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이 자신이 살고 있었던 땅에서부터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게 된 이야기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원래 살던 곳은 가나안 땅이 아니라, 가나안에서부터 아주 먼 지역인 갈대아 우르라고 하는 지역에 살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갈대와 우리가 어디죠? 오늘날로 치면 어디에 있는 지역입니까? 이라크 지역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그 이라크 지역에 살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어느 날 아브라함을 불러주셔서, 지금의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신 겁니다. 그 거리가 얼마나 되냐면, 약 1500km나 떨어진 곳으로 이주하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전주하고 서울 사이의 거리가 몇 킬로미터죠? 대략 200km 정도 되니까, 전주에서 서울 가는 거리에 약 7~8배나 되는 그런 먼 거리를 이동해서 이주하라고 하시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아브라함이 들었고, 아브라함이 그 말씀에 순종해서 갔다고 하는 이야기가 오늘 창세기 12장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고향을 떠나라. 가족을 떠나라. 내가 알려주는 곳으로, 네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아마 이 말씀을 만일 우리가 들었다고 한다면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요? 어떤 점에서 당황스러웠을 것 같습니까? 어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 익숙했던 곳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당혹스러울 겁니다. 지금까지 살고 있었던 곳,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였다고 했으니까, 정말 수많은 세월을 거기서 익숙하게 살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익숙했던 바로 그곳, 편했던 그곳을 떠나라고 하는 것,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겁니다.
뿐만 아니라 가야 하는 곳이 어디입니까? 전혀 모르는 곳으로 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전혀 모르는 곳, 거기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정말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는, 미지의 땅으로 가라고 했으니까, 정말 당혹스러웠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히브리서의 표현대로 보자고 한다면, 이 아브라함은 갈 바를 모르고, 도대체 어디로 가야 되는지도 모르고,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야 했었다고 하는 점에 있어서, 아주 당혹스러운 명령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브라함이 그 당혹스러운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죠. 가라 했을 때, 그 말씀에 순종해서, 부모의 집을 떠나서, 고향을 떠나서, 정말 새로운 땅인 가나안 땅을 향해 가게 되었고, 그 하나님께서 약속을 해 주신 것처럼, 그래서 결국 아브라함은 큰 민족을 이루게 되었고, 아브라함은 모든 민족이 복을 누리게 되는 복의 통로와 같은 사람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특별하게 한 사람 아브라함을 지명해서 아브라함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신 것이잖아요? 아브라함을 특별히 선택해서, 그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모든 민족의 아버지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그렇게 해 주셨는데, 이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도대체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다른 사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특별히 지명해서, 그 사람을 불러주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혹시 아시는 분 계십니까? 그 이유를 우리가 성경에서 찾는다고 한다면 잘 찾을 수가 없어요. 아브라함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착하고,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믿음이 좋았고,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신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정말 뛰어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일까요? 알 수가 없어요. 그런 점에 대해서는 성경에 대해 성경에서 단 한 구절도 그렇게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부르심을 받기 전에, 하나님의 명령을 받기 전에, 아브라함이 어떠한 사람이었는가에 대한 설명이 성경에는 단 한 구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아브라함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서 24장 2절에서부터 3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무엇을 섬겼으나?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죠. 아브라함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브라함의 아버지였던 데라가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고 있는 겁니다. 그 데라가 무엇을 했다고요? 우상을 숭배하던 사람이었어요. 다른 신을 섬기던 사람이었던 겁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아브라함은 다른 신을 섬기고 있었던,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던 사람이었을 거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까요? 그런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믿음의 사람이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까요? 무엇이 자연스럽겠습니까? 몰라요. 모르지만, 모르지만, 아마도 우리가 추측하건대, 아브라함도 아버지 데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겁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사람, 신실한 사람,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불렀다고 보기보다는, 아브라함도 데라처럼 그의 아버지 데라의 밑에서 살면서,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없는 불신자의 삶을 살고 있었을 가능성이 정말 많았던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주셨어요.
하나님께서 그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가? 아브라함에게 어떤 장점이 있거나, 아브라함에게 어떤 좋은 믿음이 있거나, 아브라함이 어떤 정말 뛰어난 어떤 면모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다고 보기보다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왜 부르셨는가? 이유를 알 수가 없는 것이죠. 오늘 우리가 예배 시간에 부른 찬송가 310장의 가사에 보면,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라고 하는 고백의 찬송을 우리가 불렀는데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 왜 부르시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을 때, 왜 나를 부르시는가? 하나님께서 왜 나를 선택해 주셨는가? 그 이유를 우리가 생각해 본다고 한다면 왜 부르셨어요? 잘생겼어요 돈이 많아서요. 우리가 뛰어나서요. 쓸 만하기 때문에,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아무런 하나님께서 부르실 만한 아무런 장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로 부르셨다고 하는 그 점을 우리가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출애굽기 33장 19절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데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내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내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은혜를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긍휼을 베풀 자에게 긍휼을 베풀었다고 하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저 사람은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에, 은혜를 베풀고, 저 사람은 긍휼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에, 긍휼을 베풀었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내가 은혜를 베풀고 싶어서, 그냥 은혜를 베풀었다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냥 하나님 마음에 아 저 사람에게 내가 은혜를 베풀고 싶다 생각하셔서, 하나님께서 임의로, 자의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고 하는 그런 의미인 것이죠. 사랑에는 이유가 있을까요? 그냥 한눈에 반해버리는 것이죠.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선택해 주셨는가? 우리에게 어떤 장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어떤 쓸 만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런 자격이 없는 저와 여러분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다고 하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불러주셨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게 바로 성경에서 성경 전체를 통해서 들려주고 있는 하나님의 그 모습입니다. 전적인 은혜(sola gratia)라고 하는 원리인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 속에 들어간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만큼 우리가 어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정말 어떤 뛰어난 면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요, 무조건적인 은혜였다고 하는 사실을 고백해야 하는 것이죠.
아무리 근사하고 멋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털어서 먼지가 나오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앞에 근사한 옷을 입고 화려하게 보이고, 정말 거룩하게 보이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사실 탈탈 털어보면, 여러 가지 모순들이 나오고, 여러 가지 단점들이 나오고, 부족한 것 없이 너무나도 많아서, 감히 앞에 설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부끄러운 것이, 우리 인생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격이 없는 우리들에게, 사랑의 손을 내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게 된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오늘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그런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를 부르셨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크다고 하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불러주신 것, 세리들을 불러주시고 창기와 같은 사람들을 맞이해 주신 것이죠. 주님께서는 바울 사도와 같이 이 교회를 핍박하는 하나님의 원수가 된 사람들을 불러주셔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삼아주셨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라고 하는 사실들을 특별히 더 기억하는 오늘 하루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아무런 자격도 없는 자를 불러주셨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한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우리도 우리 주변에 자격 없는 자들을 향해서, 사랑을 베풀고 은혜를 베푸는 삶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참 자격이 없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단점들, 저런 단점들 흠과 더러운 모습들이 눈에 보이는 것이죠. 그래서 만일 그러한 것들만 바라보고 그 사람들을 정죄하고 비난하고, 그 사람은 그런 단점들을 욕하고 책망한다고 한다면, 그것이 우리가 가질 바른 자세가 아니라, 허물이 많아도, 여러 가지 단점이 많다고 할지라도, 우리 주님께서 허물 많은 나도 받아주시고 용서해 주셨다고 한다면, 우리도 그 은혜를 깨달아서, 우리의 사랑을, 허물이 많은 사람들을 향해서, 연약한 사람들을 향해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우리가 회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민족은 잘못된 선민의식에 빠져버리고 만 것이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가? 어떤 자격이 있어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 그냥 일방적으로 불러주신 것이거든요.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어떤 강대국이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지혜가 뛰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을 불러주신 것이 아니라, 아무런 공로가 없어도, 그들을 불러주셨다고 한다면, 우리와 같은 연약한 자를 불러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주변의 민족들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이유를 깨닫고 이웃들을 향해서, 사랑과 선을 베풀어야 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들은 잘못된 선민의식에 빠져버리고 만 겁니다. 교만해버렸고, 그리고 다른 민족들을 바라보면서, 너희들은 선민이 아니라고 경멸하고 모욕을 하면서, 잘못된 선민 우월주의에 빠져버리고 마는 그런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만 것이죠.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그 이유를 망각하는 행위일 것입니다. 만일 어떤 학교의 학급에서 반장을 세운다고 한다면 왜 반장을 세우겠어요? 반장이니까 자랑하고 잘난 척하라고 반장을 세워준 게 아니고 그 반 아이들을 위해서 봉사하라고 뽑아준 거잖아요? 만일 대통령을 뽑는다고 한다면 왜 대통령을 뽑아요? 국민들의 삶을 좋게 만들어주고, 억울한 자의 그 억울함을 풀어주고, 눈물 흘린 자의 그 눈물들을 닦아주라고 대통령을 세워주는 것인데, 그게 아니라 자신들의 이권만을 챙기려는 그런 대통령이 된다고 한다면, 그러면 그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선민으로 세워주신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교만하고 자랑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라고 세워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사장으로 세워주신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제사장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고 사랑을 베풀려고 하는, 그런 하나님의 종으로서 우리를 뽑아주셨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복을 나누어주는 복의 통로가 되는 그런 역할들을 감당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 제목이 무엇입니까? 기도의 제목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격 없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세워주셨다고 한다면, 주여 그 부르심에 맞게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를 통해서 사랑이 흘러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수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복의 통로가 되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주변에 흘려보내는 복의 통로가 되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놀라운 것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을 때 그 부르심에 믿음으로 순종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 명령은 당혹스러운 명령입니다. 내가 내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는데, 그곳이 어딘지도 알려주지도 않고, 그냥 나가라. 그냥 따라가라 말씀해 주셨을 때, 그 길로 따라가는 것이 너무나도 당혹스러운 명령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해 주실 때, 그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게 되었을 때, 그 길이 망하는 길이 아니라 축복의 길이었고,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으로 행복의 땅으로 가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히브리서 11장 8절의 말씀인 것이죠. 결국 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복의 근원이 되었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던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들을 향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나에게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시면 좋겠어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또 말씀해 주시고 또 말씀해 주고 계시는 거죠. 우리를 향해서 들려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처럼 내 고향, 내 본토, 내 친척을 떠나 내가 내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이죠.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그냥 오늘 집 나가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시고요. 가족 그런 얘기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까지 익숙해져 있던, 바로 그곳이 만일 우상을 숭배하는 자리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뜻에서부터 벗어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그 거룩한 삶과 멀어진, 그곳에서 우리가 우상을 숭배하며 살고 있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문을 두드리시면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거기서 나와, 불순종의 길에서부터 떠나라. 악한 행위를 일삼던 바로 그곳에서 떠나라. 사탄의 명령에 복종하던 그 삶에서 떠나라. 우상을 숭배하던 그 삶에서 떠나라고 우리를 향해서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이죠. 그 우상은 우리에게 참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는 겁니다. 화려한 것을 약속하지만 아무것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모든 것들을 빼앗아가 버리는, 그런 우상의 종의 자리에서 떠나버려서, 이제는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길로 가라고 언제나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이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 말씀에 순종해야 되는 거예요. 어디로 가야 됩니까?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길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면 가고,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하면 멈추고, 하나님께서 안내하는 그 길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그 길로 따라가야 되는데, 어떻게 따라가야 됩니까? 우리가 가야 되는 그 길이 어느 길로 인도하는지 확실하지 않더라도 따라가야 되는 거죠. 그 아브라함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갔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다고 한다면, 내가 망하는 것처럼 보여도, 내가 손해 보는 것처럼 보여도, 내가 정말 어려움 가운데 처하게 될 것 같은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을 신뢰하며 따라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은 길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 이 세상의 욕심들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라고 하는 그런 말씀들, 미워하기보다는 사랑하고 포용하라고 하는 그런 말씀들, 그 말씀들을 우리가 따라가는 것은 쉽지가 않은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 보면 손해 볼 것만 같아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 보면 망할 것만 같아요. 이러다가는 우리가 정말 아무것도 건지지 못할 것만 같아 보이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죠. 하지만 아브라함은 어떻게 순종하며 나갔습니까? 보이지 않는 그 길을 바라보면서 불안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담대하게 그 말씀에 순종하고 나간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바라봐야 됩니까? 실수하지 아니하시고 온전하실 뿐만 아니라 전능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병원에 갈 때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위험한 일을 당할 수 있는 위험 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죠? 저도 그랬습니다. 지난주에 제가 예수병원에 입원해서 심장 동맥 조영술을 검진을 했어요. 잠자는데 갑자기 가슴이 쪼이기도 하고, 앉아 있는데 가슴이 쪼이기도 하는데, 이렇게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어 심근경색이 일어날 수가 있고,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하지도 사망할 수도 있다고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병원에 가서 상담을 했더니, 한번 심장 조영술을 해서 동맥 조영술을 해서 한번 보자고 해서 지난 월요일날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보호자랑 같이 오라고 해서 제 아내를 데리고 갔어요. 갔더니 간호사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줍니다. 이렇게 딱 이런 이런 과정을 거쳐서 하게 될 텐데, 그런데 이거 하다가 혹시 동맥이 너무 많이 막혀 있으면 그것을 뚫고 그 즉시 스텐트 수술을 시술을 하게 될 겁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만일 스텐트 시술을 하게 되면 중환자실에 입원할 겁니다. 그러면서 얘기를 해주는 거예요.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는데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제 아내의 얼굴이 갑자기 막 두려움이 쌓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설명하다가 0.5%의 가능성으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들어가서 20분이 넘으면 이제 위험해지는 겁니다.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러니까 밖에서 기다리면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겠어요. 쪼이면서 오는데, 혹시 이런 검사를 하지 말아야 될까요? 그래도 해야 될까요?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의사를 믿고, 이분이 아주 우리 예수병원에서 아주 훌륭한 닥터라고 하니까, 수없이 많이 시술을 했던 분이니까, 이분을 믿고 입원해서 검사를 맡았는데, 다행히 말짱히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요 우리가 대부분의 의사 선생님들을 믿기는 믿지만, 어쩌다가 사고도 일어나는 거예요. 정말 뛰어난 의사이지만, 그런 의사도 가끔 가다가 실수할 수 있는 거죠. 때로는 과실이 생길 수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의료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는데, 그래서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이 세상 사람들은 실수할 수 있고 선한 마음으로 했지만 망가뜨릴 수 있고, 우리들의 모든 것들이 다 무너질 가능성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에요. 그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들은 때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길로 우리를 인도할 때가 있어요. 때로는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할 때처럼 보이는 것처럼 그런 상황에 들어갈 때도 있어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엉뚱한 길로 우리를 안내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그 순간에도 기억해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바라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우리의 실수와 우리의 허물과 우리의 어리석음마저도 이용하셔서, 결국에는 선한 길로, 결국에는 더 좋은 길로, 내가 생각하지 못한 더 아름답고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내 생각에는 이게 최선인 것 같고, 내 생각에는 이것이 정말 정답인 것 같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길로 인도하실, 그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거예요. 오늘 말씀을 보니까 하란을 떠날 때는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였다고 해요. 지금까지 살아와서 더 이상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 나이가 되어버린 그 순간에도,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가라 하면 가고, 순종한 결과, 하나님께서는 이 아브라함을 민족의 아버지로, 복의 근원으로 삼으셔서, 온 세상을 복주게 하는 복의 통로로 삼으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도해야 될 기도의 제목이 있다고 한다면, 주님, 그 옛날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옵소서. 때로는 우리 앞에 펼쳐지는 현상들 때문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요. 우리 앞에 있는 그 장벽이 너무나도 커서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그 일들이 너무나도 치명적이어서, 정말 하나님은 손 놓고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여질 때가 많아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슬퍼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가장 좋고 선하신 길로 인도하실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순종해 나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에게 내 길을 따르라. 너희에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말씀하신 우리 주님께서, 사실은 그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 향해 떠나셨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저 높고 높은 영광스러운 자리를 떠나서 이 세상 말 구유 간으로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영광과 능력을 다 버리시고 자기를 비워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어요. 그것이 바로 성탄절인 것이죠. 그리고 그 주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기 때문에 죽음의 길로 간 거예요. 하나님께서 내가 내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 말씀하시는 그 말씀 한마디 듣고, 하나님이 가라고 하니까 십자가의 길로 간 거예요. 죽음의 길로 간 것이죠. 마치 그 십자가에서의 길은 하나님이 나를 버린 것만 같은 상황까지 들어가게 된 거예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이 완전히 나를 버린 것만 같아요. 하나님이 나를 완전히 포기한 것만 같은 그런 상황까지 우리 주님께서 가셨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 주님께서 순종해 나가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님을 다시 부활시키셨고, 만유의 주로 온 세상의 입의 찬송을 받으실 영광의 주로 올리신 줄로 믿습니다.
그 주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향해서 손 내밀고 나와 함께 가자고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못 박힌 그 손을 내밀어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나의 멍에를 메고 나와 함께 가자. 너 혼자 방황하지 말고,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 말씀해 주고 계시고, 그 길 힘들지 하지만, 내가 멍에 다 매 줄 테니까, 나랑 같이 가자 말씀하시며, 그 영광의 자리, 축복의 자리로 저와 여러분들을 초대하고 계시는데, 우리들의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물러설 것이 아니라, 내 앞에 조그마한 거 하나 넘어지고 무너지고,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 가운데서, 거기서 좌절하고 쓰러질 게 아니라, 주님의 손 바라보며,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옆사람 손 잡아줄 수 있으면 잡아주면 좋을 것 같아요.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삼으셨어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내 인생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도구로 우리를 삼아주셨어요. 지금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도 75세 노인과 같은 아브라함도 불러주셔서, 그래서 온 세상의 복의 통로가 되게 만들어주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연약한 자들, 실패하고 아무것도 내놓을 것 없는 우리를 하나님의 도구로 삼아주신 것을 기억하면서, 한번 우리 옆 사람들에게 정말 마음으로 축복하면서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에 있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고백하면서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