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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앞에서도 (고후 8:16-24)

2020년 11월 29일 주일예배 설교

지난 시간에 우리는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헌금에 동참하라고 권고하는 메시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일을 하시고자 한다면, 우리 인간의 도움이 전혀 필요가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사역 가운데 사람들로 하여금 동참하게 하고, 헌신하게 하고, 또 그러한 일을 위해서 수고에 땀을 흘리도록 초청하시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마치 사랑이 많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이것을 해봐.” “저것을 해봐.” 하면서, 정말 사랑의 마음으로 자녀들에게 무엇을 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으로 온전해지게 만들기를 위해서,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게 하기를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기 위해서, 주님의 선한 일에 우리로 하여금 동참하도록 권고하신다고 하는 그 사실을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지난 시간에 읽었던 그 말씀 바로 다음에 이어서 계속해서 나오는 본문인데요. 바울 사도는 이 본문의 말씀 가운데서 고린도 교회가 구제 헌금에 동참하게 된다고 하면, 그 구제 헌금을 전달하는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린도 교회가 헌금을 해준다고 하면, 그 헌금을 어떻게 전달하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의 메시지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구제 헌금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모은다고 한다면, 그 헌금을 전달하는 일에 세 명의 사람을 보내서, 그 일을 감당하게 하겠다고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의 요약입니다. 누구를 보낸다고 합니까? 먼저 디도라고 하는 사람을 보내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16절과 17절 말씀에 보니까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그러니까 이 고린도 교회가 구제 헌금을 한다고 하면, 디도가 그 고린도 교회에 가서 그 헌금을 가지고 와서 전달하는 일을 하겠다고, 디도라고 하는 사람이 자원했다고 하는 사실을 16절 17절에서 밝혀주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한 사람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또 한 사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요. 그 사람은 바로 18절 19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그와 함께 그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받는 자요. 이뿐 아니라 그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밝혀지고 있지 않지만, 아무튼 디도 혼자만 보낸 것이 아니라, 또 한 사람의 성도, 또 한 사람의 그 형제 한 명을 같이 보내는데, 정말 신실한 사람, 정말 하나님 앞에 정말 헌신된 이 사람을 같이 디도와 함께 보낸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죠.

이 두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이름을 더 언급하고 있습니다. 22절 말씀이 바로 그 말씀인데요. “또 그들과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는 그가 여러 가지 일에 간절한 것을 여러 번 확인하였거니와, 이제 그가 너희를 크게 믿음으로 더욱 간절하니라.” 또 한 사람, 마지막 세 번째 사람을 보냈는데,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우리가 그 사람을 오랫동안 살펴보았는데, 그 사람은 정말 신실한 사람이고, 정말 헌신된 사람이고, 주님을 사랑하는 그런 아주 정말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를 추가로 해서, 총 3명의 사람을 고린도 교회에 보내서, 고린도 교회가 헌금을 해준다고 하면, 그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전달하는 일을 하도록, 그렇게 세 사람에게 인물을 주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모은 이 구제 헌금을 지금 아직 모은 건 아니죠. 모으라고 지금 지난 시간에 이야기를 했는데, 구제 헌금을 모으게 되고,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일에 한 사람이 아니라 세 사람이라 보내는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돈 액수가 너무 커서, 이 돈을 가지고 가다가 강도가 만나면 위험하니까, 혼자 가는 것보다 여러 명이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이 들어서 여러 명을 보내게 되었을 것일까요? 아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아니면 헌금 액수가 너무나도 많아서, 그것이 너무 무거워서, 혼자 들고 가기가 너무 힘드니까 여러 사람을 보낸 것일까요? 뭐 거기까지는 아닐 것 같기는 한데, maybe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이 세 사람을 보내는 이유를 분명하게 바울 사도가 말하고 있는데요. 20절 21절 말씀 가운데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무슨 말입니까? 이 헌금을 거두어서 전달하는 과정 가운데,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저것을 횡령하는 것 아니겠는가? 착복하지는 않을까? 이런 여러 가지 비방을 받을 수 있는 우려를 종식시키기 위해서, 한 사람이 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을 보내어서 우리가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면서 정직하게 신실하게 이 돈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바라볼 때에도, 정직하게 잘 전달되게 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한 사람을 보낸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을 보내는 것이라고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종종 교회 내에서 재정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 교회에서는 그런 사건이 벌어지지 않아서 너무나도 감사한데요. 그런데 알고 보면 교회들마다 여러 가지 재정 문제가 발생이 돼서, 그래서 교회가 분란을 겪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교회들이 한둘이 아니고 정말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내에서 재정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언제 발생하나요? 그것은 믿어줄 때 재정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였습니다. 미국에서 목회하고 있었던 가운데, 우리 교회가 아니라 우리 교회가 속한 노회의 어떤 다른 교회에서 그 교회 성도님들이 노회의 목사님과 장로님을 고소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문제를 조사하고 해결해야 되는 그런 임무를 맡게 되어서, 그래서 그 교회의 상황을 살펴보아야만 했었고, 조사해야만 하는 그런 상황이 있어서 그 교회를 살펴보게 됐는데요. 정말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교회의 재정 관리 실태가 너무나도 엉망진창이었다는 것입니다. 아주 비상식적으로 재정 관리가 되고 있었다고 하는 점에 너무나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 교회는 어떻게 재정 관리를 했냐면, 예배 시간에 성도님들이 헌금을 하면, 그 헌금을 다 거두어서 장로님이 재정부장 장로님이 자기 가방에 다 집어넣어요. 그리고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집에서 계수를 해요. 혼자 그래서 계수를 다해서, 은행에 입금을 하고 하는, 그런 시스템이 수년 동안 계속 그런 방식으로 진행이 돼 왔었던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이렇게 재정 관리가 되었던 그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그것은 왜냐하면 온 교우들이 바로 그 장로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래요. 그 장로님이 어떤 장로님이었는가? 그 장로님은 정말 헌신적인 장로님이었어요. 교회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헌신했던 분이고, 자기의 집을 팔아서 교회에 바치는 등 정말 교회를 위해서라면, 정말 욕심부리지 아니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그 장로님을 볼 때, 헌금도 정말 많이 하고, 건축할 때 건축 연금도 정말 많이 하고,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그런 증거들이 그동안 너무나도 많이 보여주었기 때문에, 모든 성도님들이 다 그 장로님을 믿었어요. 저 장로님은 저렇게 자신의 것을 희생해가면서 교회의 모든 것들을 다 바치는 장로님인데, “저분이라고 한다면 나쁜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는 그런 마음 가운데, 장로님이 가지고 가면 다 이해하고, 다 그런가 보다 생각을 했었던 것이죠. 하지만 수년이 지난 후에 그 장로님이 재정을 유용했다고 하는 의혹으로 노회에 고소가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결국 믿었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혀버린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바울 사도는 어떻게 했는가? 어떤 한 사람이 믿음이 있고, 그 사람이 아주 신실한 사람이라고 하는 사실 때문에,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맡겨 버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고린도 교회에 가서 헌금을 거두어서 오도록 인물을 받은 첫 번째 사람이 누구냐면, 우리가 잘 아는 디도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이 디도라고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울의 아주 신실한 동역자였죠. 정말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수고하고 애쓴 사람이 바로 이 디도라고 하는 사역자입니다. 이 당시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까? 그것은 복음의 진리를 맛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고,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오늘날과는 달리 그 당시에는 정말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자기 동네에서 쫓겨나기도 했고요. 장사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고, 정말 여러 가지 고통을 당하고 힘들게 힘들게 신앙생활을 해야만 했던 것이 이 당시 초대교회의 상황이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주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아야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고, 주를 위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그런 재물들을 포기해야만, 그래야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던 그 시대에 정말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이 디도라고 하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이고 정말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정도로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혼자 다녀와도, 헌금을 모아다가 혼자 전달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만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그러니까 디도를 내가 믿기 때문에, “혼자만 가서 처리를 해도 괜찮겠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디도와 더불어서 두 사람을 더 보낸 겁니다. 왜 보냈는가? 디도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신실한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 앞에서도 비방을 받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 앞에서도 오해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혼자가 아니라 세 사람을 보내어서 이러한 일을 하도록 맡겨 주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내가 하나님 앞에 신실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종종 교회에서 문제들이 발생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저분은 정말 하나님 앞에 신실한 사람이고, 하나님 앞에 정직한 사람이고,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수고하고 애쓴 사람들이기 때문에, 정말 저분이 교회를 사랑하는 모습을 본다고 하면, 정말 저 사람은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래서 그 사람을 믿어버렸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어디서 문제가 생기냐면, 그런 사람들에게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죠. 옛날 독립군들이 독립군 운동을 하면서, 독립군 자금을 맡겨놓으면, 그 독립군 자금을 전달하는 사람이 그 자금을 떼먹은 일들이 있었어요. 왜 그런 일이 발생합니까? 그 독립군에 참여한 사람이 누군가요? 그 사람은 가족이 어려움을 당하고,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 가운데서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은 사람이 독립군들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일제의 탄압을 받으서 가족들이 고통을 당하면서 그래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애쓰겠다고 나선 바로 그 사람들이 놀랍게도 그 독립군 자원을 전달하는 과정 가운데서, 그것을 떼어먹고, 또는 가지고 튀는 일들이 일어나는 경우가 이게 바로 우리 인간의 연약함 가운데서 나타나는 현상인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우리가 사역을 하는 가운데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을 믿어주는 것이라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고, 그리고 공동체 내에서 믿음이 사라져 버린다고 한다면,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고 하면, 그 공동체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의심하고 있는 상황 가운데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에, 정상적인 것은 서로가 서로를 믿어주는 것이 그것이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한 가정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 믿어줘야 되고, 부모가 자녀가 서로가 서로를 믿어줘야 그 가정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지, 자녀가 부모님을 믿지 못하고, 남편이 아내를 믿지 못하고, 아내가 남편을 믿지 못한다고 하면 그 가정은 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교회도 역시 누군가 누구를 미워하고, 누군가 누구를 의심하기 시작한다고 하면, 그 교회는 제대로 성장할 수도 없고, 아니 그 교회가 교회로서 존재하기도 어려워지게 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되고, 반드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그게 정상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신뢰하는 것이 맞는 것이지, 의심하는 것이 정상은 아닙니다.

하지만 신뢰한다고 하는 것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바울 사도는 디도를 믿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디도를 믿었기 때문에 보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충분히 그가 혼자 그 모든 일을 감당할 수도 있었지만, 디도 혼자만 보낸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을 더 보냈는데요. 그것은 믿지 못해서 두 사람을 더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가 신실한 사람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그러나 사람 앞에서도 오해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혹시라도 비방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선한 일을 할 때는 더욱더 조심하기 위해서, 조심하는 차원에서 두 사람을 더 보냈다고 하는 것이 오늘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내가 정당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신실하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거나 의심할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들면 안 되는 것이죠. 이것을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목회하는 과정 가운데서 그러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정말 많은 부당한 원칙들을 세워놓고 있는데요. 저는 오해받지 않기 위해서 여성 성도들과 단둘이 식사를 하지를 않습니다. 여성 성도와 단둘이 차를 타고 가지도 않습니다. 여성 성도와 단둘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지도 않습니다. 어떤 성도님들이 신앙적인 상담을 해 올 때도 있고요. 그래서 대화를 해야 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둘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단둘이 시간을 보내면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고, 내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도 오해를 살 만한 환경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부임한 교회마다 다 문에 구멍을 뚫었습니다. 모든 교회의 문에 유리창을 달고, 부임하자마자 제일 처음에 한 것이 무엇이냐면, 유리창 좀 달아주세요. 우리 문에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이 제 방에 문을 들여다보고, 내가 그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누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든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다 쳐다볼 수 있도록, 그렇지 않고 문을 닫아버려서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도 보지 않게 된다고 한다면, 아무도 볼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나게 된다고 하면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를 만들 때 제일 콘셉이 뭐냐 하면, 개방형 콘셉이에요. 아마 우리 교회 문들 한번 다 살펴보십시오 다 유리창이 다 달려 있습니다. 왜? 문을 닫아버리고, 아무도 보지 못하게 만들고, 그리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상황이 된다고 한다면, 지나가는 사람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있지 않은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끼게 당하는 것이고, 저 안에서 나를 빼놓고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오해하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개방형으로, 내가 지금 이런 일을 하고 있는데, 나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조심하게 만들기 위해서 개방형 콘셉을 만들어 버린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신실하다고 하는 사실, 내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 있다고 하는 그 사실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오해받지 않을 환경을 만드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더 나아가서 나 자신을 믿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믿어서도 안 되는 것인데요. 나는 정직할 수 있고, 나는 바르게 모든 일을 처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믿어서도, 그리고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설득시켜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연약한 죄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본다고 한다면, 사람은 다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지금 죄를 짓지 않고 있다고 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때문에 죄를 짓지 않은 것일 수가 있겠고요. 더 나가서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죄를 지을 만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뇌물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한다면, 왜 안 저질렀겠어요? 뇌물을 안 주니까, 뇌물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죠.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 저지른 것이지, 그런데 그런 상황들이 만들어지게 되면 그런 상황 속으로 우리가 들어가게 되면, 우리가 충분히 타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 모두에게 다 있다고 하는 것이 성경적인 가르침인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조심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조심해야 되는 방법을 만들어 놓고, 타락하지 않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타락하기가 쉬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하면 저는 선교비를 전달할 때 제가 현찰로 전달하는 일을 피하려고 합니다. 재정부에서 그냥 송금해 주세요. 저를 거치지 않고 그냥 송금해 주세요. 할 수 없이 현금으로 전달해야 되는 경우, 강사비를 전달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제가 그냥 봉투를 집어넣어서 금액을 넣어서 닫아주면, 열어보지도 않고 그냥 전달을 해주는 거예요. 열어보지도 않고 전달하는데, 나중에 제가 강사 목사님한테 전화를 해요. 혹시 얼마 받으셨어요? 왜냐하면 전달하는 넣는 사람이 혹시 잘못 넣을 수 있으니까, 의도적으로 잘못 넣을 수도 있고, 실수로 잘못 넣을 수도 있고, 그래서 물어봐요. 강사 목사님, 혹시 우리가 사례비를 드렸는데, 얼마가 들어있던가요? 물어보고 확인을 해야 돼요. 우리는 실수할 수도 있고, 잘못할 수도 있고, 의도적으로 잘못할 수도 있는 연약한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믿지 않아야지, 우리 스스로를 믿는다고 생각한다고 하면, 우리는 언제나 잘못된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우리가 얼마나 쉽게 타락할 수 있는가? 성경에 보면 정말 위대한 인물들도 너무나도 쉽게 무너졌다고 하는 사실을 성경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성경 가운데서 가장 좋은 인물, 예수님 빼놓고 정말 위대한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누구를 꼽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다윗이야말로 정말 위대한 인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윗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했고,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사울 왕도 용서하고 죽이지 않으려고 했었던, 그런 대단한 인물이었고, 그는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이 열려 있던 사람이었고, 자신의 뜻을 주장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복종할 수 있는 정말 믿음의 신실한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위대한 인물 다윗이 끝까지 위대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밧세바라고 하는 여인 앞에서 철저하게 무너져 버린 것이죠. 다윗과 같이 엄청나게 위대한 인물도 무너질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와 같이 연약한 사람들은 얼마나 더 쉽게 무너질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필요한 거예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제 얼마 있지 아니하면 성탄절이 다가오게 되는데,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 다가오게 되는데, 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그것은 이 세상에 그 누구도 단 한 사람도 완벽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누가 필요한 것인가? 예수님이 필요한 거예요. 우리에게 부처님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왜? 부처님은 우리를 향해서 말하기를, “이렇게 해보시오. 저렇게 해보시오. 이렇게 살아보시오. 저렇게 살아보시오.”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하는 것이 우리들의 문제예요. 우리들에게 법정 스님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돈을 버리고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겉으로 그렇게 사는 것처럼 보였는데, 뒤로는 호박씨 까고 있는 인생이기 때문에, 우리에는 그런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에요. 모하메드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고, 간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에요. 우리에게 이렇게 살라고 말하고, 이렇게 거룩하게 살라고, 이렇게 정직하게 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무도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님이 필요하신 것인데, 예수님께서 저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 위에 내려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자신의 노력으로 완벽한 인생을 살 수가 없는 구제불능의 인생이기 때문에, 조금만 기회가 주어지면 조그만 것의 양심을 팔아버리는 너무나도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바로 우리가 예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왜 우리는 교회라고 하는 믿음의 공동체를 통해서 신앙생활을 해 나갑니까? 그것은 혼자 있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종종 교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더러운 모습들 때문에, 교회를 떠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날 때 교회 내에서 여러 가지 추악한 일들이 발생하게 될 때, 특히 목회자의 타락을 보면서, 이런 교회는 다니지 않겠다고 하면서 신앙을 저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서 교회를 떠나는 것은 바른 선택이 아닙니다. 이러한 더러운 모습을 볼 때마다, 인간의 연약함을 보고 목회자의 타락을 보고 여러 가지 썩은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사실이 있다고 한다면, 그래서 예수님이 더더욱 필요하다고 하는 사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이 구제 불능의 인간이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해야 되는 것이고, 더 나가서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신앙의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하는 사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신앙의 공동체가 무엇입니까? 왜 필요합니까? 우리 인간이 넘어지기 때문에 필요한 거예요. 죄를 짓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서부터 벗어난 사람이 있고 넘어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같이 그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그렇게 잘못된 길로 가지 말고 그렇게 악한 길로 가지 말고,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같이 하자고 손을 내밀어주고 바른 길로 가자고 권면하고, 그래서 믿음의 길로 다시 돌아가자고 서로가 격려하고, 서로가 위로하기 위해서 교회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읽으면서 우리가 기도해야 될 기도의 제목이 있다고 하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주여, 신실하게 살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넘어지는 존재입니까? 조그마한 물질 때문에 탐욕의 죄를 짓는 것이고, 정말 우리가 몇 억씩 몇 십억씩 해 먹기 위해서 양심을 팔아먹는 것이 아니라, 없어도 되는 몇만 원 때문에 우리의 양심을 팔아먹는 게, 우리들의 모습이에요. 없어도 되는 그 돈 취하기 위해서 우리들의 더러운 모습에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죠. 우리는 그렇게 넘어지는 사람들이고, 사랑과 인자한 모습으로 긍휼의 모습으로 살기보다는, 화를 내고 갑질을 하고, 인내하고 너그럽게 온유한 마음으로 살아가기보다는, 옹졸하고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에, 주를 위해서 헌신하기보다는 이 세상을 사랑하고 사명을 감당하기보다는, 도망가기를 좋아하는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에, 우리가 더욱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주여, 신실하게 신실하게 살게 하여 주옵소서. 아무도 보는 것 같지 않아도, 주님께서 바라보고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주님 주님 앞에서도 사람 앞에서도 바른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주여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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