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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이 주를 알고 (왕상 8:41-43)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열왕기상 8장의 말씀을 같이 묵상하는 시간 가지게 되었는데요. 계속해서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서 하나님께 기도한 그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고 있는 가운데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41절에서부터 43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보게 됐는데요.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이방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그 기도의 제목을 우리가 볼 수가 있겠습니다. 41절에서부터 43절까지 다시 한 번 보면은요.

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그들이 주의 크신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시오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떤 내용이죠? 이방인들이 이 성전에 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 어떻게 해달라고요? 이루어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선택한 이스라엘 민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선택하셔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이방인들,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그 이방인들이 이곳 성전에 와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 하나님 그들의 기도도 들어 응답하여 주옵소서. 어 이렇게 기도를 했는데요. 이러한 솔로몬의 기도는 정확하게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그런 기도의 제목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향해서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나요?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해라. 하나님 양식을 나에게 주세요.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고, 내가 잘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내가 잘 되게 해 주세요. 나를 위한 기도를 할 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그 기도의 제목을 보면, 기도의 그 문항들을 보면 하나님을 향해서 말할 때 “하늘에 계신 우리들의 아버지여” 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만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또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아버지시여 우리들에게,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하늘의 양식, 하늘의 은혜 내려 주옵소서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바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되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되는가?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삶을 살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선을 위하여, 우리 모두를 위하여 우리가 함께 잘 살고 함께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은총을 누릴 수 있는 그런 공동체적 기도를 하라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바 있습니다.

왜 우리는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것을 구하면 안 될까요? 왜 우리는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기도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라고 말할 수 없을까요? 그것은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것은 결국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잘 먹고 우리가 잘 살고 우리의 이기적인 그런 목적을 가지고 산다고 한다면, 그것이 우리들에게 유익한 것인가 했을 때 결코 유익하지 않은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만 잘 먹고 나만 잘 살고 하는 그런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실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성경적인 관점일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해서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가 망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시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떡을 달라고 하면 돌을 주는 하나님이 아니고, 생선을 달라고 하면 뱀을 주는 하나님이 아니라—우리가 달라고 하는 것보다도 더 좋은 것으로, 더 유익한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실 때 어떤 방식으로 주시는가? 우리가 이기적으로 나만을 위해 그렇게 기도한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지 않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성경적인 관점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기도는 우리를 바른 길로 그리고 좋은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를 파멸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만일 우리 자녀들이 위험한 것을 달라고 하면 부모님들이 줄 수가 있을까요? 안 주는 겁니다.

위험한 칼을 가지고 놀겠다고 하면 그 위험한 칼을 줄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목적은 마치 위험한 날카로운 칼과 같아서 우리를 결국 파멸로 이끄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들에게 응답하지 않는 것이죠. 야고보서 4장 2절에서 3절 말씀에 보면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며,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함으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우리의 탐욕을 위하여 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신다고 하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의 기도는 어떤 기도가 되어야 되는가? 정말 하나님의 은총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루어질 것을 기도하는 것이, 그게 바른 기도의 제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민족은 늘 오해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생각하기를,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이다. 반면에 우리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들은 선택받지 않은 민족이요, 할례받지 못한 민족이요, 저 이방인들은 망할 민족이다. 신약 성경에 보면 ‘세리와 죄인’, ‘이방인과 죄인’ 이런 표현들이 거의 같은 말로 사용되고 있는데요. 저 이방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아니한 민족이고, 저 이방인들은 결국 멸망할 사람들이고, 저 사람들은 당연히 멸망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그런 관점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하나님이세요. 모든 인류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그 모든 사람들을 우리가 사랑해야 되는데,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께서 제사장 나라로 삼아 주신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제사장 나라로 삼아 주신 겁니다. 제사장이 무슨 역할을 하죠? 사람들이 죄를 짓고 성전에 오면 하나님과 다시 연결시켜 주고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그 제사장의 역할을 통해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다시 화해가 이루어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제사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제사장 나라가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는 다른 민족들도 이끌어 하나님에게로 인도하고, 다른 민족들도 하나님과 연결시켜 주고, 그래서 온 세상이—복의 근원이 된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향해서 약속해 주시기를 “내가 너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고, 모든 민족이 너를 통해서 복을 얻게 하리라”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는 아브라함만, 아브라함의 후손만 위해서 잘 살고 잘 먹고 잘 누리게 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통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그 원대한 계획 가운데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해 주신 것인데,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민족들은 이방 사람들을 멸시하면서 “너희들은 할례받지 않은 민족이라, 너희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없다” 하면서 무시하고 잘못된 교만함에 빠져 버린 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잘못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어떻게 선택해 주셨는가? 이방을 비추는 빛으로 불러 주신 거예요. 우리가 빛을 발하여 그 이방 사람들이 그 빛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도록,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도록, 이스라엘 산으로 모든 민족들이 다 몰려들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도록 그 성스러운 역할을 감당하도록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해 주신 것이죠.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그 사명을 망각해 버리고 그저 자신들만이 구원을 받는 거라고 생각하고, 이방 민족들을 멸시하기에 이른 겁니다. 마치 무엇과 같은가? 대통령을 뽑아 놓았더니 그 대통령이 백성들, 국민들을 위해서 섬기는 대통령이 아니라 그저 자기 가족들이나 자기 일당들만을 위한 그런 일을 해 버리고,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특권층의 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 모습을 보여 준 것입니다.

학교에서 반장을 뽑았더니 그 반장을 뽑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반장을 통해서 그 반 아이들에게 봉사하고 그 반 아이들을 섬기고 학급을 잘 운영하기 위해서, 그 반장의 헌신과 노력을 통해서 그 반이 모두가 다 혜택을 얻게 만들기 위해서 반장을 뽑아 놨더니, 반장이 교만해서 “너희들은 반장도 안 된 사람들이야” 하면서 무시하고, 그렇게 교만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똑같은 일을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 행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제사장 나라로 세우신 이유, 이방의 빛으로 세우신 이유는 그 이방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복을 받게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라고 하는 것을 망각해 버린 것이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죠. 하지만 놀랍게도 솔로몬은 하나님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솔로몬의 기도는 이방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 이 성전이 우리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성전이 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이 성전에 이방인들이 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거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여 주옵소서.” 이방인들이라 할지라도 그 어떤 사람이라도 이 성전 앞에 나와서 예배하고 하나님 앞에 찬양하면,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시고 그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한 이 솔로몬의 기도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 낸 기도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러나 이 성전은 이방 민족을 환영하는 그런 자리가 되지 못하고, 성전은 이방인들을 배제시키고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성전이 되어 버렸고,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사람들은 다가오지 못하게 만드는, 차별해 버리는 성전이 되어 버렸다고 하는 것이 역사의 그런 슬픈 단면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솔로몬이 지은 그 성전은 바벨론 나라가 침공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무너지게 됐는데요. 그리고 나서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다시 두 번째 성전을 짓게 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이 계속 지내다가 이제 로마 시대 때 헤롯 왕이 그 성전을 수축하면서 다시 46년 동안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를 하고 수리하고 많은 것들을 고쳐 가면서 성전들을 더 근사하고 멋있게 만드는 작업을 했었는데요. 헤롯이 만든 성전에는 무엇이 있었는 줄 아십니까? 헤롯이 만든 성전 그 벽에—사진으로 보여 줬으면 좋겠는데—이런 문구가 헬라어로 쓰여져 있습니다.

뭐라고 쓰여져 있는지 혹시 해석하실 수 있겠습니까? 헬라어로 막 그 대문자 헬라어 대문자로 딱 쓰여져 있는데, 이번에 성지순례에 가서 이걸 확인하고 왔어야 되는데, 워낙 바쁘게 다니다 보니까 이 글자를 확인하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다음에 가면 꼭 봤으면 좋겠는데요. 이 헬라어 문장의 뜻이 무엇이냐 하면 이런 뜻이에요. “이방인은 안쪽 뜰과 성소 주위 난간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써놓은 거예요. 이방인은 절대 들어오면 안 된다. 그리고 그 뒤에, 그 밑에 문장이 하나 더 있습니다. “들어오다 잡히는 모든 사람은 죽을 것이다.” 이방인들 들어오면 죽여 버리겠다는 경고문을 성전에다가 붙여 놓은 겁니다. 놀라운 일이죠. 솔로몬이 만든 그 성전에서는 이방인들이 들어와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 앞에 찬양할 때, 하나님께 기도할 때 그 기도를 들어 달라고 솔로몬은 기도했는데, 그 이후에 만든 성전에는 그런 경고문을 붙여 놓은 것이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21세기를 사는 우리 교회에서도 이런 식의 행태가 많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들만의 리그, 우리들만의 예배, 우리들만의 교회. 이 교회의 평안을 깨뜨리는 어떤 새로운 사람이 와서 설치면 찍어 내 버리는 거예요. 우리 교회는 그런가요? 안 그러기를 바랍니다. 안 그래 왔죠. 안 그래 왔어요. 너무나도 제가 우리 예수비전교회에 대해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새로운 사람이 주눅 들지 않고 마음껏 활동하도록 격려해 주고 박수 쳐 주고, “하나님, 누구라도 와서 찬양하고 인도하고, 누구라도 와서 주의 일을 하겠다고 한다면 하나님 그에게 복을 내려 주옵소서.” 어쩌면 이 솔로몬의 마음이 우리 예수비전교회의 마음 가운데 있는 것 같아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거 자꾸 잊어버리면 안 되는 거예요. 오늘 솔로몬의 기도를 우리가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

이 성전은 어느 성전인가, 이 교회는 어느 교회인가, 이 공동체는 어느 교회인가. 우리가 만들어 놓은 우리의 그 권위에 도전하면 찍어 내 버리고, 우리들의 행동 방식과 어울리지 않는 다른 행동 방식을 하면 죽여 버리고, 우리가 원하는 그 틀에 고개 숙이고, 그래서 우리와 맞춰 주지 아니하면 우리가 찍어 내 버리겠다고 하는 그런 모습으로 우리 교회의 모습이 변해 간다고 한다면 그건 더 이상의 교회가 아닌 것이죠. 예수님 당시에 그 성전에 이방인들이 와서 예배할 수 있는 ‘이방인의 뜰’이라고 하는 구역이 있었는데, 그곳에 와서 이방인들이—아직 할례받지 아니한 개종인들이—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곤 했었는데, 당시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그 장소마저도 양을 파는 사람들, 소를 파는 사람들, 그리고 동전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이 다 차지해 버려서 이방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게, 물리적으로 방해해 버리는 그 성전의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뒤엎어 버리셨어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다.

누가 기도하는 집이요? 만민이 뭐예요? 만민이 뭐냐면, 유대인들만을 위한 기도의 집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와서 기도하는 집, 어떤 사람이라도, 어떤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어떤 악을 행한 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고 엎드리면 하나님께서 받아 주겠다고 하는 그 ‘만민의 기도하는 집’을 만들어야 된다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시고, 그 일을 위하여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 주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야곱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누가 구원받기를 원하십니까?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니라. 디모데전서 2장 4절의 말씀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노라.”

이스라엘 사람들만 구원을 받으며, 하나님의 그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만 구원을 받으며, 소수의 특권층만 구원을 받도록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문자적으로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100%—지옥에 가는 사람 단 한 사람도 없이—모두가 다 구원받게 하기를 원하신다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라고 하는 말의 의미는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받아야 된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모든 **부류(카테고리)**를 말하는 거죠. 남자들만이 아니라 여자들도,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도, 그리고 높은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천민들도, 어른들만이 아니라 아이들도, 모두가 다—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마다—구원을 얻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그 마음을 오늘 우리가 기억하며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교회는 우리들만의 교회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심령이 가난하고 하나님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열린 교회가 되어야 되는 것이지, 우리 교인들의 수준에 맞지 않는 저 천한 것들은 들어올 수 없는 교회—그건 교회가 아닌 것이고—우리들의 정치적인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올 수 없는 교회, 그런 게 아니고, 우리의 생활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못 들어오는 교회, 그런 교회가 아니라 모든 만민이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교회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똑같은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이죠. 피부색이 다르다고, 출신이 다르다고, 지역이 다르다고, 우리의 행동 방식과 다르다고 눈을 흘겨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는 모두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고, 특별히 우리 성도님들은 나그네와 이방인들을 향해서 긍휼의 마음을 가져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외국 노동자들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오고 있고, 우리 주변에 이방인, 외국 사람들이 많이 함께 공존하는 그런 시대가 됐습니다. 무슨 잘못을 할 때마다 “저건 외국인이라서…” 생각해서 외국인을 쫓아내야 된다, 외국인에게는 돈을 조금만 줘야 된다—이기적이고 탐욕적인 그러한 선동들에 휩쓸려 다닐 것이 아니라, 주님의 그 마음을 본받아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도 사랑해 주셨는데,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라고 말씀해 주셨던 그 주님의 말씀을 우리가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성경에서는—구약 성경에서도—이미 신약 시대에만 들어와서 이방인들이 주님 앞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이미 구약 시대에도 수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나왔습니다.

이라고 하는 모압 여인도 하나님 나라 백성 가운데 편입되게 되었고, 그 룻이 다윗의 조상이 되었으며,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께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셨고, 여리고성의 라합은 구원을 받아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편입되었고, 기브온의 후손들도—기브온 주민들도—다 주님 앞에 함께 편입되는 놀라운 은총을 받았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면서,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기억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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