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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의 방법 (창 16:1-5)

사람의 진짜 모습은 위기 가운데서 드러납니다. 급하고 그리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 사람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것이죠. 평상시에는, 좋을 때에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 보이나요? 좋게 봐주셔서 그렇습니다. 그냥 좋은 관계 속에 있을 때는, 좋게 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진짜 모습은 언제 나타나는가? 어려울 때 나타나는 것이죠. 위기의 순간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고, 그리고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 우리들의 본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믿음은 언제 나타나는가? 좋을 때는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어려운 일을 당하고 힘든 일을 당할 때, 그 믿음이 참된 믿음이었는지 참된 믿음이 아니었는지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 제주도에 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한파가 몰아쳐 눈이 내리는 바람에 제주공항에 발이 묶여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약 9만 명의 사람들이 공항이 묶이는 바람에, 40여 시간 동안 비행기가 뜨지 못해서, 그래서 그곳에 묶여버리게 되었는데요. 모처럼 휴가를 갔다가 돌아와야 되는데, 난리가 났습니다. 돌아가야 될 때 돌아가지 못하게 되고, 그 제주도에서 며칠을 더 보내야만 하는 그런 상황이 발생했었습니다. 인근에 호텔도 구할 수 없어서, 그래서 공항에서 마치 노숙자처럼 며칠씩 보내야만 했던 그 상황이 되었는데요. 나중에 운항이 재개되었지만 한바탕 소동이 난 겁니다. 누가 먼저 탈 것인가? 누구에게 먼저 그런 기회를 줄 것인가? 여러 가지 문제로 서로 다투고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고 하는 그런 뉴스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 해외여행을 해보신 분은 혹시 아시겠지만, 이런 어려운 순간이 발생했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응하는 방식과 외국 사람들이 대응하는 방식은 조금 약간 다릅니다. 외국에서는 이런 사태가 벌어져도 화내거나 고함을 치거나 그렇게 피켓 시위를 하거나 승무원들과 싸우는 모습은 별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차분히 순서를 기다리며, 기다리는 사람들끼리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그리고 서로 격려하고 그리고 좋은 것을 생각하면서 대화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어디서 나타나는 것일까요? 그런 차이는 어디서 나타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좀 미개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성경적으로 본다고 한다면, 모든 사람들은 다 똑같습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어느 곳에 있는 사람들이든지, 다 죄성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고, 그리고 타락한 본성을 가진 것이 우리 인생들이라고 할 수 있고, 모든 사람들이 다 한결같이 똑같이 연약한 존재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아마도 그 차이가 나타난다고 한다면, 그것은 항공사에 대한 믿음의 차이에서 온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긴박한 상황 가운데서 항공사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을 것이며, 그리고 만일 대체 항공편이 마련이 된다고 한다면, 누구에게나 공평한 방법으로, 그리고 공정하게 순서에 따라 사람들을 태울 것이라고 하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면, 그러면 그렇게 화낼 일도 싸울 일도 고함칠 일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그런 믿음이 별로 없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무시를 당하게 될 것이고, 소리를 질러야 사람들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리고 누군가, 대체 항공편이 마련된다면, 힘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이 먼저 차지할 거라고 하는, 그런 의심이 팽배해 있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한다면, 조급해지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믿음이 없고 신뢰가 깨어져버리면, 그러면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고, 조급함을 보이고, 그리고 불안한 마음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창세기의 말씀을 지난 시간에 이어서 읽었는데요. 이 두 사람은 결혼한 지 오래되었지만, 가정생활을 오랫동안 했지만, 이 가정에 아이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시기를, 네 자녀가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고, 그리고 바닷가에 모래알처럼 많아질 거라고 약속해 주셨고, 그 약속을 아브라함이 믿었지만, 그리고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의로 여기셨다고 했지만, 그 믿음이 영원히 계속된 것이 아니라, 점점점점 희미해져 가는 겁니다. 점점점점 약해져 가는 겁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그 현실이, 아주 절망적인 현실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녀가 없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될까요? 오늘날에는 아무 문제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자녀가 없어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자녀가 없어도 대통령도 합니다. 자녀가 없는 것이 흠이 되지 않는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 당시에는 아주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자녀를 낳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 것처럼 생각되던 그런 시기였던 것이죠. 그래서 아브라함과 하와는, (아니) 아브라함과 사라는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아이가 나오지 않자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왜 조급해지기 시작했을까요? 왜 기다리지 못하고, 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지 못하고, 불안한 마음이 자꾸만 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늙어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은 영원히 건강하고 젊은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늙어갈 수밖에 없고, 이제 나이가 차면 더 이상 아이를 낳을래도 낳을 수 없는 그런 시기가 도래하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창세기 12장 2절 말씀이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장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의 이 약속을 믿고 아브라함과 사라는 저 갈대와 우르 지방에서부터 가나안 땅까지 이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는 대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그저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서 가나안 땅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정착해서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겠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큰 민족을 이루게 만들게 해 주시겠다고 했는데, 그러기는커녕 아들 하나 없는 그 상황 가운데서, 벌써 10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흐르게 된 것입니다.

이때까지 자식을 낳지 못해서, 아브라함과 이 사라의 마음 가운데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데요. 하나님께서 약속을 해주셨지만,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희망이 점점 사라지게 될 때,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놀라운 제안을 했습니다. “나에게 여종 하갈이 있으니, 이 하갈을 씨받이로 해서 아들을 낳아보자.”라고 하는 그런 제안인 것이죠. 오늘날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제안일 겁니다. 이런 제안이 부인에게서 나왔다고 하는 것 자체를 우리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당대의 문화 속에서는 당대 사람들은 그것을 충분히 용납하는, 충분히 그런 일들이 있을 수 있는 그런 시대에 아브라함과 사라가 살고 있었던 것이죠. 우리나라만 해도 조선시대에는, 아니 왜정시대, 아니 해방되어서도 한동안은 여전히 씨받이를 통해서, 첩을 통해서 자식을 잃으려고 했던, 그런 소망들이 있었던 기간이 있었습니다. 이 당시도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낳는 그런 일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성경 속에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이 일이 하나님의 앞에서 옳은 일은 아닙니다. 옳은 방법은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조심해야 될 것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냐면, 성경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그런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을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있지만, 그 하나님의 뜻이 문화라고 하는 옷을 입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의 이야기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성경 말씀 가운데서 어떤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뜻인지, 아니면 그 당시에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그 당시의 관습과 문화에서 나온 것인지를 구분하면서, 이것이 성경적인 것인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 아닌지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미국에 어떤 사이비 교파가 하나 있는데요. 그 사이비 교파에서는 주장하기를 “우리는 일부다처제를 해야 된다”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보니까, 아브라함도 그랬고, 야곱도 그랬고, 믿음의 조상들이 다 여러 명의 아내를 두고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성경에 보니까 여러 명의 아내를 두었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우리도 일부다처제를 해야 된다고 그렇게 주장하는 사이비 교파가 있습니다마는, 그렇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성경적인 결혼관은 무엇입니까? 한 남자와 한 여성이 결혼하여 사랑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이 그게 성경적인 결혼관이지, 일부다처나 여러 가지 다른 방법이 성경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선택한 아브라함과 사라가 참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지만, 그 믿음이 희미해져 갈 때, 위기감이 들게 되었을 때, 이들에게서 믿음의 행동이 나온 것이 아니라, 불신앙의 행동이 나온 것이죠.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방법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으니까, 세상적인 방법, 그 당시 주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는 그 방법을 사용해서 아이를 얻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기다리기보다, 이 세상의 방법을 가지고 해결해 보려고 했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무엇일까요? 믿음은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고 한다면 기다릴 수 있는 것이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러면 우리들의 눈앞에 모든 것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망할 것 같고, 아무런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기다릴 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기다릴 수 있는 것인데, 믿음이 없으면 기다릴 수 없고, 드디어 사람의 방법, 이 세상의 방법 잘못된 방법들이 튀어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이 세상의 방법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믿음의 방법과 불신앙의 방법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믿음의 방법 하나님의 방법은 지금 당장은 해결책이 아닌 것처럼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 믿음의 방법을 가지고 기다려봤자, 아무런 답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도표를 한번 보면서, 봤으면 좋겠는데요.) 하나님의 방법, 믿음의 방법은 우리들의 눈에 해결책이 아닌 것 같아요. 기다려도 답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세상의 방법, 불신앙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지금 당장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이 세상의 방법이오, 불신앙의 방법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이 세상의 방법, 불신앙의 방법은 완전한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부작용이 많고, 결국에는 더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이 세상의 방법인 것이죠. 하나님의 방법은 해결책이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결국에는 완전한 해결책이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바른 깊이오, 행복의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사라는 하갈이라고 하는 몸종을 아브라함에게 주었는데요. 이상하게 하갈은 임신을 잘했습니다. 하갈이 임신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결국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게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드디어 아브라함의 가정에도 아이가 태어나는 일이 생기게 된 겁니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된 것일까요? 아니죠. 창세기 16장 4절 말씀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아브라함의 가정에 문제가 생기게 된 겁니다. 더 큰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이죠. 행복한 가정이 깨어지게 되는 것이죠. 불행한 모습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이 탄생하게 되고, 결국 이스라엘 민족과 이스마엘 민족 사이에 엄청난 갈등 관계, 적대관계까지 생기게 된 것이죠.

사람의 방법이라고 하는 것은 편한 것 같고 빠른 것 같고 쉬운 것 같고, 그리고 당장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의 방법은, 이 세상의 방법은 더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뿐이고, 고통을 가중시킨다고 하는 점을 오늘 우리 모두가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아브라함과 사라와 비슷한 상황 가운데 놓이게 될 겁니다. 아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들의 여러 상황 가운데서 우리는 많은 문제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럴 때 우리가 채용해야 될 방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방법인데요.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죠.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함으로, 사기 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함으로,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수고하고 땀을 흘리는 것으로, 악한 방법이 아니라 선한 방법으로,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용서하는 방법으로, 이 세상에 문제들이 있을 때 그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을, 하나님의 그 신실하심을 믿고, 그 하나님의 방법을 체험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그런 때 때때로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여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 같고, 아무런 이득이 없는 것 같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더 좋은 것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순종해 나가야 되는 것이죠. 믿음이 없이는 기다리는 것이 가능하지 않고, 기다림이 없이는 좋은 것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농부들은 씨앗이 있으면 그 씨앗을 먹어버리지 않습니다. 꼭 그 씨앗을 뿌릴 수 있는 만큼 남겨놓는 것인데요. 아무리 배고프다고 할지라도 그 씨앗을 먹어치우는 것이 아니라 남겨두었다가 봄에 씨앗을 뿌리게 됩니다. 땅에 뿌리는 것은 어떻게 뿌리는 겁니까? 땅에 뿌리면 사라지는 것인가요? 땅에 뿌리면 먹을 수 있는 것을 놓쳐버리는 것인가요? 그게 아니라, 농부는 그 씨앗을 뿌리면, 이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이 있을 거라고 하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믿음이 있기 때문에 뿌리는 것이고, 결국 그 믿음 때문에 결국에 가을에는 많은 수확을 거두게 되는 것이죠. 믿음이 있기 때문에 기다림이 가능한 것이고, 기다릴 수 있기 때문에 열매가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요. 무슨 일을 만나든지, 정말로 하나님을 믿어야 됩니다. 어떤 순간 가운데서도.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믿음대로 살지 않을 때가 많아요. 믿는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믿음을 저버리는 때가 많이 있는데, 오늘 이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믿음이 점점점점 약해져서 결국 잘못된 방법을 사용한 것처럼, 우리가 그런 잘못된 방법으로 나갈 것이 아니라,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홍해 바다 앞에 서 있던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14장 13절의 말씀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부터 해방되어 가나안 땅을 가는 가운데 너무나도 기뻤어요. 너무나도 행복했어요. 하지만 그 행복과 기쁨이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자신들의 눈앞에 홍해 바다가 가로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상황 가운데서 그 위기 가운데서 그들의 본색이 드러나게 된 거죠. 그 순간에 갑자기 원망이 튀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향해서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하는 판단 가운데, 그들은 원망하며 지내게 되었는데, 그 순간에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냐 하면, 너희는 가만히 있어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결국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구원을 받게 되었는데요.

시편 46편 10절 말씀에서도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가만히 있으라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이죠.

오해하지 마십시오.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그 말씀은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종종 성경에는 하나님만을 믿고 이 세상에 그것을 믿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그런 성경 말씀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이 말씀을 사람들은 종종 오해를 합니다. 그래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되나? 병에 걸렸다고 할지라도 내가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가거나, 내가 나를 고치려고 하는 그런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채, 그저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서, “하나님, 고쳐주세요.”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기 때문에 약을 내버리고, 하나님을 철저히 믿기 때문에, 내가 의사도 신뢰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만 믿겠다고 하면서, 그래야 진짜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말로는 하나님 믿는다고 말해놓고, 가서 약을 먹고,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의사에게 간다면, 그건 진짜 믿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는,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이야기는, 그런 약이나 의사를 의지하면 안 된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 일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땀을 흘리고 수고하며 애써야 벌 수 있는 것이고요. 누릴 수 있는 것이지, 그냥 하나님 앞에 기도만 하고 있으면,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내가 수고의 땀을 흘리지 않아도, 내가 열심히 살려고 하는 그런 노력을 하나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해서 보내어 먹여주시기도 하고, 또한 정말 기적적인 방법을 통해서 먹여주시고, 다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먹여주시니까, 내가 직장도 안 다니고, 그냥 기도만 해도 되겠는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주의 일을 하기만 하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으로 다 채워주신다고 했으니까, 내가 주를 위해서 힘쓰고 애쓰고 열심히 노력만 하면,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하나님께서 좋은 대학을 보내주실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노력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정이 정말 여러 가지 문제 가운데 있으면, 가정 가운데 불화가 있으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저절로 마음을 변화시켜 주셔서, 그 가정이 행복하게 될까요? 우리 자녀들의 문제가 그냥 해결되게 되는 것일까요? 전쟁이 일어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전쟁의 준비를 하지 않은 채, 하나님께 기도하기만 하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셔야 된다고 하면서 기도하기만 하면, 그 전쟁에서 무조건 이기게 되는 것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도표를 한번 보았으면 좋겠는데요.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는 의미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무서워서 벌벌 떨고 괴로워하면서, 그렇게 염려 가운데 있지 말고 담대하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이야기이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이야기는 이 세상에 악한 방법, 세상적인 방법을 그런 방법을 쓰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의미예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순종해야지, 그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악한 방법, 나쁜 방법, 잘못된 방법을 써가면서, 그 문제를 해결할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그런 의미인 것이지,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는 의미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하는 점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되죠? 노력해야 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아이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님을 봐야 한다면서요? 결혼만 하고 각자 다른 방에 살면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돼요? 안 돼요? 기도만 하면 됩니까? 아니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 우리가 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주신 방법,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으로 주신 그 방법, 그 방법들을 사용해야 되는 것이죠. 재정적인 문제가 있습니까? 그러면 열심히 일해야죠. 수고해야죠. 땀을 흘려야죠. 가정에 재정적인 문제가 있습니까? 그러면 정말 그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되죠.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잘못된 방법, 사기를 치고, 남의 것을 훔치고, 구수한 말로 다른 사람들이 돈을 취하는 그런 방법을 쓸 게 아니라, 내가 시간을 내서 열심히 노력하고, 애를 써야 되죠. 우리 가정의 아이들의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그 가정 우리 아이들을 잘 보듬기 위해서, 귀를 기울이고 따뜻한 말로 위로해 주고, 아이들을 안아주고, 그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해야 되는 것이죠. 그것이 아니라, 나는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거야 하면서, 기도만 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믿음이 아니라, 잘못된 믿음이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그 말은 아이가 전혀 없을 때,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그냥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으라고 하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그 얘기는 잘못된 방법을 사용해서, 하갈을 이용해서, 다른 방법을 통해서 아이를 얻으려고 하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방법을 통해서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하는 그런 의미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그런 의미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방법은 쉬워 보입니다. 사기를 치면 돈 버는 게 쉬운 것 같고, 도둑질을 하면 돈이 쉽게 벌리는 것 같고, 남의 돈을 빌리고, 남의 돈을 쉽게 얻으면, 그러면 모든 문제가 금방금방 해결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방법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어려움을 더 축적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폭발하게 되어 있고, 결국은 더 큰 고통으로 몰아넣게 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에 순종하고, 그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은 때때로 답답해 보입니다. 아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이 그랬어요. 언제까지 기다렸어요? 100살 때까지, 그때의 나이와 오늘의 나이가 좀 다를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아무튼 소망이 없다고 생각될 때까지, 기다렸어요. 하나님의 방법은 아무런 해결책이 아닌 것처럼 보일 때가 많아요. 하지만 아무런 결과가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하신 하나님이고,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허락해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해로운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믿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그래서 항상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과연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일인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인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 기뻐하시는 길이 아니라고 하면, 중단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한다면, 묵묵히 아무런 결과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순종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며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참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셨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사실은 우리는 믿을 존재가 아니죠. 우리는 늘 하나님을 배반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고, 그래서 당장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도 아무 할 말이 없는 것이 우리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우리 위에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통하여 우리들을 회복시키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놀라운 사랑을 우리가 받았다고 한다면, 오늘 매 순간순간 위기의 순간에, 답답해 보이는 순간에, 정말 힘든 순간에, 이 세상의 길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나가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구하며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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