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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함을 받으라 (눅 5:12-16)

오래간만에 누가복음의 말씀을 살펴보게 됐는데요. 오늘 본문을 보면 어떤 한 나병 환자를 예수님께서 고쳐주신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곳을 다니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는데요. “하나님의 나라가 왔다.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라고 하는 복음을 전하면서 말씀을 선포하시며 다니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일 때에, 어떠한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가에 대해서 생생한 증거로 보여주기 위해서, 기적들을 행하신 것이죠. 예전에 사탄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던 그 삶이 고통스러운 삶이었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그 삶 가운데 들어가게 되면, 우리의 삶이 정말 좋아진다고 하는 사실을 생생하게 증거 하기 위해서, 때로는 귀신 들린 자를 정상으로 고치시기도 하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기도 하는 그런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시면서 다니셨던 것이죠.

예수님께서 어떤 한 마을에 갔더니, 거기서, 오늘 본문에 보면, 한 나병 환자를 만나게 된 겁니다. 그런데 이 환자의 질병이 얼마나 심각했느냐 하면, 그 나병이 온몸에 들렸다고 표현할 정도로 이 사람의 질병이 아주 심각했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병 환자는 어느 날 예수님께서 이 마을에 오셨다고 하는 소문을 들었을 것이고, 그리고 그 예수님 앞에 나아와, 예수님 앞에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하게 된 것이죠. 그 간청한 내용이 오늘 읽은 누가복음 5장 12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이 나병 환자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간청하면서 했던 말을 한번 주목해 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이 나병 환자는 예수님에게 나와서 할 때 무슨 이야기를 했냐면, “나를 고칠 수 있나이다”라고 말을 했는데 그 앞에 한 가지 전제조건을 붙였습니다. 무슨 전제조건을 붙였습니까? “주여, 원하시면, 저를 고칠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죠. 이 나병 환자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병을 고칠 만한 능력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고쳤으니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질병을 고칠 만한 능력이 있다고 하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 나병 환자가 걱정한 것은 “내가 헛소문을 들은 것이 아닐까?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예수님이 아무 능력이 없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 아닐까?”라고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고칠 만한 능력이 있다고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없었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그 예수님께서 능력이 많으신 우리 주님께서 과연 나를 만한 고치실 마음이 있겠는가? 나를 고치실 그런 의도가 계신가에 대해서는 의심이 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과연 주님께서 나를 고쳐주실까? 나를 고쳐주실 마음이 있을까? 그것이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나 환자는 주님 앞에 나아가면서 주여 원하시면 저를 고칠 수 있겠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죠.

이렇게 나병 환자가 이렇게 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수많은 부정적인 경험들 때문일 것입니다. 레위기 13장 45절부터 46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요.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오, 병이 있는 날 동안에는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 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 우리가 성경 말씀을 쭉 읽어오면서 레위기의 말씀을 읽은 지 얼마 안 됐죠? 얼마 전에 읽었습니다. 그 레위기의 말씀에 있는 나병 환자에 대한 규정이 기록되어 있는데, 나병 환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가? 나병 환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가에 대한 규정이 레위기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는 겁니다. 나병 환자는 길을 가면서 자신의 옷을 찍기도 하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그리고 입술을 가리면서 나는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치면서 다니라고 규정하고 있어요. 이렇게 규정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나병 환자와 실수로 접촉하게 되면 다른 사람도 그 나병이 옮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부정이 다른 사람에게로 전염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이 되지 않도록 내가 나병에 걸렸다고 하는 사실을 말하면서 다녀야만 했던 것이죠. 그러면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 주변에서 다 물러가는 겁니다. 다 도망가는 겁니다. 괜히 그 사람하고 부딪혔다가는 내가 부정하게 되기 때문에, 그래서 다 사람들이 피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나병 환자는 어디서 살아야 되는가? 가족들에게서 떨어져서 공동체 밖에서, 성 밖에서 진영 밖에서 혼자 외롭게 살아가야만 했었던 것이 바로 나병 환자였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도 이 나병 환자를 환영해 주지 않는 것이죠. 만일 이 나병 환자가 마을 안으로 들어가서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고 하면, 그 지나가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기겁을 하면서, 도망치는 모습들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닐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심하게 돌을 던지면서 이 나병 환자가 왜 동네에 들어왔느냐고 하면서 돌을 던졌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나병 환자에게 있어서 제일 걱정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에게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과연 이 예수님께서 나를 거부하지는 않을까? “이 더러운 사람아, 이 부정한 사람아, 저리 가라.”라고 자신을 향해서 내치면, 그러면 도망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나병 환자는 주님 앞에 나오면서도 가까이 갈 수 없고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외치면서 이야기하라는 겁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고쳐주실 수 있습니다.” 원하시면 저를 고쳐줄 수 있고 깨끗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예수님 앞에 나아온 것입니다.


이러한 나병 환자의 태도는 오늘날 교회를 오는 사람들과는 좀 다른 태도라고 하겠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교회에 올 때 어떤 마음으로 오죠? 마치 식당에 가서 당당하게 음식을 주문하는 사람처럼, 이곳에서 나를 환영해 주는 것을 기대하고, 그리고 나를 환영하지 아니하면 조금만이라도 눈치가 이상하면, 이내 다른 교회가 다른 교회로 가겠다고 하면서 그런 고자세로 교회를 옵니다. 당연히 내가 대접받아야 하고 당연히 내가 이 교회에서 환영받아야 될 것을 기대하면서 오게 되는 것이죠. 물론 저희는 환영합니다. 환영하고 정말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예수님 앞에 나아가면서 두려운 마음이 드는 거죠. 예수님 앞에 나아가고 있는데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혹시라도 예수님께서 나를 거부하지는 않을까? 예수님 앞에 나아가고 싶은데 무엇이 자기를 거부 두렵게 만듭니까? 자기 자신의 모습이 더러운 거예요. 자기 자신의 모습이 병들어 있는 모습 때문에, 주님 앞에 나아가기가 두려운 마음 가운데서 주님 앞에 나아오게 된 것이죠.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그 나병 환자를 보시면서 해주신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5장 13절의 말씀에 보면 예수님의 반응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데 나병이 곧 떠나니라.” 이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반응 속에서 우리는 아주 특이한 모습을 볼 수가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나병 환자를 이 나병 환자를 환영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고쳐주셨는데, 고쳐주실 때 어떻게 고쳐주셨는가?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이 나병 환자에게 손을 대시며 말씀하신 것이죠. 율법에 의하면 나병 환자를 만지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그 만지는 사람도 부정하게 돼요. 그래서 그 부정하게 된 사람도 사회로부터 격리를 당해야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함부로 사람들이 만지려고 하지 않은데, 예수님께서는 그 율법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 나병 환자를 만지시며 그 사람의 몸에 손을 대시며 내가 원한다.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손을 대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면 손을 대고 안수하고 기도하면, 그 사람의 병을 더 잘 고칠 수 있기 때문에 손을 대신 걸까요? 그렇지 않죠. 예수님께서는 손을 대셔야만 고치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 한마디로 고칠 수 있는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 옛날 백부장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말을 한 거죠. 예수님 우리 소년이 병들었는데 고쳐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 가서 고쳐주시겠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때 이 백부장이 했던 대답이 무엇이냐면 “주님, 주님께서 우리 집에 온다고 하는 것을 제가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말씀으로만 하세요. 말씀으로만 하시면, 우리의 소년이 나을 수 있겠습니다.”라고 이야기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칭찬하셨다고 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충분히 말씀으로만 고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나병 환자를 만지시며 그에게 손을 대시며 이 사람의 병을 고쳐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그 사람을 받아주시고 영접해 주시고, 그리고 거부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을 거부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품으시고 슬픔과 고통 가운데 있었던 이 사람을 주님께서 받으셔서 치유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병을 고쳐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또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는 주님 앞에 나아간다고 할 때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인 것이죠. 그 옛날 나병 환자가 자신의 몸을 보면서 나와 같은 이런 더러운 병에 걸린 사람을 과연 주님께서 받아주실까? 걱정 가운데 나아갔지만, 주님께서 환영해 주신 것처럼, 오늘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내가 이렇게 죄를 짓고 사는데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이렇게 세상에서 방황하며 살고 있는데, 이렇게 한 번 교회에 나오는 거 주님께서 나 같은 사람 받아주실까? 나는 충성하지 못한 사람인데 과연 하나님께서 나를 받아주실까? 생각될 때가 많은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어떤 것입니까? 주님께서는 받아주셔요. 십자가 옆에 놓여 있던 강도에게도 그를 받아주시면서 오늘 밤 내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던 우리 주님께서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을 받으시고 은혜로 인도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주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혹시 우리들의 상황이 어떠한 상황 가운데 있습니까? 본문에 나오는 나병 환자처럼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무시당하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돈이 없다고 무시하기도 하고 또한 나이가 많다고 무시를 당하기도 하고 출신 때문에 무시를 당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를 무시하고 외면하고 우리를 왕따시키는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그런 씁쓸한 경험을 받으신 경험들이 있습니까? 아니 심지어 우리 교회 내에서도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그런 우리 모두를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주님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내가 너희를 환영한다고 말씀해 주시는 그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주님 앞에 나오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주님은 어떤 주님이십니까? 우리가 나병 환자처럼 영적인 질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의 몸에 손만 대신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의 죄악을 지고 우리의 허물을 지고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으시면서, 우리를 위해 사랑을 베풀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신 주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담대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시는데요. 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을 해 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는 잘생긴 사람들하고 오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에요. 부자들만 오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에요. 똑똑한 사람들만 내게 오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에요. 어디 내놓을 것이 있는 그런 사람들만 건강한 사람들만 내게 오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가지고 있는 사람, 우리들의 문제가 있는 사람, 바로 그런 모든 사람들을 초청하면서, 우리가 주님에게 나아가기만 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쉼을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이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주님 앞에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고 나아가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요. 이렇게 주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은 자신이 심각한 상태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주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죠. 대표적인 케이스를 들라고 하면 바리새인들을 들 수가 있겠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요?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킨다고 생각한 것이죠. 나는 깨끗하게 산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사이신 예수님 앞에 나아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어요. 우리가 병원에는 언제 갑니까? 아플 때 가요? 병원에 다녀오신 분 있습니까? 지난 주간에 다녀오신 분들도 계세요. 왜 언제 갑니까? 아프면 가는 거예요. 내가 내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되면 가는 것이죠. 하지만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이 드는데 일부러 병원에 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검사를 해봐야 되잖아요? 영적으로 건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 앞에 나아가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의 상태를 점검해 보고 과연 내가 병이 있는지 병이 없는지 확인해 봐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건강보험공단에서 매년 무슨 문자를 보내주죠? 여러분은 암 건강진단받을 때가 됐습니다. 공짜입니다. 건강진단받으세요. 근데 저는 잘 안 가요. 왜 안 아픈 데 가는데 안 아픈데 뭐 하러 갈 필요가 있을까 가셔야 돼요. 그러면 그런데 왜냐 아프지 않아도 있을 수 있고 내가 건강해 보이는 것 같아도 심각한 질병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가서 진단하고 치료를 받고 그래서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우리가 영적으로 바른 길에 서 있는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지 않은지 우리 자신을 영적으로 진단하며, 우리가 혹시라도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들이 있다고 한다면 안심할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나아가야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진단을 해보아야 하는데요. 우리가 흔히 속고 있는 경우가 무엇이냐 하면, 내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기가 쉬운 것이죠. 나도 괜찮은 사람 아닌가? 왜냐하면 우리가 이웃과 비교해 보니까,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괜찮아 보이는 걸로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웃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하나님에게 비추어 보아야 되고,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되는 것이죠.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인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게 될 때, 우리의 죄악을 들여다볼 수가 있고,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지를 알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베드로라고 하는 사람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면서 살 때 그는 한 번도 자신의 그 영적인 상태에서 질문을 던져보지 않았습니다. 그냥 평범한 인생을 살았고 고기를 잡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베드로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어요. 그리고 그 베드로를 향해서 예수님께서 깊은 데에 그물을 던져보라 말씀하셨고, 어느 날 갑자기 그 엄청난 기적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이 베드로는 자기가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지금까지 괜찮은 줄 알았는데, 거룩하신 주님을 만나게 되는 그 순간에, 우리의 심령을 꿰뚫어 보시는 주님을 만나게 되는 그 순간에 내가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주님 앞에 엎드릴 수 있게 된 것이죠.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죽이기 위해서 돌을 들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어요. 저 간음한 여인에 비하면 그런대로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고, 그런대로 나는 하나님의 율법대로 사는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하지만 주님께서 그 사람들을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될 때 그들의 마음 가운데 주님의 말씀이 후벼 파는 겁니다. “너희 가운데 죄가 없느냐?”라고 하는 그 말씀 가운데, 이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자신들의 죄가 드러나면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우리가 영적인 진단을 하지 않고 우리가 건강한 사람이라고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심각하다고 하는 사실을 모르고 지내고 있는 것이 괜찮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원하기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 서는 가운데 우리 자신의 문제들을 발견하고 우리들의 영적인 질병이 있다고 한다면, 영적인 나병이 있다고 한다면 주님 앞에 나아가 우리를 환영해 주시고 치유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오늘 우리는 주님께 어떻게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 옛날에는 예수님께서 계셨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움직이실 때 그 마을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나아갔는데 지금은 예수님이 우리 교회에 오셨습니까? 아니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그 예수님인데 어떻게 보이지 않는 예수님에게 우리가 나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마음속으로 영접할 때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겁니다. 계시록 3장 20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께서는 찾아가면 만날 수 없는 그런 아주 까다로운 분이 아니라, 우리들이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언제든지 우리를 만나주실 분이에요. 목사만 만나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예수님을 만날 수 있어요.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주님께서는 언제든지 우리의 마음 가운데 들어오시겠다고 약속해 주고 계시는 것이죠. 우리 주님은 이 세상의 유명 인사와 같지 않은 겁니다. 한 번은 제가 장례식이 있어서 장례식장에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었고 그 목사님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입은 기억이 있어서 그분의 장례식이 있어서 그래도 가서 조문을 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차를 타고 운전해서 먼 곳까지 가서 조문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거기 장례식장에 안 계시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조금 전에 입관 예배드릴 때는 있었는데 입관 예배드리고 나서 부흥회에 가셨대요. 유명한 분이라 벌써 예전에 약속했던 부흥회가 있어서, 장례 기간 중에도 부흥회 가서 인도해야 된다고 가셔서 그냥 못 만나고 그냥 씁쓸하게 돌아온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 유명한 사람은 더 만나기 힘들죠. 대통령 만나기 쉽습니까? 어려워요 국회의원 만나기 쉽습니까? 어려워요. 이 세상의 유명 인사들은 만나기 어려워요.

하지만 우리 주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우리가 지금 당장 문을 열고 주님 주님을 영접하길 원합니다. 주님을 모시길 원합니다. 주님에게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주님께서는 거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만나주시길 원하시고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우리가 주님에게 마음을 여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 가운데 온다고 하면, 너희가 문을 열면 내가 너에게로 들어가고 그리고 내가 너와 함께 양식을 나누고 잔치를 누리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 가운데 오시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풍성함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을 수 있어요. 아픔들이 있을 수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질병들이 있을 수 있겠고 영적인 문제들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문제들을 가지고 우리가 고민할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주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오셔서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해결해 주시기도 하고, 은혜 베풀어 주시기도 하고,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주신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우리 모두가 다 경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물론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질병들을 다 고쳐주신다거나 우리의 모든 문제들을 다 해결해 주시고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쳐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아주 놀라운 지시를 해 주셨습니다. 이 나병 환자를 고친 다음에 예수님께서 특별한 부탁을 하나 하셨는데요. 누가복음 5장 14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경고하시되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가서 제사장에게 내 몸을 보이고, 또 내가 깨끗하게 됨으로 인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들여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니,” 나병 환자를 고친 다음에 예수님께서 당부하신 말씀은 제사장에게 가서 레위기의 규정대로 이제 깨끗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을 입증받고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하라고는 하셨지만, 그러나 내가 예수님 때문에 이렇게 고침을 받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소문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신 겁니다.

왜 이런 부탁을 하셨을까요? 소문내면 더 좋은 거 아닌가요? 지난번에 우리 교회 성도님이 운영하는 수학 학원을 심방 간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입구에 화분이 하나 딱 있고, 거기에 뭐가 있었냐면은, 서울대 의대 입학 감사 쫙 써놨더라고요. 거기다 딱 입구에다 놨는데 왜 입구에다 놔뒀을까요? 선전하려고! 이래 봬도 이런 학원이다. 겸손하게 말씀하시더라고요. 학생이 잘해서 한 거라고 잘한 거라고. 있으면 소문내고 좋은 거 있으면 알리고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알리는 것이 당연할 것 같은데, 장점이 있으면 더 많이 알리고 싶은데, 왜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신 걸까요? 그것은 사람들은 늘 영적인 것보다는 이 세상의 것에 관심이 더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나병 환자의 병을 고치신 것은 사탄의 지배로부터 해방이 되어서 이제는 하나님을 모시고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이 병자를 고쳐주신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나병 환자의 그 삶이 이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며 하나님을 모시고 회개하는 삶으로 변화되기를 원해서 이런 일을 하신 것일 겁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그 치유의 목적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채 무엇만을 바라보게 될까요? 병을 고친 것만 보는 거죠. 병을 고친 것만 보는 겁니다. 그래서 소문이 나서 예수님은 병을 잘 고친다더라. 예수님에게로 가면 문제가 해결된다더라. 거기에 열광하지 못하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사실 기적을 보았을 때의 정당한 반응이라고 하면 무엇이죠? 베드로와 같은 반응이에요. 예수님께서 그 갈릴리 바다에서 수많은 물고기를 잡게 해 주셨을 때, 베드로는 그 수많은 물고기를 보면서 거기서 열광하지 않았어요. 주님 이렇게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다니 이런 경험을 하게 되니 주님 저와 동업 좀 합시다. 그래서 우리가 수산업계를 한번 평정을 해봅시다. 주님과 저와 손 잡으면 못할 게 없습니다. 그렇게 나온 게 아니에요. 베드로는 그 앞에서 엎드렸어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그 주님 앞에서 이 세상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죄를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었소이다. 울며 주님 앞에 나 나오게 되었고, 자신의 인생을 이 세상에서의 삶이 아니라 주님의 제자로서 살도록 자신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그런 놀라운 영적인 변화가 베드로의 가운데에 있었던 것이죠. 그런 변화를 주님께서는 원하고 계시는 거예요.

하지만 소문을 내지 말라고 해서 소문이 안 나는 것이 아니라 소문이 많이 나버렸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몰려들었을 때 주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누가복음 5장 16절의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떡을 보고 열광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질병이 치유되는 것을 보면서 열광하는 그 모습 가운데서, 그들 앞에서 내가 이런 능력이 있다고 하는 것을 자랑하며 보여준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물러가셔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죠. 우리가 이 주님의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삶의 문제도 만져주시기를 원하세요. 때로는 주님께서는 우리의 질병을 고쳐주실 수도 있고 때로는 우리의 가정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도 있고, 때로는 주님께서 원하신다고 한다면 놀라운 능력을 베풀어 주실 수도 있는데,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의 영적인 문제들이 주님 앞에서 해결이 되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가운데 이제 지금까지 우리가 사탄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아왔던 삶이었다고 한다면, 그 모든 사탄의 지배의 삶을 청산해 버리고 화를 내고, 분노하며 그리고 이기적이고 탐욕적으로 사람들을 미워하며 사는 사탄의 지배를 따라 살았던 삶이 우리의 과거의 삶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그런 과거의 삶은 다 내어버리고,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 가운데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는 삶, 사랑을 베풀며 친절을 베풀고 은혜를 베풀며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으로 영적인 삶으로 바뀌는 그런 우리의 모습들이 결단의 모습들이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마음의 풍성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풍성함의 결과로 문제가 해결되기도 하고, 질병에서 치유받기도 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기도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이 세상의 헛된 것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 위에 못 박히시면서 우리의 죄악의 문제를 해결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주님 저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고,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게 해 주시고, 우리의 더러웠던 인생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갈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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