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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와 양 (요 10:27-29)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반응합니다. 목자가 부르면 다가오는 것이죠. 하지만 목자가 아닌 사람들이 부르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중동지방을 여행하면서 목자들이 양을 치는 광경을 보았다고 합니다. 3명의 목자들이 와서 양들을 치는데, 그 양들이 서로 섞여서 시냇가에서 물을 먹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목자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되자 한 목자가 일어서서, 자기 양들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얘들아” 그랬는지, 어떻게 불렀는지, 부르니까, 양들이 그 목자를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양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전부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일부가 그 양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 목자를 따라가기 시작한 것이죠. 목자는 몇 마리가 따라오는가를 굳이 셀 필요가 없습니다. 내 말을 듣고 내 말을 따라 듣고 따라오는 그 양이 내 양이고, 내 양들은 다 따라올 거라고 하는 믿음의 그런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 양들을 부르고, 그 양들을 데리고 가게 된 것이죠. 그다음 목자가 또 일어나서 자기 양들을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그 남아 있는 양들 가운데 또 일부가 그 목자를 따라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 목자도 일부러 양이 몇 마리인가 굳이 셀 필요가 없이, 자기가 부른 그 양, 내 말을 듣고 따라오는 그 양들을 데리고 목적지를 향해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어떤 여행객이 너무나도 신기해서, 남아있는 목자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양들을 부를 때 어떻게 부르느냐고 그 목자의 음성을 그대로 흉내를 내면서, 성대모사를 하면서 양들을 한번 불러보려고 했습니다. 그냥 부르면 안 되니까, 쓰고 있는 터번도 빌리고, 그리고 그 목자가 입던 그 겉옷도 빌려 입고, 마치 진짜 목자인 것처럼 그렇게 꾸민 다음에 양들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양들을 불렀는데, 따라왔을까요? 안 따라왔을까요? 안 따라왔습니다. 꼼짝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너무나도 신기해서 목자에게 물어봤습니다. “이 양들이 내 말은 듣지 않는데, 정말 양들은 주인의 말만 듣습니까? 주인의 말이 아닌 그 사람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목자가 대답하는 말이, “네. 내 양은 내 목소리를 듣고 따라옵니다. 그런데 간혹 가다가 내 말을 안 듣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양이 있는데, 그 양은 어떤 양인가?” 병든 양이라는 거예요. 아픈 양, 건강한 양이라고 한다면,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 말을 듣고 따른다고 하는 것이 중동지방에서 목축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그런 상식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양이라고 하는 동물은 시력이 별로 좋지 못해서 30m 밖으로는 볼 수도 없고, 시력이 너무나도 약해서 위험스러운 공격이 있을 때, 그것을 잘 느끼지 못하고, 또한 그런 공격에 대해서 자기 자신을 보호할 만한, 그러 변변치 않은 그런 공격력도 가지고 있지 아니한 것이 양이기 때문에, 이 양들이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이야말로 참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고, 참 지혜로운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양들이 목소리를 분별해서 주인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한다면, 그 주인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면, 푸른 풀밭으로 가게 되는 것이고, 쉴만한 물가로 가게 되는 것이고, 안전한 곳으로 가게 되겠지만, 그러나 주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결국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인데, 이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그 음성을 따라서 움직인다고 하는 것, 그것은 정말 중요한 것이고 지혜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양들이 사람보다 훨씬 더 지혜로운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우리 사람들은 우리의 주인이신 주님의 목소리를 외면할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주님과의 관계 가운데서 비유할 때, 목자와 양의 관계로 설명하곤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시편 23편의 말씀인데요. 다윗은 노래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자시니까, 사람 목자만 해도 양들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지켜 보호해 주는데, 하나님이 나의 목자시라고 한다면, 두려울 게 없는 것이죠. 하나님이 나의 목자라고 한다면, 겁낼 것이 없는 것이죠. 심지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가는 것처럼 보여도, 두려워할 것이 없는 것이, 그것은 하나님이 전능하신 그 하나님으로서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자신이 우리들의 선한 목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1절의 말씀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정말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죄로 인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친히 십자가 위에서 우리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시고, 물과 피를 다 쏟아주시며, 우리를 살려주신 선하신 목자, 참된 목자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며, 주님만이 우리의 참된 목자라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신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른 그 누구도 목자가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 말 성경에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라고 밋밋하게 번역이 되어 있지만, 헬라어 원문을 보게 되면, 어떤 의미냐면, 그 어떤 것도 우리의 목자가 아니라, 바로 내가 선한 목자라. 그 어떤 사람이 선한 목자가 아니라, 바로 내가 선한 목자라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입니다. “에고 에이미”(ego eimi). “내가 바로 그런 목자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가 믿고 따라야 될 대상이 누구입니까? 누구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예수님께서 가자 하는 곳으로 따라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한국교회 내에서는,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된 목자라고 하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을 목자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합니다. 예를 들자면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 우리 성도들의 목자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고, 그래서 “목사님이 우리 목자예요. 목사님이 우리들의 인도자예요.”라고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그것은 결코 성경적인 관점이 아니에요. 우리는 다 양들이에요. 목사나 일반 성도나, 우리 인간이라고 한다면 모두가 다 양들과 같아서,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지 않는다고 한다면, 망할 수밖에 없고, 쓰러질 수밖에 없는 너무나도 연약한 양 같은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먼저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목사가 어떤 의미에서는 목자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면서,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부탁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베드로와 같이 주의 일을 감당하는 자들, 영적인 지도자들, 어쩌면 그분이 목사님일 수도 있겠고, 주일학교 교사, 선생님이 될 수도 있겠고, 구역장이 될 수도 있겠고, 여러 가지 교회 내에서 사역을 하는 그런 사람들, 또 어떤 의미에서는 목자일 수 있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을 가르치고 훈련시키고 영적으로 잘 인도해서 그래서 바른 길을 가도록 도와준다고 하는 의미에서, 목자라고 말하면 목자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목사라고 하는 말을 영어로는 패스터(pastor)라고 하는데, 그 패스터(pastor)라고 하는 말 자체가 목자라고 하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목사를 목자라고 해도 그렇게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되는데요. 인간인 목사는, 교사는 영적인 지도자는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과는 달리 완벽할 수도 없고, 실수투성이고 허점 투성일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인간이라고 하는 점을 먼저 기억해야 되는 것이고요. 뿐만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인간 목사는, 그리고 교사, 영적인 지도자든 그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든지, 그분이 교회 내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든지, 다 그 자체로 완벽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이 필요한, 절실하게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하는 점을 분명하게 기억하며, 우리의 참된 목자는 예수님 한 분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타깝게도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성직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마치 자신이 하나님을 대리해서,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하거나, 마치 자신이 어떤 진짜 목자인 것처럼 그렇게 속이는 일들이 너무나도 자주 발생해 왔습니다. 천주교 내에서는 신부가 마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재자인 것처럼 그렇게 행세를 해온 것이고요. 또 종교개혁이 일어났지만, 그 이후에도 수많은 성직자들이나 교사들이 마치 자기가 진짜 목자인 것처럼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호가호위(狐假虎威) 해오던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었는데, 그런 것에 속아 넘어갈 것이 아니라, 잘 분별해서, 우리의 참된 목자는 우리 주님만이 참된 목자이시고, 우리는 모두가 다 양이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하며, 우리의 소망을 주님께만 둘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참 분별을 잘해야 될 텐데요 이 세상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을 가르친다고 하면서도 은근히 자기 자신을 드높이고, 자기 자신을 통해서만 무엇인가 이루어질 것만 같고, 그래서 자기를 믿으라고 하면서 자기 자신을 높이는 그런 경우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영적으로 잘 분별하면서, 정말 우리가 따라야 될 분은 주님이시지, 그 어떤 사람도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예수님만이 나의 목자시고, 참된 구조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우리의 참된 목자시라고 한다면, 양인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될까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음성이 어디에서 분명하게 밝혀져 있습니까? 성경 말씀에 있는 거죠. 물론 이 성경 말씀을 풀이해서 가르쳐주는 설교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겠고, 성경 말씀을 풀이해서 잘 써놓은 여러 가지 신앙 서적을 통해서도 우리가 주님의 뜻을 깨달을 수도 있겠고, 또 어떠한 여러 가지 가르침들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을 수도 있겠지만, 언제나 가장 근원적인 것은 성경 말씀이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가장 근본이 되는 거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분별해 나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앞에는 항상 두 가지 음성이 놓이게 되어 있는데, 이것이 주님의 음성인지 아닌지 분별하면서, 주님의 음성을 따라 순종하고 반응하는 주님의 양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서 누군가를 미워하라고 하는 그런 충동이 나온다면, 그것은 주님의 음성일까요? 만일 내가 욕심을 부리고, 나를 나만을 위한 탐욕적인 그런 삶을 살라고, 그러한 말들이 내 마음 가운데 충동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게 주님의 음성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의 음성을 분별해야 되는 것이죠. 우리가 과연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들리는 이 소리가 주님의 음성인지, 주님의 음성이 아닌지 분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동영상을 보니까, 사람들이 부르니까, 양들이 아는 척을 안 해요. 아무리 불러도 “얘들아, 이리 와라.” 뭐 “치카치카” 하고, 뭐 이렇게 부르는데,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그런데 목자가 나타나서, 뭐라고 말하고 얘기하니까, 이 양들이 풀을 듣다가 귀를 쫑긋 세우고, 이게 무슨 소리일까? 잠시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잠시 생각하는 것 같다가, 이게 목자의 음성이라고 생각이 드니까, 우르르르 몰려들어서, 그 목자에게로 달려가는 그 양들처럼, 오늘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서도 항상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이것이 주님의 음성일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일까? 주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그런 지시인지 아닌지, 날마다 날마다 분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해 나가는 그런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교만한 생각이 솟아오르거나,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분노하는 감정이 솟아오르거나,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미워하는 감정이 솟아오르거나, 아니면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을 자랑하고 공치사하고 드러내려고 하는 그런 마음들이 우리들에게 들거나, 여러 가지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드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이것이 주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인지 아닌지, 우리가 늘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늘 읽으면서 분별해야 되고, 그렇게 분별한 그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는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그 말씀에,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순종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만일 우리 가운데 성도라고 아는 사람들 가운데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주님의 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분명하게 얘기해 주세요. 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5절에서부터 27절의 말씀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주님의 양은 주님의 음성을 알아들어야 주님의 양인 거예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반응이 없고, 움직이지 않고 그냥 그대로라고 하면 주님의 양이라고 말할 수가 있어요? 없어요?

안타깝게도 당시 유대인들은 주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리고 수많은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었지만, 예수님의 양이 아닌 사람들은 그 마음을 닫아버렸고, 예수님을 거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목자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똑같이 말씀해 주셨어요. 똑같이 말씀해 주셨는데, 주님의 양들은 듣고 반응하고 따라왔고, 주님의 양이 아닌 사람들은 마음을 닫아버리고 주님을 거역해버리고 만 것이죠. 그런데 만일 우리가 주님의 양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우리의 마음이 그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면 그러면 우리가 주님의 양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셔도 마음의 문을 꼭 닫아놓고 아무것도 행하지 않고, 헌신하지 않고,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서, 내가 주님의 양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그런 경우는 주님의 양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에서부터 29절의 말씀에 이런 약속을 해주셨는데요.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오.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마치 목자가 양들을 잘 지키고, 그리고 그 양을 한 마리라도 잃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에게 속한 양들이라고 한다면 빼앗길 수 있습니까? 없어요. 우리 하나님께서 전혀 빼앗기지 아니하도록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결국 영생의 약속을 주시겠다고 하는 것이 주님의 약속인데, 이게 누구를 향해서 주시는 약속입니까? 그냥 모든 양들에게 주신 약속인가요? 그게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으로 반응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약속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영생의 확신이 있습니까? 정말이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살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지만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늘 실패하고 넘어지는 게 우리들의 모습이고, 우리들의 모습은 주님의 그 음성에 순종하며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우리는 늘 넘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기보다는 사탄의 음성을 따라다니며, 그래서 죄악 길로 걸어갈 때가 너무나도 많았던 것이 우리들의 모습인 것이죠. 그렇다고 한다면 영생의 약속이 우리들에게 있어요? 안 들으면 큰일 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해주신 것은 “그러니까, 너희들이 내 양이 아니다”라고 말씀해 주시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해주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셨는데, 이제는 그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듣듯이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는 그런 권고의 말씀으로 이 말씀을 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지만, 우리 무리의 죄악을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짊어지게 하셔서 그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으시며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순종의 길로 가고 우리가 저 멀리 사탄의 음성을 듣고 행하며 멀리 갔었던 인생이지만, 그러나 그런 우리들을 주님께서 피 흘리시면서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 주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결단하며 주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며 나아가는 그런 결단들이 우리 모두에게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도 하지만 또 넘어지고 또 쓰러질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면서 주님, 제가 하나님의 양인데, 주님의 자녀인데,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는 늘 다른 목소리를 듣고 엉뚱한 길로 갈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저희들의 마음 가운데 파수꾼을 세워주셔서, 주님의 길을 따라갈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되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가는 가운데 주님과 함께 따라가는 그 길이 복되고 행복한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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