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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는자의 사명 (왕상 1:11-14)

우리가 열왕기상의 말씀을 읽고, 지금 주일 오후 때마다 열왕기상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오늘은 11절에서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아도니야라고 하는 다윗의 아들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 다윗을 이은 세 번째 왕이 되었다고 이렇게 선포하는 이야기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아도니야는 압살롬이 반역에 실패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그리고 벤치마킹을 해가면서, 이제는 내가 참 왕위를 잘 이어받겠다고 하는 철저한 계획 가운데 여러 사람들을 모으고, 그리고 사람들을 불러서, 왕이 되었다고 선포하기에 이르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까지 살펴보았는데요.

만일 이렇게 아도니야가 정말로 이스라엘의 세 번째 왕이 된다고 한다면, 그 왕이 된 소식이 가장 비극적으로 들릴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누가 가장 비극적인 소식으로 듣겠습니까? 물론 국민들이 좀 비극적일 겁니다. 다윗과 같은 좋은 왕 또 솔로몬과 같은 좋은 왕이 우리들의 왕이라고 한다면 참 좋겠지만, 정말 왕이라고 하는 직분은 이렇게 뭔가 거만한, 그리고 교만한 자리가 아니라, 사실은 왕이라고 하는 직분은 백성들을 도와주고 섬기고, 막힌 것이 있으면 뚫어주고,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 주고, 정말 백성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게 왕인 것인데, 그런 왕의 사명이 없이, 그저 왕이 누리게 되는 그 영광, 왕이 누리게 되는 그 화려함, 그게 탐이 나서 왕이 된다고 한다면, 가장 큰 피해를 누가 당하게 될까요? 국민들이 당하게 되는 것이죠.

물론 국민들도, 국민들에게도 큰 피해가 되겠지만, 그러나 실질적으로 가장 긴급하게 위험에 빠진 사람이 한 명 있을 겁니다. 그게 누굴까요? 솔로몬입니다. 다윗은 이제 늙어갔으니까, 이제 왕을 그만둘 때가 됐고요. 사실은 다윗이 솔로몬으로 하여금 세 번째 왕을 삼겠다고 하는 그런 계획 가운데서, 이 솔로몬을 우리나라식으로 한번 세자 책봉을 한 거나 다름이 없는 것이죠. 이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겠다고 하는 그런 계획 가운데 있었는데, 솔로몬이 아닌 아도니야가 왕이 되어서 권력을 잡는다고 한다면, 그 아도니야가 솔로몬은 동생이니까 살려주겠죠? 어떻게 됩니까? 죽이는 거죠. 가장 위험한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솔로몬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죽일 수 있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장 12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제 내게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아들 솔로몬의 생명을 어떠한 계책 구할 계책을 말하도록 허락하소서.” 나단 선지자가 밧세바에게 와서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면, 아도니야가 왕이 됐는데, 왕이 되겠다고 지금 이러고 있는데, 이 위급한 상황 가운데서 밧세바의 생명을 구하고, 솔로몬의 생명을 구할 계책을 말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하는 걸로 봐서, 이 나단 선지자도 지금 무엇을 느꼈냐면, 아도니야가 왕이 되면 제일 먼저 누구를 죽인다? 솔로몬을 죽이고, 밧세바를 죽인다고 하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 나단 선지자가 와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사실을 아도니야가 왕이 되겠다고 하는 그 사실을 다윗도 모르고, 솔로몬도 제대로 잘 모르고, 밧세바도 잘 모르고, 그리고 솔로몬이나 밧세바나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모르는 난감한 상황 가운데 있었는데, 그때 나타난 사람의 이름이 누굽니까? 나단! 어디선가 나타났어요. 어디선가 나타나서, 나단 선지자가 밧세바를 돕고 솔로몬을 도와서, 결국 이 나단 선지자의 계획에 의해서,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다 읽지는 않았지만, 결국 솔로몬이 왕으로 세워지게 되는 그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누구냐? 바로 나단 선지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는 밧세바에게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고 한다고 하는 그 사실을 알리고, 그리고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기 위한 작전을 실행에 옮기게 되었습니다. 밧세바로 하여금 다윗 왕 앞에 찾아가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밧세바로 하여금 다윗 왕에게 하소연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에게 약속했던 그 일을 상기시키면서, 지금 솔로몬을 왕으로 삼겠다고 했는데, 지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하면서, 다윗왕에게 그 사실을 알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왜 다윗에게 알려야만 할까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다윗 한 사람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아직 아도니야를 대적할 만한 힘이 없는 것이죠. 물론 솔로몬이 지혜의 사람이기는 했지만, 그러나 세력이 없습니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솔로몬과 함께한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아도니야에게는 벌써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 것이죠. 사람들은 아주 참 예민해서, 누가 권력을 잡는가에 따라서, 그 권력을 잡는 사람들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어 있고, 몰려들면서 충성 경쟁을 하고, 그러면서 세력이 점점점점 커지는 겁니다. 아도니야의 세력이 점점점 커지는 그 상황 가운데서, 솔로몬은 이제 위험한 상황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군가? 다윗 왕, 비록 늙고 힘이 없고, 모든 것이 연약한 사람이지만, 그 다윗 왕 앞에 이야기하게 만들었고, 그러면 가서 다윗 왕 앞에 이야기를 하면, 나단 선지자가 들어와서 도와주겠다고 하는 그 이야기를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서 읽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나단 선지자가 솔로몬을 도와주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만일 이 사실을 아도니야가 알면 어떻게 되죠? 나단 선지자도 아도니야가 죽일 수 있는 겁니다. 돈과 권력 이런 것은 엄청난 우상이기 때문에, 그 돈을 얻기 위해서 권력을 얻기 위해서 사람들은 무슨 짓이라도 하는 겁니다. 심지어 선지자도 죽이는데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죠. 그 예를 우리는 어디서 봅니까? 사울왕이 아히멜렉 제사장을 죽이는 것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사울왕은 그 아히멜렉 제사장이 다윗을 도왔다고 하는 그 사실 때문에 분노해서, 제사장을 죽이는데 전혀 망설이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그 제사장도 사울왕이 죽이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는 겁니다. 왜? 권력의 욕심 때문에, 그것이 우상이 되면, 하나님도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그런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지금 나단이 솔로몬을 도와준다고 하는 것은 사실 나단 선지자에게는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솔로몬을 도와준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해서 솔로몬이 왕이 되게 되었는데요. 솔로몬이 왕이 되는데 1등 공신을 꼽으라고 한다면, 어쩌면 나단 선지자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지혜의 왕이 될 수도 있는 이 솔로몬이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조용히 사라질 그런 아주 긴박한 상황 가운데 있었는데, 나단 선지자가 나타나서 도와주었고, 그래서 결국 그 나단 선지자의 도움 때문에, 솔로몬이 왕이 되게 되었던 것이죠.

우리는 종종 위대한 인물들만을 기억합니다. 예를 들어서 다윗 왕을 기억하고, 솔로몬을 기억하고, 모세를 기억하고 엘리아를 기억하는 것이죠. 솔로몬 하면 그 솔로몬이라고 하는 사람은 지혜의 왕이구나, 솔로몬의 시대 때 이스라엘은 아주 부강한 나라가 되었고, 솔로몬의 시대 때 이스라엘은 아주 국력이 많이 커지고, 정말 훌륭한 왕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어떻게 솔로몬이 될 수 있었는가? 어떻게 될 수 있었습니까? 나단 선지자가 도와주었던 것이죠. 그리고 밧세바가 다윗왕에게 찾아가 이 문제를 하소연하고, 그리고 솔로몬이 왕이 되도록 도와줌으로 말미암아, 솔로몬이 지혜의 왕으로 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솔로몬에게만 집중하기가 쉬운데, 사실은 솔로몬이 되기까지 그 주변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의 손길들이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되고, 오늘 본문에서는 그 일을 누가 했는가? 나단 선지자가 했고, 그 일을 또 누가 했는가? 밧세바가 했다는 오늘 이 말씀을 우리가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사명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만 기억하죠? 이 세상은 어떤 사람만 기억하죠? 탁월한 사람들만을 기억하합니다. 아주 뛰어난 사람만을 기억하죠. 여러분들이 기억하고 있는 탁월한 사람은 누굽니까? 손흥민 선수, 김민재 선수? 또 누구를 기억합니까? 김효남 권사님? 아주 탁월한 사람들만을 기억하는 거죠. 우리 교회에서 무용 그러면, 다 기억하는 거죠. 하지만 이 세상은 오로지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만 기억하지만, 그러나 그 사람들이 혼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올라가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들은 우리들에게 주신 그 사명이 무엇인지를 잘 깨닫고,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그 사명을 잘 수행할 때, 엄청나고 놀라운 결과들이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일학교에서는 우리 주일학교 교역자와 그리고 선생님들이 우리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이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어떤 인물이 될까요? 아주 위대한 인물이 탄생할 수 있는 거죠. 이 아이를 잘 가르쳐서 정말 믿음의 사람이 탄생할 수 있고, 이 아이들을 잘 가르쳐서 이 세상을 구원할 아주 위대한 그런 훌륭한 인물들이 나올 수가 있는 것이죠. 사실 우리 가정에서 우리 어머니들이 하는 일, 우리 아버지가 하는 일 그 일들이 결코 작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주셨는데 이 가정을 통해서 우리 아이들을 잘 양육하는 일을 하게 된다고 한다면, 그 일이 작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사명이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할 때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잘 꽃 피워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세라고 하는 사람은 이스라엘 민족을 저 애굽 땅에서부터 건져내서, 그리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낸 그런 위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였는데, 모세라고 하는 사람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어떻게 탄생했습니까? 요게벳이라고 하는 믿음의 어머니가 있었던 거예요. 바로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남자아이는 다 죽이라고 하는 그런 지엄한 명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내놓고 이 아이를 살린 거예요. 이 아이를 살리다가 더 이상 감출 수 없으니까, 이 아이를 나일강에 띄워놓는 거예요. 갈대상자 만들어놓고 그 아이를 지키는 거예요.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그것을 바라보는 거예요. 그래서 요게벳과 미리암이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했기 때문에 모세가 탄생하게 된 것이고, 그 모세를 향해서, 어머니 요게벳이 젖을 먹이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알려주고, 이스라엘 민족의 소망에 대해서 알려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약속을 해주셨는가를 아이 때부터 알려 주기 시작해서, 이 아이가 점점점점 장성하게 되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낼 수 있는 위대한 인물이 탄생하게 된 것이죠.

삼손이라고 하는 사사는 그의 마노아라고 하는 사람이 그 아내와 함께 이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 정말 최선을 다했을 때, 삼손이라고 하는 위대한 인물이 탄생하게 된 것이고요. 바나바도 바나바라고 하는 사람은 바울을 인도해 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교회를 핍박한 사람이었던 것이죠. 교회를 핍박했던 그 사람이 어느 날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 그래서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함께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을 때 예루살렘 교회에 있던 성도들이 바울을 보면서 환영했을까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을까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이죠. 오늘날 교회 안에 어떤 젊은 청년들이 들어온다고 한다면 환영합니까?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봅니까? 어 저거 신천지가 아닐까 하면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거죠. 그런데 그때 바나바라고 하는 사람이 바울을 데리고 다니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소개해 주는 겁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났어요. 이 사람이 하나님을 체험하게 됐어요. 그래서 이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사명을 줬어요. 그래서 그 바울이라고 하는 사람을 예루살렘 교회에 잘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결국 그렇게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바나바라고 하는 사람이 바울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전 세계의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사람으로 바울이 성장할 수가 있게 되었던 것이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이러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그 사명이 사실은 작은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그 사명을 가지고, 나단과 같은 사람이 이러한 일을 만나게 되었을 때는, 솔로몬의 생명을 살리고, 그를 왕으로 이끄는 그런 위대한 일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바나바라고 하는 사람이 바울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를 잘 소개해서 결국에는 위대한 선교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준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이 결코 작은 사명이 아니고, 우리의 이름은 잘 두각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내가 뿌린 씨앗 내가 흘린 땀방울,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사용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어쩌다 보니까 이 자리에 있는 것이고, 어쩌다 보니까 우연히 태어나게 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한 사람 한 사람 하나님께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목적을 가지고 계시고, 사명으로 우리들을 태어나게 하시고 이곳까지 인도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사명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다 있어요. 사명이 다 있어요. 연세가 많이 드신 우리 권사님들, 이제는 사명이 하나도 없나요? 있어요. 우리 70 넘으신 에녹회 회원들만 대답해 봅시다 73세 넘으신 에녹회 여러분들만 대답해 봅시다. 우리에게 사명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믿습니까? 무슨 사명? 옛날과 같은 그런 사명은 아니지만, 기도하는 사명이 있잖아요? 따뜻한 말 한마디 해줄 수 있는 사명이 있잖아요?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했다고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명을 할 수 있잖아요?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가? 우리는 사명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잘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사명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사명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건강이 있습니까? 물질이 있습니까? 재능이 있습니까?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까? 따뜻한 손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 심지어 내가 경험하는 그 슬픈 경험도 때로는 좋지 않게 보였던 그런 아주 나쁜 경험들도 사실은 아무 의미 없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것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시는 그 사명들을 행할 수 있게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을 주시는 것이죠. 내가 옛날에 실패했던 그런 경험들은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똑같이 실패한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해 주고 힘을 주라고 하는 그런 의미의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사명으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사명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집에 가셔서 나에게는 무엇이 있는가를 한번 적어보세요. 여러분들에게 무엇이 있는가를 적어보세요. 여러분들에게 무엇이 있습니까? 볼 수 있는 눈이 있잖아요. 못 보는 사람도 있는데, 볼 수 있는 눈이 있잖아요?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잖아요? 만질 수 있는 손이 있잖아요? 아니 지금 살고 있잖아요? 생명이 우리에게 있잖아요?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그 어느 것도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준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께서 내게 은사로 주신 것이고, 사명으로 주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던져야 될 질문은 내게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질문해 보아야 되고, 더 나아가서는 이 있는 것으로 나는 무엇을 위한 사명으로 이것을 가지고 있을까? 질문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명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처한 상황이 사명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강도 만난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제사장과 레위는 이것은 내 사명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저 사람은 나랑 관계없는 사람이 아니라, 저 사람은 강도 맞는 사람이고, 나에게는 두 데나리온이 있고, 나에게는 포도주가 있고, 싸맬 헝겊이 있고 나에게는 낙타가 있어서, 이 사람을 싸매주고 치료해 주고 이 사람을 데리고 여관에 가서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내가 이 사람을 도와줘야 되겠다고 하는 생각으로 다가가서 도와줄 수 있었던 것이죠. 리브가라고 하는 여인은 물 길러 나왔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겁니다. 그 사람을 만나서 목이 마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물도 떠주고 또한 그 사람이 끌고 온 짐승에게도 물을 주며,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그런 사명을 주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된 사명인지 모릅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마리아 성 문 앞에 있던 네 명의 나병 환자들은 그들이 그곳에 있다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상황 가운데서, 아람 진영으로 갔다가 아람 진영에서 먹을 것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거기서 잘 먹고 잘 살고, 그리고 끝이 아니라 그들은 먹다가 생각한 거예요. 저 사마리아 성에는 우리 동포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여기서 배부르게 먹고 있구나. 그 사실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빨리 돌아가서 이 사실을 알리지 아니하면, 화가 우리에게 있으리라 생각하고, 자신들의 사명이 무엇인가? 자신들은 이 먹을 것이 여기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면, 그것을 알리는 게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사마리아 성으로 들어가서 그 사실을 알리게 된 것이죠. 우리의 사명은 무엇인가? 우리가 처한 상황 우리가 만나게 되는 사람 우리가 있는 바로 그곳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그 사명들을 잘 감당해 나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가는 것이에요. 사람들은 눈이 다 달라서, 보이는 게 있고 안 보이는 게 있습니다. 똑같이 보는데도, 어떤 사람의 눈에는 특히 어질러 있는 게 눈에 거슬리게 보여요.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그게 눈에 보여요? 눈에 보고 욕하라고 눈에 보이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은 내게 주어진 사명이죠. 내게 보이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내 마음이 가는 게 있다고 한다면, 그게 사명이에요. 우리 교우들 가운데 누가 참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구나. 그게 신경이 쓰이면 왜 저 사람한테 아무도 신경을 안 써주지가 아니라, 내가 신경을 써야 돼요.

예레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명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서, 최대한의 노력을 했는데, 예레미야서 20장 9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예레미아 선지자는 지금 이스라엘 민족을 바라보면서, 저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인 상태를 보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그걸 말하지 못하면 너무나도 답답해서 불붙는 것 같다고 하는 그런 고백을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했던 모습이 예레미야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해야 되겠다고 하는 그 사명을 가지고 있을 때 어떻겠는가? 사도행전 20장 23절에서부터 24절 말씀에 보면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란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복음을 들고 가야 되는데, 주변 사람들이 말리는 겁니다 가면 죽습니다. 가면 큰일 납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한 사람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그냥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님께서 알려주셨고, 이제 가면은 그 바울 사도가 죽임을 당하게 될 거라고 하는 그런 성령님의 가르쳐 주심이 있어서, 그걸 전달해 주는데도, 그걸 알고도 내가 가서 죽는다고 할지라도 내 사명을 마치는 일에 내가 중단할 수 없다고 하면서 예루살렘에게 가게 된 것이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사명들은 각각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어떤 사람은 두 달란트 어떤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만 맡긴 것처럼, 우리들은 다 사명들이 다루고 해야 할 일들이 다를 겁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 가면서 저 사람이 이만큼 했는데, 나는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가? 자꾸 비교하면서 만족할 게 아니라, 내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4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각각 자기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라고 기록하고 있는데요. 영어 성경에서는 이 갈라디아서 6장 4절 말씀을 이렇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NIV 성경에서 이렇게 번역했죠. “각각 자신의 행동을 살펴야 할지라. 그러면 자신을 다른 그 누구와 비교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각각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져야 할 것이니라.” 내게 맡겨준 사명이 하나면, 그 하나만 하면 돼요.

이제는 연세 드셔서 많은 것들을 알 수 없어도, 내게 주어진 그 사명 하나만 하면 돼요. 엄마로서의 사명, 아버지로서의 사명, 또 교회에서 맡은 그 사명,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내가 처한 그 상황 가운데서 할 수 있는 사명들을 잘 감당해 나가게 된다고 하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하고 결과는 누구에게 맡깁니까? 하나님께 맡기면 되는 거죠. 고린도전서 3장 6절 7절 말씀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바울 사도의 사명이 다르고, 아볼로의 사명이 다른 겁니다. 한 사람은 물을 뿌리는 겁니다. 한 사람은 심는 겁니다. 그러나 그 모든 사명들을 합력해서, 하나님께서 결과를 만들어내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지요.

솔로몬은 나단 선지자가 있었다고 하는 사실이 너무나도 큰 행운이었을 겁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어디선가 나타나서, 나단 선지자가 도와줌으로 말미암아 죽지 않고 살았을 뿐만 아니라, 왕으로서의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있게 도와주었던 것이시지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들은 어 아마 생각해 볼 겁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돕기는 돕는데, 그런데 누가 나를 도와주지? 나를 도와줄 사람은 누굴까?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을 알고 계십니까?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옛날 솔로몬이 아도니야의 반란으로 인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상황 가운데 있을 때, 나단 선지자는 자기가 아도니야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위험을 알면서도, 다윗 왕 앞에 찾아가고 밧세바에게 찾아가서 결국 솔로몬을 살린 것이죠. 그런데 바로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은혜 때문에, 우리가 살아나게 된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솔로몬이 왕이 된 것처럼, 우리는 어떻게 됐습니까?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움을 받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주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고, 우리가 이런 놀라운 은총을 받았다고 한다면,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도 특별히 헌신하는, 우리 2전도 회원들 뿐만 아니라, 우리 교우들 모두가 내게 맡겨주신 그 사명이 무엇일까? 지금 내가 나단처럼 들어가서 도와줘야 될 사람이 누구일까? 늘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주어진 그 사명을 외면하지 말고 믿음으로 발견하며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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