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씀을 누가 들어야 할까요? 우리 모두가 들어야 됩니다. 왜 우리 모두가 들어야 되죠? 다 귀가 있으니까요. 한 번 귀 만져 보세요. 귀 있습니까?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셨으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들어야 될 말씀을 우리 예수님께서 아주 쉽게, 재미있게, 아주 평범한 누구나 알 수 있는 그 진리를 가지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씨를 뿌리면 어떻게 되는가? 씨를 뿌리면 어떻게 되죠? 열매가 맺혀요. 그런데 안 맺히는 경우도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어요. 누가 씨를 뿌리면 잘 안 맺히죠? 제가 뿌리면 잘 맺히지 않습니다. 저는 매년 봄이 되면 시장을 지나치다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러서 상추 모종을 매년 샀습니다. 매년 사서 교회 옥상 ‘하늘정원’에 심었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해 본 적이 없습니다. 상추를 심으면서 “삼겹살을 구워 먹어야겠다”라는 꿈을 가지고 심었지만, 안타깝게도 한 번도 제가 심은 상추에 삼겹살을 싸 먹어 보지를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 옥상에 있는 땅은 하얀 흙이에요. 가벼운 흙을 올려놓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영양가가 없는 하얀 흙이기 때문에 잘 자라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양분을 준다고 영양제를 줬더니 영양제 때문에 타서 죽었어요. 햇볕이 너무 강해서 오히려 타버렸고, 따뜻한 대낮에 물을 줬더니 물이 뜨거워져서 죽었어요. 결론은 “사 먹자”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자택을 구이로 옮긴 후에 저는 또 뭔가를 심었습니다. 고구마를 밭에 심었는데요, 고구마는 먹을 수 있을까요? 보니까 글러 먹었습니다. 늦게 심었어요. 이미 다른 밭에선 벌써 많이 자라 있을 때 늦게 심어서 제대로 열리기 어려울 것 같은데, 지금 현재 잎사귀는 무성하게 나와 있지만 그 잎사귀가 무성한 것에 비해 뿌리가 뻗지 않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고구마 먹는 일도 실패할 것 같습니다. “사 먹자, 사 먹자” 하는 게 제 결론인데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면 그 씨가 다 맺는 게 아니다라고 말씀해 주신 거예요.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어떤 씨는 돌밭에 떨어져 싹이 자라는 것 같다가 강한 햇빛에 말라 비틀어 죽어버렸고, 어떤 씨앗은 그래도 자라는 것 같은데 가시덤불로 인해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기운이 막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씨를 뿌리면 다 맺히는 게 아니라 그 가운데 세 경우나 실패한다고 하는 이 말씀을 볼 때 제가 얼마나 위로가 됐는지 모릅니다. “나만 실패하는 게 아니구나. 이렇게 실패하는구나.”
그런데 예수님께서 또 놀라운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 씨가 좋은 땅에 떨어지면 백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하느니라. 너무나도 당연한 말씀인데,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많은 영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영적인 교훈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실패하더라도 낙망하지 말라입니다.
씨를 뿌렸는데 씨가 말라버리고, 새들이 먹어버리고, 기운이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네 가지 중에 세 가지가 실패로 돌아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낙망하지 말라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왜요? 네 중 하나라도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으면 백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이 맺히니, 실패한 것 이상으로—실패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맺히는 놀라운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실패를 바라보며 절망하지 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이죠.
이 이야기를 읽었을 초대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큰 위로와 은혜를 받았을지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습니다. 초대교회 시절, 이 마태복음의 말씀을 받아든 성도들이 이 말씀을 읽으며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까요? 왜냐하면 초대교회 시절에 수많은 사람들이 어려움과 핍박 가운데 믿음을 저버리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함께 신앙생활하던 사람인데 고통스럽다고 믿음을 중단하는 옛 동료를 보며 마음이 아팠어요. 모두가 한 명씩, 두 명씩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함께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내어 신앙생활해야 하는데…” 하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또 신앙생활 가운데 돈의 유혹, 이 세상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유혹 때문에 믿음을 저버리는 사람들이 눈앞에 보이는 그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실망을 했겠습니까? 하지만 주님께서 말씀해 주십니다. 씨를 뿌렸을 때 길가에, 돌밭에, 가시떨기에 떨어져 4분의 3이 망가져도, 나머지 하나가 좋은 땅에 떨어지면 백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는다고요. 이 말씀을 보면서 큰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다 보면 좋은 결과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실패의 경험이 너무나도 많지요. 성공하는 경우보다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을까요, 적을까요? 많아 보입니다. 성공은 정말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실패는 늘 우리 인생 가운데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놀라운 것은, 악한 일을 하다 실패하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방법으로 악을 행한다는 겁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참 끈질겨요. 이것이 막히면 “안 되는구나” 하고 포기하는 게 아니라, 이런 방법 저런 방법—다 끝난 것 같아도—더 열심히 더 악을 저지르는 모습을 얼마나 많이 보는지 모릅니다. 우리 주변의 악이 그래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선을 행하던 사람들은 조그만 어려움이 생기면 이내 실망해 버리고, 이내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왜 그럴까요? 도대체 왜 그럴까요?
악을 행할 때는 포기가 없는데 왜 선을 행하는 사람은 조그만 어려움 앞에 좌절하고 포기할까요? 아마도 우리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평하신 하나님”이란 말이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우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다르게 대우하십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의 의미는, 우리가 행한 대로 갚으신다는 것입니다.
악을 행한 자에게는 심판하시고, 선을 행한 자에게는 상 주시는 공의로운 하나님, 우리가 행한 만큼 주시는 하나님—우리가 선을 행한 만큼 상을 주시고, 악을 행한 만큼 징벌하시는 하나님이 공평하신 하나님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마치 그런 공평하신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선한 일을 했는데 아무런 결과가 없어요. 선한 일을 했는데 실패해 버렸어요. 오히려 비난을 당하고 손가락질받아요.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비난받지 않고 떵떵거리며 계속 악을 행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선을 행하는 사람들은 작은 실수 앞에 온갖 비난과 욕을 다 당합니다. 이런 불합리한 세상을 살다 보니 “정말 공평하신 하나님이 계신가?” 하는 심각한 질문이 우리 마음에 생기고, 그러다 보니 선을 행하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많은 이들이 절망하고 낙심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늘 아주 쉬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가면 그 씨가 다 열매 맺는 게 아니고, 오히려 그중 대부분이 망가져 버리고 실패해 버리는 것을 보지 않느냐? 우리의 삶 가운데 실패가 많고 어려움이 많은 것을 보지 않느냐? 하지만 좋은 땅에 떨어진 씨 하나가 백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선한 일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씨가 잘못되어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씨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열매가 맺히지 않는 게 아니라, 밭이 잘못되어서—떨어진 자리 때문—열매가 맺히지 않는 것이죠.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러 갔을 때 항상 좋은 반응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떤 곳에서는 회당에서 쫓겨났고, 어떤 곳에서는 돌에 맞기도 했고, 어떤 곳에서는 엄청난 반대에 부딪혀 이야기도 꺼내지 못하고 도망쳐 나와야 했습니다.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했지만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데 그 문이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에도 항상 승리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능력이 많으시고 기적을 행하시며 권능의 말씀을 주신 우리 주님이 가신 곳에서도, “이는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냐. 그 형제와 누이들을 우리가 아는데” 하며 비아냥거리는 동네 사람들 때문에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치는 소리를 들으셔야 했고, 제자들은 “모른다” 하며 도망가 버렸습니다. 실패가 4분의 3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실패를 바라보며 낙망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좋은 밭에 떨어진 하늘의 씨앗을 보아야 합니다. 좋은 밭에 떨어진 씨앗은 엄청난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9–10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면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착한 일을 하면 그만큼의 반응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아냥거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했는데도 그 사람에게서 선한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니라 배신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낙망하지 마십시오. 선한 일이 항상 성공하기 때문이 아니라, 실패가 있어도 수많은 씨앗 중 하나가 좋은 땅에 떨어져 썩으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패할 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가운데 일어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좋은 일들만 하나님께서 이루게 하신 것이 아니라, 사실은 악한 일들, 실패하는 일들도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와 계획, 오묘하신 인도하심, 하나님의 큰 목적 가운데 일어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힘든 것, 지금 당장 망가진 것, 지금 당장 무너진 것, 지금 당장 별로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어려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서—완벽한 화가이신 하나님이 지금 나의 삶이라는 도화지 위에 어떤 그림을 그려 나가시는지를 기대하며—바라보아야 합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검정색도 쓰고 빨간색도 쓰고, 여기 점도 찍고 저기 선도 긋습니다. 그 하나하나가 진행될 때는 도대체 무슨 그림을 그리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가장 창조적이고 멋진 예술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주실 때, 그 그림이 나의 이 실패와 잘못된 모습들을 통해 어떻게 아름답게 빚어져 갈지 기대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아시아에서 선교를 이어 가려 했지만 모든 것이 막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발걸음을 유럽으로 이끄셔서 유럽의 영혼들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들의 오해를 풀어 보려 했지만 더 어려운 일을 겪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투옥되고 구금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 바울은 꿈에 그리던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패는 그냥 실패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 모든 것이 오히려 새로운 길로 인도하는 새로운 기회입니다. 그러니 절망하고 슬퍼하고 당황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실패한 것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실 그 하나—좋은 밭에 떨어질 그 씨앗—을 바라보며 감사하고 찬송하며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