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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온전히 바쳐 (왕상 8:54-66)

우리가 지금 열왕기상의 말씀을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는 가운데 있는데요. 지금까지는 솔로몬 왕이 하나님 앞에 어떤 기도로 기도를 했는가에 대해서 살펴보아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말씀에서부터는 이제 솔로몬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하는 말을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하나님 앞에 드렸던 기도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면,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했던 솔로몬 왕의 말을 기록하고 있는 게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먼저 솔로몬이 백성들을 향해서 한 내용이 있는데 그 솔로몬이 무슨 말을 했을까요? “하나님을 찬송하라”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이스라엘 백성들이여, 우리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이렇게 찬양하자고 권고하고 있는 것이죠. 왜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했을까요? 하나님이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기 때문이죠.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을 하셨기 때문에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까? 바로 우리 이스라엘 민족에게 평화를 허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태평성대를 허락해 주셨기 때문에, 그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찬양하라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겁니다. 그 옛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평화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누구에게 그렇게 약속하셨나요? 모세에게 약속하셨다고 솔로몬 왕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하시기를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서 가나안 땅으로 드릴 것이고 그 땅을 차지하며 그 땅을 누리며 살게 할 거라고 모세에게 약속해 주었는데, 그 약속이 흐지부지 돼버려서, 없었던 걸로 하자. 약속을 실컷 했는데, 공약인데, 공약이 아니라, 공적으로 약속한 약속이 아니라,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 빈 공약이 되는 것처럼, 정치인들의 그런 헛된 약속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셨던 그 약속은 그 약속이 온전하게 이루어진 것을 솔로몬 왕과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목도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자. 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그대로 이루셨기 때문에, 그 이루신 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권고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 땅에서 종살이를 했었습니다. 종살이하는 가운데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무슨 소망이 있었겠습니까? 무슨 희망이 있었을까요? 아니요. 일어나면서 야 오늘 신나게 살아보자 오늘 재미있게 살아보자 그런 마음으로 일어났겠습니까? 아니에요. 또 하루가 시작됐구나. 또 고통을 당하며 또 고난을 당하면서 살아야만 되는구나. 저 애굽 나라 왕의 그 악재 가운데서 우리 자녀들을 빼앗겨버리고, 우리 자녀들을 죽여야만 하고 하는 그런 고통 가운데서 하루를 더 살아가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는 소망을 주신 것이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저 가난에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이다. 그 옛날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셨던 그 약속대로 이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었는데, 정말 그 하나님의 약속처럼 약속 그대로 이스라엘 민족이 지금 가나안 땅에 정착을 했고, 그리고 왕정을 만들어서 사울 왕에 이어서 다윗 왕이 세워지게 되었고, 그리고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서 이제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나라 강대국에 이르게 이르게 된 다음에 이 모든 것을 이루신 이루게 해 주신 그 하나님을 생각하며 찬송하자고 이야기한 것이 오늘 솔로몬이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해주었던 말씀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누릴 때에 찬송하는 것이 당연합니까? 불평하는 게 당연합니까? 찬송하는 게 당연한 것이죠. 왜 솔로몬은 찬송하자고 했을까요? 왜 찬송을 권고하고 있을까요? 찬송하는 것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은총을 온전하게 누리는 방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기쁨은 어떻게 완성이 되는가 우리의 행복은 어떻게 완성이 되는가? 그것은 우리의 기쁨을 표현하고 나타내고 감사로 발산하고 찬양으로 드러낼 때 우리의 기쁨이 완성이 되는 거예요.

찬양이 고통인가 하면, 찬양이 고통인 사람들이 있어요. 어떤 사람에게는 찬양이 고통일까요? 노예들에게 말하기를 너희 주인을 찬양하라. 그러면 노예들이 찬양은 하겠지만, 마음속에 기쁨이 생겨서 찬양하는 걸까요? 억지로 하는 거예요. 그 찬양은 고통스러운 찬양이에요. 주인을 찬양하라고 하는데 마음은 내키지 않아요. 억지로 하는 찬양이기 때문에 그 찬양은 아무런 힘이 없어요. 군인에게 말하기를 군사들의 군인들에게 말하기를 찬양하라고 하면 그 군인들이 신나게 찬양하겠습니까? 아니요. 힘들어 죽겠어요. 군 생활이 너무나도 힘들어요. 그 상황 가운데서 찬양하라고 하면 찬양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다 찬양이 고통이 되는 것이죠. 하지만 성도에게 있어서 찬양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기쁨이 완성되는 거예요. 표현할 때 기쁨이 배가가 되고 행복이 완성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찬양하는 것이 정말 우리의 기쁨을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자 우리 하나님을 찬양. 그래야 기쁨이 완성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이야기를 해야 돼요. 어디 가서 식당에서 맛있는 것을 먹었다 맛있게 잘 먹었어요. 그러면 잘 먹은 걸로 끝나나요? 아니요. 잘 먹은 것만 가지고 끝나는 게 아니라 먹고 와서 잘 먹었다고 사람들한테 이야기해야 행복이 배가 되는 거예요. 완성이 되는 거예요. 아 이번에 어디 갔더니 음식이 정말 맛있더라. 어디 가서 커피를 마셨는데 커피가 정말 맛있더라 이야기를 해야 기쁨이 완성이 되는 거죠. 우스갯소리로 누가 만들어낸 이야기인데 어떤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늘 교회에서 예배도 인도하고 설교도 하고 해야 되는 그 목사님인데 어느 날 짜증이 났어요. 오늘은 교회 가기 싫다. 오늘은 설교하기 싫다. 아 어떻게 내가 교회를 빼먹을 수 있을까 이렇게 해가지고 목사님이 거짓말을 했어요. 아 내가 아파 가지고 내가 오늘 교회 못 가겠다고 얘기하고 그 목사님이 어디를 갔냐면 골프장에 갔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골프를 치는 거예요. 천상에서 난리가 났어요. 하나님과 천사들이 보면서 아니 저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될 저 목사가 거짓말하고 교회도 안 가고 골프장 가서 주일날 저렇게 골프를 치고 있구나. 정말 천사들이 난리가 난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골프 치는 목사님에게 어떻게 해 주냐면 탁 쳤는데 홀인원이 된 거예요. 홀인원, 홀인원이 뭔지 아세요? 대단합니다. 수준이 높습니다. 한 번 쳤는데 그게 쫙 날아가지고 딱 들어간 거예요. 그러니까 옆에 있던 천사들이 깜짝 놀라 가지고, 하나님 저 못된 목사님에게 홀인원의 선물을 주시다니, 이게 웬 말입니까? 항의를 했어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가만 놔둬 봐라. 근데 그 목사님이 홀인원을 해놓고 어디 가서 말을 못 하는 거예요. 골프장 가서 내가 홀인원을 했다는 얘기를 못 하는 거예요. 그게 고통이에요. 고통. 왜? 다 떠들어야 행복하거든요. 말해야 행복한 거예요. 우스갯소리로 누가 만들어낸 이야기인데 의미가 있는 그런 우스갯소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심혜경 전사님 미국 다녀와 가지고 얼마나 자랑하는지 몰라요. 듣기 싫죠? 그래도 들어주세요. 왜냐하면 그게 기쁨이 배가가 되는데,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내가 경험했다면, 그걸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찬양하고 노래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을 때, 이야기하고 말하고 찬양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노래를 불러라 찬송가를 불러라가 아니라 말하라는 거예요.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좋았다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 주신 사랑이 이렇게 좋았다 이야기하면서 표현하게 될 때, 우리의 사랑이 우리의 행복이 기쁨이 완성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솔로몬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 이스라엘 민족의 그 기쁨이 완성되라고 하나님을 찬양하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이야기한 다음에 두 번째로는 무슨 이야기를 하냐면 이스라엘 민족을 축복하는 말을 해줬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축복하면서 무슨 축복의 말을 했냐면, 하나님께서 너희들과 함께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함께하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함께해 주기를 원하노라. 지금 우리가 너무나도 행복하고 좋은데 지금까지 많은 축복을 누렸는데, 이 축복을 계속해서 우리가 누리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시기를 그렇게 축복하는 이야기를 솔로몬이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이야기한 것이죠. 열왕기상 8장 57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솔로몬이 지금 축복하는 말을 하고 있는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함께 계셨던 것 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옵고 우리를 떠나지 마시오며 버리지 마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셔서 버리지 말고 우리와 함께 동행해 주시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 달라고 함께 해주기를 축복하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데요. 이 축복의 말을 솔로몬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해주었을 때 이 축복의 말이 그대로 이루어질까요?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이 축복의 말을 전했는데 그 축복의 말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겠습니까?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그것은 어디에 달려 있는 것일까요? 그 축복의 말을 한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일까요? 그러니까 지금 동네에 지나가던 어떤 한 사람이 축복한 이야기가 아니고 그냥 아무 이름도 없고 별로 실력도 없는 그런 사람이 지나가다가 그냥 던진 축복의 말이 아니라 솔로몬처럼 높은 곳에 있는 정말 권력을 가지고 있는 최고의 높은 위치에 있는 솔로몬이 이 말을 했기 때문에 이 축복의 말이 효과가 있게 전달이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축복의 말을 목사님이 하면 우리들에게 그것이 축복의 말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일까요? 아니에요. 이 축복의 말은 어떻게 효력이 있는가? 이 축복의 말은 어떻게 우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는가? 그것은 누가 이 축복을 했는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디에 달려 있습니까? 그 축복의 말을 들은 사람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2절에서 13절의 말씀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오.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축복의 말이 효력이 있는 것이 어디에 달려 있다는 거예요?


축복의 말을 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거예요. 축복의 말을 듣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거예요. 듣는 사람에게! 솔로몬의 할아버지가 축복을 해도, 주기철 목사님이 축복을 해도 손양원 목사님이 축복을 하고, D.L. 무디 선생님이 축복을 한다고 해서, 그게 축복의 말이 되는 게 아니고, 그 축복의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이 축복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만일 내가 합당하면, 그 축복의 말이 내 것이 될 것이지만, 그러나 내가 합당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아무리 좋은 축복의 말이라고 할지라도, 내 것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축복의 말을 하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열왕기상 8장 58절의 말씀에 우리의 마음을 주께로 향하여 그의 모든 길로 행하게 하시오며,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게 하시기를 원하오며라고 축복의 말을 덧붙이고 있는 것이죠. 그게 바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전제 조건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는 그 축복을 누릴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축복을 어떻게 누릴 수 있겠는가?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주님께로 향해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복종하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오늘 솔로몬이 표현했던 이 표현이, 아주 미세하지만 아주 정확하게 그 순서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뭐라고 표현했냐면, “여러분,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셔야 하니까 하셨으면 좋겠습니까? 여러분 계명 잘 지키세요. 여러분 하나님의 윤리를 잘 지켜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행해야 합니다”라고 그렇게 강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하기 이전에 그 앞에 하나를 더 붙였어요. 뭐를 붙였어요? 우리의 마음이 주님께로 향하게 하시오. 단순히 율법을 율법의 문항대로 잘 지킨다고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닌 겁니다. 법을 법대로 지킨 것으로 완전하지 않은 겁니다. 무엇이 중요해요? 우리의 마음이 중요해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계명과 윤리를 지키는 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게 훨씬 더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서는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우리의 마음 가운데 사랑이 없다면, 우리 가운데 믿음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로마서 14장 23절의 말씀에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지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한 것은 다 죄니라.” 우리의 마음이 먼저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사랑으로 채워져 있어야 거기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게 나오는 거예요. 누군가를 사랑해 보세요. 그러면 어떤 반응이 나옵니까?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걸 하고 싶어 해요. 사람이 좋으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걸 하고 싶어 해요. 그런데 그 사랑의 마음이 없으면 억지로 그 사람이 요구하는 것을 억지로 최소한으로만 따라서 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열왕기상 8장 61절의 말씀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런즉 너희의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 완전하게 하여 오늘 갈 그와 같이 그의 법들을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킬지어다.” 그게 축복의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 크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속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민족은 그 점에 있어서 실패를 했습니다. 솔로몬 왕 자신이 먼저 실패를 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온전히 사랑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솔로몬 왕은 그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부터 나뉘어져 버렸고, 그래서 이방 신전들을 세우면서 하나님에게서 떠나기 시작하다가 결국 파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솔로몬의 모습이고, 어쩌면 그게 우리들이 늘 유혹을 받는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죠.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늘 넘어지고 실수하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으셨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그 주님의 은혜를 늘 다시 한 번 바라보면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옵소서, 다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의 삶이 회복될 수 있는 귀하고 복된 인생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오늘 뒷부분에 가면 솔로몬은 이런 축복의 말을 한 다음에 엄청난 양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하는 이야기가 본문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이 화목제의 희생 제물을 드렸는데 소가 몇 마리나 되는 소를 희생 제물로 바쳤죠? 2만 2천마리 양을 몇 마리나 잡아서 하나님께 바쳤죠? 12만 마리 많아요 적어요? 엄청 많아요. 12만 마리. 세상에 12만 마리면 우리 주차장에 그 양을 다 데리고 있을 것보다 훨씬 부족하겠죠. 그럴 것 같아요. 엄청난 12만 마리의 양들과 2만 2천 마리의 소를 잡아서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드렸는데 며칠간 드렸다 14일 가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많이 드린 걸까요? 왜 왜 이렇게 엄청난 제사를 드렸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온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먹고 마시고 축제를 벌이기 위해서예요. 개인의 희생 제사라고 한다면 양 1마리로 충분하겠고 소 1마리라도 충분하겠지만 지금 온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그 제사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이거 다 하나님이 다 잡수시라고 드리는 게 아니고 제사를 들여서 나온 그 고기들을 온 이스라엘 민족이 함께 먹고 나누면서 하나님께 기쁨의 잔치를 벌이기 위해서 이렇게 보인 거죠.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고, 우리가 숫자에 감동받을 필요가 없어요. 숫자에 감동받을 것이 아니라, 이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솔로몬이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하나님께 어떤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가? 그리고 어떠한 마음으로 이러한 일들을 진행했는가를 보면서, 우리 자신의 모습도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인도해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부르짖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고,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항상 떠나지 아니하시고 지키시겠다고 말씀해 주신 그 하나님 앞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그 옛날 솔로몬과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그리고 함께 희생 제사를 드리면서 그래서 정말 축제에 그런 시간을 보내고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처럼, 오늘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송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때마다 시마다 주시는 그런 놀라운 은혜를 우리 모두가 다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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