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를 언제 시작했는가 한번 살펴봤더니, 2021년도 10월달부터 로마서 강해를 시작했습니다. 몇 번이나 했을까 봤더니, 지금까지 총 58번의 로마서의 말씀을 가지고 함께 살펴봤는데요. 오늘로써 로마서 16장 마지막 장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로마서 강해 대단원을 마무리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동안 띄엄띄엄해왔기 때문에, 사실이면 한 1년 정도면 할 수 있는 것인데, 3년에 걸쳐서 지금까지 3~4년에 걸쳐서 해왔는데요.
오늘은 로마서 16장의 말씀을 보면, 여러 내용들이 있기 때문에, 사실 여러 번에 걸쳐서 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로써 마무리를 해볼까 싶습니다. 16장 1절에서부터 16절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여러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동역자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그들에게 문안 인사하는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고요. 뿐만 아니라 21절에서부터 27절 가운데도, 문안 인사와, 그리고 찬양하는 내용들이 있어서, 그런 부분들도 묵상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오늘 17절에서부터 20절까지를 읽었는데, 17절부터 20절까지의 내용은 이 로마서의 긴 내용의 편지를 쓰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이 로마 교회를 향해서 마지막으로 권면해 주고 있는 말씀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에 하는 말이라고 한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요? 많은 얘기를 했지만, 지금까지 여러 내용들을 이야기했지만, 이제 마지막으로 정리하면서 이야기를 해준다고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마지막 부분에 담았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아마 앞에서 했던 말을 또 반복할 겁니다. 앞에서 했던 말을 또 반복하기는 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다시 한번 마지막에 강조하고, 다시 한번, 또 한 번 이야기해서 정말 중요한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을 오늘 이 말씀 가운데 적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가 이 말씀을 한번 묵상하면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겠다 생각이 드는데요. 우리 교회가 벌써 11년이라고 하는 역사를 가지고, 지금까지 걸어오고 있는데, 과연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나갈 것인가? 우리가 과연 어떻게 방향을 정하며 나갈 것인가? 어쩌면 그 옛날 바울 사도가 로마 교회를 향해서, 마지막으로 권면했던, 그 말씀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아주 적절하고 유익한 말씀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보면 특별히 두 가지를 권면하고 있다고 볼 수가 있겠는데요. 먼저 권면하는 내용은 로마서 16장 17절에서부터 18절 말씀 가운데 기록돼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바울 사도가 이 로마서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강조하고 싶었던 내용이 무엇이냐면, 우리 교회 안에 잘못된 가르침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사람들의 믿음을 세워주고 바른 길로 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을 넘어뜨리고 무너뜨리는 복음의 장애가 되는 것들을 놓는, 그런 악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을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설명하면서,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해라? 떠나라! 그런 사람들과 결별하라 그렇게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교회니까, 서로 사랑으로 품고, 지내자.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로마 교회로 하여금 넘어지게 만들고, 로마 교회로 하여금 잘못된 가르침으로 빠지게 하는, 그런 위험한, 그런 잘못된 가르침을 결별해 버리고, 바른 믿음을 가지라고 그렇게 권면해 주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이 당시에 바울 사도가 가르쳤던, 이 복음과 정반대의 잘못된 사상을 가르치고 있던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그 사람들은 바로 할례주의자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었죠. 이 유대인들은 주장하기를 우리가 예수님 믿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으려고 한다면, 먼저 할례를 받고, 유대인이 되고, 그다음에 예수님을 믿어야지,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예수님 믿는 것은 아무 의미 없다고 말하면서, 수많은 이방인들의 마음 가운데 대못을 박아버리고, 인종차별을 하면서,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을 복음에서 떨어지게 만드는 일들을 했던 사람들이 바로 할례주의자들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런 할례주의자들에 대해서 경고를 하면서, 참된 복음이 아닌 거짓 복음, 진짜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잘못된 가르침에 속아 넘어가지 말고, 그 사람들과 결별해 버려라. 그 사람들과 함께하지 말라고 권면해 주고 있는 것이죠.
어쩌면 우리들이 기억해야 될 아주 중요한 메시지일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우리가 바른 믿음 가운데 서 있어야 되는 것이죠. 성경적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잘 가르치는, 그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우리가 바로 서 있어야 되는 것인데, 그게 아니라 잘못된 가르침에, 우리가 미혹이 되어서 끌려가게 된다고 한다면, 결국 영적인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될 것이고, 맹인이 맹인을 끌고 가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잘못된 가르침, 잘못된 교훈을 따라가다가는 망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되는가? 정말 진리 위에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바로 서는 우리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잘못된 가르침을 우리가 듣게 된다고 한다면 아주 영적인 손해가 클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제대로 된 참된 복음과 잘못된 가르침 이걸 어떻게 구분하면 좋을까요? 이 세상에 이단들도 많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가르침들도 너무나도 많이 넘쳐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가 바른 믿음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한 잘못된 사상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단들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복음을 제대로 연구하는 겁니다. 무엇이 진짜 복음인가?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인가? “무엇이 성경께서 말하고 있는 그런 온전한 복음인가?”라고 하는 것을 제대로 배우면, 우리가 잘못된 가르침을 듣게 되었을 때, “이건 아니구나” “이건 잘못된 가르침이구나” 분별할 수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어야 될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잘 배워서, 잘못된 이단 사상이나, 잘못된 가르침에 속아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참된 복음 위에 믿음을 계속 세워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특별히 바울 사도는 권면하면서, 무슨 이야기를 했냐면, 지금까지 로마 교회가 가르침을 받아왔는데, 그 교훈을 들었는데, 그 교훈에서부터 벗어난 가르침을 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라.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우리가 처음 들었던 게 옳다는 이야기일까요? 무슨 얘기일까요? 그게 아닙니다. 처음 들었던 게 무조건 옳다고 하는 그런 말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 맞는 복음을 받아들여야 되는 것이죠.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우리 위해 내어주셨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게 만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요,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하는 복음의 기쁜 소식을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 할례주의자는 어떻게 되겠는가?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는 충분하지가 않고 무엇을 먼저 해야 된다? 할례를 받아야 된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것으론 부족하고, 내가 무엇인가를 더 해야 되고, 무엇인가를 더 해야 될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을 통해야 되고, 어떤 신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통해야 되고, 잘못된 복음들이 우리 사회에 많이 퍼져 있는데, 그러한 것들에 현혹될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참된 복음을 굳건하게 붙잡는 우리 예수비전교회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지금 우리가 성경 읽기를 하고 있는데, 성경 읽기를 하는데 금년에는 굉장히 많은 분들이 계속해서 성경을 잘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봤더니, 유튜브를 통해서 읽으니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내가 성경을 찾아서 읽으려고 하면, 때로는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중단하기도 하고 하는데, 매주일 저녁때마다 유튜브 영상을 올려주고, 그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 들으면서 보면서 성경을 읽으라고 하니까, 지금까지 성경을 계속해서 꾸준히 읽어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다 하고 계셔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큰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여기에 장점만 있는 게 아니라, 단점도 있더라고요. 무슨 단점이 있을까요? 그 성경 동영상을 듣고 난 다음에는 또 다른 동영상이 또 나오는 거예요. 연관돼 가지고 알고리즘으로 해가지고, 내가 성경을 읽고 난 다음에는, 그다음에는 다른 영상들이 쭉쭉쭉쭉 올라오는데, 그 영상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잘못된 영상도 올라오는 거예요. 어떤 때는 이단의 가르침도 올라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성경 말씀을 잘 읽고 은혜를 받았는데, 그 뒤에 또 다른 추천 영상이 딱 올라오는데, 이단의 영상이 올라오고 잘못된 가르침의 영상이 올라오고, 그런데 우리가 보면 성경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신앙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이것도 괜찮은 거구나” 생각하고 계속 보다가는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단 말이에요. 이게 큰 단점이 돼요. 그래서 우리가 조심스럽게 분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냥 무조건 유튜브에 떠도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그냥 맹목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쳐주고 있는 것인가? 다시 한번 또 판단하고 분석하면서,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다고 한다면, 받아들이지만, 사람들이 많이 봤다고 해서 진리가 아니고, 유명한 사람이 말한다고 해서 진리가 아니고, 나에게 제공이 된다고, 유튜브에 떠올라 있어 영상이 좋아 보인다고 해서 진리가 아니라, 성경 말씀에 근거한 것인가? 근거한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분별하면서 우리가 믿음을 제대로 잘 지켜 나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혹시 보다가, 이상하면 물어봐 주세요. 그냥 그냥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아 이런 영상이 있었는데, 어떻냐고 물어봐 주시면, 그때그때 대답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오늘 이 본문의 말씀 가운데서 바울 사도는 이 로마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참된 복음 가운데 서라. 잘못된 가르침을 하는 사람들과 결별하라. 그 잘못된 사람들을 따라가지 말라. 이 말씀. 왜냐하면 바른 진리 위에 서 있는 것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마지막 부분에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강조하고 있는 것이 있어요. 그 두 번째 강조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선한 일에 지혜로워라”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선한 일을 지혜롭게 하라고 권면해 주고 있는데, 이렇게 권면해 주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이 우리의 신앙의 영역이 아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른 진리를 알고 바른 진리를 마음속에 받아들인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어디까지 연결이 돼야 됩니까? 그 바른 믿음 안에서 우리들의 선한 삶이 나와야 되는 것이죠. 우리의 가정 가운데서, 우리의 직장 생활 가운데서, 사람들과의 대화 가운데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그 모습이 사랑을 실천하고, 선을 행하고, 이런 모습들로 드러나야, 그게 진짜 믿음인 것이지, 머릿속으로는 바른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머릿속으로는 정통이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그 삶 가운데서 전혀 선이 나타나지 아니하고, 사랑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이 로마서를 마무리하면서 이 두 개를 아주 정확하게 권고해 주고 있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선한데 지혜롭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냐하면 이 세상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기에 어려운 세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이 세상은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입니다. 선은 실패하고 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입니다. 내가 선을 행하며 의롭게 살려고 하면 그 사람은 망하는 것 같고, 그런데 악을 행하며 죄악을 저지르며, 온갖 욕심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날마다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 가운데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왜 이 세상 이 모양이 꼴일까요? 왜 악은 승리하고 선은 늘 실패하는 걸까요? 그것은 아마도 제 생각에는 악한 사람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쓰기 때문에 그래요. 하지만 선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악한 사람이 쓰는 수단을 못 써요. 우리는 칼로 찌를 수 없어요. 우리는 총을 쏠 수도 없어요. 하지만 악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동원해서 악한 방법을 사용해서 싸우기 때문에, 그 싸움에서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싸움 가운데서 누가 이기는가? 항상 악한 사람이 이기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이 선한 일을 계속할 수 있겠는가? 선한 일을 계속하기가 어려운 것이죠. 왜냐하면 늘 악이 승리하는 것 같으니까, 내가 악한 편에 동조하고 악인과 함께해야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이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악한 일에 동조하고 악한 일을 하게 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선택일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 당장은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은 가라지가 온 밭에 퍼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추수 때가 되면 그 농부들이 알곡은 모아서 곳간 안에 들이고, 그리고 가라지는 모아서 불덩이에 던져버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결국 악인을 심판하고 멸망시키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당장 이 세상이 악한 사람들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악을 행하며 악과 동조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그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인데요. 어떻게 하면 선한 일을 계속할 수가 있겠습니까? 첫 번째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선을 행하지만, 그 선을 행하는 결과가 없을 가능성이 많은데, 내가 수고하고 눈물을 흘리고, 내가 사랑을 베풀고 내가 선하게 행했지만,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고, 인정해 주지 않고, 오히려 내가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서 낙망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인내하면서 끝까지 선을 행해야 되는 것이죠. 갈라디아서 6장 9절의 말씀에 이런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내가 선을 행하면, 사람들이 나를 이용해 먹어요. 내가 사랑을 베풀면 사람들이 나를 무시해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어려워요. 선을 행하며 산다고 하는 것은 내가 오히려 정말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들어가는 것만 같아요. 그래서 아무런 결과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낙심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둘 것이라고 하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인내하며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어떻게 해서 선을 계속 행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의 통치자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죠. 악한 자가 승리하고 있지만, 그 사람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주관자라고 하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겁니다. 그게 바로 다니엘이 깨달았던 거예요. 다니엘은 지금 어떤 상황 가운데 들어가 있습니까? 포로로 잡혀와 있는 것이죠. 바벨론이라고 하는 왕국이 세계 최대 강대국이 되어서 전 세계를 정복해 버렸습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 성전도 무너뜨려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멸망시켜 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저 바벨론에 끌려와서 바벨론 왕의 그 명령 가운데 복종하며 살아야만 하는 그 상황 가운데 있게 된 것이죠. 그래서 이 세상을 누가 다스리고 있는가? 이 바벨론의 명령 하나면 나는 새도 떨어지는 것 같고, 바벨론 왕이 명령하면 모든 것들이 다 결정이 되는 그 세상에 살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바벨론의 왕 앞에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가운데 살게 된 것이죠.
하지만 그 순간에 이 다니엘이 깨닫고 발견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벨론의 왕이 최고의 통치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린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왕을 세우기도 하고 왕을 폐하기도 하신다는 사실이에요. 다니엘서 2장 20절에서 21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혼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바벨론 왕이 저렇게 정말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온 세계를 호령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폐하시면 폐해지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흔들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제일 우리가 느끼고 있는 가장 강력한 파워는 무엇입니까? 돈의 힘이죠. 돈이 이 세상을 주장하는 것 같고, 돈이 온 세상을 호령하는 것 같아서, 그 앞에서 고개 숙이고 그것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거짓말하고, 그것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우리가 사기도 치고, 그것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악한 일도 해가면서, 그래서 그 앞에 모두가 머리를 조아리고 이 돈의 명령에 우리가 순종해야 되겠다고 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될 믿음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을 돈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을 인정하시고 위로해 주시고, 결국 눈물을 닦아주실 거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로마서 16장 19절 말씀 가운데서 우리를 향해서 권면해 주시는 말씀이, 그러므로 너희는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권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6절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가 지혜롭기만 해서 악에 동조할 수도 없는 것이고, 우리가 지혜로우면서 동시에 순결하게 선한 일에 지혜로운 그런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질문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질문은 항상 무슨 일을 행동하기 전에 무엇을 결정하기 전에 먼저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하는 것이죠. 과연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선한 일일까? 아니면 내가 이 세상에 악한 영의 세력에 굴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그런 악한 일에 내가 굴복하는 것인가? 과연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선한 일일까? 아니면 사탄이 기뻐할 만한 악한 일인가를 질문을 던져야 되는 거예요. 무슨 일을 하기 전에 그냥 아무렇게나 행동해 버릴 것이 아니라, 선한 일에 지혜로워라고 했기 때문에 늘 질문을 던지면서, 이것이 선한 일일까? 악한 일일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일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일일까를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이죠.
질문을 던질 때 우리가 생각해야 되는 하나의 기준이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꼭 기억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대부분 우리가 분노 가운데서 결정하는 대부분의 모든 일들은 악한 것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화가 난 상태에서 내가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악한 생각일 가능성이 많아요. 낙망 가운데서 결정하는 내 결정이 대부분 악한 생각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슬픔 가운데서 결정하는 슬픔 가운데서 떠오르는 생각들은 대부분 악한 생각일 가능성이 많아요. 그래서 우리가 감정에 이끌려서 분노하는 감정과 슬픔의 감정과 절망의 감정과 여러 가지 주님께서 원하지 아니하는 그런 감정 가운데서, 내가 내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그런 감정들에 이끌려서 함부로 결단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 순간에 한 번 더 뒤로 물러서서 기도하며 엎드려야 하는 것이죠. 주님 과연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입니까? 주님께서 저희로 하여금 선한데 지혜로라고 했는데, 과연 이것이 선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내린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의 뜻을 생각하며 기쁨과 찬송 가운데 내리는 결정이 아니라, 화가 난 상태에서 분노 가운데 또는 절망 가운데 슬픔 가운데 내 감정에 치우져, 아무렇게나 결정해 버리는 사탄이 우리를 붙들고 인도하는 대로 끌려가는 그러 잘못된 결정들을 내리지 않게 해 주옵소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분노하는 것은 성경은 가르치기를 해가 질 때까지 분노하지 말고, 그것을 해결하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분노는 사탄이 우리를 장악하기 위한 열쇠이기 때문에, 우리가 분노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의 열쇠를 사탄에게 넘긴 거예요. 우리가 슬퍼하는 순간 우리가 절망하는 순간 우리들의 마음의 열쇠를 사탄에게 넘겨주어버렸기 때문에, 그 순간에는 사탄이 우리를 인도하는 대로 운전하는 대로, 우리의 감정에 따라 끌려다니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결정들을 할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기도해야 될 기도의 제목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 주님께서 저희들의 마음에 파수꾼을 세워 주셔서, 날마다 날마다 선한 일에 지혜롭게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분노 가운데 결정하지 말게 하시고, 슬픔 가운데 절망 가운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지는 않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 사탄이 이끄는 대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과연 하나님께 기뻐할 일이 무엇인가 기도하며 결정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사람들이 돌을 던지고 침 뱉고 모욕을 하는 그 상황 가운데서 분노 가운데 12 영을 불러서 천사들을 동원해서 그들을 멸망시켜 버린 것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주님을 향해서 기도하기를,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무엇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뜻인가를 깨달았고, 마지막 자신을 향해서 돌을 던지고 침을 뱉는 그들을 향해서, 오히려 용서의 기도를 하신 우리 주님이신데, 사실 그러한 그 주님의 놀라운 은총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이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공로도 없고 아무런 자격도 없는 우리들을 주님께서 사랑해 주시고 품어주시고 용서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며, 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선한데 지혜롭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