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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응답 (왕상 1:15-31)

오늘 우리가 열왕기상 1장의 말씀을 읽었는데요. 이스라엘 왕궁에서 벌어지고 있는 권력 투쟁 권력을 놓고, 투쟁을 벌이고 있는 그 이야기가 오늘 열왕기상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때 이스라엘의 영웅이었던 다윗왕, 한때 천하를 호령하던 그 다윗왕이 나이가 많아지고, 이제 늙어서 그 옛날 다윗 왕의 모습이 사라져 버린 겁니다. 예전에는 천하를 호령했던 왕인데, 이제는 세월의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이제는 자신의 몸조차 따뜻하게 할 수 없어서, 젊은 처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던, 그런 다윗왕의 모습이 등장하고 있고요. 그런 때를 틈타서 다윗의 여러 아들들 가운데 아도니야라고 하는 사람이 왕좌를 노리는 계획을 세워서 거의 성공하는 단계까지 가게 되었던 것에 대해서 지난번에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아도니야가 왕이 되면, 그러면 솔로몬은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하늘 아래 태양이 하나밖에 없잖아요? 하나의 태양만 있어야 되는데, 또 다른 태양이 있게 되면 안 되기 때문에, 솔로몬을 죽여야만 했고, 밧세바도 죽어야만 했고, 그런 위협을 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처지에 놓여 있을 때, 이 솔로몬을 돕고 밧세바를 돕기 위해서 나타난 한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 선지자의 이름이 누구였죠? 나단 선지자입니다. 나단 선지자가 나타나서, 죽음을 무릅쓰고, 다윗 솔로몬과 그 밧세바를 돕기로 작정한 것이고요. 그 계획에 따라서 오늘 본문의 말씀 보면 밧세바가 다윗 왕 앞에 나아가 아뢰는 겁니다. 왕이시여, 왕께서 예전에 제게 약속해 주시기를, 네가 낳은 아들 솔로몬이 내 뒤를 이어서 왕이 된다고, 그렇게 약속해 주셨는데, 지금 이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솔로몬이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도니야가 왕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솔로몬과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고 하는 그 사실을, 이 밧세바가 다윗 왕 앞에 나가서 간절하게 간청하고 아뢰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밧세바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 그 뒤를 이어서 나단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미리 다 작전을 세워놓은 거죠. 밧세바가 먼저 가서 이야기를 하면, 나단 선지자가 뒤따라 들어가서 다윗왕에게 이 사실을 알리겠다고 작전을 세워놨는데, 밧세바가 이야기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나단 선지자가 들어온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구약 성경에 보면 두 세 사람의 증인이 있어야 그 말이 진실하다고 하는 것을 확정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만 듣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또 들어보고, 그래서 여러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같은 이야기를 해야,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하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에, 밧세바가 가서 이야기하고 나니까, 나중에 나단 선지자가 들어와서 똑같이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지금 아도니야가 사람들을 이끌고 와서, 그래서 왕이 되기로 했고, 그래서 지금 왕이 되려고 하는 그런 위치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려주게 되었을 때, 결국 다윗은 그때서야 상황이 심각하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다윗이 밧세바를 향해서 약속을 하는 겁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반드시 내게 했던 그 약속을 이루게 해 주겠고, 그리고 솔로몬이 왕이 되게 해 주겠다고 하는 그 약속을 하게 되었을 때, 밧세바는 그 말을 듣고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인사하고 돌아갔다고 하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고 다윗에게 찾아간 것이죠. 그래서 결국 그 다윗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하는 약속을 들을 때에, 돌아올 수가 있었겠는데요. 우리들도 이와 비슷한 상황들을 많이 만날 때가 있습니다. 살다 보면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 해결해야 될 문제들, 그런 일들이 있을 때 밧세바는 다윗왕을 향해서 나갔는데, 우리들은 누구를 향해서 나가면 좋을까요? 누구에게 나가면 좋죠?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다윗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다윗에게 나아갔을 때 이 문제가 해결이 됐는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간다고 한다면, 하나님과 다윗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을 가만히 보면 다윗이라고 하는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네 다윗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몰랐던 것이죠. 그래서 다윗에게 가서 알려주고 또 나단 선지자가 와서 또 확증하고, 그래야 그때서야 비로소 모든 것을 알게 되었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알려주어야만 아는 하나님이십니까? 우리가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아시는 하나님이십니까? 이미 아시는 하나님이신 거죠. 마태복음 6장 7절 8점의 말씀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하나님은 아시는 하나님이십니까? 모르시는 하나님이십니까? 아시는 하나님이요. 우리가 아프다는 거 알고 계셔요. 우리가 이런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도 알고 계셔요. 우리의 모든 형편과 사정을 다 알고 계시는 것이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민과 아픔이 있어도, 우리 어르신들 보니까 자식들에게 말을 안 해요.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 되는데, 얘기 안 하고 우리 아이들 걱정할까 봐. 우리 아이들 고생할까 봐. 그렇게 얘기를 안 하더라고요. 그러면 얘기를 안 하면 몰라요.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은 우리가 말하기 전에 아시고,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있고 어떠한 형편에 있는가? 또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나아가게 되겠는데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은 밧세바나 나단이 다윗 왕을 찾아가서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다윗왕은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알려주는 것이지만,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이 몰라서 알려주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이미 다 알고 계시는데, 그 다 알고 계신 그 하나님 앞에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 다 알고 계시다면서요? 그런데 왜 우리가 기도를 해야 될 필요가 있는 것이죠?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시다고 하는 그 사실은 우리가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기도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가 말을 하다 보면 누구랑 이야기하고 싶어요? 말이 통하는 사람하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런데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하고는 대화가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돼요. 처지가 다르고 형편이 다르고, 지금 나는 배고파 죽겠는데, 힘들어 죽겠는데, 한다는 말이 “배고프면 라면 끓여 먹으면 되지” 이런 소리 하는 사람하고 대화가 안 된단 말이에요. 우리가 바위 앞에 가서 말을 하겠습니까? 나무 앞에 가서 말을 하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하나도 알아주지 못하는 그런 대상을 향해서 우리가 이야기하겠습니까? 하지만 내 아픔을 알고 내 고통을 알아주는 사람 앞에서는 이야기하고 싶은 거예요. 내가 이렇게 힘들어어 하는데, 나의 나와 똑같은 그런 상황을 겪었던 사람에게는 대화가 되고 이야기가 되는 것이죠.

예전에 장례식이 있어서 한번 가본 적이 있는데요. 미국의 장례식은 관을 앞에 놓고 그 관의 뚜껑을 열어놓습니다. 그래서 시신을 그 앞에 놓는데, 시신에 평상복을 입혀놓고 예쁘게 화장도 해놓고 해서 마지막 가는 모습을 조문객들이 와서 그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보고, 그리고 유가족들하고 인사를 하게 됩니다.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마지막 가는 그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한 다음에, 그 옆에 가서 유가족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남편을 잃은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게 된 그 가정의 장례식이었는데, 이렇게 시신이 앞에 놓여 있고, 그 옆에 미망인이 유가족이 서 있는 그 모습을 보는데, 한 사람씩 한 사람 지나가다가, 그 유가족들하고 인사를 하는데 어떤 한 사람이 와서 조문을 하고, 그 유가족 하고 인사를 하는데, 그냥 둘이 껴안고 막 우시더라고요. 왜? 조문하는 사람도 사실은 얼마 전에 남편을 잃은 사람이어서, 그 마음이 통하는 거죠. 똑같은 슬픔 똑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과 조문할 때도, 마음이 아프고 슬픔을 나누었지만, 그 사람 가고는 그냥 껴안고 계속 풀어주는 거예요. 왜냐면 마음이 통하기 때문에 그런 거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몸을 가지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으시며,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알아주시는 우리 주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고 우리의 아픔들을 내놓을 때 우리가 담대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 말할 수가 있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기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아시는 그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토로하며 토로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은혜 베풀어주시는 그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우리가 엉뚱한 곳을 찾아가서 한탄하거나 화풀이하거나 할 게 아니라, 우리를 다 아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체휼 하신 우리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가운데 주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다윗은 이 밧세바를 향해서 응답합니다 응답을 하는데 무엇에 따라서 응답합니까? 내가 예전에 밧세바를 향해서 해주었던 그 약속의 근거에서 응답해 주는 것이죠. 밧세바가 무슨 장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권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약속해 주었던 그 약속에 근거해서, 이야기를 하게 될 때 하나님 이 다윗이 응답해 주었는데요. 하나님께서도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를 향해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4절 말씀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하나님 앞에 엎드려 구하면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우리의 약속을 보증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가운데 주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구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바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응답해 주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 딸들을 보면 저에게 와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와서 이야기를 해요. 이걸 해달라고 이야기도 하고 저걸 해달라고 이야기도 하는데, 왜 그렇게 이야기하냐면 우리 딸들이 제가 자기들의 아빠라고 하는 것을 알아요. 가장 사랑한다고 하는 것을 알아요. 하나님도 역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사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하나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던 그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고 간구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이 안 된다고 한다면 그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어서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응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사랑하시기 때문에 응답하지 않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들의 생각과 다르고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게 제일 좋은 것 같지만, 우리의 영적인 유익을 위하여 이것보다 더 큰 은혜 더 큰 축복 더 큰 복을 위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방식으로 응답해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가운데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힘이 다 빠져버린 그런 다윗도 밧세바를 향해서 응답해 줄 수 있었다고 한다면,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전능하시고 아무런 변화도 없으시는 그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주님 앞에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나이가 많아지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다윗도 나이가 많고 여러 가지 많은 옛날의 그 모든 모습들이 다 빠져버렸지만, 그러나 솔로몬을 위해서 무엇인가 응답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들도 우리는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놀라운 역사들을 만들어 갈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데, 밧세바와 같은 상황들이 우리들에게 벌어지기도 하고, 또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벌어질 때 낙담하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시고 이해해 주시는 그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주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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