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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 (마 6:9-10)

오늘이 종교개혁 507주년을 기념하는 기념주일입니다. 종교개혁이 507년 전에 일어났으니까, 몇 년이죠? 1517년입니다. 1517년에 마틴 루터(Martin Luther)나 장 칼뱅(Jean Calvin)과 같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그 당시 타락한 교회를 개혁하고, 그래서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만들어 나간, 그런 역사적인 사건이 지금으로부터 507년 전에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탄생한 교회가, 바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교회, 개신교회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종교개혁주일을 우리가 맞이하게 됐는데, 그 당시 교회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종교 개혁을, 우리가 일으키게 된 것이죠.


그 당시 교회가 타락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 당시 교회가 어떻게 해서 타락하게 되었던 것일까요? 그렇게 타락한 과정, 이야기, 타락한 이유들을 우리가 살펴보지 아니하면, 그러면 똑같은 그런 타락들이 오늘날에도 반복될 수 있기 때문에, 그 당시 왜 타락했는가를 알고,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대응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당시에 타락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결국 성직자들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성직자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교회가 타락했던 것인데요. 왜 타락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성직자들에게 절대적인 권력이 주어졌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말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누군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게 되면, 결국은 타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게 사람의 속성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당시 성직자들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게 된 것은, 성직자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말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최고의 존재가 누구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이 가지는 그런 절대적인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내가, 내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말할 수 있다고 한다면, 내가 최고의 권한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그 당시 성직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자기들 마음대로 이야기함으로써, 결국 타락의 길을 가게 되었는데,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것은, 사실 하나님께서 엄하게 금하신 것을 위반하는 심각한 죄에 해당한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출애굽기 20장 7절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십계명 중에서 제3계명을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제3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그 죄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은, 어떤 것을 가리켜서 망령 되게 부르는 거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미국 영화를 보면, 미국 사람들이 욕을 하거나,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집어넣는 경우를 종종 보셨을 겁니다. 보셨습니까? 네! 영화를 보다 보면, 미국 사람들이 얘기를 하잖아요? “Oh, my God” 그래요. 무슨 뜻이죠? “세상에” 이런 감정을 표현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넣어서 그렇게 표현합니다. 또 말을 합니다. “Oh, Jesus.” 이야기하는데, 이게 무슨 뜻이죠? “제기랄” 이런 뜻이에요.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해서, 뭔가 욕을 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그런 표현들이, 미국 사람들이 많이 하는 표현인데, 이렇게 이런 식으로 욕을 하는데 감정을 표현하는 데,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제3계명을 어기는 것일까요?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심각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뜻을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고, 하나님의 뜻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거죠. 자신의 뜻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뜻인 양 포장하는 겁니다.

이러한 죄를 가장 잘 저지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성직자들이에요. 목사님들이에요. 목회자들이에요. 목회자들은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설교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위치에 서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그 목사님이, 그 성직자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과 자신의 잘못된 생각들을 전하게 된다고 한다면, 제3계명을 아주 심각하게 위반하는 범죄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제3계명을 위반하는 죄를 가장 잘 지을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물론 일반 성도님들도 그런 죄를 많이 저지를 수 있지만, 목회자들이 더 많이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설마 우리 목사님이 그럴까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가 있겠지만, 지금까지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까지 수많은 성직자들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면서, 자신,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자신의 탐욕을 채우고,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채우던 일들이 너무나도 자주 반복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에도 역시 그랬습니다. 당시 교황 레오 10세는 베드로 성당을 짓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알렸어요. 베드로 성당을 짓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고, 성당을 짓는 것, 성전을 짓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그렇게 가르친 것이죠.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좋아하실 것 같아요.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 같아요. 디스코장을 짓는다고 하는 게 아니고, 술집을 짓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니까, 정말 하나님의 뜻인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성전을 지어야 되는데, 헌금을 많이 드려야 하는 것이고, 헌금을 드리게 된다고 한다면, 여러분들의 부모님이 연옥에 있다가, 헌금을 드리는 그 순간에 여러분의 부모님이 천국으로 이동하게 될 거라고 가르치면서, 성전을 지어야 하고, 헌금을 드리는 것이 그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뜻이라고 가르친 것이죠.


성직자들이 말하는 그 말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것은 제3계명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범죄인 것이고, 그리고 그러한 맹인들이 이끄는 대로, 선량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 잘못된 그 성직자들의 말에 따라 움직이다가, 전 교회가 타락의 길로 걸어가게 된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종교개혁 507주년을 맞이하면서, “종교개혁의 본질이 무엇인가?”라고 하는 것을 질문하면서, 우리가 잘 구분할 수 있어야 되겠는데요. 종교개혁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진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된 가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종교개혁의 본질인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성직자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과 탐욕이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되어서, 우리들에게 전달될 때, 이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된 사람의 욕심이며, 잘못된 거짓된 가르침인가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꾸준히 거짓 선지자들의 등장을 경고해 오셨습니다. 신명기 18장 20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모세 시대 때도 벌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경고하셨어요. 어떤 선지자가 나타나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아니한 것을 그렇게 말한다고 한다면, 그는 거짓 선지자니까, 당장 죽여야 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강하게 경고해 주신 것이죠.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면서 거짓말하는 그런 거짓 선지자의 등장이 예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어 왔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역대하 18장에 보면 거짓 선지자들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전쟁을 하러 나가려고 하는 순간에, 이 두 왕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가 궁금했습니다. 우리가 만일 전쟁을 하게 된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해 주실 것인가? 우리가 전쟁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일까? 그들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을 불러서 선지자들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이 전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이 전쟁에서 이기게 해 주실 것인가? 우리가 전쟁에 나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를 물었습니다. 그때 400명의 선지자들이 아합 왕과 여호사밧 왕 앞에서 대답을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전쟁입니다. 왕들께서 이 전쟁에 나가신다고 한다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400명이나 되는 선지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전쟁이요, 승리하게 해 주시는 전쟁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 것이죠.

하지만 단 한 명의 선지자, 누구였습니까? 미가야 선지자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전쟁을 허락하지 아니하셨고, 이 전쟁에 나간다면 왕들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선포해 주었던 것이죠. 누구의 말이 맞았습니까? 숫자가 많은 게 정답이 아니고, 숫자가 많은 게 진리가 아니고, 400명의 거짓 선지자들의 그 거짓 예언과는 달리, 미가야 선지자의 참된 예언만이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나타난 예언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오늘날에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성직자들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 때에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여건 가운데 있습니다. 언제나 그런 위치에 있는 것이죠. 늘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성도들에게 알려주는 그런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이 목회자가 만일 정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고, 언제든지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인 양 거짓으로 가르치게 된다고 한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맹인을 따라가다가, 함께 구덩이에 빠질 수 있는, 그런 위험이 항상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잖아요? 메신저가 중간에서 농간을 부리면, 그러면 메시지가 달라지게 됩니다. 흔히 정치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무엇입니까? 대통령이 있어요. 그리고 그 대통령의 뜻을 시행하는 최측근들이 있습니다. 그 최측근들이 항상 대통령의 말을 듣고, 그리고 그 대통령의 말을 전달하면서 일을 시행하는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일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 그 최측근이 농간을 부리는 겁니다. 대통령이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마치 대통령이 이야기한 것처럼, “이것이 대통령의 뜻이다” 하면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그런 나쁜 마음을 품을 가능성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항상 조심해야 되는 거죠. 과연 그 메신저의 말이 진짜인가? 메신저의 말이 혹시 왜곡된 것은 아닌가? 정말 그 사람의 진정한 의도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우리가 다시 한번 검증해 보고, 검증해 보지 않는다고 한다면, 메신저의 농간에 의해서 놀아날 가능성이 언제나 상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조심해야 될 것이 무엇이냐 하면, 메신저들이에요. 누구의 말을 전달하는 그 메신저가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에 메신저들이 많습니다. 언론이 메신저잖아요? 메신저들이 “국민의 뜻이 이것이다”라고 전달하고 있는데, 그 언론이 만일 국민의 뜻을 왜곡해서 전달하면, 이 사회가 문제가 되는 거예요. 정치인들이 메신저잖아요? 국민들의 뜻을 잘 수합해서, 그래서 법을 만들어야 되는데, 그 정치인들이 잘못된 메신저를, 메신저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면, 엉뚱한 법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야 되는데,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아니하고, 목회자 개인의 이기적인 탐욕에 의해서, 잘못된 이야기를 전달하게 되면, 교회가 망가지는 길로 가게 되는 거예요. 여론조사를 하는데, 여론조사라고 하는 것은, 국민들의 뜻을 잘 반영해야 되는데, “누구를 몇 퍼센트 올려라” 그러면, 엉터리 여론조사가 되어버리고, 정말 모든 결과를 바꾸어버리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죠.


우리 처남이 한 번은 그랬어요. 우리, 제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되었을 때, 엄청나게 입덧을 했습니다. 입덧을 해서, 이것도 먹기 힘들고, 저것도 먹기 힘들고, 그런 상황 가운데서 저희 장모님께서 어떻게 하면, 우리, 제 아내에게 좀 뭔가를 먹여서, 건강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할까? 노심초사하고 있을 때, 제 처남이 제 장모님에게 가서 이런 얘기를 했어요. “엄마, 누나가 족발 먹고 싶대” 제 아내가 말하지 아니한,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고, 그래서 족발을 맛있게 먹었어요. 오늘 요즘 가서 물어보면, 내가 언제 그런 얘기를 했냐고, 발뺌을 하는 걸 봤는데요. 누군가 어떤 말을 한다면, 과연 그러한가? 정말 그러한가? 한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요. 제가 많은 피해를 당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교우들이 무슨 말을 할 때는, 이건 목사님의 뜻이야라고 말하면서 말을 하는데, 제가 말한 적이 없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목사님께서 원하시는 거야” 하면서 이야기하면서, 그 일을 성사시키려고 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혹시 찔리십니까? 혹시 누군가, 제가 이렇게 말했다고 말하고, 누군가 제가 이런 것을 원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거들랑, 제게 와서 꼭 한번 확인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성직자들이 그럴 수 있어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전달해 주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욕심과 탐욕에 의한 잘못된 이야기를 전달할 수가 있는 것이죠. 중세시대 때 우르바노스 2세 교황은 십자군 전쟁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당시에, 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던 이슬람교도들이 있었는데, 그 이슬람교도들이 성지를 장악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불편했던 교황과 성직자들은, 그 땅을 탈환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굳건하게 믿고,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을까요?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유럽에 살던 성도들은 그게 정말 하나님의 뜻인 것만 같았어요. 왜냐하면 그 예수님께서 활동하셨던 그 땅을 이교도들이 짓밟아버리고 있다고 하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웠고, 정말 신앙을 위해서 성지 순례라도 한번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저 이슬람교도들을 쫓아내 버리고, 성지를 탈환하는 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일 거라고 성도들도 그렇게 믿었던 것이죠.


하지만 정말 그게 하나님의 뜻이었을까요? 사실은 이 무모한 전쟁을 통해서 당시의 권력자들과 당시의 재력가들은 얻고자 하는 탐욕적인 목적들이 있었던 겁니다. 그 지역을 차지해서, 좀 더 무역을 쉽게 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신앙적인 사람들을 동원해서, 신앙적인 이유를 대면서, 신앙인들을 동원하는 그 일을, 너무나도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교황이나 권력자들의 힘을 빌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언했는데, 거기에 정말 순진한 성도들이 자원하면서, 십자군 전쟁에 참전하게 되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는데, 죽어 나갈 때, 자신을 순교한다고 하면서 죽어나갔고, 심지어 십자군 전쟁에 누가 참여했는가? 어린아이들까지 참전해서, 어린아이들이 무슨 전쟁을 하겠어요? 그런데 신앙적인 열정을 가지고 나아가서, 무참히 죽임을 당하는, 그런 안타까운 역사가 교회의 역사 가운데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성도들은 성경책을 읽을 수가 없었어요. 오늘날처럼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을 수 있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인가 하면서, 우리가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성경을 깊이 연구하면서, 정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우리들에게 있는데, 당시 중세시대 성도들은 성경책이 없었습니다. 성경책이 있었지만, 라틴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라틴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책이 있으나 마나였어요. 읽을 수가 없는 겁니다. 심지어 신부들도 라틴어를 몰랐기 때문에, 라틴어로 집전을 하면서도, 그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신부들도 모르는 상황 가운데서, 미사를 인도했고, 신부들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었어요.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다가, 결국 온 사람들이,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죠.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은 성경 말씀을 잘 읽으면서 정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불행한 일들이 오늘날에 다시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가 있을까요? 첫 번째는 목회자들이 각성해야 되는 거죠. 그 누구보다도 목회자들이 성직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연구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는 그러한 결단과 회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만일 하나님께서 말하지 아니한, 잘못된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속여서 가르친다고 한다면, 그것은 제3계명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범죄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 그런 사명을, 다시 목회자들이 회복해야 될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러면 우리 일반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오늘날에는 그냥 목회자들이 알려주는 것에 대해서 무조건 “아멘” 할게 아니고 무조건 아멘해도 됩니까? 아니요. 무조건 아멘 할 게 아니고,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정말 하나님의 뜻인가?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이 말씀에 맞는 말씀을 강단에서 선포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냉정하게 판단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아멘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한다면 아멘 하지 말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오늘날 목회자가 그럴듯한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잘못 선포할 가능성들이 존재하는 겁니다. 예를 들자면 교회당을 건축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생각해 보면 교회당을 짓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하나님을 위한 것인 것 같아요. 성전을 짓는 것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처럼 생각이 돼요. 그렇게 이야기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가기가 너무나도 쉽습니다. 목회자가 앞에 서서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하면서, 어떠한 잘못된 세력에 대해서 싸우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동할 수가 있어요. 그러면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그렇게 하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처럼 착각할 수가 있는 것이죠. 뉴스에 보면 사악한 목회자가, 여성을 성추행하면서 성폭행하면서, 이게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들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목회자라고 하는 그 사실에, 그냥 믿고 따를 것이 아니라,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런 뜻인지 뜻이 아닌지, 냉정하게 분별하면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순종하고, 그렇지 아니한 것이라고 한다면, 거절할 수 있는 믿음의 분별력이 필요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 15절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예수님께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들을 가르치려고 오는 양들을 무조건 다 받아들여라.” “따지지도 묻지도 말고 무조건 아멘 해라.”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한 번도 가르친 적이 없어요.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조심하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들에게 다가오는 이를 조심하라고 가르친 것이지, 무조건 아멘 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어요.

요한일서 4장 1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들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정통 교단에 속해 있으면 믿을 수 있을까요? 제일 좋은 신학교 정통신학교를 나왔으면 믿을 수 있을까요? 그것이 그 사람이 제대로 된 목회자라고 하는 것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거짓 선지자는 어떻게 오는가? 양의 옷을 입고 오는 것이죠. 정통을 입고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정말 부드럽게 다가오는데, 성경의 말씀을 우리가 늘 묵상하는 가운데,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포장한 잘못된 말씀인지 분별하면서, 우리가 정말 분별하지 아니하면, 양의 탈을 쓴 이리에게 먹히고 마는, 그런 안타까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진지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 말씀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정말 나쁘고 악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처럼 보이는 것으로 포장된 그럴듯한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나와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알려주는데, 사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게 너무나도 많다는 거예요. 보이스피싱 어떻게 합니까? 다 탄로 나게 접근하나요? 그게 아니라, 정말 그럴듯하게 접근을 하는 거예요. 진짜인가 보다 생각 들게 접근하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된 가짜 보이스피싱, 자기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한 그런 잘못된 가르침에, 우리가 영적으로 피해를 당하지 아니하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 가운데 한 구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기도해야 될 기도의 제목들 가운데 하나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겨짐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안타깝게도 가장 찬양을 받으셔야 하고, 가장 영광을 받으셔야 될 하나님의 이름이, 이 세상 가운데서 정말 악용되고, 그리고 무시당하고 더럽혀지고,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이 비참하게 정말 무시당하는 그런 일들이 이 세상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일일이 해석할 수 할 시간이 없겠지만, 오늘 우리가 제3계명과 연관시켜서 생각한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우리가 사용하면서, 마치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시켜서, 그래서 우리를 현혹하는 그런 일들로 인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지 아니하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될 것이고, 또한 정신 차려서 정말 이 시대에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기억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온전히 제대로 우리 가운데 정말 하나님의 뜻이 받들어질 수 있도록 위해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에도 현대판 십자군을 일으키자고 하는 소리들이 들립니다. 오늘날에도 현대판 거짓 선지자들이 판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오늘날에도 현대판 여러 가지 수많은 잘못된 가르침들이 우리 주변에서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 옛날 중세시대 때 교황과 신부가 하나님의 이름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사용하면서, 그래서 마음껏 그 권력을 쟁취하다가, 그렇게 타락해 버렸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비슷한 일들을, 하나님의 이름을 내가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만 있다고 한다면, 그것처럼 완벽한 권력, 그것처럼 완벽하게 자신의 입맛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묻지 마 신앙으로, 피해를 당할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묵상하고 연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연구하면서, 잘 배워나가 분별할 수 있는 능력들이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종교개혁 시대 때 마틴 루터와 칼빈은 어떻게 종교개혁을 일으켰을까요? 그 당시에 놀랍게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연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에 성경 연구가 없었던 그 시절에, 그냥 전통적으로 교회가 결정해서 이야기하면, 무조건 받아들이던 그 시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기 시작한 청년들이에요. 장 깔뱅과 또한 마틴 루터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연구했어요? 이 사람들이 히브리어 성경을 읽기 시작했어요. 헬라어 성경을 읽기 시작했어요. 라틴어로만 되어 있던 그 시절에 원서를 읽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원서를 읽기 시작했을까요? 역사의 아이러니죠. 십자군 전쟁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이슬람과의 접촉이 있었고, 동방과의 접촉이 있으면서, 동방 지역에서 보존하고 있었던, 원어 연구의 그 전통들이 유럽으로 들어오게 돼서, 르네상스가 일어나기 시작한 겁니다. 문예를 연구하기 시작한 겁니다. 원문을 보기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와 장칼벤이 교회의 가르침들만 들은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가운데, 교회가 이야기했던 것들이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다른 것을 이야기했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하고 교회 개혁의 기치를 들게 된 것이죠.


그러므로 결론은 무엇입니까? 성경 말씀을 읽어야 돼요. 읽고 계십니까? 읽어야 돼요. 읽을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균형 잡히게 좋은 관점으로, 그 성경 말씀을 잘 연구하고 분석해서,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진지하게 깨닫지 않는다고 한다면, 우리가 잘못된 착취를 당하는 길로 갈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아멘 하고, 순종하며 나가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단호하게 거절하면서,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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