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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증인들 (눅 24:1-1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3일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다시 살아나신 것이죠.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게, 1세기 유대인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을 거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예수님의 부활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죽음이 1세기 유대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이해되었는지를 먼저 알아야 될 필요가 있는데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마음 가운데 “예수님이 순 엉터리다,” “예수님이 가짜다.”라고 하는 그런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던 사건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신명기 21장 23절 말씀에 보면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돌에 맞아 죽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던진 그 돌에 맞아 죽은 게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나무 위에 달려서 죽는 그 모습을 본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냐면, 저 예수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저 예수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 저런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예수님이 죽기 전에는 예수님이 수많은 이적을 행했기 때문에,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예수님에 대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기대하면서 바라보았습니다. “이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가 아닐까? 이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그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아닐까? 우리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킬 그 구원자 메시아가 아닐까?”라고 소망을 가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다니게 된 것이죠. 하지만 예수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그 모습을 보게 되는 그 순간,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마음 가운데 그 소망을 다 내려놓게 된 겁니다. 순 가짜였구나, 사기꾼이었구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죄인이었구나. 예수님의 죽음을 보게 되는 그 순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이 순 엉터리요 사기꾼이었다고 하는 그런 마음의 결론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의 말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읽지 않았지만 24장 나중에 보면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슬픈 기색을 하면서 말을 하고 가고 있는 그 장면을 본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가가셔서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왜 당신들은 슬픈 기색을 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냐고 물었을 때, 대답했던 말이 누가복음 24장 18절에서부터 21절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이 누구라고 기대했다고요? 속량할 자라고 기대했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해 낼 자, 이스라엘을 살려낼 자라고 하는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바라보았는데, 그 기대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 기대가 과거의 사건이었다는 얘기입니까? “바랐노라.”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닐까?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 기대가 모두 다 무너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언제 무너졌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 순간에 예수님이 메시자인 줄 알았는데, “순 엉터리였구나, 순 가짜였구나, 사기꾼이었구나.”라고 하는 그런 마음을 얻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죽었으나 다시 부활하시는 그 모습은 그런 실망을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망을 불어넣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무덤에서 살려내신 것인데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그 예수님을 인정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살려냈다고 하는 것은 그냥 살아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살려내신 것인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인정하셨다고 하는 것이고, 인정했다고 하는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그동안의 사역을 하시면서, 내가 메시아라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할 메시아라고 하는 사실을 말씀해 주셨는데,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그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게 사기가 아니라, 엉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신, 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모두 다 옳았다고 하는 것을 증명해 준 것이 바로 부활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시 다 살아났다고 해서 메시아가 되는 것은 아니죠. 예수님께서 이 나사로라고 하는 사람을 살려냈지만, 그 나사로를 살렸을 때 사람들이 신기하다 놀랍다 하면서,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에 대해서 신기하게 생각했지만, 그 나사로가 메시아가 될 거라고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이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어떤 죽음이었는가? 평상시에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이 세상을 구원할 사람이라고 말해 주었는데, 그것이 순 거짓말이었고 순 엉터리라고 생각되었으나,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는 그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옳았구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구나. 그래서 그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 사건을 보게 되는 그 순간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8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난 것을 경험하게 된 도마의 대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죽었다 살아난 그 예수님을 보면서 그 앞에 머리를 숙이는 것이죠. 정말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군요. 정말 선생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군요.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래서 예수님이 나의 메시아요,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고백하는, 그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는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었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누가복음 24장의 말씀을 읽었는데요. 이 누가복음 24장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알게 된 제자들의 반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들은 여 성도들이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요한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또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은 다른 여성들이 함께 모여서 아침 일찍 새벽 일찍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간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들은 왜 예수님의 무덤에 갔을까요? 예수님이 부활할 것을 기대하고 갔겠습니까? 무슨 이유 때문에 간 것이죠? 부활할 것을 기대하고 간 것이 아니라, 미처 예수님의 시신을 잘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도 바르고 장례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운명하신 것은 금요일날금요일 오후 3시경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매장한 것은 언제 매장했죠? 그 운명하신 이래로 저녁 해가 지기 전에 매장을 해야만 했었어요. 왜냐하면 금요일 저녁 6시에 만일 해가 진다고 한다면, 그때부터가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렇죠. 유대 날짜 계산법에 의하면, 해가 지면서부터 그다음 날이 시작하기 때문에 금요일 저녁부터가 안식일이 되는 것이고, 안식일이 되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요일 오후 3시에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고 한다면, 해가 지기 전까지 대략 3시간 내에, 예수님을 매장해 놓아야만 했었기 때문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해서 매장하는 데 급급했고, 그 장례가 일어나게 되면 시신을 깨끗하게 씻기도 하고 향 품도 바르고, 여러 가지 장례 절차를 진행을 해야 되는데, 그런 장례 절차를 제대로 진행할 수 없이, 그냥 매장해 버리는, 그 무덤에 두어야만 하는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여성 제자들이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아침에 해가 뜨자마자 새벽 일찍 예수님의 무덤에 가서 예수님의 장례 절차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가게 된 것이죠.


그런데 그들이 발견한 것은 예수님의 시신은 없었고, 무덤의 문은 열려 있어서 예수님의 시신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들이 돌아오게 될 때 두 사람에 나타나서 이 여인들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천사들인 것이죠. 흰 옷을 입은 그 천사들이 예수님 그들이 이 여인들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너희가 산 자를 살아있는 사람을 죽은 자들 가운데 찾느냐?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것처럼, 살아계실 때 말씀하셨던 것처럼, 성경대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거라고 3일 만에 살아날 거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고 하는 이야기를 천사들로부터 듣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여인들이 누구에게 찾아갔는가? 11 제자에게 찾아갔습니다. 가롯유다는 이미 사라져 버렸고, 나머지 11 제자 그리고 다른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 그들에게 찾아가서 이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죠. “베드로 님” “요한 님” 제자들을 향해서 이야기하기를 우리가 무덤에 갔었는데, 예수님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고, 무덤의 문은 열려 있었으며, 그리고 우리가 천사를 만났는데, 그 천사들의 말에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자들의 반응이 어떤 반응이었을까요? “할렐루야” 하면서 기뻐했을까요? 기뻐한 게 아니라 이 사람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 제자들의 반응이 누가복음 24장 11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이 여인들이 빈무덤을 보았다고 말하고, 그리고 예수님의 그 시신을 감쌌던 천들이 개켜져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고, 그리고 천사들이 나타나서 예수님이 살아났다고 하는 이야기를 자기들이 직접 들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이야기했을 때, 이 제자들은 “그래? 정말 예수님이 살아났어?” 하면서 믿은 것이 아니라, “무슨 이게 무슨 말도 되지 않는 소리야? 무슨 이런 엉터리 이야기가 있어?” 그러면서 믿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죠.


믿는 게 정상입니까? 안 믿는 게 정상입니까? 안 믿는 게 정상이에요. 죽었다가 사람이 살아나는 게 가능한 일입니까?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믿는 게 정상이 아니라 안 믿는 게 정상인 거예요. 그래서 이 여인들이 이 이야기를 했을 때,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도대체 예수님의 시신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도대체 어떤 황당한 일이 벌어졌는가? 질문을 던지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정상인 것이지, 이 여인들의 말을 그냥 곧이곧대로 믿는 게 정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일어나서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베드로만 간 것이 아니라 다른 몇 사람도 따라갔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왜 그렇습니까? 누가복음 24장 24절 말씀에 보니까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말하기를 또 우리와 함께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서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한국말 성경에는 두어 사람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몇몇 사람이 간 거예요. 어떤 사람들이 간 겁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고 하는 그 이야기에, 제자들이 베드로와 함께 몇몇 사람들이 가서 정말 봤는데, 정말 갔더니 예수님의 무덤이 열려 있고, 비어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예수님을 감쌌던 피 묻은 천이 개켜져 있는 것을 본 겁니다. 그것을 보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하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그런 결론을 못 내리는 거예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그런 결론을 내릴 수가 없는 겁니다. 거기 갔던 사람들이 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하는 것은 전혀 생각할 수가 없고, 어떻게 된 일인가? 누가 훔쳐갔는가? 아니면 어찌 된 일인가? 우리가 무덤을 혼동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짐승들이 와서 예수님의 시신을 물어간 것인가?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부활을 제외한 다른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그 어찌 된 일인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었다가 살아난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죠.

이러한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예가 바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은 바로 그 여인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리고 이 무덤이 비었다고 하는 것도 보았고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했구나” 기뻐하면서, 그 사실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엠마오로 가면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무슨 해괴망측한 일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가?” 하면서 의심하면서 엠마오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믿게 된 것은 언제 믿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셨을 때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에게 다가가셔서, 성경 말씀을 가르쳐 주시면서,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을 왜 믿지 못하느냐? 인자가 고난을 당하고,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이라고 성경 말씀에 예언되어 있지 않느냐고 말씀하시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주었을 때, 그때서야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다른 제자들에게 이야기했어요.

다른 제자들에게 이야기하니까 다른 제자들이 “아, 그렇구나.” 하고 환영하면서 기뻐하면서 이 제자들의 말을 믿어주었을까요? 안 믿어줬어요. 그럼 언제 믿었어요? 예수님이 또다시 나타난 10명의 제자들이 모여 있는 그 자리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었을 때, 그 10명의 제자들이 믿을 수 없는 그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죠.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 없도록,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그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믿게 된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마침 그 자리에 없던 도마가 있었으니까, 그 도마에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어.” 한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10명의 증인들이 이 도마에게 이야기했을 때 , 10명이 얘기하니까 도마가 믿었나요? 안 믿었어요. 왜 의심이 많아서 아니 안 믿는 게 정상이기 때문에 안 믿는 거예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안 믿는 거예요. 10명의 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해도 도마는 믿을 수 없는 겁니다. 내 손으로 예수님의 손에 손가락으로 넣어보고, 내 손으로 예수님의 허리에 그 내 손을 넣어보고, 그래서 예수님인지 만져봐야 내가 믿을 수 있겠다고 이야기하고 믿지 못한 거예요. 하지만 결국 믿었어요. 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일어났다고 하는 예수님의 부활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예수님을 보았습니까? 어떻게 부활하셨다고 믿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믿을 수 없고 거부하고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던 그 제자들이 그들의 마음이 바뀌어서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예수님을 믿고 고백하는 성도들이 많이 나타났다고 하는 그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1세기 유대인들의 신앙은 어떤 신앙이었는가?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는 유일신 신앙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유일신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 외에 또 다른 하나님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목숨을 내놓고 그 유일신 사상을 수호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유대인이었습니다. 또 다른 신이 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목숨을 걸고 거부하면서, 유일신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들이었죠. 오늘날의 무슬림들이 알라신 외에 다른 신이 있다고 하는 것을 부인하고,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것 이상으로 유대인들이 그랬는데, 그런 유대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예수님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 삼위일체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만이 아니라 예수님도 하나님이라고 하는 그 삼위일체의 신앙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성도들이 1세기에 갑자기 많이 생겨나게 되고, 교회가 계속해서 계속 진행되어서 오늘까지 왔다고 하는 그 역사적인 사실을 보면서, 그때에 “정말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그들에게 나타났었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미루어 알 수가 있는 것이죠.


만일 우리들의 아이들이 평상시에는 몸 가꾸는 것에 대해서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세수도 안 하고 머리도 안 감고 그냥 더럽게 하고 다니고, 신경도 안 쓰고 다니던 어떤 우리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머리를 빗기 시작하고, 화장을 하기 시작하고, 옷을 잘 입고 다니고 자꾸 자기 몸에 신경 쓰면서 다니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겁니다. 그렇잖아요? 좋아하는 사람을 볼 수가 없어도, 우리가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어도, 우리 아이들의 행동이 변화되는 것을 보면, “이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가 생겼구나”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밭에 있는 수많은 곡식들이 자라나고 수많은 채소들이 자라나는 것을 보면 누군가 그 논에 씨를 심었고 밭에 씨를 심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당연히 알 수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한 성도들이 초대교회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면서까지 예수님을 안 믿었다고 하면, 평생 승승장구하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던 바울 사도와 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면서,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놓는 그런 믿음의 사람들로 변화된 그 수많은 성도들이 있어서 그 믿음이 지금까지 전해져 왔다고 하는 사실을 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하는 것을 지금 2천 년 오늘 우리도 미루어 알 수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도 여전히 아직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이 계시다고 한다면 책을 하나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리 스트로벨이라고 하는 사람이 지은 <예수는 역사다>라고 하는 책입니다. 이미 오래전에 나온 책이고 베스트셀러였기 때문에 아마 읽어보신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이 리 스트로벨이라고 하는 사람은 기자 출신입니다. 저널리스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 가족이 교회를 다닌다고 하니까, 정말 확실하지도 않은 이런 엉터리 신앙에 우리 가족이 빠지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정말 예수님의 부활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기자 정신을 가지고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은 무신론자였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부활을 믿지 못하던 사람인데,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하나씩 하나씩 증거들을 수집하고, 정말 이 부활이 있었는가 없었는가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하다가, 결국 이 리스토로벨이라고 하는 사람은 나중에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고백하며 교인이 됐어요. 그리고 나중에 윌로우 크릭 교회의 목사가 되기까지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직 마음속에 잘 모른다고 한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하는 이 사실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그 예수님의 부활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오늘 우리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 것인가요?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도 역시 부활할 것을 믿고 소망 가운데 살아가야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 말씀에 보면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그랬습니다. 열매가 하나 맺히게 되면 그 열매 하나 맺히는 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 같은 열매가 계속해서 맺히게 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면, 오늘 우리들의 부활도 있을 거라고 하는 사실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우리가 기쁨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부활을 우리가 믿는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슬픔과 고통 때문에 때로는 죽음 때문에 우리가 좌절하고 절망할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인생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 많아요. 행복한 일보다는 고통스러운 일이 많고,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보다는 절망적인 일들이 많고,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가운데 슬픔과 고통이 아픔이 정말 절망적인 일들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일들이 우리들의 삶 가운데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고 우리가 다시 부활할 것을 안다고 한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만나는 그 어떠한 어려움과 고통에 절망할 것이 아니라,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우리가 조그마한 업적을 이루거나 성과를 이루었다고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서 교만하거나 자고할 것이 아니라, 오로지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 부활이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제 그 옛날 이 수많은 사람들이 부활의 증인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 모두도 부활의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아직도 부활이 무엇인지 모르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떠한 소망을 주었는지 몰라서 슬픔 가운데 있는 사람들,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변하는 그 모습을 보고, 우리가 부활의 증인이 된 그 모습을 보고 그들도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도 부활의 증인이 되겠다고 하는 그런 다짐 가운데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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