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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 사랑 강해 05

C. S. 루이스가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보면 대장 마귀가 조카 마귀에게 인간을 어떻게 넘어뜨려 파멸로 이끌 수 있는지 조언을 한다. 그 가운데 14번째 편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 겸손해지려고 한다면 자신이 겸손할 줄 알게 되었다는 바로 그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서 교만하게 만들어라. 그리고 그 마저 깨닫고 겸손해지려고 한다면, 다시 그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서 교만하게 만들라고 조언한다.

정말 우리는 이러한 사탄의 전략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 같다. 아무리 수련을 하고 또 수련을 해도 어느새 교만해져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필요하다.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해낼 분이 필요한 것이다.

교만은 모든 것을 헛수고로 만들어버리는 인자(因子)이다. 아무리 큰 수라 할지라도 0을 곱하면 0이 되어버리듯, 그 어떠한 사랑과 헌신에도 교만이라는 요소가 들어가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정말 신앙적인 열정이 있었다. 구제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교만했다. 그리고 그러한 바리새인들을 주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셨다.

교만의 늪에는 누구든지 빠져들 수밖에 없다. 아무리 위대한 위인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모세와 같은 위대한 인물도 빠졌던 것이 교만의 늪이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주셨는데, 그러한 일들이 반복되자 모세는 그 모든 기적을 자신이 베푸는 것이라 착각했다. 그래서 반석에서 물을 낼 때, 모세는 이렇게 말했다.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민 20:10) 예전에는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 14:13)고 했었던 그의 입에서 어느 순간에 “우리가” 물을 낼까로 바뀐 것이다.

우리는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기 때문이다(잠 16:18). 우리는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해야 하고, 봉사하려면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해야 한다(벧전 4:11). 흔히 부부 사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내가 한 일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는 반면 배우자의 수고와 헌신을 평가 절하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만은 우리 가정을 무너뜨리는 요소가 된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비교해야 한다.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는가?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셨다. 우리의 사랑은 거기에 비하면 여전히 부족하다. 그래서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자랑할 것은 없다(cf. 고전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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