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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 나라의 약속 (출 19:1-6)

우리가 성경 읽기 벌써 지금 두 주를 해서 창세기까지 마치게 되었는데요. 이번 주에는 어느 부분을 읽게 되죠? 맞습니다. 출애굽기의 말씀을 읽게 되겠습니다. 오후 시간마다 이번 주에 읽을 성경 말씀에 대해서 미리 생각해 보고 있는데, 이번 주부터는 영상을 보여주지 않고, 그냥 링크로만 보내줄 테니까, 영상들을 보시면서 이번 주에 읽을 출애굽기의 말씀을 묵상하며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출애굽기의 말씀을 우리가 읽으면서, “어떠한 그림을 보아야 할 것인가?”라고 하는 주제로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하는데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창세기를 마지막을 보면, 야곱의 가정이 가난한 땅에서 위기를 만난 것을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7년 대기근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야곱의 가정은 살아가기가 힘들게 되었죠. 기금 가운데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양식이 없다면 어떻게 생명을 부지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기근 가운데서 이제 야곱의 가정은 몰살당할 그런 위기 가운데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먹을 것이 없다고 한다면, 이제 야곱의 가정은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해주셨던 약속, 그리고 이삭에게 또다시 갱신하면서 들려주셨던 그 약속, 그리고 또다시 야곱에게 들려주셨던 그 약속은 그냥 수포로 돌아가 버릴 수밖에 없는 위기 가운데 있을 때에,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그 야곱의 가정이 무너지는 것을 방치해 두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구원자를 일으켜 세워주셔서 야곱의 가정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게 누구죠? 요셉입니다. 요셉은 억울하게 팔려갔고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모든 사람들을 구원해 내는 구원자로 삼아주신 것이죠. 이런 요셉이 있었기 때문에 애굽 사람들이 살 수 있었고, 뿐만 아니라 야곱의 가정도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 고통 가운데서 살 수 있는 놀라운 은총을 얻게 된 것이죠.  

오늘날 우리들의 삶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가지 문제들을 만납니다.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는 위기들을 만납니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고통들이 있습니다. 이런 고통들 가운데서 우리를 위해 건져줄 요셉과 같은 그런 구원자는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일까요?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오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를 사탄의 지배 가운데서 그리고 그 사탄의 통치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 구원의 이야기를 예수님께서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요셉의 이야기는 바로 예수님의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그 옛날 요셉이 이루었던 것 이상으로 온 세상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제 야곱의 가족이 애굽 땅으로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어디서 살게 됐습니까? 고센땅이라고 하는 곳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저 가나안 땅은 먹을 것이 없는데 고센 땅에는 먹을 것이 있으니까 너무나도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마음껏 목축을 하면서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고센 땅이 천국과 같은 곳이었는가? 그렇지 못한 것이죠. 고센 땅이 약속의 땅일 수 있었는가? 그럴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러한 사실이 금세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새로 등장한 왕이 바로 왕이 있었는데요. 그 바로 왕은 이스라엘 민족을 압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을 고통 가운데 집어넣기 시작했습니다. 더군다나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아이들이 태어나면 나일강 속에 던져 죽여버리라고 하는 그런 끔찍한 명령까지 있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이스라엘 민족의 운명은 이제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아기들을 어떻게 살려낼 수 있습니까? 바로 왕의 지엄한 명령 가운데 이 아이들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을 때, 놀랍게도 그 아이들을 살려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히브리 산파들이었습니다. 산파들은 바로 왕 앞에 자신들이 죽임을 당할 수 있을 거라고 하는 그 위험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건져내는 그 일을 통해서 아이들이 살아나는 그런 일을 경험하게 되었고요. 뿐만 아니라 요게벳의 가정 가운데 태어난 모세라고 하는 이 아이도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러나 어머니 요게벳과 그리고 누이 미리암이 모세를 보호함으로 말미암아, 건져주시고 살아나게 되는 그런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된 것이죠. 이스라엘 민족은 저 애굽 땅에서 지옥과 같은 삶을 살고 있을 때 이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건져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건져주실 때 10가지 재앙을 애굽 땅에 내려주셨는데, 그 10가지 재앙을 내린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한번 한번 맛 좀 봐라 해가지고, 재앙을 딱 내린 다음에 말을 안 들으니까, 말을 안 들어? “한 번 더 한 번 당해봐라” 하고, 또다시 재앙을 내리고 또다시 재앙을 내린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이 섬기고 있는 그들의 신이 순 가짜 신이며, 아무런 힘도 없는 정말 보잘것없는 신이라고 하는, 가짜 신이요 우상이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신 것이죠. 10가지 재앙은 그냥 재앙이 아니라, 당시 애굽 사람들이 신으로 섬기고 있던 그 신들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그들이 섬기고 있던 가축의 신들, 파리의 신들, 나일강의 신들, 여러 신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면서 이 땅에 하나님만이 참된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며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주신 것이죠.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이 누군가? 모세라고 하는 선지자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이 성경을 읽어나가다 보면 나중에 신명기를 가서 알 수가 있겠지만 이 모세는 결국 죽을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고 그냥 느보산 꼭대기 위에서 죽게 되는 일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죠.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인 줄 알았는데, 모세 자신이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그런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모세가 참된 구원자가 아니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고요.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약속해 주시기를, 내가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바로 그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예수님이죠. 예수님께서는 정말 이 땅에 오실 때 모세처럼 오셨습니다. 그 옛날 모세가 나일강에 던져질 뻔한 그런 위기 가운데서 살아나게 된 것처럼, 헤롯 왕이 모든 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을 때, 예수님도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으로 보호해 주셨고, 살려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옛날 모세가 홍해 바다를 지나가게 되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고, 뿐만 아니라 모세가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서 먹일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또한 이스라엘 민족을 오병이어로 먹이셨을 뿐만 아니라, 모세가 그 옛날 반석에서 물을 내어서 그들로 하여금 물을 마시게 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가나의 혼인잔치를 통해서 목마른 자들에게 음료를 주시며, 구원을 베풀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결국 이스라엘 민족을 어린양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그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구원을 받게 해 주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주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게 되는 놀라운 은혜를 얻게 되었던 것이라고 보겠습니다.


따라서 이 출애굽기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오실 것을 기대하게 만들고 그들이 구원자로 바라보았던 모세마저도 참된 구원자가 아니라, 우리의 진정한 구원자가 누구인가? 하나님께서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 그 이스라엘 민족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많아질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해 주겠다고 하는 그 약속이 누구를 통해서 성취되는가?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된다고 하는 사실을 기대하고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 출애굽기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종살이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정말 고통 가운데 있었는데요. 그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 땅에서부터 건져내서 그래서 저 가나안 땅으로 가는 이 과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 왕의 백성으로부터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신분이 변화되게 만드는 그 과정이라고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출애굽기 19장 1절에서부터 6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애굽 땅을 떠난 지 3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신의 광야에 이르니라. 그들이 리드비임을 떠나 신의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느라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어떻게 구원해냈는가에 대해서 설명하는데요. 어떻게 구원해 냈습니까? 마치 독수리가 날개로 새끼를 업어서 데리고 가듯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건져내어서 지금 저 가나안 땅을 향해 가고 있다고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언약을 맺어서 “이제는 너희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겠다”라고 하는 그런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로 만들어주면서,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살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 바로 출애굽기의 말씀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20장에 십계명이 나오고요. 그 뒤에 여러 계명들이 나오고 또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가면서 계속 하나님의 법이 나오는데, 이 하나님의 법들은 무엇인가? 그 옛날 애굽 땅에 있으면서 애굽 왕의 법을 지키면서 살아야 했던 이스라엘 민족들이 이제는 그 법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살라고 하는 그 새로운 법을 주신 것이 바로 이 출애굽기부터에 나오는 계명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의 대표인 모세가 서로 조약을 맺는 장면이 출애굽기 19장 이후부터 등장하게 되는데요. 고대 세계에서 강대국과 약소국이 조약을 맺는 과정을 그림으로 보면 이런 그림으로 볼 수가 있겠습니다. 약속이 있는데 그 약속은 약속국은 강대국 a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아옵니다. 그 강대국 a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그때 너무나도 힘들어서 이 약속은 또 다른 강대국인 b라고 하는 강대국에다 구조 요청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강대국 b가 전쟁으로 이 강대국 a를 물리치고 약속을 구해내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고 한다면 이제는 약속이 이제는 강대국 a의 종이 아니라 강대국 b의 종이 되어서 옛날보다는 훨씬 더 나은 조건에 복종 관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 그 옛날 강대국과 약소국의 관계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이렇게 새로운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될 때 강대국 b와 약속국 사이의 언약을 맺으면서 이제 우리는 강대국 b만 섬기게 했습니다. 그리고 강대국 b는 약속을 보호해 주겠다고 하는 그런 조약을 맺는 일이 많이 있었는데, 출애굽기의 내용이 무엇이냐면 바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언약을 맺는 거죠. 조약을 맺는 거죠. 전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이라고 하는 나라에 바로 왕을 섬기면서 고통스럽게 살면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셔서 이제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사는 삶이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이 관계를 새로 정리하면 또 다른 그림을 한번 보자면, 옛날에는 바로 왕 밑에서 애굽 나라에 살고 애굽 나라의 법을 지키면서 겨우겨우 연명했고 비참한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노동을 해야 했었고, 그리고 힘들게 힘들게 벽돌을 구워야 했었고, 아이들은 나를 향해 던져야만 하는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삶이 바로 왕 밑에서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건져내셔서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의 법을 지키면서 풍성한 삶, 복의 삶을 살라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법을 주시는 것이죠. 그래서 이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대표인 모세 사이에 조약을 맺는데요. 그래서 조약의 내용이 무슨 내용이에요? 십계명이에요 십계명을 왜 두 돌판에다 적었을까요? 계약하면 우리 한 부씩 보관하잖아요. 그래서 십계명 두 돌판을 만들어서 이스라엘이 하나 보관하고 하나님께서도 하나 가지시고 서로 조약을 맺어서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만들어주신 것이 출애굽기의 내용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옛날에는 애굽 왕의 강압적인 통치라고 한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통치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고, 예전에는 겨우 연명하며 사는 삶이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하나님 안에 들어가게 될 때 행복한 삶, 기쁨의 삶으로 살게 되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 바로 시내산에서 맺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간의 언약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젠 우리가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이 세상의 법에 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들이 애굽 땅에서 살아가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만들어서 그 성막을 이스라엘 진영의 가운데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하시겠다고 하는 약속이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버리지 않고 이스라엘 민족이 가는 곳마다 함께해 주시겠다고 하는 그 약속을 해주셔서 하나님이 진짜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 이 출애굽기의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것만 들으면 너무나도 좋아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민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반하는 길로 또 가게 된 거죠. 하나님께 예배하기보다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 절하고 하나님을 배신했을 뿐만 아니라 또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이 광야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조금만 힘들면 하나님 앞에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고 조금만 어려우면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우리가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겠다, 차라리 애굽 왕을 섬기면서 살겠다”라고 그렇게 하나님을 반역하며 사는,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들은 또 실패하고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민족이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는데 그런 우리들에게 소망이 있을까요?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민족처럼 늘 실패하고 넘어지는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신약의 은혜가 있는데요. 우리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어요. 그 옛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진영 가운데 장막을 치고 함께 하시겠다고 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친히 이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들과 함께 장막을 치고 육신을 입으셔서 우리들과 함께 거하시겠다고 말씀해 주셨고, 뿐만 아니라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번죄를 통해서 희생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고 했지만 그것을 통해서 실패해버리고 말았던 그 실패를 이제는 예수님께서 영원한 번죄를 들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끊어지지 않는 관계로 구원의 관계로 인도해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의 출애굽기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실패해 왔는가를 바라보면서 그리고 그 실패한 우리 인생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버리신 것이 아니라,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게 해 주신 그 놀라운 은혜를 이 출애굽기의 말씀을 통해서 바라보고, 그래서 오늘 우리들의 삶이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들의 삶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주님 안에서 순종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아가겠다고 하는 믿음의 다짐이 있는 그런 성경 읽기가 이번 주간에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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