자신들이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고 하는 그 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고 살지 않았다가, 결국 홍수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심판해 버릴 때, 함께 멸망해 버리는 그런 안타까운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 노아 시대 때 살았던 살람들의 허물 잘못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정을 돌보는 일이나 또한 우리가 직장을 가지고 그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이 전혀 무가치한 일이라든가, 영적으로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라든가, 혹은 더 심하게는 악한 일이라고 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바로 그곳이 어느 곳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파송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 일을 하게 만들어 놓은, 그래서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의 자리일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하고, 그래서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으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부모님이 드러낼 수만 있다고 한다면, 그런 일들을 통해서 부모의 일을 잘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부모가 되지 못하고, 탐욕과 이기심에 사로잡혀서 아이를 탐욕적인 인간으로 기르게 한다거나, 또한 자녀들을 양육함에 있어서 포악한 모습을 보이고 폭력을 써가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지 못하는 일을 하게 된다고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잘못된 일을 하게 되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직장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일을 하는 것도 일주일 동안 하는 그 일이 나쁘고 무가치하고 의미 없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이 일주일 동안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만일 내가 경찰이라고 한다면 시민을 보호하고 시민에게 봉사하는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교사라고 한다면 학생들의 잠재력을 키워내고 그들로 하여금 위대한 일꾼으로 인물로 성장하게 만들어 주고 돕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식당의 주인이라고 한다면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허기진 사람들에게 음식을 공급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행복한 시간을 갖게 만들고, 가족들이 또한 정말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하면, 그 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내가 공무원이라고 한다면 시민들의 복지를 위해서 내가 봉사할 수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이고, 만일 내가 재판관이라고 한다면 다른 판단을 해서 그래서 공의를 추구하고 정의를 실천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런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성직자들만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우리에게 맡겨진 그곳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게 된 것이고, 아니 성직자들만 성직자가 아니라, 여러분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성직자라고 하는 그런 관점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게 바로 종교 개혁을 통해서 발견한 위대한 성경적인 진리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아주 추하고 더러운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재판관으로 서 있는 빌라도가 공의를 따라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서 판단한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이 될 텐데, 안타깝게도 빌라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아무런 죄가 없는 자를 죄가 있는 것으로 판결하고, 죄 있는 자를 무죄 방면하는 그런 엉터리 재판을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한 결과를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3장 1절에서부터 9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의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네가 만일 내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려짐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 그 짐을 부릴지니라.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 거짓 이들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은 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너희가 애굽 땅에서 살던 방식대로 바로의 법칙에 따라 살던 그런 악한 법칙대로 살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 나라에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 것인가에 대해서 가르쳐주신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누가복음 23장에 기록되어 있는 빌라도의 재판에서는 하나님의 정의가 땅에 짓밟혀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악인은 풀어주고, 아무 죄가 없는 예수님은 십자가에 내어주는 하나님의 정의를 땅에 떨어뜨리는 그런 엉터리 재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엉터리 재판을 하는 일들이 2천 년 전 저 팔레스타인 땅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계속해서 반복되어 왔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또 되풀이되고 또 되풀이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가 LH 직원으로 취직하게 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이 무엇이겠습니까? 시민들에게 보금자리를 싼 값으로 만들어 공급하기 위해서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된 것인데, 실제로는 자신들의 배만 불리고 땅 투기를 해서 자신들의 배만 불릴 뿐만 아니라, 법을 악용해서 최대한 대로 많은 보상을 받아내어서, 결국 아파트 분양가를 올려 수많은 시민들의 아픔을 가중시키는 일들을 하는 것이 오늘날의 모습입니다.

군인들은 시민들을 보호하라고 하기 위해서 적들로부터 보호하고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게 만들기 위해서 군인이라고 하는 직분을 주었고, 총칼을 만들어 주었건만 오히려 그 총으로 총부리를 시민들을 향해서 겨누고, 아무런 죄가 없는 시민들을 죽여놓고도 뻔뻔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런 악한 모습이 역사 가운데 반복되고 있는 것인데, 그것이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이고, 저 미얀마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너무나도 악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악한 일을 행하고서도 나는 하나님을 만났고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았다고 말하는 뻔뻔스러운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내가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의 죄를 가리는 일에 하나님의 이름을 악용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검찰과 재판관으로 세워졌다고 한다고 하면, 그러면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며 정의를 이루어야 마땅할 텐데, 자기들의 편에 대해서는 눈감아버리고, 뻔히 악한 것을 알면서도 못 봤다고 하고, 그런데 자기편이 아닌 사람들에 대해서는 탈탈 털면서 수많은 증거가 있음에도 유죄 판결을 내려버리는 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재판관들이 널려 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훔친 라면에 대해서는 몇 년씩 형을 내리면서, 수억씩 해먹은 사람들에게는 집행유예를 선언해버리는 악한 재판장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목사는 성도를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세워 놓았더니, 성도들을 영적으로 착취할 뿐만 아니라 성폭력을 저지르면서도 뻔뻔하게 악을 행하고 있는 모습들이 우리에게 있고 불의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선지자적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을 행하는 자를 두둔하는 그런 하나님의 일과는 정반대의 일을 하는 모습들만 보여줍니다.

환자를 치료하라고 의사가 되어야 되었지만, 환자에게 섬기고 그들의 병을 잘 치료하기보다는 자신이 잘 먹고 잘 사는 돈을 버는 수단으로 여기는 그런 잘못된 의사들이 나타나는 것이고, 이 세상에 주어진 모든 자신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악한 사탄의 일을 하고 있는 모습들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엉터리 재판을 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악을 저지른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뿐만 아니라, 내가 하는 그 모든 악한 일을 보지 않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런 악한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뿐만 아니라 돈이 나를 먹여 살리고 권력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하나님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돈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고 하는 잘못된 우상숭배가 우리로 하여금 악한 일을 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지금도 불꽃같은 눈으로 바라보시고, 우리의 행위를 하나하나 살펴보시는 우리 그 주님께서 결국은 마지막 날에 심판대 앞에 설 거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갈 수 있는 결단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만이 우리의 참된 소망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빌라도의 이 처세가 틀렸다고 하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부활입니다. 우리는 당장 우리들의 눈앞에 십자가만 눈에 보이지만, 우리가 바라봐야 될 것은 십자가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십자가를 이기고 저 무덤의 권세를 이기고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신 저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악인의 권세를 물리치신 그리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악한 사람들이 판을 치고 악을 행하면서도, 내가 악을 행하고 싶어서 행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나로 하여금 압력을 넣고 저 예수를 죽이라고 했다고 하는 그 압력 때문에 내가 예수를 죽였다고 뻔뻔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내가 사람들에게 총칼을 내 의지로 쓴 것이 아니라, 상부에서 시켜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죽였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죄악을 마음대로 저지르고 있는데, 온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악한 길 가운데 서 있는데 우리의 소망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소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들이 무엇인지 피하지 아니하시고 죽기까지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에게만 소망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만일 이 순간에 예수님께서도 빌라도의 생각처럼 똑같이 생각을 했다고 한다면, 우리 인생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에게 권능이라고 하는 그 권능이 주어졌는데 내가 가진 그 권능으로 돌로 떡이나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면 우리들에게 소망이 없었을까요? 만일 우리 주님께 주어진 그 권한으로 하늘에 12 영이나 더 되는 그 천사들을 동원해서 자신을 잡으러 오던 저 군병들을 힘으로 물리쳤다고 한다면 우리들에게 아무 소망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그 권능을 가지고 자신의 이기적이고 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길까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완벽하게 자발적으로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소망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다,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더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이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우리를 외면하고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강도 만난 자가 그 자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얼마 있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상황 가운데서도, 강도 만난 자가 죽든 말든 나는 그냥 지나가겠다고 했던 제사장이나 서귀관처럼 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 제사장이나 서기관들로 하여금 그 강도 만난 자의 옆을 지나가게 하신 이유는 그 강도 만난 자를 구원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사명을 주고 그 자리를 지나가게 해 주셨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도 그냥 지나가 버렸던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예수님께서 그 강도 만난 자의 옆을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그 옆을 지나가다가 멈추어 서셨습니다.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인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으로 그 강도 만난 자를 치료해 주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 저와 여러분들을 위하여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쏟아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죄로 얼룩져 있던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은혜는 감사하며 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루 종일 살아가는 동안에 무슨 일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마땅히 보여야 될 반응인 줄로 믿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에게 두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두어야 될 시선은 오로지 참된 소망이 되신 주님에게만 두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사람들에게 가서, 사람들이 나에게 박수를 쳐주는가?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는가? 사람들이 나를 괜찮게 생각하는가? 사람들에게만 소망을 두며 살아간다고 한다면, 반드시 실망하게 되고 반드시 좌절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생활은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 앞에 두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신 그 주님 앞에 나아가 믿음으로 살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더 나아가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사명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내가 바로 서 있는 그곳 그 자리가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사명인데, 아무도 보지 않는 것 같고 하나님이 지금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마치 저 먼 타국에 가서 이곳에 돌아오지 않는 주인처럼 주인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 보인다고 할지라도,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맡았던 종들처럼 오늘 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그것을 기억하면서 감사함으로 묵묵히 주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번 고난주간을 지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사명을 기억하면서, 믿음의 결단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결단을 해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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