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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은 해답이 아닙니다 (출 14:10-14)

언젠가 영국의 문필가 C.S. 루이스라고 하는 사람은 용서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용서란 누구나 용서란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용서해야 할 사람이 생기기 전까지는”이라고 하는 말을 했습니다. 참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생각하고 있는 그것이 정말 우리들의 삶 속에서 실천되기가 너무나도 어렵다고 하는 것을 간파한 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용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 가운데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마찬가지죠. 감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하는 이 말씀은 우리 성도들이라고 하면 늘 기억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의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압니다. 하지만 막상 우리들의 삶 가운데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리고 원치 않는 일들이 우리들의 삶 가운데 발생하면, 감사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원하던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우리들의 삶 가운데 넘쳐나게 될 때, 그때, 그때도 감사하기는 정말 어려운 것이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감사할 수 있지만, 정말 신나는 일이 있으면 감사하겠지만, 뭔가 내가 참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만나게 되면, 감사한다고 하는 것이 사실 쉽지 않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듭니다. 오늘 우리는 출애굽기 14장의 말씀을 살펴보았는데,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수백 년 동안 종살이했던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 땅에서부터 해방되었을 때, 그들은 너무나도 기뻐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하고, 너무나도 큰 기쁨 가운데, 그 애굽 땅을 나오게 된 것이죠. 하지만 그렇게 애굽 땅을 나와서 가난을 향해서 나아가는 도중에 첫 번째 아주 큰 위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앞에는 홍해 바다가 있어서 그 바다를 건널 수도 없는 상태인데, 뒤에서는 뒤늦게 애굽의 군대가 쫓아오게 되는 그런 진퇴양난의 어려운 문제에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꼼짝없이 죽게 될 수도 있는 그런 어려운 상황 가운데 빠지게 되었을 때, 이것이 정말 우리에게 좋은 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이것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오, 심지어 죽을 수도 있는 그런 상황 가운데 있을 때 이스라엘 민족의 마음 가운데는 두려움이 생기게 되었을 것이고 패닉(panic)이 생기게 되었을 것입니다. 공포 가운데 휩싸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 순간에 감사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이 상황 가운데서는 감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화가 나는 것이고, 분노가, 그리고 절망이, 두려움이 생기게 마련일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도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또한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늘 우리의 주어진 환경들, 우리가 만나는 것들을 보면서 자족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는 것을 배우면서도, 정작 우리가 그런 현실을 만나게 되면 우리가 그것을 실천하기란 정말 어려운 것이죠. 몰라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능력이 부족해서, 우리의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겁니다. 용서해야 된다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읽으면 그 말씀이 너무나도 은혜스러워요.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할 뿐만 아니라,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정말 이 말씀이 너무나도 은혜스러운 말씀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정작 나에게 해코지를 한 사람을 만났을 때, 정작 나에게 어려운 일을 해준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런 사람들을 용서하기란 정말 어려운 것이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우리들의 삶 가운데 어려운 일이 생기게 되면 감사하기가 어려운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이런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을까요? 정말 우리가 원치 않는 일들을 만났을 때에도, 우리들의 마음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 세상이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린다고 하는 사실을 바라보면 우리가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감사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죠. 우리가 만나고 있는 그 여러 가지 문제들을 바라보고, 어려움을 바라보고, 난관을 바라보면, 절망이 나올 수밖에 없지만, 그 난관과 어려움조차도 하나님께서 다 주관하고 다스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들을 다 통제하고 있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린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하면, 우리는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새 한 마리가 이 땅에 떨어지는 것도 우연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어야만 땅에 떨어진다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가 당하는 고난,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 슬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손을 쓰지 못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정말 어쩌다 보니까 우연히 우리들에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심한 계획과 섭리 가운데 일어난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한다면, 그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종종 우리 크리스천들 가운데는 생각하기를 모든 복은 하나님께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지만 고난과 역경은 사탄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복, 행복, 좋은 일들, 성공하는 일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지만, 그러나 어려운 일을 당하고 병에 들기도 하고, 고난을 당하기도 하고 사고를 당하기도 하는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 준 것이 아니라 사탄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지 나쁜 것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데요. 그런 의미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고통과 슬픔이 하나님께서 건들지 못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것마저도 다 통치하시고 다스리고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분명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서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이 말을 하는 것이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을 들을 때 정말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은 시험에 들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데요. 왜냐하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목적이 없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선한 목적을 향해서, 선한 결과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요셉의 경우를 보면, 요셉은 형제들이 그를 종으로 팔아버렸습니다. 정말 끔찍한 일이 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인해서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정말 억울한 일이죠. 내가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그렇게 고난을 당해야만 한다고 하는 것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그냥 그런 나쁜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만들기 위한 그 과정 가운데서 사용하신 거라고 하는 사실을 생각한다고 하면, 그리고 야곱의 가정을, 온 세상을 기근에서부터 건져내고 이 세상의 구원을 베풀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요셉을 사용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고 한다면, 그 상황 가운데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할 수가 있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주관자가 되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한다고 하면, 그 사실을 믿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방접종을 할 때 예방접종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의 몸에 바이러스를 집어넣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아직 감기에 걸리지 않았는데, 독감에 걸리지 않았는데, 우리가 아직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는데 코로나 예방접종은 코로나 균을 우리 몸에 집어넣는 것이죠. 독감 예방주사는 무엇입니까? 독감 균을 우리에게, 우리 몸에 집어넣는 것입니다. 대상포진 예상 접촉은 뭡니까? 대상포진 균을 우리 몸에 집어넣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게 집어넣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걸 통해서 우리들의 백혈구가 그 균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고, 그러한 힘을 길러줌으로 말미암아 실제 그런 병균들이 우리들의 몸 가운데 들어오게 되었을 때,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만들어주는, 결과적으로 선한 길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 바로 예방접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냥 아무 의미 없이 균이 우리들의 몸속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통제되어서, 그래서 우리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힘을 얻게 하고 능력을 얻게 하고, 그래서 결국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그런 목적을 위해서 우리에게 예방접종이 주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향해서 모든 일들이 발생하게 되는데, 항상 온실 속에서 우리를 기르시는 것이 아니라 온실 속에서만 기르게 되면 결국에는 세상 풍파를 만나게 되었을 때 아무런 힘도 없이 그냥 쓰러질 수밖에 없는 것인데, 우리를 온실 속에서 기르는 것이 아니라,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시고,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드셔서, 그래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을 주관해 주신다고 한 사실을 기억한다고 하면, 우리는 그 어떠한 사실을, 그 어떠한 일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연단해 주고 계시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더 강하게 만드시려고 하는구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려고 하는구나.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리려고 하는 것이고 더 강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한다고 한다면, 그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감사와 찬송을 할 수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홍해 바다 앞에 서게 되었을 때, 그리고 애굽 군대가 그 뒤에 추격해 오는 모습을 보면서 두려워 떨었습니다. 내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마치 하나님이 나를 주관하지 않는 것처럼 두려워 떨면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 순간에 패닉하면서 모든 상황 가운데서 정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정말 믿음이 없는 반응을 보여주었는데요. 어쩌면 이게 우리들의 모습일 겁니다. 저도 이런 상황에 닥치게 된다고 한다면 정말 견디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보여주었던 반응을 보면 두 가지 반응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불평과 원망을 하면서 희생양을 찾기 시작한 것이죠. 오늘 읽은 말씀 출애굽기 14장 11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모세가 적이 아니고 같은 편인데, 공격의 대상으로, 적으로 공격의 대상으로 삼아버리고 만 것이죠. 성경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5장 14절, 15절의 말씀에 보면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그랬어요. 서로 물고 먹으면 누군가 살아나고 승리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망하게 되는 것이죠.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서로 피차 물고 먹으면 망하는 겁니다. 가정 가운데 어려운 일이 생기게 되면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 같이 머리를 맞대야 되는데, 아내는 남편을 비난하고 남편은 아내를 비난하고 서로 물고 먹으면 망하는 거예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함께 힘을 합쳐야 되는데, 서로 피차 물고 먹으면 그 공동체는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고린도전서 10장 10절의 말씀 가운데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라고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했던 이스라엘 민족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방의 기쁨을 맞이하면서 기뻐하고 감사하던 사람들이었는데, 그 감사하고 기뻐하던 사람들의 입에서 불평이 나오는 것까지는 불과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생기고 선한 일을 하고, 정말 기쁨의 사람이 되게 만드는 데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그런데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은 너무나도 순식간에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죠.

두 번째로 이스라엘 민족들은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습니까? 과거를 동경하기 시작한 것이죠. 출애굽기 14장 12절의 말씀에 보면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은 홍해 바다 앞에서, 그리고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위험한 상황 가운데 있을 때, 과거가 더 좋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했던 말이 무엇이냐면, 옛날에는 안 그랬다는 거예요. 옛날에는 안 그랬다. 광야에서 먹을 것이 떨어졌을 때도 애굽에서는 우리가 고기를 먹었고 부추를 먹었고, 과거에 그 애굽 땅에서 우리가 잘 먹고 있었는데, 여기서 힘들어 죽겠다고,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했던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출애굽기 16장 3절의 말씀이죠.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과거를 동경하면서 과거가 더 좋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정말 과거가 좋았나요? 솔직하게 말해서 과거가 좋았나요? 아니잖아요? 애굽의 그 악재 밑에서 온갖 학대받으며 고생을 해야만 했었고, 아기를 낳으면 나일강에 빠뜨려 죽여야만 했었고, 그게 사는 것이 아니라,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울부짖으면서 살려달라고 했던 그 시절은 다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옛날이 좋았다는 거예요.

우리가 과거와 현재가 항상 붙으면 누가 이기나요? 항상 과거가 이겨요. 지금이 제일 힘들어요. 지금이 제일 힘들어. 왜 과거가 이게 되어 있습니까? 과거의 고통은 이미 과거가 되어버리고, 추억이 되어버려서 더 이상으로 실제적인 고통이 아닌 반면에,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은 제일 큰 고난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은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내 고통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이고, 과거의 고통은 아무리 힘들었던 고통이라고 할지라도,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이 제일 힘들고 어려운 고난이죠. 경제가 힘든 건 언제가 힘들어요? 지금이 항상 힘들어요. 지금 항상 힘들대. 과거에 대해서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거를 동경하는 모습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옛날에는 우리 교회가 이래서 좋았는데, 옛날에는 과거 우리 교회가 이렇게 즐거웠었는데, 과거를 이야기하는데, 늘 그 과거 때는 그때를 좋아했냐면 그때도 안 좋아했어요. 그때도 힘들었다고 얘기했어요. 과거를 동경한다고 해서 해결될 것이 아닌데,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민족들은 과거만을 동경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모세는 이들을 향해서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는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말입니다. “너희는 가만히 서라. 가만히 서라.” 가만히 서 있으라고 하는 이 이야기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니까 우리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쳐주시니까 우리는 결코 약을 먹을 필요도 없고, 병원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죠. “하나님께서 합격시켜 주니까, 공부 안 해도 합격합니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손을 놓고 있어도, 하나님께서 사업에 성공시켜 주겠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닌 것이죠.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말은 그냥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그래도 다 성공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이야기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의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의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말입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지만,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할 것이라고 하는 말처럼, 우리의 생명의 주가 되신 우리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고 한다면,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우리가 두려워해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컨트롤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놀이기구를 타다 보면 밑바닥이 다 꺼지면서 밑으로 쭉 떨어지는 그런 놀이기구가 있습니다. 워터파크에 가면 밑으로 확 떨어지면서 물 타고 가게 되는데요. 두려워합니까? 두렵긴 해요. 잘 못할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가 믿고 안심해야 되는 것은 떨어지면 죽는 게 아니라 재미있다는 거예요. 놀이기구에 타면, 무서운 것 같지만, 무서운 게 아니라 재미있다는 거죠. 왜? 컨트롤되고 있기 때문에.

두 번째 모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라.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앞에 놓여 있는 현실과 아픔만을 볼 것이 아니라, 그것 넘어서서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을 바라본다고 한다면, 우리는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와 찬송을 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로마서 8장 38절, 39절의 말씀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기쁨이나 다른 어떠한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성경은 우리를 향해서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어린아이는 그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고, 자신의 힘으로 그 어떤 일을 만들어 나갈 수 없지만, 그러나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부모의 품 안에 있을 때 안심하고 오히려 담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우리가 가져야 하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되신 그 하나님의 품 안에 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을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애굽 땅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이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홍해 바다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내신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셔서 먹이신 하나님이세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신 하나님이세요.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하시며, 우리를 건져내신 그 하나님이 여전히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절망하고 슬퍼하며 고통스럽게 있을 것이 아니라, 늘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주님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의 찬송의 삶이 우리들의 삶 가운데 넘쳐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예전에 목회하면서 만났던 어떤 한 성도님이 쓴 글 가운데 아이를 돌보면서 마음속에 생각했던 그 글을 쓴 것이 있어서 잠깐 소개해 드리고 싶은데요. 이분의 딸이 있는데 이 딸이 아팠을 때 썼던 글입니다. “저녁 초대를 받아 다녀왔는데, 오는 길에서부터 배가 아프다던 승희가 한참을 고생하다 잠이 들었다. 얼마나 아픈지 배를 움켜 잡고, ‘나 죽을 것 같아. 나 죽을 것 같아’ 외치다가, 먹은 거 다 토하고 나올 게 더 이상 없는데도 하얀 물만 몇 번을 더 토하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빠를 애타게 찾더라. 평소엔 그닥 찾지도 않는 아빠인데 너무 아파. 엄마, 아빠가 다 옆에 있어야 한다는 거. 머리엔 식은땀이 주르륵인데, 춥다며 이불 몇 개를 덮어달라더니, 몇 번을 깨고 자고 하다가 이제야 깊이 잠이 든 모양이다. 등치는 작아도 잔병치레 없이 늘 감사하며 살았는데, 가끔 한 번씩 배 아프다며 떼굴거리는 승희 때문에 가슴 쓸어내리며 산다. 하나부터 열까지, 발가락부터 배에 자주 아픈 것까지 정말 아빠만 닮았다. 승희 옆에서 잠시 잠이 들었던 모양인데 이런저런 생각에 깨서는 잠도 못 자고 있다. 내일은 학교를 보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속이 허할 텐데 아침밥은 먹여야 하는 건지, 굶겨야 하는 건지, 학교를 보내면 점심을 어떤 걸 싸줘야 하는 건지, 한글학교 졸업식은 갈 수 있을지. 못 갈 것인지. 내일 애 상태 봐서 결정해도 될 일들을 미리 걱정하느라 말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와 같아요. 아프면 그냥 외면해 버리고, 그냥 나 몰라라 내팽개치는 분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가 아플 때 우리 부모님이 우리를 그때 더 많이 생각하시고 더 사랑해 주시는 것처럼, 하나님이 누구를 더 사랑하시는가? 힘들고 괴로워하는 우리들을 더 많이 사랑해 주고 계세요. 그런 하나님이시기에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우리가 바라보며 믿음으로 다시 일어서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여도 하나님의 사랑은 크고 넓고 우리들의 삶 가운데 항상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11월은 감사의 달인데 감사할 일들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가운데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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