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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용서(삼상 11:12-15)

사울은 제비뽑기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제비뽑기의 특성은 아무나 뽑힐 수 있다는 것이다. 2013년 5월 미국 미네소타 주의 도셋이라는 마을에 4살짜리 꼬마아이가 시장으로 제비뽑기 방식을 통해서 뽑힌 바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불량배들은 사울 왕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아무런 검증도 되지 않은 사람이 왕으로 선출되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하나님의 지시하심이나 인도하심이 없이 무조건 제비뽑기만 하면 하나님의 뜻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그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제비뽑기의 방식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시기로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을 거부한 것도 잘못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지 않는 교만한 생각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울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정당한 왕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업적을 이루어내었다. 암몬 민족을 물리치고 야베스를 구원한 것이다(삼상 11:1-11). 이제 사울은 만천하에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의 왕임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그때 사울의 신하들이 말했다. 사울 왕을 받아들이지 않은 불량배들을 처단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사울은 그러한 제안을 거절했다. 왜 그랬을까? 사울은 이렇게 대답했다.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는데, 이 사람들을 죽일 수 없다. 사울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로라고 돌린 것이다. 즉 자신의 힘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것도 아닌데, 그들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이다. 사울의 이러한 태도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용서의 능력을 발견할 수 있다.

만일 용서가 힘이 있는 자들의 아량에 근거한 것이라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울은 자신이 아무런 공로가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그러한 겸손이 있을 때, 진정한 용서가 가능하다. 일만 달란트를 빚지고 있었는데, 그 빚을 탕감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다른 사람을 향한 용서가 가능하고, 그러한 은혜를 입은 것을 망각할 때에는 용서가 가능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마 18:23-35).

오해하지 말자. 그러니까 정권을 잡은 사람은 그 이전에 있었던 불의와 불법에 대해서 눈감아주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국가의 역할은 죄를 단죄하는 것이다(롬 13:4). 그런데 불량배들은 악을 행한 것은 아니고, 단순히 사울의 반대자들이었을 뿐이다. 그들을 사울은 용서했다. 사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전쟁에서 이긴 후에 사무엘은 다시 길갈에서 정식으로 사울의 왕이 됨을 선포하였다. 여호와 앞에서 다시 머리를 숙였다. 그 앞에 화목제를 드렸다. 이 시각을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나중에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축복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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