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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와 누룩(마 13:31-33)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도토리나 좁쌀이 작은 것의 대명사이듯, 겨자씨는 가장 작은 씨앗은 아니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작은 것의 대명사였다. 예수님은 그 겨자씨를 가지고 천국에 대해서 설명하셨다. 천국도 처음에는 이렇게 작아 보인다. 천국이 오는 것은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싹이 나고 자라게 되어 결국에는 많은 새들이 깃들일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천국의 위용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크고 웅장한 것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진리인가 여부이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것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은 화려하고 웅장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이라고 하셨다. 겉은 화려했지만, 그 안에는 참된 예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오해하지 않아야 한다. 내면만 중요하고 외적인 것은 전혀 소용없다는 말은 아니다.

예수님은 겨자씨처럼 오셨다. 화려한 궁전에서가 아니라, 베들레헴의 초라한 말구유에 오셨다. 갈리리의 12제자들과 함께 초라하게 시작하셨다. 예수님이 오셨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여전히 헤롯 왕이 다스리고 있었고, 로마의 지배 하에 있었으며, 세리는 계속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착취하고 있었다. 예수님이 오셨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은 상황에 가장 당혹스러웠던 사람은 세례 요한이었다. 그는 예수님을 소개한 장본인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답답한 마음에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께 질문했다. 예수님이 메시야 맞습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이 질문에 예수님은 대답하셨다. 병든 자들이 고침을 받는다고 말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저기에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고 있다고 말이다. 지금은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것을 기대해야 한다고 말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딜레마도 이와 비슷하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예수님을 믿어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럴 때, 실망하고 낙담하지 말아야한다. 비록 지금은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겨자씨가 나무가 되고 누룩이 밀가루 반죽을 부풀게 하듯,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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