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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열매 (창 3:1-7)

하나님께서 만드신 에덴동산이 있었습니다.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바로 그것이죠. 아담과 하와가 살았던 곳이 바로 에덴동산이라고 하는 그런 낙원입니다. 모든 것이 다 풍성하고 또 거기에는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곳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슬픔과 아픔과 고통 이런 것들이 참 너무 많잖아요. 하지만 그곳에서는 아무런 아픔도 고통도 없었고, 슬픔도, 여러 가지 참 안 좋은 것들이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행복한 곳이었고, 지상의 낙원이었던 곳이 바로 에덴동산이라고 하는 곳이죠. 혹시 거기 가보신 적 있습니까? 아무도 없을 것 같은데요. 저도 그곳에 가본 적은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아는 것인데요.


그곳에 아담과 하와라고 하는 인류의 조상들이 거기에 살았다고 창세기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곳에서 영원히 계속해서 살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도중에 추방당하고 말았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그리고 그 결과로 우리들 인류의 첫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아담과 하와가 쫓겨남으로 말미암아, 그 이후에 태어나게 된 모든 사람들이, 에덴동산이 아닌 바로 이 세상에서, 슬픔과 아픔이 있는 곳, 절망이 있는 곳,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운 곳이 있으며, 심지어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는 그런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창세기 3장의 말씀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부터 추방당하게 되었는가? 그 슬픈 이야기, 어쩌면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불행한 이야기를 오늘 본문에서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우리가 창세기 3장 전체를 다 읽지 않았지만, 그래도 알고 있는 것처럼,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부터 추방을 당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과 악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어요. 우리가 흔히 선악과라고 부르는데,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라고 되어 있습니다.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요. 그렇게 하면 너무 기니까, 그냥 편의상 선악과라고 말했으면 좋겠는데요. 하나님께서 그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하지 말라고 하면, 꼭 먹어요. 하지 말라고 하면, 꼭 하는 게 우리 인생일까요? 하와는 그 선악과를 먹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죠.

어느 날 잘 지내고 있던 하와에게 뱀이 접근해서 유혹을 했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라고 유혹을 한 것이죠. 이 창세기의 말씀을 읽으면서 뱀에 대해서 아주 나쁜 동물이라고 그렇게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우리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사탄을 뱀이라고 표현해 주고 있고, 또 용이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뱀에 대한 그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다가 뱀을 보면 막 죽여버리려고 하는 그런 마음들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 사실은 뱀이 나쁜 동물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물이고, 우리가 또 보호해야 될 동물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 뱀을 사탄이 사용한 것이죠. 사탄이 그 뱀을 이용해서, 하와에게 접근한 것이고, 그래서 그 뱀이 하와로 하여금, 타락하게 만든 것입니다.


사실 뱀만이 문제가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사탄이 사용하면 악의 도구로 바뀌어버릴 가능성들이 다 있는 것이죠. 모든 동물들이 마찬가지고 모든 게 다 마찬가지일 겁니다. 사탄은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먹게 만들었는데, 사탄이 사용한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을 불신하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쁜 하나님으로 오해하게 만든 것이죠.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는데,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그 하나님이 나쁜 하나님이라고 그렇게 어 속인 겁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있다고 하면 무엇이겠습니까? 왜 먹지 말라고 했을까요? 간단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아담과 하와를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기 위해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것을 먹으면 재앙을 입게 될 것이고, 그래서 그 재앙을 만나지 말게 하기 위해서, 아담과 하와를 보호하기 위해서, 다른 건 다 먹어도 되지만,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신 것입니다.


누구의 마음과 같을까요? 우리 부모님의 마음과 같은 것이죠. 우리 부모님은 아이들을 보면서 이런 이야기도 해주고 저런 이야기도 해줍니다. 위험한 곳에 가지 마라. 말씀해 주는 거예요. 왜요? 사랑하니까 부모가 우리 자녀들을 향해서 말을 하는 겁니다. 나쁜 친구들하고 사귀지 마라. 이야기하는 거예요. 왜요? 친구들과 노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우리 아이가 행복해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 아이가 더 잘 되기를 위해서, 그래서 부모님이 그런 사랑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죠. 하나님이 누구신가? 마치 우리의 영적인 부모님과 같은 분이시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를 보호하고, 아담과 하와가 정말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고 영원히 잘 살기를 원하는 그런 마음 때문에,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죠.


하지만 사탄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게 만드는 겁니다. 사탄은 언제나 잘못된 것이라고, 잘못된 방법으로 자꾸만 오해하게 만드는 것이죠. 하나님은 사랑의 마음으로 선한 의도로 아담과 하와를 향해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사탄은 하와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불신하게 만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그것을 먹으면 눈이 밝아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너희는 하나님과 같은 수준이 될 것이다. 너희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똑같이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서, 너희를 그냥 그 상태로 짓눌러 버리기 위해서, 너희가 더 성장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래서 먹지 말라고 한 것이라고, 하나님의 의도를 악한 것으로 속여버린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 거짓말에 우리는 얼마나 잘 속아 넘어가는지 몰라요. 진리를 바라봐야 되는데 진리가 아닌 거짓에 우리의 마음은 속아 넘어가는 겁니다. 결국 하와는 그 사탄의 유혹 앞에서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선악과를 먹었고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안타까운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죠. 무엇이 문제입니까? 선악과라고 하는 과일을 먹었다고 하는 게 그렇게 큰 죄인가요? 선악과라고 하는 과일 하나 먹었다고, 사람을 죽여버리는 것이라고 오해하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이 선악과를 먹었다고 하는 것에는, 과일을 먹었다고 하는 것보다도 더 큰 문제가 그 밑에 깔려 있는 겁니다. 그 문제가 뭐예요?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이 있어야 될 자리에 정말 가치 없는 선악과가 그들의 마음 가운데 왕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하나님이라고 하는 분을 내 마음의 왕좌의 왕으로 모시고,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한다면, 그 삶은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전에 에덴동산에서의 삶은 그야말로 행복한 삶이었을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대로,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에덴동산에서의 삶은 아픔도 없고 슬픔도 없고, 외로움도 없고 고통도 없고 죽음도 없고 하나님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런 삶인 겁니다. 하나님이 나의 마음의 왕으로 계실 때에는, 아무 문제 없이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된 것이죠. 하지만 사탄의 유혹 앞에서, 하와는 그 마음속의 하나님을, 그 마음속의 왕좌에 앉아 있는 하나님을 거부해 버리고, 이 하나님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이 하나님이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해 준다고 하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그 하나님을 거부해 버리고, 그 하와의 마음 가운데 선악과라고 하는 아무 가치도 없는 게 갈망의 대상이 된 거예요.

아무 가치도 없는 게, 그 마음의 왕좌 가운데 들어가 버려서 결국 탐욕이 그 마음속에 들어와 버렸고, 아무런 자신을 살릴 수 없는, 그 선악과가 자신의 왕이 되어버린 것이죠. 이게 바로 아담과 하와가 저질렀던 죄악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결과는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잖아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내 마음속에서부터 거부해 버리고, 아무런 생명도 없는 선악과가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게 될 때, 그 선악과는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없어요. 그 선악과는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가 없어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 우리의 마음의 주인이 되어버렸을 때, 그 결과 우리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부터 단절되고 분리되어 버렸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는 그 순간에 우리가 죽음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생명이 끊어지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도 죽지 않았잖아요? 아직도 살아있잖아요? 이렇게 따질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것 같지만 죽은 거예요. 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부터 잘려 나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무에서 혹은 화초에서 그 나무 가지를 꺾으면, 화초에서 그 꽃을 꺾으면, 그 꺾인 것들은 죽은 겁니까? 아직 살아있는 겁니까? 살아 있으나, 죽게 되어 있는 거잖아요. 왜 그렇습니까? 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살아요. 뿌리가 물을 공급해 주고 뿌리가 영양분을 공급해 주면서, 그래서 나뭇가지가 그 나무 둥치에 붙어 있을 때 생명을 공급받아서 살 수 있는 것이죠. 화초가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죠. 그렇지만 그것이 단절되어 버리고 난다면, 나무 둥치에서부터 잘려 나가게 된다고 한다면, 그것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버린 거예요. 생명을 더 이상 공급받지 못하는 거예요. 여기 멋있는 꽃이 피워져 있지만, 아름다운 화초를 만들어 놓았지만, 화분을 만들어 놨지만, 그러나 이게 오래가지 못해요. 일주일을 못 갑니다. 다음 주에는 다른 꽃이 와 있어야 돼요. 왜 그렇게 됩니까? 생명의 근원에서부터 단절되어 버렸을 때,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된 것인데, 바로 우리의 인생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되게 될 때, 그 인생은 자연스럽게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되어버린 것이죠.


나뭇가지가 잘리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바로 죽음의 증상들이 나타납니다. 전에는 푸릇푸릇하고 싱싱했던 나뭇가지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합니다. 그 나뭇가지에 달렸던 나뭇잎이 노래지고 떨어집니다. 그 나뭇가지에서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왜 생명의 근원 뿌리에서부터 잘려 나갔기 때문에 더 이상 살아나갈 수가 없는 것이죠.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부터 잘려 나갔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지금 살아있는 것 같으나, 죽음의 증상들이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나타나는 거예요. 슬픔이 나타나고 고통이 나타나고 외로움이 나타나고, 여러 가지 질병과 아픔과 모든 그 불만족스러운 것들이 왜 우리의 인생 가운데 나타나는가? 참되신 하나님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부터 멀어질 때, 우리의 삶 가운데서 죽음의 증상들이 나타나다가 결국에는 마지막에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되어버린 것이라 하겠습니다. 결국 우리가 육체적인 죽음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나중에는 영원한 죽음도 맞이하게 될 텐데, 하나님 영생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부터 잘린 인생은 소망이 없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질문이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하필이면 선악과를 만들어 놓고 먹지 말라고 만드셨는가? 차라리 선악과를 만들지 않고, 먹지 못하게 아예 기회 자체도 없애버렸다고 한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하시죠? 많이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지난번 우리가 톡투유 시간에 여러 가지 질문들을 받았는데 그중에 한번 나왔던 질문이 바로 이 질문이에요. 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이 타락할 걸 아시면서 왜 선악과를 만들어 놨습니까? 안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그런 질문들이 나오곤 하는데요. 그에 대한 대답을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고 한다면,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드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단 한 가지 진리가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파멸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일을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축복으로 주신다는 겁니다. 선악과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를 망하게 만들기 위해서 준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것을 보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가운데, 내가 누구인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런 존재예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하는 존재요. 그 하나님의 법칙을 잘 따르면서, 영원한 행복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그 관계로 우리를 불러주신 것이죠. 우리는 선악과를 보면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그 선악과를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 느낄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그 법칙에 순종하며 산다고 한다면, 선악과가 있는 것이 우리에게 해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운 것이 될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살 수가 있는 것이죠.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선악과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선악과만 우리들을 악하게 나쁜 결과로 빚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비슷해요. 선악과가 아닌 것도 우리가 잘못 사용하면 결국 재앙이 되고 말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그 모든 것들은 다 유익한 것일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을 잘못 사용하게 되면,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망하게 만드는 것이죠. 흔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돈이라고 하는 거예요. 돈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악한 건가요? 나쁜 건가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은, 저 주세요. 나쁜 게 아니고, 사실은 있으면 유익한 거예요. 편리한 거예요. 그것으로 많은 좋은 일도 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있으면 좋은 것이고, 편한 것이고 유용한 것이에요. 그러나 그 돈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절망으로 몰아갈 때가 있잖아요? 우리로 하여금 탐욕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우리를 죄악에 빠지기도 만들고, 우리를 타락하게 만드는 그런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데, 그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 돈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아니하고, 돈이 우리들에게 우상이 될 때, 결국에는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를 파멸시키는 도구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사랑도 역시 마찬가지. 사랑도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행복한 것입니까? 하지만 잘못 사용된 사랑은 우리를 파멸로 이끌게 만드는 것이죠. 결혼도 마찬가지. 요즘 11월에 결혼할 우리 청년 커플이 있어서, 매주 그 커플들을 불러다가 제가 매주 결혼 예비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우리 청년들에게, 결혼을 앞둔 청년들이 있으면, 늘 결혼하기 전에 제가 교육을 시키고 있는데요. 지금 몇 번 만났습니다. 몇 번 만나면서 제가 하는 얘기가 뭐냐 하면, 결혼이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좋은 것인가? 하지만 그 결혼이 천국이 될 수가 있고 지옥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따라서, 그 결혼 생활은 정말 행복하고 정말 기쁨이 넘치고 정말 좋은 천국과 같은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는데, 그런 선택을 우리가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런데 내 마음 가운데, 이기적이고 불신하고 비난하고 그러면서 그 가정이 지옥과 같은 가정으로 변해버릴 수 있는 선택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상대방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내가 낮아지고 내가 섬기고 내가 사랑을 더 베풀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이것이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 있는 두 가지 길이 놓여 있다고 가르쳐주고 있어요. 잘 기억해야 될 텐데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기도의 제목이 있다고 한다면, 주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을 선하게 사용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교만하고 이기적인 마음들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선하고 순종하며 겸손하게 선하게 사용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선악과라고 하는 나무를 주신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참된 사랑은 거부할 자유가 있을 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진짜 믿음은 무엇인가? 진짜 사랑은 무엇인가? 진짜 신실함은 무엇인가? 내가 거부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것이죠. 만일 에덴동산에 선악과가 없다고 한다면, 모든 것이 다 좋은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면, 그 아담과 하와의 믿음 아담과 하와의 순종은 진짜일까요? 가짜일까요? 아직 증명이 안 되는 것이죠. 언제 증명이 돼요? 거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을 때 그 믿음이 증명이 되는 거예요. 나 혼자 저 산속에 들어가서 아무런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면서 자연과 벗하고 묵상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누리면, 그게 진짜 평강이에요? 그게 진짜 마음의 평안이에요? 그런 기회가 없어진 것뿐이지, 참된 평안이 아니다 이 말이에요.

어떤 사람이 뇌물을 평생토록 한 번도 안 받아본 그런 분이 있습니다. 그런 분은 정말 정직한 분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은 한 번도 뇌물 받아볼 위치에 없었던 것뿐이에요. 그렇게 기회가 없었던 분에게 정직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죠. 거부할 수 있을 때 거부하지 않고 순종하는 것, 그게 참된 순종이고 참된 믿음이 되는 거죠. 오늘 우리의 사랑이 왜 고귀합니까?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사랑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왜 감동적이에요 왜 그게 고귀합니까? 저는 결혼식장에 갈 때마다 너무나도 감격스러워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당신만을 사랑하겠다고 서약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감동이 되는지 몰라요. 왜 이 세상에 수십억 명들을 다 버리고 오직 한 사람만 사랑하기로 서약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그 어떤 때라도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하겠다고 하는 게 그게 진짜 사랑인 것이죠. 거부할 수 있는 그 선택의 여지가 있을 때 그 사람만을 선택하는 게 진짜 사랑인 것이지, 아무런 선택권이 없는 로봇과 사랑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 그 자유로움 속에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음으로 순종하기를 기대하고 초대하고 계신 것인데, 안타깝게도 아담과 하와는 거기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삶도 사탄이 여전히 우리들의 마음을 향해서 시험을 걸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 옛날 한 번 아담과 하와를 시험하고 끝내버린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매 순간순간마다 우리들을 유혹하고 시험합니다. 하나님을 너의 마음속의 왕으로 모시지 말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니 마음대로 살아라 이 세상에 썩어질 것들을 갈망하며 살라고 우리를 향해서 유혹하고 있는 것이죠. 그럴 때 그 옛날 아담과 하와가 시험에 빠져서 타락해 버렸던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쉽게 포기해 버릴 것이 아니라, 사탄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사탄의 말에 순종하며 살아갈 게 아니라, 그 순간에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가 담대하게 승리할 수 있는 그런 믿음의 결단들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는데도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 같은 상황에 있을 때 사탄이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우리들을 유혹하게 될 겁니다. 시련을 당하게 될 때 사탄이 우리들의 마음을 유혹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정말 아무 쓸모없는 것들을 갈망하게 만들 겁니다. 그럴 때 그런 유혹에 넘어갈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며 담대하게 믿음의 승리를 해 나가야 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넘어갔던 것이 얼마나 참 우스운 일입니까? 하나님을 내버리고 그들이 선택한 게 뭐예요? 선악과를 선택했대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을 살릴 수도 없고,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도 없는 그 하찮은 선악과를 선택한 거예요. 그게 나의 왕이라고 선택한 거예요. 그게 얼마나 우스워요? 선악과가 도대체 뭐길래? 선악과가 뭘까요? 우리가 못 봐서 모르겠지만 선악과가 그렇게 맛있을까요? 맛있으면 두리안이 하니 맛있지, 선악과가 뭐가 맛있겠어요? 지혜롭게 할 만할까요? 아니요. 그게 얼마나 멋있고 예쁘게 생긴 과일일까요? 아니요. 별거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닌 그 허접한 그 과일을 하나님을 버리면서까지 갈망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그런데 사탄은 항상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살리지 못하는 것을 갈망하게 만드는 우리의 마음을 그때마다 내려놓는 그런 결단이 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의 헛된 것에 우리의 갈망을 걸 것이 아니라, 우리의 헛된 것에, 이 세상의 헛된 것에 우리의 소망을 거기에 둘 게 아니라, 우리 주님만이 나의 참 구원자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근원이신 우리 하나님에게서부터 잘려 나간 우리들에게 과연 소망이 있을까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거부하고 선악과를 선택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잘려나가게 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는 우리들에게 소망이 있겠습니까? 잘려 나갔는데요. 죽었는데요. 무슨 소망이 있을까요?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늘 실패하고 넘어진 우리들을 그냥 외면하신 것이 아니라 꺾여 있는 그 가지, 이제는 죽어버릴 수밖에 없는 그 가지들을 하나님께서 쓸모없다고 내던진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가지를 자신의 몸에 접붙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접붙임을 하는 걸 보니까 참 신기해요. 나무에다가 상처를 내고 찢고 거기에 가지를 집어넣고 붙이면 놀랍게 잘렸던 그 나뭇가지에서 싹이 나고 열매가 맺어요. 놀라운 일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바로 그 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셨어요.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어요. 그리고 그 대신 우리를 주님의 몸에 이식시켜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게로 연결되고, 그래서 우리가 다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만들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오늘도 다시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이제는 하나님에게서 떠난 인생이 아니라, 언제 어느 순간에든지 주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해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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