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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해석학 강좌 제9강 – 현재형의 계속적 용법, 문장의 구조 분석, 소유격의 다양한 의미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은 성경 해석학 강자 9번째 시간입니다. 오늘까지 성경학 해석학 강좌를 마치려고 합니다. 다 해서 마치는 것은 아니고, 여러 가지 더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걸 다 할 수는 없고, 큰 단원으로 해서 오늘까지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설교하면서 종종 “어떻게 해석해야 된다”라고 설명을 해드리고 있죠. 그러니까 그런 걸 통해서 우리 평상시 설교를 통해서도, 성경 해석을 어떻게 하는 게 바르게 해석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계속 틈틈히 배우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세 가지 주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헬라어 언어 가운데 현재형 용법이 가지고 있는 계속적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고, 두 번째는 어려운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문장의 구조를 살펴야 된다고 하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소유격의 다양한 의미에 대해서 우리가 주목해보아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22. 헬라어 현재형의 계속적 용법에 주의하라.

먼저 헬라어 원어가 있는데요. 이 헬라어 원어에는 현재형 동사가, 현재형 동사가 계속의 의미를 포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는 헬라어 원어를 보는 게 아니고, 한국말 성경을 보게 되는 것인데, 한국말 성경으로 번역된 것 중에서, 좀 이해가 좀 이상하다 싶은 것들은 혹시 이게 성경에 그 헬라어에 계속법, 계속적 용법이 아닌 것인지, 한번 추측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죠.

예를 들자면 요한일서 5장 18절과 같은 부분이 되겠습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죠.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그러니까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 하나님의 하나님에게서 난 의인, 성도, 믿음의 사람, “이런 사람들은 죄를 짓지 않는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죄를 짓는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 구원받을 사람입니까? 멸망받을 사람입니까?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입니까? 사단에게 속한 사람입니까? 요한일서 5장 18절의 말씀에 하나님에게서부터 난 사람은 죄를 안 진다고 했으니까, 죄를 짓는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에게 난 사람 아니고, 그 사람은 구원받을 사람 아니고, 그 사람은 멸망받을 사람이라고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누가 있죠? 구원파에서 그렇게 주장하는 겁니다. 구원파에서 말하기를, 사람은 의인과 죄인이 있는데, 죄인은 죄를 짓는 사람이고, “의인은 죄를 안 짓는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죄를 안 짓는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죠. 왜? 요한일서 5장 18절에 보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다고 표현이 되어 있는, 이 말씀에 근거해서, 의인은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절대로 죄를 지을 수가 없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누군가 만일 죄를 지었다고 한다면, 그는 죄인이고, 그는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 아니고, “그 사람은 멸망받을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그럴 듯해 보입니까? 그럴 때 보여요. 그럴 듯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말씀을 우리가 곰곰히 생각해 본다고 한다면, 아무리 의인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에게서부터 난 사람, 거듭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죠. 있어요. 죄를 짓는단 말이에요. 어떻게 죄를 지어요? 마음으로 죄를 짓고, 생각으로 죄를 짓기도 하고,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일들을 할 때가 많이 있는 것이죠. 그렇다고 한다면,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는 그런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 말의 의미는 현재형의 의미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계속해서 죄를 짓지는 않는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되겠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죄를 지어요? 계속해서 죄를 짓는 것이죠. 의도적으로 죄를 짓는 것이죠. 악한 마음으로 죄를 짓는 것이죠. 하지만 이제 예수님을 마음속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의 성도님들은 죄를 아예 안 짓는 것은 아니겠지만, 때때로 넘어지기도 하고, 때때로 쓰러지기도 하는 일들이 없을 수가 없어요. 언제까지 없을 수가 없어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우리는 여전히 부족한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죄를 지을 수가 있단 말이죠. 그런데 구원받지 못할 사람과의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면, 무슨 차이점이 있어요?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계속해서 의도적으로 죄를 짓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백성, 성도 구원받은 사람은 어떻게 죄를 지어요? 계속적으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자꾸 실수해서 죄를 짓는, 자꾸만 넘어져서 죄를 짓는 것이고, 의도적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실수해서 죄를 짓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이 말씀이 현재 형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성경 말씀을 읽는 가운데, 한 번씩 질문을 던져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또 하나의 예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절에서부터 21절의 말씀을 한번 보겠는데요.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열거하고 있는. 열거하고 있는 여러 가지 잘못 가운데서, 하나라도 행하게 되면, 천국에 갑니까? 못 갑니까? 못 간다고 생각이 되는 거죠. 왜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거라고 되어 있으니까. 우리가 어쩌다가 시기하는 마음이 들었다. 시기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 못 가 오늘 말씀하고 있잖아요? 화를 냈다. 근데 분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 얻지 못한다 되어 있으니까, 하나님 나라 얻을 수 있어요? 없어요? 들어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 말씀을 보면 못 갈 것 같아요. 못 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 구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이라고 하는 말에서 “이런 일을 한다”고 할 때는 한 번이라도 하면 못 간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계속해서 하는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과 거스르는 삶을 계속해서 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얻을 수 없다. 그렇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혹시 조금 성경의 전체적인 가르침과 상반되는 것 같은 그런 구절들이 있다고 한다면, 이게 혹시 헬라어 현재형 용법 중에 계속적 의미가 들어있는 그런 문장은 아닌 것인지, 한 번쯤은 질문을 해보아야 되겠고, 한번 물어보세요. 그러면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해가 되셔요? 감사합니다. 굉장히 이해하기 어려운 건데, 다 이해가 되신다고 하니까, 고맙습니다.

23. 긴 문장을 이해하기 위하여 문장의 구조를 분석하라.

이제 우리가 다음 주제로 넘어가고 싶은데요.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구절들이 있습니다. 특히 서신서를 읽다 보면, 서신서, 로마서, 고린도 전후서, 갈라디아서 등등 이런 서신서들을 읽다 보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 모르는 그런 아주 복잡한 문장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복잡한 문제들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구조를 한 번씩 분석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디도서 1장 1절에서부터 3절 말씀까지 한번 보도록 하겠는데요. 디도서 1장 1절부터 3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1절에서부터 3절까지를 읽어드렸는데, 1절부터 3절까지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무슨 내용입니까? 누가 간단하게 요약해 주실 분 계십니까? 요약이 안 돼요. 왜? 여러 가지 말을 막 섞어놔 가지고, 도대체 뭔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돼요. 왜 이렇게 바울 사도는 문장을 길게 쓰고 있느냐? 1세기 사람들이 쓰는 문장 표현 방식이 그랬습니다. 오늘날에는 말을 길게 합니까? 짧게 합니까? 짧게 해요. 좋은 설교자는 문장이 길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합니다” 해야, 알아들어요. 말을 비비비 꽈가지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뭐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아주 길게 얘기하면, 도대체 듣다가 삼천포로 빠져버리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그랬었고, 그리고 그 옛날 1세기 때 예수님 당시에 그리고 그 당시에 이 헬라 사람들이 쓴 글들을 보면, 한 문장의 길이가 얼마만큼의 길이였느냐면, 한 페이지를 넘어가요. 한 문장이. 어떤 문장은 두 페이지 3페이지가 넘어가는데, 그게 한 문장이에요. 질질 끌게 글을 쓰는 게, 이 시대 사람들의 특징이었어요. 그래서 바울 사도도 그 시대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해 주셨기는 하지만, 그 바울 사도의 사람들과 모든 것들을 다 활용하셔서 전해 주셨기 때문에, 바울의 특징이 나타나는 것이고, 그 당시 문장 쓰는 그 특징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서신서들을 읽어보면 문장이 아주 길고 복잡하게 꼬여 있어서, 그래서 무슨 뜻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문장의 구조를 분석해 보아야 하는 겁니다.

한번 제가 분석한 것을 한번 봤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디도서 1장 1절에서부터 3절까지를 제가 분석한 구조를 분석한 겁니다.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믿음과 지식과 소망을 위한 것이다”라고 하는 게 1절서부터 3절까지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자기 바울에 대해서 설명을 해줘요. 나 바울이 누구냐? 하나님의 종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다. “하나님의 종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라고 주어를 길게 늘어 쓰는 것이죠. 수식해주는 것이죠. 그리고 내가 사도 된 이유가 무엇인가? 믿음과 지식과 소망을 위한 것인데,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믿음인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인 것이고,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지식인가?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이고, 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소망인가? 영생의 소망에 관한 것인데, 이 영생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고,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거짓이 없는 하나님이고, 그 영생은 또 무엇인가? 하나님의 때에 말씀을 전도의 방편으로 나타나는 것이 곧 영생이고, 그 전도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사명이 전도라고 설명해주고 있는, 그러니까 설명해 주는 게 아주 많아요.

한 문장을 이야기하면서, 그 문장의 요소 요소들을 설명해 주는 거 있는데, 그 설명하다가 단어를 또 설명해 줄 게 있으면, 또 설명을 붙이고, 설명하다가 또 설명할 게 있으면 또 설명을 붙이고 해서, 문장이 이만 지금 길어졌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복잡한 문장을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번역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짧은 문장으로 짤라서 번역을 해야, 우리가 알아들을 텐데, 그렇게 번역하는 것이 어렵죠. 그래서 일단은 길게 번역이 되어 있을 수가 있겠는데, 이러한 긴 문장들이 있다고 한다면, 무엇이 무엇을 설명해주는 표현인지에 대해서, 도표로 그려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분석해 보면, 이 구절을 통해서 바울 사도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디도서 1장 1절에서부터 3절까지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그 핵심이 뭐냐면, “내가 사도가 된 것은 믿음과 지식과 소망을 위해서 사도가 된 것입니다.”라고 하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죠. 그리고 그 내용들을 설명해주는 그 설명들이 거기에 다 붙어서 나오고 있다. 그래서 특별히 성경 가운데서 서신서를 읽을 때에는, 이렇게 종이를 펼쳐놓고, 이게 어디에 어디에 걸려 있는지, 하나씩 하나씩 붙여보면, 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를 또 하나 들어봅니다. 로마서 1장 1절에서부터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로마서 1장 1절서부터 6절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1절서부터 6절까지 바울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어요? 한번 요약 한번 해주실래요? 뭔 소린지 모르겠죠? 뭔 소린지 모릅니다.

그러면 분석을 한번 해봐야 돼요. 분석을 한번 한 걸 보겠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는데 복음을 위해 택함을 받았다.”라고 하는 말이에요. 그 문장을 말하기 위해서, 설명해 주고 있는 겁니다. 바울인데, 어떤 바울이냐?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바울은”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거고요.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서, 복음을 위해서 택함을 받았다고 했는데, 이 복음이라고 하는 게 뭐냐?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고, 그리고 그 약속하신 그 복음이 뭐냐? 아들에 관한 게 바로 복음인 것이고, 그 아들은 누구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근데 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아들은 어떻게 태어났느냐?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났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음에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된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아들이신데, 그 아들로 인해서 우리가 사도 은혜의 직분을 받은 것이고, 우리가 그렇게 사도로 직분을 받은 것은 왜 사도의 직분을 받았느냐? 이방인들로 하여금 믿고 순종하게 만들기 위해서 사도의 직분을 받은 것이고, 이방인들에게 믿고 순종하게 하려고 했는데, 바로 너희들 또 이방인들이 아니냐? 너희들도 우리들의 사도 직분에 따라서, “너희들도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라고 하는 것이 다 줄줄이 사탕으로 매달려 있는 것인 거죠.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서신서를 연구할 때는 항상 종이를 펼쳐 놓으세요. 종이를 펼쳐놓고, 이 구절이 어느 구절로 연결이 되는가? 무엇을 수식해주는가? 그리고 이 구절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고 있는가? 그 핵심 요지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면 그냥 엉뚱한 데서 헤매고 있는 겁니다. 엉뚱한 데서 그냥 단어 하나에, 그냥 표현 하나에 헤매일 뿐이지, 이 성경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1장 15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역시 이 말씀을 우리가 한번 쭉 읽어보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고 있는지, 무슨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종이를 꺼내놓고 분석해보면, 이렇게 분석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기 원한다”라고 하는 문장이에요. 그런데, 너희는 누구냐? 로마에 있는 너희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원한다는 것이고, 복음을 전하기 원한다고 그랬는데, 그 복음이라고 하는 게 뭐냐? “내가 이 복음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해주고 있는 거고요. 그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이고, 그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고, 믿음이 무엇인가? “의인이 그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라고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또한 그 복음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복음이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인데, 그 모든 믿는 자가 누구냐? 유대인만이 아니라 ,헬라인들까지, 모든 믿는 자 유대인과 헬라인에게까지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능력인 “그 복음을 로마에 있는 너희들에게 전하기를 원한다”라고 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15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나는 로마에 있는 당신들에게도 이 복음을 전하고 싶소. 이 복음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런 겁니다”라고 설명해주는 그런 문장이라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개인적으로 성경 공부하실 때, 서신서 같은 경우에는 종이를 펼쳐놓고, 무엇이 무엇을 설명해 주는가? 하나씩 하나씩 그 도표를 그려가면서, 그림을 그려가면서 보시면, 좀 더 성경을 이해하기가 쉬울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24. 소유격의 다양한 의미를 고려하라.

자, 마지막으로 소유격의 다양한 의미에 대해서 충분히 고려하라고 하는 주제입니다. 소유격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누구의”라고 하는 표현이죠. 그런데 이 소유격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소유격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소유격인지, 우리가 구분해야 하는 것이죠.

예를 들자면 마가복음 1장 4절에 보면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세례 요한이 와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다고 했습니다. “회개의 세례”라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회개의 세례. 회개의 세례라 도대체 무슨 말이죠? 회개에 근거한 세례라고 하는 말일까요? 회개로 이끄는 세례라고 하는 말일까요? 회개를 상징하는 세례라고 하는 의미일까요? 어떤 의미일까요? 회개의 세례. 회개로 이끄는 세례? 그럴 수 있어요. 그럴 수 있어요. 문제는 이 표현만 가지고는 우리가 “정확하게 이런 뜻이다”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고 하는 겁니다. 소유격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소유격의 의미가 다양,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고, 저렇게 이해할 수도 있고,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는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하는 사실을 먼저 생각하면서, 본문을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죠. 이것은 다 가능한 겁니다. 회개에 근거해서 베푸는 사례를 의미할 수도 있고, 그렇죠? 세례를 받게 함으로써, 결국 회개하게 만드는 회개로 이끄는 세례를 의미할 수도 있고, 아니면 회개를 상징하는 그런 세례일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의미가 다양해질 수 있는 것인데, 우리는 이 표현을 어느 한 표현으로만 한정시켜서 이거라고 그냥 너무 쉽게 단정을 내릴 것이 아니라, 이런 여러 가지 의미들 가운데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을까에 대해서 고민해 보아야 하는 것이죠. 소유격은 그런 식으로 의미가 다양하게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고린도후서 3장 3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편지다.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바울 사도가 편지를 보내면서, 당신들은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하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께서 쓰신 편지인가요? 그리스도를 드러내주는 편지일까요? 여러 가지 가능성들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여러 가지 의미 중에서 어떤 의미가 가장 적합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그 의미를 판단해 보아야 하는 것이죠.

계시록 1장 1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계시록이 계시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하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알려주신 계시라고 하는 의미인가요?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주는 계시라고 하는 말일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알려주신 계시라고 하는 말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해주는 계시라고 하는 의미일까요? 둘 다 다 가능해요. 둘 다 다 가능해요. 그러면 어떻게 이 단어의 이 표현의 의미를 알 수 있는가? 나머지 요한계시록 전체를 살펴보면서, “아, 어느 것이 의미가 더 맞겠구나.”라고 판단해야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앞으로 소유격이 나오게 되면, 그냥 우리가 쉽게 넘어갈 것이 아니고, 이 소유격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구나. 다양한 의미가 있구나. 그래서 그 다양한 의미 가운데, 어떤 의미일까를 한번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저렇게도 생각해 보면서, 그 의미를 찾아 나가야 하는 것이죠.

로마서 3장 22절 말씀에 보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소유격은 하나님의 의가 소유격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이라고 하는 표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이라고 번역해 놓았는데요. 성경 원어에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되어 있는데요. 그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하는 말을 성경 번역자는 어떻게 해석을 했냐면, 아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구나. (계속 성경을 좀 보여줘 보세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구나”라고 이해를 해서, 성경 번역자가 그래서 그리스도의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라고 번역을 한 거예요. 하지만 이렇게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리스도의 믿음(faith of Christ)이라고 하는 말을 다른 말로 이해할 수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faith in Jesus)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실하게 있었음(Christ’s faithfulness)을 의미할 수도 있어요. “이 예수님의 신실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들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라고 번역할 수도 있는 것이죠. 따라서 이 헬라어든 히브리어든 소유격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이 소유격은 주어처럼 해석할 수도 있고, 목적어처럼 해석할 수도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이 가능한 것이 소유격이라고 하는 표현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이 소유격이 과연 어떤 의미인가? 그냥 우리가 늘 생각하던 대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게 어떤 의미일까? 하나씩 하나씩 고민하면서 그 다양한 의미를 살펴보면, 좀 더 우리가 성경 말씀을 바르게, 그리고 더 깊게 해석할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소유격은 그 의미를 깊이 다양한 의미가 있다고 하는 것을 살피면서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살펴봐야 된다 라고 하는 것까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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