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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롬 10:16-21)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무엇을 듣는가에 따라서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행동한다면, 그 행동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라, 사실 우리가 본 것, 우리가 들은 것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감각들을 통해서 얻은 그 모든 정보들에 의해서 우리가 움직이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의 행동을 유발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마케팅을 하시는 분들은 우리 소비자들에게 상품이 무엇이 좋은지, 우리 제품이 어떤 점이 좋은지를 잘 설명하고, 잘 알리는 일을 하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합니다. 광고를 많이 하는 것이죠. 광고를 하고 또 하고 또 해서, 사람들이 그 제품에 대해서 알고 그 제품에 대해서 들어보고 보았다고 한다면 구매할 수 있겠지만, 그런데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손이 쉽게 가지가 않는 것일 겁니다.

코카콜라와 같은 그런 엄청나게 큰 회사들은 그래서 전 세계 방방 곡곡에 그 광고판들을 세워 놓습니다. 저 산속 깊은 곳에, 저 아프리카의 오지에, 정말 사람들이 다니지 않을 것처럼 생각되는 바로 그런 곳에도, 전 세계 방방곡곡에 다 그런 광고판을 세워 놓아서, 결국은 우리 제품을 팔아먹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하는 것이죠. 광고 가운데 가장 비싼 광고가 있다고 한다면, 미식축구 결승전이라고 하는 슈퍼볼 때 하는 광고라고 합니다. 슈퍼볼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오직 성경만 하시기 때문에 못 들어보셨을는지 모르겠는데, 매년 2월 초가 되면 미국 미식축구를 하다가 결국 결승전을 하게 되는데, 그 결승전을 가리켜서 슈퍼볼이라고 합니다. 그때는 전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그 미식 축구하는 것을 보기 때문에, 텔레비전으로 시청을 하기 때문에, 그 시청자들의 숫자가 어마어마한 것이죠. 그래서 그때 광고를 맛있게 보여주면, 제품의 가치, 제품의 인지도가 올라가게 되기 때문에, 그래서 슈퍼볼 때 광고하는 것을 굉장히 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 광고비가 얼마 정도인지 혹시 아십니까? 잘 모르시죠? 1초에 2억 8천만 원입니다. 1초에. 1초짜리 광고는 없고 가장 짧은 광고가 15초짜리이고, 그리고 긴 광고는 90초짜리 광고라고 하니까, 광고 한 편 내보내기 위해서 드는 돈이

43억 원이 제일 적은 금액이고, 많게는 2508억 원을 지불해야 광고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현대자동차가 광고를 하잖아요? 우리 교회 성도님들 중에서도 한번 하고 싶은 분 계신가요?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광고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들려줘야, 보여줘야 사람들이 인식하고 그리고 그 제품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제가 예전에 미국의 도서전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룹으로 가서 참여를 했는데, 그때 서점을 소개해 주는 그 여행에 같이 포함되어서 서점을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가이드가 설명을 하면서, 서점의 책을 어떻게 배열할 것인가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는데요. 사람이 들어가게 되면, 문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왼쪽보다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오른쪽에다가 팔고 싶은 책을 배열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책방 내의 동선을 나오면 바로 나갈 수 없게 끝까지 빙빙빙빙 돌려서 전 서점을 다 구경하고 나갈 수 있게 동선을 만들어놓고, 그리고 그 길목 길목마다 또 보여주고 또 보여주는 것이죠. 신간 안내 코너에도 나오게 만들고, 명사가 추천하는 코너에도 등장하게 만들고,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나오게 만들고, 몇 번을 보게 만들어서, 그리고 카운터 위에도 잔뜩 쌓아놓으면 한 바퀴 쑥 돌고 나오다가 사람들이 그 책을 짚는다고 합니다. 자꾸 들려주고 보여주고 알게 해 주어야, 그래야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이 되고, 결국 사람들이 움직인다고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로마서의 말씀을 읽었는데요 이 말씀을 한번 요약해 보면 첫 번째는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어떻게 생기는가? 들어야 생기는 것인데, 무엇을 들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긴다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무엇인가? 유대민족은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고, 그 말씀을 거부하며 믿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두 번째 말씀입니다. 이렇게 유대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여서, 그래서 결국 믿음을 갖지 못하게 되었는데, 이들이 듣지 아니한 이유가 무엇인가? 아무도 안 들려주어서 못 들었다가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의 말씀은, 이 복음의 말씀은 너무나도 많이 전파되고 있고, 많이 들려주고 있지만, 그 말씀에 귀를 닫아버려서, 복음을 듣지 못했고 결국 유대민족은 멸망의 길로 걸어가고 있다고 하는 그 안타까운 평가가 오늘 로마서 10장 16절에서부터 21절 말씀까지 기록되어 있는 것이죠.

모든 것이 마찬가지지만 믿음은 어디서부터 생기는가? 들음에서부터 나오는 것이고, 듣는 것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고, 무엇을 들어야 되는가?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의 복음, 그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는 것인데, 듣지 않아서 결국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하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들 가운데서 특별히 17절의 말씀을 같이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17절 말씀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은 어디에서부터 생긴다고요? 들어야 된다는 거예요. 들어야 듣는데, 아무거나 막 들어도 되나요? 그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제대로 된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긴다는 거예요. 안타깝게도 우리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우리를 살릴 수 있는 생명의 말씀을 듣기보다는 우리를 망하게 만드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하는 게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우리를 유혹해서 죄악의 길로 빠지게 만드는 그러한 잘못된 말들, 죄를 짓게 만드는 말들, 우리로 하여금 탐욕의 길로 빠지게 만드는 말들, 우리를 전혀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는 이 세상의 말들에 우리의 귀가 너무나도 얇아서 그 길로 가다가 망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하와가 그랬잖아요?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탄이 다가와서 유혹하게 될 때, 그 말을 듣고 그리고 선악과를 따먹는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 것이죠.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어떤 말을 듣습니까? 우리를 낙심하게만 하는 말을 듣는 것이죠. 너는 실패자야. 너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야. 너는 별로 이쁘지도 않아. 너는 하나님이 사랑하지도 않아. 너는 아무런 아무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사람이야. 부정적이고 우리를 낙망하게 만드는 그 말에 우리가 귀를 기울이다가 절망하고 낙망하게 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떤 말을 듣습니까?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말, 사람들을 미워하게 하는 말들을 듣다가 결국 우리들의 마음이 분노 가운데 증오 가운데 미움에 빠져서, 그래서 결국 옳지 못한 길로 걸어가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들어야 되는가? 생명의 말씀을 들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들려주시기 원하는 그 말씀을 우리 모두가 들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 말씀만 들리면 좋은데 놀랍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들이 더 많이 들리는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 듣습니까?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도 하고, 큐티를 하거나 또한 묵상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도 하고,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 나머지 시간에는 이 세상의 이야기들을 듣게 되는 것이죠. “돈이 최고다”라고 하는 말, 우리가 사람을 짓밟아버리면서 내가 성공하면 그러면 장땡이라고 하는 그런 말들, 이 세상에 정말 악한 말들,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그런 말들에 우리가 너무나도 많이 노출되어 있다고 하는 게 그게 우리들의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잖아요? 우리 자녀들이 무슨 말을 들어야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되고 생명의 말씀을 들어야 되는데, 그 듣는 시간은 일주일에 겨우 10분, 20분밖에 안 돼요.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온갖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습니다. 인터넷에서 이 세상에서, 미디어를 통해서, 접하는 그 모든 환경들이 좋지 않은 소리들로만 가득 찬 그 세상 가운데서 온갖 나쁜 소리들만 다 들으면서 살다가, 겨우 주일날 한 번 와서 그 짧은 시간만 듣는 그것만 가지고, 정말 바른 길로 걸어가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것이죠.

그래서 이번 여름 성경학교를 준비하는 가운데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 바로 그거예요. 하나님,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려지게 하여 주옵소서. 이번 주일학교 여름 사역들 가운데 우리 아이들의 마음이 정말 하나님의 만지심이 있기를 바라고, 그래서 우리 교사 선생님들이나 우리 교역자들이나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서 이 아이들의 삶이 바뀌어지고, 그들이 듣게 되고 믿음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는 게 우리들의 기도의 제목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들이 듣는 것들이 무엇인가 좋은 정보만 오는 것이 아니라 나쁜 정보까지 함께 온다는 거예요. 진리가 있는 반면에, 거짓이 우리 가운데 넘치고 있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는가? 가려 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가려 들어서 우리로 하여금 분노하게 만들거나 낙담하게 만들거나 죄악의 길로 가게 만들거나 탐욕의 길로 가게 만드는 그런 말들은 우리의 귀에서부터 차단해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우리를 살리는 그런 말씀들만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의 결단들이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어요. 왜 문제가 있습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그랬는데, 들으려고 하면 믿음으로 분별해야 잘 들을 수 있다는 거, 그게 우리들의 문제예요. 그림을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요.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잘 들어야 온다는 거예요. 그래 잘 들어야 믿음이 생기는 것인데, 믿음이 생기기 위해서는 잘 들어야 되는 것인데, 잘 듣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분별해야만 잘 들을 수 있어요. 닭이 먼접니까? 계란이 먼접니까? 들음이 먼접니까? 믿음이 먼접니까? 이게 우리들의 문제인 것이죠. 순환의 문제가 우리들에게 있는 겁니다. 잘 들어야 믿음이 생기는 것인데, 잘 듣기 위해서는 좋은 믿음이 있어야 잘 들을 수 있으니까,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고 점진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하는 점을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 그림을 한 번 보았으면 좋겠는데요. 우리에게 작은 믿음이 있어도, 그 작은 믿음이 있어서 그 믿음으로 새겨서 분별해서 잘 들으면, 그러면 믿음이 더욱더 성장하게 되고, 그 성장된 믿음으로 좀 더 잘 들으면, 그러면 더 믿음이 성장하게 되고, (방향을 손을 어쩌고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믿음이 더 좋아지면 더 잘 들을 수 있고, 더 잘 들으면 그만큼 믿음이 더 성장할 수 있고, 더 믿음이 성장하면 더 잘 들을 수 있고, 그래서 더 잘 들으면 믿음이 더 커지는 모든 게 다 마찬가지예요.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 우리 겨자씨만 한 믿음이 있을 때, 아직 우리들의 믿음이 연약한 그 순간에 우리는 기도하면서 잘 듣기 위해서 노력해야 되는 것이고, 그래서 잘 들으면 분별해서 들으면, 그만큼 우리들의 믿음이 더 커지는 것이고, 우리들의 믿음이 더 커지면 더 분별해서 들을 수 있고, 그래서 점진적으로 점진적으로 믿음이 성장해 가게 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기도의 제목이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매일 아침 일어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기도의 제목이 있다고 한다면 “주여, 저희들의 귀에 파수꾼을 세워 주시옵소서. 주여, 저희들의 눈에 파수꾼을 세워 주시옵소서.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것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해 주시고, 사람들이 우리들을 향해서 무너뜨리려고 하는 그런 말들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헌신하려고 하면 사람들이 격려하고 박수 쳐주는 것이 아니라, 비아냥거리고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그런 나쁜 말들이 들리게 될 텐데, 그런 말들을 우리들의 마음속에 생길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귀를 막아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믿음이 더욱더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엎드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찬양에서 우리가 찬양하는 가운데 불러준 그 찬양 가사처럼 성령께서 저희들의 영혼을 밝혀주시고, 눈을 뜨게 해 주셔서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성장해 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것을 들어서 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주변에 널려져 있는 이단들, 잘못된 교훈들, 세상 풍조들이 우리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수밖에 없는데 잘못된 지도자를 따라가다가 결국 망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부탁을 드려요. 우리 교회 성도님들 혹시라도 어디서 성경 공부하고 싶다, 아니면 영상을 보고 싶다, 무엇인가 좀 신앙에 대해서 “더 배우고 싶다”라고 했을 때 혹시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제발 좀 상의 좀 하고, 제발 좀 물어보고 그렇게 하셨으면 좋겠어요.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영상을 보고 어떤 성경 공부에 참여해서 잘못된 이야기를 듣고 그래서 자꾸만 거기에 노출이 되면 나도 모르게 잘못된 길로 빠져가다가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바른 믿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어서, 제대로 된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기 때문에 그 우리가 잘 들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요. 이제는 반대로 이제 믿음이 들음에서부터 생기기 때문에, 우리는 들려주어야 한다고 하는 점을 기억해야 될 줄로 압니다. 우리는 잘 들려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어야 되고, 생명의 길을 이야기해 줘야 되고, 바른 길을 이야기해 줘야 되는 것이죠.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 친구들에게, 우리 동료들에게,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바른 길들을 전해주고, 그래서 잘 들려주면 그것이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믿음이 어디서부터 오는가? 들음에서 온다는 거예요. 들려주면 믿음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래서 들려주어야 하는 것이죠. 우리 손주들을 붙들어놓고 우리 아이들을 붙들어놓고, 우리 가족들을 붙들어놓고, 우리 동료들을 붙들어놓고 이야기해 줘야 되는 것인데, 물론 지혜롭게 이야기해야 됩니다. 무대뽀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반발을 일으키도록 그런 지혜 없이 할 것이 아니라, 주님 지혜를 주셔서 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려주어서 그 들려준 그 말씀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에 믿음이 생겨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분별하는 가운데 들려주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들려주는 것이 효과가 없는 것처럼 생각될 때가 많지만, 하지만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물이 다 빠져버리는 것 같고, 다 흘러가는 것 같고, 아무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콩나물이 만들어지잖아요? 그와 마찬가지로 들려주게 될 때 사람들은 변화가 되고 믿음이 생긴다고 하는 그 사실을 확신을 가지고,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해 주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어디선가 본 이야기인데요. 일본에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시는데, 그 할아버지는 매일매일 가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로 가는 것이죠. 어떤 산 같은 곳인데요. 그곳은 아주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구경을 하는, 등산을 하고 관광을 하는 그런 곳인데, 그 할아버지는 매일매일 그곳을 찾아간다고 그래요. 그렇게 찾아가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냐면, 종종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곳이 유명한 곳이기는 한데 자살하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에요. 그래서 그 할아버지는 매일매일 그곳에 가서 행동이 좀 약간 이상한 사람들을 이렇게 살펴보는 겁니다. 그리고 아 저 사람이 좀 행동이 좀 이상하다. 오랫동안 다녀봤기 때문에 행동이 좀 이상하다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고, 이야기를 해주고, 그리고 그 사람의 사연도 듣고, 데리고 가서 밥도 먹여주고 때로는 집에 데리고 가서 잠도 재워주면서, 지금까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자살 시도하는 것에부터 구원해 냈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살린 사람이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살려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설교 때 언급하려고 예전에 한 번 본 이야기 때문에 정확하게 그 사람의 이름이 누군지, 그 장소가 어딘지, 그리고 몇 명이나 살렸는지 정확하게 살펴보려고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는데 잘 못 찾겠어요. 그래서 찾아보려고 “자살” 이렇게 딱 쳤더니 “혹시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혼자 고민하지 말고 상담을 받아보세요.” 메시지가 딱 뜨더라고요. 영적으로 죽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매일매일 가면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내는 그런 위대한 일들을 해냈는데, 사실 그렇게 죽는 사람이 영적으로 죽는 사람이 우리 주변은 더 많이 있는 것이고요. 그 사람들에게 우리가 찾아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줄 때 그들이 영적으로 살아나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다 실패한 사람들이오. 우리는 다 부족한 사람들이고 실수가 많은 사람들이고, 늘 넘어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야 했습니다. 만일 우리 가운데 완벽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는 것이고요. 다 실패자요 다 부족한 사람들이고 다 무엇인가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저 높고 높은 보좌 위에서 낮고 낮은 이 자리에까지 오셔서 우리들의 죄와 허물을 주시고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가 필요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 다 필요한 것이죠. 지금 죽어가고 있는 자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돌아가시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는다고 하는 이 놀라운 구원의 기쁨의 소식이 전달되고 또 전달될 때, 그 가운데 생명을 살리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번 여름 사역 가운데 우리 자녀들에게 이 놀라운 사랑의 소식들이 전달되어야 될 것이고, 또한 우리 가운데 서로가 서로에게 들려주는 그런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배 시간에 잠시 생각하지만 그 문만 열고 나가면 온갖 이 세상에 쓰레기와 같은 이야기들, 비아냥거리는 소리들로 가득한 이 세상 가운데서 쓰러질 수밖에 없는 우리들 아닙니까? 그런 우리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권면하고 돌보는 가운데, 우리들의 눈이 하나님께로 고정이 되고, 우리들의 귀가 복음의 말씀에 들리게 되고, 그래서 영적으로 살아날 수 있는 그런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위하여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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