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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택하게 하시는 하나님 (시 65:9-13)

벌써 2025년에 6개월이 흘러가고 7월 달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너무나도 시간이 빨리 흐르죠? 놀랍습니다. 지난 상반기 동안 살아오시면서, 어떻게 느끼면서 살아오셨습니까?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구나”라고 하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며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별로 잘 느끼지 못하면서, 좀 마음속에 불편함 가운데서 지내오셨습니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별로 잘 느끼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 크구나.” “하나님께서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구나.”라고 깨닫기보다는, 별로 잘 느끼지 못하며 그냥 일상을 살아왔을 가능성이 많을 거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그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이 없기 때문은 아닐 겁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이 너무나도 작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너무나도 많아서 오히려 우리가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것 같아요.

왜 우리들은 잘 느끼지 못하는 걸까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잘 경험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끼며 사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우리들이 우리들의 어린 자녀들과 비슷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자녀들은 항상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모님을 대하나요? 불만과 불평이 가득 차 있나요? 대체로 보면 불만과 불평이 가득 차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나에게 잔소리한다고 불평하고,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신경질 내는 우리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정말 고마워하면서 살기보다는, 마치 우리 아이들처럼 늘 불평과 불만을 터뜨리며 사는 부모님의 사랑이 너무나도 많은데, 모든 것이 다 부모님의 사랑인데, 그 놀라운 사랑과 은혜에 대해서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그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조그마한 거 하나 들어주지 않는다고,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아이들처럼,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많이 있기 때문에, 그 널려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는 인지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언제 인지하게 되죠? 그것이 없어져 보면 압니다. 지금까지 누리고 있었던 것, 당연하다고 생각되던 것들이 없는 상황에 들어가게 되면 얼마나 내가 그동안 사랑과 은혜 가운데 있었는가를 깨닫게 되는 것이죠. 우리 아이들이 단기 선교만 가도 그것을 잘 경험한다고 합니다. 동남아시아나 후진국이나 이런 곳에 단기 선교에 가게 되면 정말 모든 것이 불편하고, 그리고 정말 가지지 못하고 열악한 상황 가운데서 살아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예전에 제가 동남아시아에 가서 선교사님을 따라 필리핀이나 이런 데 가서 보면 정말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을 보게 되면서, 참 우리가 이곳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던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살고 있는가를 생생하게 느낀 적이 있었는데요. 우리 자녀들도 마찬가지잖아요? 단기 선교회 한 번 가면, 가서 복음을 전하는 그런 의미도 있지만, 그런 곳에 가서 우리 아이들의 눈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 거예요. 엄마 아빠의 사랑이 얼마나 참 좋은가? 내가 얼마나 풍성한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가를 깨닫게 되는 것이죠.

아마 미국만 가도 금세 느끼고 오실 거예요. 아마 지난번에 우리 심혜경 전도사님이 미국에 다녀오셨는데 미국만 가도 얼마나 불편한지 모릅니다. 와이파이가 안 터지거든요. 우리나라는 어디든지 식당에 가든 카페를 가든 어느 것이든지 터지는 그 와이파이가 미국에 가면 카페에서도 안 터져요. 그런 걸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없어져 보면 깨닫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너무나도 많은 것을 우리가 당연한 것처럼 느끼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 것이죠. 나중에 가서야 자녀들이 깨닫게 되는 것이죠. 부모님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정말 부모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셨구나. 정말 한도 없이 끝도 없이 나를 사랑해 주셨다고 하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 잘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항상 일관적이고 항상 풍성하게 우리 주변에 있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상화된 늘 있게 있는 그 은혜는, 은혜가 아니라 당연한 것이고 당연한 권리라고 착각하는 게 우리 인생들의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는 공기의 고마움을 잘 모르면서 삽니다. 왜냐하면 공기 속에서 언제나 힘든 상황 가운데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서울만 가보셨습니까? 서울만 가면 저 수도권만 가면 공기가 맑지가 못해요. 제가 그곳에서 조금 살아봤는데, 정말 공기가 혼탁해서 정말 이 전주에서 보는 이런 싱그러운 자연의 모습과 그리고 맑은 공기 이런 것들이 없어서 저는 이 전주에 와서 사는 것이 늘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운전을 하면서 가다 보면 또는 산책을 하면서 가다 보면 맑은 하늘과 정말 싱그러운 자연의 모습 그리고 맑은 공기들을 보면서 그 옛날 제가 수도권에서 잠시 있었을 때 그때와 비교가 되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예전에 제가 북경에 가서 베이징에 가서 거기서 그 지하에 있는 성도들에게 목회자들에게 이렇게 성경을 강의하고 하는 일들을 매년 이렇게 해왔었는데요. 북경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가 있는 일주일 내내 해를 한 번도 볼 수가 없다는 거예요. 뿌예가지고, 일주일 내내 그렇게 그런 탁한 공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한국에서 살아가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라고 하는 것을 거기 가면 느끼게 되는데요. 선교사님이 말씀하시기를 비가 오면 그래도 좀 낫다고 하는데, 비가 한 번 왔어요. 왔는데 전혀 달라지지 않더라고요. 없어져 봐야 아는데, 우리는 늘 있기 때문에 그 고마움과 은혜를 망각하며 살게 되는 것이죠. 물고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고기는 물속에서 살기 때문에 물의 고마움을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광야에 걸어가던 이스라엘 민족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 땅에서 종살이하다가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여러 가지 기적을 통해서 그래서 해방되는 그런 엄청난 기쁨을 누리게 되었는데요. 감사할 일입니까? 아닙니까? 감사할 일이죠. 이스라엘 민족은 홍해 바다를 가르고 그 사이로 지나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감사할 일입니까? 그 사유로 애굽 군대가 몰살을 당해서 더 이상 이제 애굽 군대가 괴롭히지 않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쁜 일이고 감사할 일입니까? 광야의 길을 가는 동안에 하늘에서는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리는 그 모든 길들이 감사할 일들이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통해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을 보면서 감사할 수 있을 것이고, 그들 가운데 있는 성막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구나 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으니 감사할 일인데 그것이 일상화되어 버린 것이죠. 매일매일 만나를 먹는 겁니다. 처음 만나를 먹을 때는 이것이 정말 놀랍고 대단하고 정말 신기하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면서 먹었을 텐데, 이 마늘을 매일 먹다 보니까 더 이상 감사할 수도 없어요. 오히려 불평하기 시작하는 거. 이스라엘 민족은 틈만 나면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하고 불평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원망하고 불평할 때 무엇을 먹고 원망하고 불평했어요?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고 불평하는 겁니다. 그들이 불평할 때 무엇을 보고 불평했어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고 하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보면서도 그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면서도 조그만 어려운 일이 있으면 불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죠.


이것이 마치 무엇과 같은가? 우리 자녀들과 같은 것이죠. 우리의 아들 딸들과 같습니다. 엄마를 향해서 아빠를 향해서 원망합니다. 불평합니다. 무엇을 가지고 불평합니까? 그날 아침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불평하는 거예요. 그날 부모님이 사준 옷을 입고 부모님을 향해서 불평하는 거예요. 부모님의 사랑 가운데 학교를 다니면서 불평하는 거예요. 부모님의 집에 살면서 그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 불평하는 거예요. 모든 것을 다 잘 누리면서, 한 번 “너 시험 잘 봤니?” 물어봤다고 불평하는 거죠. 짜증 내는 거죠. 그런 아이들을 향해서 한번 거울을 비춰주고 싶어요. “네가 잊고 있는 네 모습을 봐라.”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게, 다 부모가 해준 거다.” “Look at you.” “네 모습을 봐라.”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네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 부모님이 다 준 건데, 그걸 가지고 있고, 그걸 입고 있고, 그걸 쓰고 있고, 그러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들의 연약한 모습. 어쩌면 그게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겁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마십시오.

우리의 삶 가운데 불평과 원망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가? 당연한 게 아닌 것이죠. 성경은 우리를 향해서 권면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에서 18절의 말씀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모든 것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의 뜻이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게 하나님의 뜻이다 말씀해 주고 있는데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로 하여금 감사하며 살라.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어려운 일을 만나도 모든 일에 좋은 일이 있을 때뿐만이 아니라 어려운 일을 만나도 감사하며 살라고 이렇게 우리를 향해서 말씀해 주시는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감사해야 그래야 하나님께서 만족하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감사라고 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감사를 드려야만, 우리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하나님께서 기분이 좋으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분 좋으라고, 우리로 하여금 감사하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게 아니에요. 우리의 삶이 기쁨으로 살아갈 때,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제대로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을 어떻게 제대로 누리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많은 선물들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데, 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어떻게 충분히 만족하면서 충분히 누리면서 살 수 있겠는가? 우리가 감사로 나아갈 때, 기쁨으로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면서 살아가게 될 때, 그 선물을 하나님의 선물을 온전히 제대로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불평과 원망 가운데 있을 때는 우리가 아무리 큰 하나님의 선물과 사랑이라고 할지라도, 그 선물의 가치를 우리가 충분히 누릴 수 없는 것이고, 그 선물이 선물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저주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아무리 좋은 선물이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 가운데 그 선물을 감사와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건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께서 주신 그 선물도 선물이 아니게 되는 것이고, 저주거리가 되는 것이고,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우리에게 축복으로 다가오는가, 저주로 다가오는가가 달라지기 때문인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장 잘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기뻐하라 감사하라 권면하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65편을 보면요. 이 시편 65편의 말씀은 그 시편을 다윗이 쓴 시라고 표제어에 되어 있습니다. 시편에 나와 있는 그 표제 문구들은 후대에 있는 사람들이 집어넣은 것이 아니라, 성경 원전에 그대로 같이 전승되어 온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신약이나 구약의 다른 곳에 있는 표제어와는 달리 시편에 있는 표제어들은 성경 원문에서부터 계속 전수되어 왔던 표제어입니다. 이 다윗이 쓴 시로 시편 65편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 다윗의 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노래하는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 다윗이 무엇을 감사하고 있는가 곡식을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곡식을 주셨다고 하면서 감사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어떻게 곡식을 하나님께서 주셨는가?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주시고 물을 주셔서 윤택하게 하시고 밭에서 곡식이 자라게 하고 우리 일상 생활 가운데 여러 가지 비를 통해서 그 농사가 잘 되게 만들어서 그래서 이 곡식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 그것을 노래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각 시편 65편이 우리가 읽은 이 부분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저는 이 점이 참 아주 제 눈에 확 들어왔어요. 왜냐하면 다윗이 무엇에 대해서 감사하고 노래하고 찬양하고 있는가? 전쟁에서 이겼다고 지금 감사하고 찬양한 게 아니잖아요? 우리가 기대하는 다윗이 누구였습니까? 목동이었어요. 목자였어요. 다윗이 누구였습니까? 전사였어요. 싸우는 군인이었어요. 왕이었어요. 이 다윗의 삶 가운데서 감사할 일들을 찾아보라고 한다면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요? 골리앗과 싸워서 이기면서 하나님께서 이 골리앗을 이기게 해 주셨다고 하는 그 사실 때문에 감사할 수 있었을 거예요.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면서 그래서 승리를 주신 그 하나님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압살롬에게 쫓겨났다가 다시 복권되는 그 현장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 상황 가운데서 다 감사했어요. 다 하나님을 찬양했어요. 다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렸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농사하고는 관련이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 이 다윗이 곡식을 주신 하나님께 찬양하고 있다고 하는 점을 봤어요.

왜 곡식에 대해서 다윗이 감사하고 노래하고 있는가?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일까, 생각해 보니까, 아마도 밥 먹다가 그러지 않았을까? 어느 날 밥을 먹으면서, 빵을 먹으면서, 다윗이 이 빵을 먹는 그것을 보고, 내가 이 빵을 매일 오늘 아침 이 빵을 먹는데, 매일매일 이 빵을 먹는데, 이 빵이 어떻게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는가? 그냥 어쩌다 보니까, 빵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당연히 그 빵이 여기에 있는 게 아니고, 당연히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고 물을 내려주시고 땅을 윤택하게 하시고, 곡식을 내게 하셔서 그 모든 과정들을 통해서 내가 오늘 이 빵을 하나 먹을 수 있다고 하는 그 사실을 바라보면서 감사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당연한 게 아니라 이게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당연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손길로 내가 지금 이것을 누리고 있구나라고 하는 것을 기억하면서, 이 찬양의 노래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사실 놀라운 것은, 다윗의 삶 가운데서 다윗은 늘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렸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서 도망갈 때 다윗은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짜증 내지 않았어요. 골리앗을 물리치고 그래서 민족의 영웅으로 등극한 이후에 사울 왕에 의해서 도망 다녀야 하는 그 상황 가운데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아닙니다. 압살롬을 통해서 반역이 일어나서, 그래서 도망가는 그 상황 가운데서 다윗은 시므이가 욕을 하는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될 때 분노와 좌절 가운데 원망 가운데, 그 상황을 맞이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순간에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생각하게 된 것이죠.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우연히 일어나는 게 아니고 내가 재수 없어서 만나게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원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허락하신 거라고 하는 그 전제하에서 아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 그리고 마침내 복으로 인도하시고 마침내 우리를 순금으로 빚어주시고 마침내 우리를 빚어가시는 그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우리에게 준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감사할 수가 있었던 것이죠.


우리가 잘 아는 존 파이퍼(John Piper) 목사님이라고 하는 분이 계신데요. 존 파이퍼 목사님은 한 번은 암에 걸려서 암 치료를 받아야 하는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아주 유명한 책을 하나 쓰게 됐습니다. 예전에도 한번 소개해 드린 적이 있지만, 그 목사님이 쓴 그 책, 그냥 이렇게 몇 가지로 글을 썼던 것들이 너무나도 좋아서 책으로 출간이 됐는데, 그 책의 이름이 무엇이냐면 “당신의 암을 허비하지 마십시오”라고 하는 책이에요. 제가 번역했다고 한다면 그렇게 제목을 번역하기보다는, “당신의 암을 쓰레기 취급하지 마십시오”라고 번역을 했을 것 같아요. 웨이스트(waste), 쓰레기처럼 취급하지 마라. Don’t waste your cancer. 쓰레기 처리하지 마라. 그렇게 번역을 했을 것 같은데요.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이 암이 나쁜 게 아니다. 이것은 내 삶에 들어온 정말 기분 나쁜 것이고, “정말 악한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선물로 주셨다는 거예요. 나를 빚으시고 나를 회복시키시고 영적으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만들기 위한 하나님 앞에 더 순전하게 나아가게 만들기 위한 도구로 하나님께서 내게 이걸 주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하나님의 선물을 그냥 싫다고 쓰레기 취급하지 말고 그것을 소중하게 받아들이라고 하는 그런 책인데요.


저는 이것이 이 책이 좋고 은혜스럽긴 하지만, 제가 암에 걸린 분들한테 이 책을 선물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이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책이 아니고, 내용이 아니고, 정말 믿음으로 이 말을 제대로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이뤄낼 수도 있고, 어 오히려 불쾌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그런 가능성들이 있기 때문에 일부러 선물하지는 않는데요. 대중적인 설교를 할 때에는, 간혹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그 일을 당하기 전에 혹은 어려움 가운데 있는 분들이 이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과 섭리를 기억하라고 권면해드리고 싶은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회복해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전체를 보는 시각이에요. 우리가 무엇을 볼 것인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을 볼 게 아니라 사실은 우리 전체의 모습을 봐야 되는 것이죠. 사실 하나가 문제이고 나를 괴롭게 하고 나를 힘들게 한다고 한다면 그것이 하나인데, 사실은 99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은총이 너무나도 많은 거예요. 근데 그걸 보지 않아요. 하나만 보는 거예요. 하나만.

바울 사도는 빌립보 감옥에 들어가면서도 하나님을 찬송했어요. 물론 감옥에 들어가는 건 좋지 않죠 힘들죠. 고통스럽죠. 하지만 바울 사도가 본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로마서 8장 38절에서 39절의 말씀에 기록한 것처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기쁨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라고 하는 그런 믿음의 고백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신다고 하는 그 99개의 그 모습들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매일매일의 삶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겠지만, 우리가 특별히 1년에 2차례 정도 상반기를 마무리하면서 맥주 감사주일로, 그리고 하반기를 마무리하면서 아니 1년을 거의 마무리하면서 추수감사주일로 정해놓고 지키는 것은 우리가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6개월이라고 하는 시간이 빨리 지났는데 회고하면 원망하고 불평스러운 부분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를 회복해야 하는 것이죠. 다윗이 좋고 정말 행복하고 신나는 그런 일들에서만이 아니라 자신이 먹는 그 빵 하나를 보면서 내가 오늘 이 빵을 먹을 수 있는 것,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면서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렸던 것처럼, 우리의 마음 가운데는 늘 원망과 불평과 짜증들이 솟아오르지만 하는 일들이 막힐 때마다 하는 계획했던 것들이 실패로 돌아갈 때마다, 우리들 앞에 커다란 장애물이 있을 때마다 나를 괴롭게 하는 그 가시 같은 것들이 우리를 괴롭게 할 때마다 우리가 늘 넘어질 때가 있겠지만, 그때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며 감사와 찬송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고 회복하는 그런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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