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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세미나 01> 성경묵상과 해석

2021년 1월 31일 신년 신앙 세미나01_성경 묵상과 해석

정성국 교수의 “성경묵상과 해석” 강좌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리와 덧붙이는 말

이국진 목사

성경 묵상은 모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이다. 하지만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 사용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기우 때문에 성경을 묵상하는 일이 위축받곤 한다. 그리고 목회자 의존적 신앙의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그저 목회자가 설명해주는 것에 의존해서만 따라가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목회자 의존적 신앙행태는 종교적 엘리트주의라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러한 행태는 중세 천주교가 보였던 잘못이었다. 평신도들은 성경을 읽을 수도 없었고 그저 교회가 가르쳐주는대로만 따라갔었다. 그런데 이런 비슷한 현상이 개신교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은 엘리트들이 독점할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충분히 읽고 유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성경을 일반인들에게 돌려준 것이다. 성경을 혹시라도 잘못 묵상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성경을 묵상하면서 많은 유익을 받으면 좋겠다.

사실 성경의 묵상은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게 아니다. 사람마다 각각 다르게 다양한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사람들마다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성경을 읽게 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자신에게 들여주시는 메시지를 발견해낼 수 있다. 성경의 본문이 원래 의미했던 원의미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의미가 오늘날 나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들려질 수 있는가도 중요한데, 우리는 비유적으로 성경을 읽으면서 그 의미를 자신에게 적용해나간다. 이러한 적용은 제3자에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고, 때로는 과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지만, 성경본문에서부터 (비록 생략되거나 뛰어넘을 수 있지만) 여러 단계를 거쳐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으로 유의미한 묵상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해석과 적용이 동일한 무게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어떤 해석은 다른 해석보다 더 영적으로 성숙한 해석이 될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좀 더 영적으로 성숙한 해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방향은 끊임없이 성경과 더 나아가 자기 자신에 대한 묵상을 통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더 나은 성숙한 묵상을 위해서는 신약 저자들이 사용했던 묵상의 프레임을 발견하고 배울 필요가 있다. 이들의 프레임이란, 첫째, 성경과 우리들의 삶을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로 읽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보내셨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을 보내시어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에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둘째, 성경과 우리들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 구약의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그냥 아무런 연관이 없이 떨어져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의 구원이라는 큰 이야기의 틀 안에서의 한 조각임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들의 삶이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따라가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 셋째, 성경과 우리들의 삶을 지금 여기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고,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넷째, 성경과 우리의 삶을 증인 공동체 속에서 읽어야 한다. 사실 건전한 증인 공동체 안에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정말 모든 성경 묵상이 다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오늘날의 수많은 본 훼퍼들은 나름대로의 묵상으로 자기 확신에 빠져 엉뚱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길은 구덩이로 들어가는 길이기도 하다. 사실 나찌의 편에 서서 유대인들을 학살하던 사람들도 성경을 읽으며 그런 결론을 내렸었다. 오늘날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같은 성경을 사용하면서 멸망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우리들만의 방식으로 하는 편협한 성경묵상, 온누리에 퍼져 있는 잘못된 방식의 묵상들, 사랑이 없는 묵상들, 제자의 길을 걷는다고 하면서 전혀 제자의 삶과 관련이 없는 묵상들이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묵상들은 탐욕이 우상이 되어서 그 탐욕을 채워주는 방식의 묵상들이기도 하다. 때로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우상이 되어서 그 욕망을 채워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심지어 사탄도 성경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잘못된 해석과 적용으로 유혹하는 것으로 사용한 바 있다. 바리새인들은 똑같은 성경을 이용하여 자신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했고,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데 사용하였다. 이스라엘 민족은 말씀대로 제사를 드리는 방식으로 반응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제사를 가져오지 말라고 하셨다. 욥의 세 친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욥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책망하시기도 하셨다. 성경묵상에는 부족한 것을 넘어 오히려 해독이 되는 것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정성국 교수가 제시한 영적으로 성숙한 묵상이 되기 위한 프레임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성취되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구원 이야기에 동참시키고 있다는 점을 바라보아야 한다.

사실 우리들에게 문제는 성경을 묵상하면서 우리들의 삶을 교정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사고방식을 지지해주는 방식으로 성경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초대교회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성경의 가르침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교정해 나갔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우리를 바꾸려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은 채 하나님의 복만이 내리기를 소망할 뿐이다. 그러나 성숙한 성경 묵상은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어떠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지, 무엇을 바꾸시기를 원하시는지를 읽는 것이다. 문자적 표현에만 얽매이는 게 아니다. 아히멜렉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했기 때문에 다윗에게 진설병을 줄 수 있었고, 다윗은 죄를 지었을 때에 단순히 속죄제를 드리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진실로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에게 나아갔다.

성경 묵상은 억지로 숙제하듯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과정이고, 그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어 우리들의 삶을 바꾸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참된 기쁨이 솟아나게 되어 있다. 이런 과정은 우리가 건전한 신앙 공동체 속에 있을 때 도움이 된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는 나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공동체가 건전하지 않을 경우, 우리의 묵상이 해롭게 영향을 받기도 한다. 예전에 다미 선교회라는 공동체에 속했던 사람들이 성경을 오용하고 잘못 적용하여 결국 엄청난 피해를 당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우리들의 묵상이 보다 더 성숙해져가고 보다 더 풍성해져 가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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