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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니야의 숙청 (왕상 2:13-25)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 왕궁에서 일어난 피의 숙청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아도니야라고 하는 사람이 다윗의 여인이었던, 다윗의 첩이었던 아비삭을 달라고 구하였다가, 결국 솔로몬이 그 아도니야를 죽였다고 하는 그런 피의 숙청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요. 아도니야가 누구일까요? 아도니야가 누군지 혹시 기억이 나십니까? 네. 다윗의 큰아들인데요. 스스로 다윗을 이어서 왕이 되려고 계획했었다가 실패했던, 솔로몬의 배 다른 형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만일 이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다고 한다면, 솔로몬은 죽은 목숨이죠.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다고 한다면, 밧세바도 죽은 목숨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나단 선지자가 나서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다윗이 많이 늙어서 별 힘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을 자기의 후임으로 삼을 수 있는 그런 여력이 남아 있어서, 결국 솔로몬을 왕으로 세웠다고 하는 이야기를 우리가 살펴보았고, 그로 말미암아 잠깐 왕 노릇을 했었던 이 아도니야가 이제는 솔로몬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되어서, 솔로몬 왕에 엎드려서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까지 지난 시간에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아도니야가 오늘은 솔로몬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밧세바에게 찾아와서, 한 가지 간청을 하는 겁니다. 다윗의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던 여인 처녀 아비삭을 자신의 아내로 달라고, 그렇게 솔로몬 왕한테 부탁해 달라고 하는 요청을 하러 온 것이죠. 디올(Dior) 가방을 가지고 왔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간청을 들은 밧세바는 아들 솔로몬에게 찾아가서, 그 아도니야의 부탁을 전달했습니다. 밧세바는 그 아도니야의 부탁 들어줄 수도 있는 부탁이라고 생각을 했었던 것이겠죠. 그래서 이 밧세바가 솔로몬을 향해서, 이 아도니야에게 아비삭이라고 하는 여인을 주라고, 그렇게 주면 좋겠다고 간청을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솔로몬은 발끈했습니다. 그러면서 화를 내면서, 이 아도니야를 죽여버리겠다고 하면서, 결국 브나야라고 하는 장수를 시켜서, 그 아도니야를 숙청시켜 버렸다고 하는, 그 궁중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피의 숙청의 이야기를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이야기를 읽을 때 우리들은 좀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문화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 우리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 그리고 조선 땅이 아닌 저 이스라엘 땅에서, 궁중에서 일어난 그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도대체 아도니야는 왜 아비삭이라고 하는 여인을 자신의 아내로 달라고 했었던 것일까요? 왜 달라고 했을까요? 솔로몬은 왜 이러한 요구를 들었을 때, 화가 났을 것인가요? 그리고 이 아도니야를 반드시 죽여야만 되겠다고 생각한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혹시 알고 계신 분 계십니까? 잘 모르겠죠? 학자들에 의하면, 당시에 전 왕의 아내, 전 왕의 첩들을 차지하는 것은 그 나라의 왕권을 차지하는 것과 같다고 하는 그런, 그런 문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왕이 되면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전임 왕으로부터 물려받게 되는 것인데, 심지어 전 왕이 데리고 있었던 왕비들조차도, 자신의 아내로 자신의 첩으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하는 그런 문화가 있었다고 하는 것이죠.

잘 이해는 되지 않습니다마는 예전에 압살롬이라고 하는 다윗의 아들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압살론은 다윗의 후궁들을 만인들이 보는 앞에서 자기가 차지해 버리는 그런 일을 벌이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다윗의 후궁들을 차지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 이야기가 사무엘하 16장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인가? 이 압살롬이 만천하에 선포를 하는 것이죠. 다윗은 이제 끝장났다. 다윗은 더 이상 왕이 아니다. 다윗이 데리고 있던 그 아내들을 그 후궁들을 내가 차지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내가 실질적인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고 하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고자 했던, 그런 행동이었을 것이라고 그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아도니야가 이 아비삭이라고 하는 여인을 차지하려고 했었던 것은 아도니야가 한 번 왕이 되려고 시도했다가, 그것이 무위로 끝나버리고, 솔로몬이 왕이 되었지만, 솔로몬의 그 왕이 된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자기가 이 나라를 쿠데타를 일으켜서, 내가 이 솔로몬의 왕권을 빼앗을까 하는, 그런 속셈을 가지고, 일단 첩들을 차지하고, 세력을 규합하고, 그래서 결국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하는 속셈 가운데서 이 아비삭을 달라고 했었을 거라고 학자들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그 속셈을 알고 화가 난 것이죠. 열왕기상 2장 22절에서부터 23절에 보면 솔로몬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솔로몬 왕이 그의 어머니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그는 나의 형이오니 그를 위하여 왕권도 구하옵소서. 그뿐 아니라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을 위해서도 구하옵소서.” 차라리 어머니, 왕권도 가지라고 하세요. “이 여자를 준다고 한다면, 이 나라도 그 형에게 줘버리세요.” 하면서, 발끈하면서 화를 냈다고 하는 것이 오늘 이 열왕기상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비삭을 달라고 한 이유와 아비삭을 달라고 한다고 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솔로몬이 화내는 그 이유를 조금은 이해가 되십니까? 예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은데요, 저는 아직도 좀 이해가 안 됩니다.


왜냐하면 밧세바는 왜 그걸 몰랐을까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그걸 알고 있었다고 한다면, 밧세바는 왜 그런 것도 모르고, 그 속셈을 모르고, 그냥 그 아도니야를 위해서 솔로몬에게 간청하는 일을 했을까? 밧세바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얘기 아닙니까? 그 당시 사람들이 그것을 몰랐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이 되어서, 그래서 조금은 혼란스럽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학자들의 의견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영적인 교훈도 얻어보려고 합니다.


솔로몬은 그 의미를 분명하게 파악을 했고,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고 하는 그 의도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을 알아서, 이 아도니야를 살려두면 안 되겠다고 하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원래 이 아도니야는 솔로몬이 왕이 되면서 처형을 당해야 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도니야가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악한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그 조건 하에서, 그 아도니야를 살려준 것인데, 그런데 이 아도니야가 목숨만 건진 것으로 감사하면서 산 것이 아니라, 결국 이 솔로몬의 왕권을 빼앗아 버리려고 하는 그런 속셈이 살며시 드러나 버렸기 때문에, 결국 솔로몬이 이 아도니야를 살려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하는 결론까지 내리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영적인 교훈이 있다고 하면 무엇이 있을까요? 어쩌면 영적인 관점에서 본다고 한다면, 우리 안의 죄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의 죄성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죽지 않아요. 사라지지 않는 겁니다. 아도니야를 살려두면 언젠가는 그 아도니야가 반역을 일으키고, 솔로몬을 완전히 뒤엎어서, 자기가 그렇게 왕권을 찾으려고 하는 것처럼, 우리 안에는 누가 숨어 있는가? 우리를 정복해 버리고 그리고 우리를 완전히 뒤덮어버리려고 하는 죄성이 우리 가운데 남아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이 본문을 읽으면서 깨달을 수가 있겠습니다.

사탄은 어떻게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는가? 사탄은 우리를 어떻게 넘어뜨리려고 하는가?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별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되는 그것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죠. 아도니야가 왕권 내놔라 하면서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아도니야는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 다윗의 첩이었던, 다윗을 따뜻하게 했던 여인이었던 아비삭이라고 하는 그 여인을 달라고 조그마한 요구를 하는 것이죠. 그 조그마한 요구를 하게 될 때 밧세바는 “뭐 그거 별거 아닌데, 뭐 솔로몬에게 아내가 있고, 솔로몬의 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고, 솔로몬이 군대를 장악하고 있고, 솔로몬이 정식적인 왕이 됐으니, 까짓 껏 이 여자 하나 주는 게, 뭐 대수겠는가? 까짓 껏 이 아비삭이라고 하는 여자 주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그냥 줘버리면 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을 한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이 아도니야는 그 아비삭을 달라고 한 것이 그냥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왕권을 정복해버리려고 하는 그런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을 알아차려야 하는 것이죠. 우리가 거룩의 길을 걸어가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우리들의 삶을 완전히 뒤덮어버리고, 우리를 타락하게 만들어서, 그래서 우리를 멸망시키고자 하는 사탄의 그 계략이 우리 주변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간파해야 하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마귀에게 틈을 주면 안 돼요 믿습니까? 틈을 주면 잡아먹혀요. 그러니까 틈을 주면 안 된다 이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틈을 어떻게 주는가? 틈을 어떻게 주냐면, “뭐 까짓 껏, 이게 뭐 별 대수로운 일인가?” 하는 것에 우리들의 마음을 빼앗겨 버리는 것이죠. “까짓 껏 아비삭 여인이라고 하는 거 줘버린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겠는가? 까짓 껏 이 정도 한다고 해서 솔로몬의 왕권이 빼앗기겠는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주겠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는 거룩의 길을 가는 가운데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사탄의 속셈들이 늘 도사리고 있는데, 우리는 종종 그런 사탄에게 우리들의 마음을 줘버립니다. 내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신앙생활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조그마한 그 사탄의 유혹에 우리가 마음을 빼앗기고, 이까짓 것 이런 것은 그냥 사탄의 뜻대로 따라가다가, 결국에는 망하는 길로 가게 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5절에서부터 32절의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믿습니까? 우리는 마귀에게 틈을 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근데 그 틈이 뭐예요? 분노하는 거, 화내는 거, 우리는 화내는 거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화내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답 좀 해봐요. 돼요? 안 돼요? 살다 보면 화낼 수도 있는 거지 뭐. 살다 보면 거짓말도 할 수 있는 거지 뭐. 살다 보면 이런 일도 할 수 있고, 저런 일도 할 수 있고, 미워할 수도 있고, 신경질 낼 수도 있고, 선을 안 베풀 수도 있고, 그냥 이기적인 삶을 살아도 좋고, 그냥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그런 일들을 하면서도,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는 까짓것, 별거 아닌 것들, 별거 아닌 거잖아요? 별거 아닌 거 그러면서 우리들의 마음을 마귀에게 틈을 내어주는 것이죠.

근데 그것이 무엇이냐? 바로 우리를 왕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우리를 사탄의 종으로 만들어버리는 쿠데타가, 영적인 쿠데타가 일어나게 만드는 그런,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달라고 한 것과 같은 똑같은 일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죠. 화내는 거 괜찮은 게 아니라 그게 우리를 잡아먹는 거예요. 화나는 마음이 있으면, 그걸 계속 키울 게 아니고, 해가 지기 전에 풀어야 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계속 그것을 키워가서 키우면서, 더 미워할 게 아니라, 그 해가 지기 전에 미워하는 마음을 없애야 되는 것이고, 여러 가지 잘못된 일들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행할 것이 아니라, 이것이 결국 우리를 사탄에게 우리의 주도권을 주는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긴장하며 솔로몬이 이 아도니야의 계략을 간파하고서, 그 아도니야를 즉시 처형했던 것처럼, 마귀가 우리들을 꼬이고 우리로 하여금 마귀의 말에 듣게 우리를 만든다고 한다면, 단칼에 끊어버려서 “내가 화낼 수가 없지. 내가 이런 악한 일을 할 수가 없지.” 우리의 그 결단을 통해서 그 조그마한 틈이 없도록 영적으로 깨어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조그마한 틈이 있으면 어떻게 되나요? 물이 새요. 이 큰 건물에 그 조그마한 구멍 하나 있는 거, 저 정도 구멍이면 괜찮지 괜찮던가요? 아니 아 물 새는 거 막는데 얼마나 고생하는지 몰라요. 세상에 어쩜 그 조그마한 구멍으로 물이 또 들어오고, 또 들어오고 막아놓으면 저쪽으로 흘러서 저쪽으로 들어오고, 저길 막으면 저쪽으로 또 흘러서 저쪽으로 들어오고, 도대체 막을 수가 없는 그 엄청난 공격들이 있는데, 이 틈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우리는 정말 솔로몬이 단호하게 아도니야를 천했던 것처럼, 사탄이 우리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깨어 경성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마태복음 26장 41절의 말씀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결단이 약하고 우리의 그 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늘 넘어지기 쉽기 때문에, 기도하면서 매 순간순간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실하게 일하며, 부지런히 수고하고 애쓰며 정말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건실한 삶을 살기 위한 노력들을 우리 모두가 다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왕권을 넘겨주게 됩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우리는 누군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왕관을 씌어주신 왕권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서부터 28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실 때 무엇으로 만드셨어요? 노예로 만드셨어요? 아니요.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왕권을 가진 그 왕으로 만들어 주셨어요. 온 세상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하나님의 그 능력을 가지고 온 세상을 다스릴 왕자로 이 세상을 다스릴 왕으로 만들어 주셨다 이 말이에요. 옆의 사람 한번 쳐다보세요. 어떻게 생겼습니까? 상감마마, 안녕하십니까? 우리 인사 한번 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전부 왕으로 만드셨단 말이에요. 온 세상을 다스릴 왕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왕권을 빼앗으려고 하는, “아도니야와 같은 그런 계략이 별거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내주었던 것들이 우리를 왕이 아닌 사탄의 노예가 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 선악과를 먹으라고 하는 그 유혹을 듣다가 결국 마음이 빼앗기고 타락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요구가 별거 아닌 것처럼 생각이 됐어요. 40일 동안 금식한 후에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라. 그게 잘못인가요? 떡으로 돌로 떡을 만들어 먹는 게, 그게 그렇게 나쁜 죄예요? 나쁜 죄 아니에요? 먹는 게 죄입니까? 괜찮을 것 같아요. 까짓 거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아셨어요.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면,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이고, 이게 내가 이 사탄의 종으로 들어가는 아주 결정적인 그러한 실수가 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뛰어내려라. 하나님께서 너를 받쳐주실 거라고 하는 그 성경 말씀을 가지고 유혹할 때, 그까짓 껏 뛰어내려 버릴 수 있었지만, 이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내가 내 왕관을 벗어서 사탄에게 씌워주는 일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고, 온전히 다 거부하고 주님 앞에 순종하다가, 그래서 결국 승리의 길을 가게 되었고, 우리를 위하여 구원자가 되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의 삶 가운데는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한 아도니야의 계략과 같은 것이 언제나 우리 옆에 있습니다. 아비삭 좀 내놓으시오. 까짓 거 뭐 많은 거, 다 갖고 있는데, 아비삭 좀 내놓으면 좀 어때요? 그 이야기에 무심코 우리의 마음을 넘겨주고, 우리 마음의 열쇠를 사탄에게 내어주고 화를 냄으로써, 또는 게으르게 인생을 살면서, 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아니하면서,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사탄에게 송두리째 내어주고, 그래서 결국 우리가 가진 그 왕권의 그 특권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오늘 우리가 깨어 경성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주여 지혜를 주옵소서 믿음으로 이러한 유혹들을 이길 수 있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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