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이 성전과 왕궁을 짓는 데 걸린 기간은 총 몇 년이었죠? 20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정말 엄청난 기간으로 20년이라고 하는 정말 오래된 기간 동안 성전과 왕궁을 지어서 왕궁 완공을 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만 짓는 데는 몇 년이 걸렸을까요? 7년이 걸렸습니다. 솔로몬이 즉위한 지 4년째 되던 해부터 시작해서 11년째까지 건축을 했으니까 7년 동안 건축을 하게 된 것이고요. 성전 건축이 마친 다음에 이제는 왕궁을 짓기 시작했는데 왕궁에 걸린 시간은 13년이라고 하는 기간이 걸려서 총 20년이라고 하는 대장정의 역사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20년이라고 하는 엄청난 기간 동안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과연 그 건축을 처음 시작할 때 과연 20년 뒤에 성전과 왕궁이 이렇게 건축이 될 거라고 하는 것을 처음부터 다 계산하고서 그렇게 건축을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정말 저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 그런 긴 기간 동안 건축을 시도한 것이라고 볼 수가 있겠는데 어쩌면 솔로몬이라고 하는 왕이 지혜의 왕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겠나 생각이 듭니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으로서 온갖 지식들을 다 가지고 있었고 당시에 최첨단 그 과학적, 건축학적 모든 지식들을 다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20년에 걸친 그 대공사를 미리 내다보고 성전을 7년 동안 어떻게 지어야 되겠다 그리고 왕궁을 13년 동안 어떻게 지어서 성전의 기능과 왕궁의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좋은 건축물을 만들겠다고 하는 그런 계획 가운데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해안이 있어서 이런 모든 일들을 다 수행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이렇게 비저너리가 있었다고 하는 것이 참 축복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비저너리가 있었기 때문에 미래를 내다보는 건축하고 설계할 수 있는 그러한 안목을 가진 사람이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성전도 왕궁도 잘 완공이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누가 이끌어 가야 할까요? 그런 비저너리들이 있어야 이 세상도 이끌어 갈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라 그런 안목이 없는 사람, 바로 한 달 뒤도 내다볼 수 없고 바로 1년 뒤도 내다볼 수 없는 그러한 안목이 없는 사람들이 어느 한 나라를 이끌어 간다거나 공동체를 이끌어 간다고 한다면 그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참 답답한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정말 수많은 그런 안목이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이 움직여 나가는 것 같습니다. 건축가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죠. 허허벌판을 바라보면서 거기서 도시를 상상해 냅니다.
논밭을 바라보면서 엄청난 도시들을 만들어내는 거죠. 우리 전주만 해도 신시가지가 예전에는 무엇이었나요? 미나리깡이었다고 그래요. 그 미나리깡이 변하여 이런 엄청난 신시가지가 만들어질 것을 그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미리 생각했다고 한다면 땅을 거기다 사 놓고 투자나 할 걸. 제가 아는 사람은 거기에 땅을 가지고 있다가 팔아버려 가지고 아무런 이득도 보지 못했다고 하는, 땅을 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봤습니다. 저 육군 35사단 그 자리가 에코시티가 될 줄 누가 알았어요?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러나 엄청난 도시가 세워질 수 있는 것, 그것은 안목이 있는 사람들이 가능한 일이라 생각이 되는 것이죠. 요리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요리사는 이 조그마한 재료들 몇 개를 가지고 맛있는 음식들을 만들어냅니다. 그게 제가 제 아내에게 굉장히 부러운 거예요. 저는 냉장고 문을 열면 답답한 마음에 다시 문을 그대로 닫습니다.
먹을 것이 없구나 하면서 한탄을 하는데 제 아내는 거기서 뚝딱뚝딱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게 참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죠. 어린 코흘리개 아이들에게서 미래를 바라보고 아이들을 양육시키고 그래서 미래의 지도자들 그리고 미래를 위해서 훌륭한 인재들을 키워내는 교사들이야말로 정말 엄청난 비저너리라 할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러한 것들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이 움직여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 뉴욕 맨해튼에 있는 어느 한 건물을 짓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요. 사진 한번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이 윌리엄 르메슈리에까지는 읽겠는데 마지막 그 성은 잘 못 읽을 것 같아요. 프랑스의 사람인가요? 이 건축학자가 시티코프라고 하는 빌딩을 짓게 되었습니다.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시티코프 빌딩을 높게 지었는데 바닥을 보시면 알겠지만 필로티 구조처럼 이렇게 세워져 있는 저 건물, 구조적으로 잘못되면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인데, 이 건축가가 잘 설계를 해서 그렇게 높은 건축물이 세워져도 하중을 잘 이겨낼 수 있고 강풍이 불어도 잘 견딜 수 있는 그 건축물을 잘 지어 놓았는데 실제로 건축하면서 용접을 해야 될 부분을 용접하지 않고 볼트로 조립해 버려서 결국 시속 110km 이상의 강풍이 불면 그 건물이 쓰러질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나중에 어느 한 학생이 지적함으로 말미암아 알게 되었고, 결국 이 건축학자는 이 건물을 보강하기 위해서 용접을 하면서 철강 구조물을 대서 뜯어내고, 사람들이 퇴근하면 건물을 뜯어내고 철강 보강을 하고 또다시 원상 복귀해 놓고 그렇게 해서 몇백만 불을 들여서 이 건물을 무너지지 않게 만든 그런 위대한 사람이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이런 것이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그야말로 지혜와 지식 그리고 모든 것들을 갖추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드는데요. 솔로몬도 이렇게 20년이라고 하는 그런 긴 세월 동안에 성전과 왕궁을 건축하는 그런 놀라운 일들을 벌이게 된 것이죠. 그런데 솔로몬보다 더 위대한 건축가가 있습니다. 그게 누굴까요? 바로 하나님이시죠.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그야말로 아무것도 있지 아니한 그곳에서 “빛이 있으라” 하심에 빛이 있었고 그리고 온갖 식물들과 동물들,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시며 그것도 6일 안에 창조해 내시는 그런 어마어마한 일들을 통해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위대하신 분, 지혜로우신 분 하나님, 그 하나님을 우리가 믿고 신뢰하고 섬기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안타깝게 죄로 인해서 그 온 세상이 망가지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세상을 고치기로 작정하신 거죠.
그 옛날에 르메슈리에라고 하는 그 건축가가 이 건물이 무너질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보강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와 온 세상이 망가지게 되었을 때 우리 이 세상을 그냥 파멸로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그 옛날 수백만 불이라고 하는 거금을 들여서 그 건축물을 보강해서 살려낸 것과 마찬가지로, 아니 가장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주의 그 아름다운 동산으로 인도해 주시는 그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우리가 받은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더 위대하셔서 이 문제를 해결하시고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 놀라운 은혜를 우리가 날마다 기억하면서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이 20년이라고 하는 긴 공사를 한 다음에 공사 대금을 지불해야만 하는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히람이라고 하는 왕에게 그동안 백향목과 잣나무와 금을 제공한 대가로 20개의 성읍을 떼어서 그 히람 왕에게 보상을 해 주기로 약조를 했기 때문에 보상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떼어주었던 동네가 좋은 동네를 떼어줬을까요? 값어치 없는 땅을 떼어줬을까요? 값어치 없는 땅을 떼어준 겁니다. 그래서 히람 왕이 이제 우리가 준 대가를 받겠다 싶어서 20개 성읍을 돌아보는데 그 땅이 정말 안 좋은 땅인 거예요. 농사도 지을 수 없는 땅이고 거기서 목축을 하기도 어렵고 거기서 살 수도 없고 정말 아주 쓸모없는 땅, 주나무 하나 한 땅, 있으나 마나 한 땅을 받게 되자 이 히람 왕이 너무나도 불만에 차서 뭐라고 이야기했습니까? 어찌 땅이 이런 땅을 우리에게 주는가? 이 땅에 아무런 가치가 없다. 무가치하다라고 하는 의미에서 그 땅 이름을 뭐라고 불렀어요?
카불이라고 한 그 말의 의미는 무가치하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를 내면서 불만을 터뜨린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는 것이죠. 히람 왕은 뒤통수를 맞은 거죠.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솔로몬을 믿고 그렇게 해서 왕궁과 성전을 지을 수 있는 재료들을 다 공급하고 사람들도 공급하고 온갖 재료들을 다 공급했는데 솔로몬에게 뒤통수를 맞아 버렸다고 하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그 당시 국제 질서의 씁쓸한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최대 강대국이었습니다. 요즘에도 강대국 하나가 수많은 나라 가운데 강대국 하나가 자기들의 마음에 맞지 아니하면 그러면 막 어떻게 하겠다고 하면서 윽박지르고 줄 세우고 보복하고 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서 온 세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그런 상황 가운데 있는데 어쩌면 이게 세계 질서의 현실인 것이죠. 힘이 정의가 되는 이 세상에서 늘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히람이 어떻게 해야 될까요? 히람이 힘을 기를 수밖에 없는 거에요. 약소국 상태에서 힘이 없는 상태에서는 솔로몬과 대응할 수도 없고 싸울 수도 없고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도 없는 그러한 연약한 상태에 히람 나라가 있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그게 문제인 것입니다. 국제 질서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어떤 법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힘이라고 하는 질서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약소국은 억울해도 참아야 되고 억울해도 가만히 있어야 되고. 나중에 이 히람 왕은 솔로몬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20개의 쓸모없는 땅만 받고 거기다가 120 달란트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금을 다시 제공해야만 하는 그런 안타까운 가계 가운데 있었던 것이죠. 예전에 다윗 같은 경우는 어떻게 했습니까? 다윗은 암몬 나라의 왕 나아스가 죽고 난 다음에 하눈이 왕으로 즉위하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사신들을 보내서 하눈 왕의 그 가정에, 그 나라에 보내서 조문을 하게 만들었는데요. 하눈 왕이 신하들의 말을 듣고 이 조문하는 신하들을 모욕을 주고 그래서 돌려보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어떻게 했습니까? 다윗은 힘이 있으니까 전쟁을 통해서 보복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있었지만 히람은 힘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당시 이스라엘 나라, 솔로몬에 의해서 이끄는 나라는 강대국이었고, 히람은 약소국에 불과했기 때문에 단 한 번 어떻게 해결하지도 못하고 모든 것을 많이 다 갖다 바쳤지만 그러나 거의 빈털터리로 씁쓸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냉혹한 국제 질서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이야기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걸 보면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이 드십니까? 만일 그게 우리들의 처지라고 한다면 어떻게 생각이 되겠습니까? 정말 화가 나고 정말 분통 터지는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게 하나 있어요.
그건 뭐냐 하면 솔로몬보다도 훨씬 더 강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고 하는 거예요. 값 없는 땅, 쓸모없는 땅을 우리에게 주고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가 버리신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해준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내놓을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우리 위해 내어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사랑이 많고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으로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다가오신다고 하는 점을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쩌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히람처럼 살아갈 때가 있어요.
이 세상에 살아갈 때 이것도 뺏기고 저것도 뺏기고 내가 있는 그 위치에서 나는 억울한데 그래서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내 이야기를 하면 오히려 더 손가락질당하고 더 무시당하고 사람들이 나를 향해서 비난하고 욕하는 그런 정말 말도 안 되는 그런 힘들고 어려운 삶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아마 그럴 거예요. 어느 기관의 기관장들, 어디서 무엇인가 책임을 맡은 사람들, 아니 내가 어느 곳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 주인으로부터, 아니면 내가 어디서 일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착취당하기도 하고 억울하게 당하기도 하고 모든 것을 다 빼앗겨 버리는 것과 같은 일들을 많이 당하며 사는 게 어쩌면 우리 히람과 같은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와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권리는 아무것도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우리 위해서 십자가 위에 내어주시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그 어느 것도 아끼지 아니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며, 우리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 이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을 날마다 날마다 기억하며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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