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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므비보셋 (삼하 19:24-30)

2020년 12월 2일 수요예배 설교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복귀하게 되었을 때, 므비보셋을 다시 만난 이야기가 오늘 성경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므비보셋이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죠? 잘 아는 것처럼, 므비보셋은 사울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피붙이입니다. 사울의 가족들은 다 죽게 되었으나, 유일하게 남아 있는 단 한 명의 사울의 피붙이가 바로 므비보셋인데, 어렸을 때 도망하다가 다쳐서,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그렇게 된 사람이 바로 므비보셋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도망자의 삶을 살다가, 이제는 사울 왕이 죽고 난 이후에,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등극하게 되었을 때, 다윗은 사울의 가족 가운데 남아 있었던, 이 므비보셋을 수소문해서 찾아다가, 왕궁으로 초대해서 자신의 아들들과 똑같이 왕자의 대우를 해주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우리가 살펴본 바 있습니다.

이렇게 다윗이 사울의 손자인 므비보셋에게 긍휼을 베풀고 왕자 대접을 해 주고 했다고 하는 것은 당시의 상황에서는 아주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원래는 이런 경우에는 3대를 멸해서, 완전히 왕족의 씨를 말려버려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시대가 바로 이 시대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울과 다윗은 정치적인 적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다윗이 왕권을 잡았다고 한다면,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그 사울에게 있는 모든 피붙이들은 다, 모든 친척들은 다 멸절시켜버려서, 씨를 말려버려서, 다시는 반역을 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대비를 하는 것이 당시에 있었던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런데 다윗은 우리가 쭉 살펴본 것처럼,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사울에 대해서 원한을 갚으려고 생각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사울의 가족들이 있다고 한다면, 극진히 모시고, 사랑으로 모시고, 특별히 이 므비보셋을 마치 자신의 왕자와 똑같은 권한과 대우를 부여하면서, 그래서 이렇게 극진하게 대우했다고 하는 것은 정말 은혜를 많이 베푸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엄청난 대접을 받게 된 므비보셋은 다윗 왕 앞에 감사를 표하면서, 죽은 개와 같은 나를 왕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이렇게 왕의 식탁에 함께 먹을 수 있게 해 주고, 왕자의 권한을 주고, 이런 대접을 받게 해 준 것에 대해서, 정말 감사하면서 살았고, 감격 가운데 살았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예전에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키게 되고, 그래서 다윗이 도망가고 있던 바로 그 상황 가운데, 므비보셋의 시종이었던 시바가 다윗에게 나타났습니다. 시바는 나귀 두 마리에 떡 200개와 건포도 100 송이와 여름 과일 100개와 그리고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가지고 와서, 도망가고 있는 다윗 일행들을 향해서 먹을 것을 제공해 줬습니다. 도망자에게, 아무것도 챙겨 나오지 못했던 다윗과 그 일행이 이 시바가 제공한 이 음식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았을까를 우리가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상황 가운데서, 다윗이 므비보셋의 종이었던 시바에게 묻습니다. 너의 주인은 지금 어디 있느냐? “너의 주인은 왜 오지 않았느냐?”라고 물었을 때, 이 므비보셋의 시종이었던 시바는 자신의 주인에 대해서 모함하면서, 무슨 이야기를 했습니까? 우리, 내 주인이신 므비보셋은 이때야말로 하나님께서 사울 왕가로 하여금 다시 한번 이스라엘의 왕권을 차지하게 만드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있다고 그렇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겁니다. 지금이야말로 다윗을 쫓아내고, 사울 왕가를 복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고, 쿠데타를 모의하고 있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므비보셋의 시종 시바를 통해서 다윗이 들었을 때, 그 다윗이 느꼈던 그 배신감을 여러분들은 충분히 상상해 볼 수가 있겠습니까? 그동안 다윗은 엄청난 은혜를 므비보셋에게 베풀어 주었는데, 그 므비보셋이 내가 제일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쿠데타를 꿈꾸고 있고, 나를 배신했다고 하는 그 이야기를 듣게 될 때, 다윗은 정말 배신감에 쌓여서, 그래서 정말 허탈해했을 것이고, 정말 충격과 그리고 슬픔 가운데 분노 가운데 그러한 사실을 듣게 되었을 것입니다.

나는 사랑을 베풀었지만, 그 사랑을 원수로 갚는 므비보셋에 대해서 정말 분노가 치솟아 올랐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결심을 합니까? 다시는 내가 정 주지 않으리라. 다시는 내가 이런 은혜를 베푸나 봐라. 이런 식으로 결심하게 되는 것이죠. 그 순간에 다윗은 므비보셋의 모든 재산을 종이었던 시바에게 제공해 버립니다. 네가 그 모든 재산을 가지라고 이야기하고, 그리고 피난길에 올랐다가, 그래서 이제 모든 전쟁이 끝나고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이제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데, 이번에 누구를 만났냐면 바로 므비보셋을 만나게 된 겁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므비보셋이 다윗을 만나러 왔을 때, 그 므비보셋의 모습에 대해서 묘사해 주고 있는데요. 므비보셋이 어떤 모습을 하고 나타났냐면,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다 그랬습니다. 다윗이 도망간 이래로 므비보셋은 꾸미지 않고, 옷을 빨지 않고, 수염을 깎지 않으면서,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것인데요. 어떤 화려한 왕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한마디로 말하면 무슨 모습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거지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죠. 정말 누추한 모습을 하고 나타난 그 므비보셋을 보면서 다윗은 적지 않게 놀랐을 겁니다.

그래서 그 므비보셋을 향해서 묻습니다. 너는 왜 내가 도망갈 때, 내가 피난을 갈 때,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한 그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물은 이유가 뭐겠습니까? 시바가 들었던 것을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물었을 겁니다. 너 정말 내가 도망가는 그 상황 가운데 반역을 일으키고, 네가 왕이 되려고 그렇게 모략을 베풀고, 그렇게 지금 반역을 일으키기 위해서, “네가 계획을 짜고 나를 죽이려고 그렇게 생각을 했었느냐?”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그런데 그 므비보셋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참으로 충격적인 대답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무엘하 19장 26절에서부터 28절의 말씀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답하되 내주 왕이여, 왕의 종인 나는 다리를 절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그 위에 타고 왕과 함께 가려하였더니, 내 종이 나를 속이고, 종이 나를 내 주왕께 모함하였나이다. 내 주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 두셨사오니, 내게 아직 무슨 공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까?”

다윗은 지금까지 므비보셋이 반역을 꿈꾸고 있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므비보셋을 통해서 직접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 겁니다. 므비보셋이 반역을 꾀하려고 했었던 것도 아니었고, 므비보셋은 다윗에 대하여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정말 다윗이 피난 가는 그 길에 함께 가고 싶었지만, 시바에 의해서 속임을 당한 것이고, 시바가 이 므비보셋에 대해서 거짓말로 모함했다고 하는 그 사실을 진실을 알게 된 것이죠. 그리고 그 므비보셋의 대답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하는 증거가 어디에서 나타나고 있습니까? 바로 므비보셋의 모습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이 기간 동안에 “잘 됐다. 정말 행복하구나.” 다윗이 없어져서 너무 좋다고 하면서, 잘 먹고 잘 살고 무슨 도모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정말 나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다윗이 도망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애통해하고, 정말 슬퍼하면서 다윗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울부짖는, 그런 정말 다윗의 친구처럼, 다윗을 정말 아끼는 사람처럼, 그렇게 있어 왔다고 하는 사실이 바로 므비보셋의 모습 속에서 진실하게 나타나는 그 모습을 다윗이 바라보게 된 것이죠.

결국 다윗은 자기가 시바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잘못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므비보셋에게 다시 므비보셋의 재산을 돌려주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시 너에게 재산을 주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나왔던 므비보셋의 대답은 더욱더 놀랍습니다. 30절 말씀을 보니까, 이렇게 대답합니다. “므비보셋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다윗 왕이시여, 저는 재산 필요 없어요. 재산을 가지는 건 아무 의미 없어요. 나의 기쁨은 어디에 있는가? 다윗왕이 살아서 돌아오고, 다윗왕이 다시 왕으로 복권되고 회복되는 그 모습만 봐도 너무나도 기뻐서 내가 이미 기쁨으로 가득 차 있으니, 그까짓 것 재산, 나에게는 아무 의미 없다고 말하고 있는 그 진실한 대답을 들을 때에, 정말 놀라운 반전을 이 다윗이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진실은 무엇이었는가? 므비보셋은 배은망덕한 그런 악한 사람이었던 것이 아니라, 정말 다윗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고 정말 다윗을 사랑했던 사람이었다고 하는 사실을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잠시 잠깐 다윗은 시바의 이야기를 듣고, 시바가 모함하는 한쪽 이야기만 듣고, 그 잠시 동안 므비보셋을 미워하고, 므비보셋을 원수 갚으려고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었다고 한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고 생각을 할 수가 있겠습니다.

다윗에게 일어났던 이 일은 사실 다윗에게서만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일들입니다. 어떤 사람에 대한 잘못된 정보, 가짜 뉴스 모함과 비방과 중상모략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서로가 진실만을 이야기하고 정말 바른 이야기를 하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악한 이야기를 하고 중상모략을 하고, 비방하면서 악한 이야기들을 해댐으로 말미암아, 그것에 의해서 엄청난 피해를 당하는 일들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종종 겪게 되는 그런 일들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선 이렇게 시바처럼 자신의 주인이었던 므비보셋을 향해, 즉 다른 사람을 향해서 잘못된 정보로, 가짜 뉴스로 비방하고 중상모략을 하는 것은 괜찮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주 사악하게 보시는 죄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은 비방하는 것, 수근수근거리는 것, 중상모략하는 그 죄를 엄한 죄라고, 아주 나쁜 죄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비방하고, 특별히 근거 없이 모함하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라고 하면 하지 않아야 할, 아주 악한 죄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종 우리 성도들 중에서는 중상모략을 하거나, 비방을 하는 것 모함을 하는 것을 해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그런 사람들도 종종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근거 없이 비방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중상모략을 하고, 가짜 뉴스를 퍼뜨리면서도 전혀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그런 일들을 담대하게 하는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언제 그러냐면 목적이 선할 때 그렇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혹은 세상을 무너뜨리는 악한 세력을 무찌르기 위해서, 그래서 저 악한 세력, 그러니까 사람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구분하고, 우리 편과 우리 편이 아닌 사람으로 구분한 다음에, 그래서 저 악한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우리 편이 아닌 저 사람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비방해도 괜찮고, 중상모략을 해도 괜찮고, 가짜 뉴스를 퍼뜨려서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그 사람들을 무너뜨릴 수만 있다고 한다면, 결국 악한 사람들을 무너뜨리는 것이고 우리 편이 아닌 사람들을 무너뜨리는 것이니까, 그렇게 비방하고 모함하고 중상모략을 한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괜찮은 일이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목적이 그렇다고 할지라도 비방하고 중상모략하고 하는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 앞에서 죄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중상모략과 근거 없는 비방과 모함하는 일에 동참해서는 됩니까? 안 됩니다. 특별히 가짜 뉴스에 중간 전달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보통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정말 어떤 강한 어젠다를 가지게 만드는, 그런 모든 정보들은 대부분 가짜 뉴스이거나 과장되고 그리고 한쪽 측면을 확대해서 반쪽짜리 진실일 가능성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오늘날도 그런 이야기들이 너무 많이 돌아다닙니다. 카톡을 통해서 돌아다니고, 문자를 통해서 전달이 되는 그런 내용들을 보면, 전달된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을 분노하게 할 만한 내용들이 전달이 되고 있는데, 그런데 알고 보면 그게 진실이 아니라, 다 가짜 뉴스가 많아요. 요즘 들려오는 뉴스들이 무슨 뉴스가 많습니까? 교회를 폐쇄하기 위해서,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이 목적인 사람들이 있는 것이고, 그 사람들에 의해서 교회는 지금 핍박을 당하고 있고, “교회를 박살내기 위한 그런 어떤 일종의 모략이 진행되고 있다.”라고 하는 그런 가짜 뉴스들이 우리들 사이에 자꾸만 돌아다니는데, 그러한 것을 통해서 어떤 사람 특정 세력에 대해서 분노하게 만들고, 그런 사람들을 미워하게 만들려고 하는 목적으로 만든 가짜 뉴스들이 얼마나 많이 돌아다니는지 모르는데, 대부분 그런 내용들이 사실이냐 하면, 다 근거가 부족한 가짜 뉴스이고, 일부를 확대하고 과장해서 뻥튀기해서 만든 가짜 비방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게 되면 그런 것에 함부로 휘둘리지도 말아야 할 것이고, 그 내용들을 전달하는 전파자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고, 우리가 그런 중상모략의 나쁜 일에 동참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될 겁니다. 사실 이 중상모략하는 것이 그 피해가 얼마나 큰 것입니까? 시바가 므비보셋에 대해서 중상모략하게 될 때, 정말 엄청난 피해를 당하게 되는 것이고, 그리고 그 피해가 정말 한두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겁니다.

다윗은 시바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마 화가 났던 것 같아요. 즉각적으로 반응을 했습니다. 뭐라고 반응했습니까? 므비보셋의 재산, 시바야 네가 다 가져라. 다윗은 그 순간에 시바의 이야기만 듣고 이 모든 재산을 그 므비보셋의 종에게 다 줘버렸어요. 그런데 그게 잘한 일입니까? 잘못된 정보를 듣고 모함을 듣고 반응했던 것이 정당한 일이었냐면, 정당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죠.

잠언서 18장 13절 말씀에 보면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라고 했는데, 우리가 자초지종을 알아보지 아니하고, 정말 그러한가 미루어 살펴보고, 다시 한번 재확인해 보지 않고, 즉각적으로 화가 나서 반응을 해버린다고 하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인 것이고, 우리가 만일 우리의 마음을 분노하게 만만한 이야기를 듣는다고 한다면, 그냥 화를 낼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말을 한번 들어봐야 합니다.

누구가 그러던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정말 분노할 만한 이야기를 하던데, 그 말이 사실입니까? 물어보아야 하는 것이죠. 특별히 우리 부모님들이 자녀들과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상모략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사람의 사람을 통해서만 우리들에게 중상모략이 들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의 인식 자체가, 우리가 아는 것 자체가 완벽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일부분만 보게 되어 있고, 어떤 한 측면만을 바라보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들은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녀들의 일부분만을 보는 거예요.

우는 모습, 싸우는 모습, 땡깡부리는 모습, 나쁜 모습을 보면서 그 일부분만 보면서 화가 나는 거죠. 하지만 부분적인 진리는 진리가 아니에요. 이 아이가 왜 우는지, 이 아이가 왜 화를 내는지, 왜 이 아이가 하기 싫다고 이야기하는지, 그 아이의 마음을 직접 들어보기도 전에 그냥 화를 내기만 한다고 하면, 부분적인 지식을 가지고, 부분적인 지식을 가진다고 하는 것은 마치 중상모략을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시바가 므비보셋에 대해서 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 나름대로 판단을 해서, 그래서 다윗에게 모함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나에게 그렇게 중상모략하고 비방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러나 내가 그 일부분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그 일부분의 지식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은 결국 내가 중상모략을 사탄으로부터 당하고 있는 셈인데, 거기에 속아 넘어가서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분노해버리고, 쉽게 화를 내버리면서 부모와 자녀들 간의 관계가 끊어져버리고, 아주 잘못된 관계로 넘어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래서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조그마한 정보를 가지고 분노가 일게 된다고 한다면, 그것이 내가 조그마한 지식 때문에 분노가 일어났다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고, 자녀를 향해서 자초지종이 무엇인지 물어보아야 되는 거예요. 왜 울고 있느냐? 왜 하기 싫다고 이야기를 하는가? 그 아이가 무슨 생각 때문에 하기 싫다고 이야기하는지, 그 아이가 왜 지금 울지 않아야 되는 상황에서 왜 울고 있는지, 그 아이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전까지는, 우리가 함부로 대응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우리가 중상모략, 그 부분적인 지식, 그것은 곧 사탄으로부터 중상모략을 당하는 것인데, 그것에 의해서 대응하다가는 결국 부모와 자녀들 사이에 마음의 문만 닫혀 버리고, 아무런 사랑의 관계로 들어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되고야 말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알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한쪽 이야기만 듣고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예요. 므비보셋의 종이 한 이야기만 듣고 그게 진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 소리를 듣고 분노가 생겼다고 한다면, 정말 그러한가 하여 당사자에게 물어봐야죠. 정말 그러한가? 한번 알아보고, 정말 그러한가 따져보고,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완벽한 지식을 알게 되면, 놀랍게도 그것은 화낼 일이 아니라, 정말 므비보셋은 다윗을 사랑한 사람이었고, 다윗에게 충성한 사람이었고, 다윗의 충실한 신하였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텐데, 내가 정말 사랑해야 될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일부 일부분의 지식만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하는 그 사실만 가지고 잘못 판단하면, 결국 내 편을 적으로 간주하고 죽일 수밖에 없는 그런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가장 중상모략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정치인들일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정치인들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피도 눈물도 없이 정말 상대편을 갉아먹고 상대편이 완전히 박살 낼 날 때까지 술수와 모략을 쓰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상대 정치인을 자기와 반대쪽에 서 있는 정치인들에 대해서 중상모략이라고 하는 그런 방법을 사용해서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언론을 이용하기도 하고, 댓글을 이용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방법들을 통해서 상대방 정치인들이 마치 아주 못된 정치인인 양, 그렇게 중상모략을 하게 되어 있는데요. 안타깝게도 우리 일반 시민들이 거기에 휩쓸려서 휘둘려서, 우리도 그런 중상모략의 대열에 희생을 당하고 이용당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므비보셋이 누구냐면, 므비보셋은 다윗의 사람이에요. 므비보셋은 다윗을 너무나도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중상모략에 의해서 므비보셋은 다윗의 하루아침에 다윗의 원수가 되어 버린 것이죠. 그래서 그 중상모략에 휩쓸리게 되면 누구 손해입니까? 중상모략에 따라 내가 잘못 판단하게 되면, 누구의 손해인가요? 결국 손해가 내게 돌아오는 거예요. 우리 편인 므비보셋을 죽여버리면, 누구 손해예요? 내 손해지. 그런데 이 다윗은 마지막 순간에 므비보셋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물어보니까 원수가 아니라 친구라고 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다시 친구를 얻게 되는 회복하게 되는 그런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죠.

사울은 중상모략의 가장 큰 피해자였습니다. 사울을 향해서 중상모략했던 사람이 누굽니까?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도 사탄일 겁니다. 사탄은 사울의 마음 가운데, 다윗에 대해서 중상모략을 합니다. 골리앗을 무찌르고 개선하고 있는 그 다윗을 보면서, 사탄은 사울의 마음 가운데, 저 다윗은 네 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고, 네 왕위를 흔들어버릴 것이고, 결국은 저 다윗이 내 자리를 빼앗을 거라고 하는 중상모략을 사탄이 사울에게 마음에 심어주는 것이죠.

그때 사울은 그 이야기만 들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했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생각했어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그 사탄이 들려주는 중상모략에 넘어가 버린 거죠. 그리고 자신의 평생의 일생을 다윗을 죽이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다윗을 자기의 친구로 삼고, 자기의 동역자로 삼아서 함께 승승장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다윗을 죽이는 적을 삼아버리는 그런 피해를 당하게 된 것이죠.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중상모략을 우리가 늘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사람들에 대해서 중상모략합니다. 아무개 집사, 아무개 권사, 아무개 장로를 이야기하면서, 저 사람은 당신의 적이라고, 저 사람은 당신을 미워한다고, 저 사람은 당신을 무시한다고,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자꾸만 중상모략해서, 그래서 친구가 되지 못하게 만들고, 함께 같이 못하게 만들고, 원수가 되게 만들려고 하는 그런 중상모략을 하게 될 때, 그 말을 듣고 그 잘못된 정보에 끌려갈 것이 아니라, 진실을 알아가는 노력을 해야 되는 거죠.

진실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해 주신 비유 가운데 달란트 비유를 보면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있는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자신의 주인에 대해서 사탄이 들려주는 중상모략에 넘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주인이 누굽니까? 주인은 그냥 주인이 아니라, 은혜가 많은 주인이었어요. 종들을 사랑하는 주인이었어요. 종들에게 자신의 것을 맡기고 여행을 가면서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무엇인가를 하게 만드는 그런 주인이었어요. 주인의 관심은 그 종들이 무엇인가를 이루고 성취하고, 더 많은 발전을 하기를 바라는 그런 주인이었어요. 그런데 그 한 달란트 받은 종의 마음 가운데, 사탄이 중상모략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에 대해서 중상모략하는 소리에 넘어가 버린 거죠.

어떻게 넘어갔습니까? 마태복음 25장 24절 25절 말씀에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해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이니이다.” 주인이 누굽니까?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자녀 삼아주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그 하나님에 대해서, 그 하나님을 미워하는 마음, 저 하나님은 나를 적대시하고, 나의 것을 갈취하고 내 것을 빼앗아가는 악독 기업주로 모함하는 그 모함에 속아 넘어가서, 자신의 인생을 허비해 버리고 만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정말 많은 중상모략을 당해 보았습니다. 성도들 중에서는 목사를 적대해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다른 한국 교회의 여러 타락한 목회자들이 목회자들의 모습과 똑같은 목사라고, 오해하고 적대시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교역자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종종 만나 볼 수가 있었는데요. 제가 아무리 잘해주려고 노력을 하고, 정말 사랑으로 대하려고 하고 정말 인격적으로 대우해주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자신이 다른 교회에서 받았던 담임 목사로부터 받았던 그런 상처 때문에,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적대적으로 무슨 일을 해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면서, 중상모략하는 그런 시각으로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제가 무엇을 해도 좋은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는 그런 안타까운 그런 경우들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므비보셋에 대해서 오해했었으나, 므비보셋에게 물어볼 때 므비보셋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 거죠. 므비보셋은 다윗을 미워한 것이 아니라 사랑한 것이고, 다윗이 도망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애통해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했던 정말 참된 친구로서 므비보셋이 있었던 것인데 그를 미워했었던 것이죠.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을 그렇게 오해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비방하고 중상모략하는 그런 모략자가 있어요. 그게 누구냐면 사탄인 것이죠. 그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들을 향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모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믿어봤자, 아무 소용없어. 하나님은 너 까짓 거의 기도는 들어주지도 않아. 하나님은 가짜야. 사탄이 우리들의 마음을 향해서 끊임없이 모함을 해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므비보셋은 다윗이 피난 가는 그 상황 가운데서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발에 맵시를 내질 못합니다. 아마 밥도 굶었을지도 몰라요. 수염을 깎을 힘이 안 나요. 옷을 빨 그런 여유가 없어요. 모든 힘이 쭉 빠져버려서 오매불망 다윗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 그 므비보셋의 모습이 있는데,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어요. 우리가 사탄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되었을 때, 우리가 죽는 그 모습을 보고, 그냥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오매불망, 어떻게 하면 살릴 것인가? 애타고 애타 해 하시다가, 결국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어 주신 것이고, 그 아들이 십자가 위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구원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저와 여러분들이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을 향해서 자꾸만 모함하고 있는 사탄의 음성에 속아 넘어가지 말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그 순간에 진실을 바라봐야 되는 거예요. 우리의 고통만 바라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무시하는 것 같아요. 우리의 현 상황만 바라보면 하나님이 없는 것만 같아요. 반쪽자리 진리만 바라보면, 정말 우리는 망해버릴 것만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누구 앞에 나가야 됩니까? 그 옛날 다윗이 므비보셋을 만나서, “정말 왜 그랬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 므비보셋의 사랑의 고백을 들었던 것처럼, 우리의 마음 가운데 불안한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그냥 혼자 실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물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 정말 하나님이 나를 모른 척하시는 것입니까? 왜 내가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갈 때, 하나님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셨습니까? 왜 이 문제에서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십니까? 하나님 앞에 나가서 엎드리면, 우리 주님께서 사랑의 소리로 우리에게 들려주실 줄로 믿습니다.

“내가 너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너에게 주었다.”라고 하는 그 사랑의 음성을 들으시고, 완벽한 하나님의 그 사랑을 받으면서, 우리가 다시 한번 힘과 용기를 얻고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이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넘쳐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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