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라과디아 판사는 너무나도 가난해서 빵을 훔친 여성에게 10달러의 벌금을 부과하면서 자신의 대신 벌금을 내주고, 방청석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웃의 아픔을 돌보지 못한 죄로 50센트씩 거두어 그 여인에게 주어서 유명해졌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금액이 별로 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만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것이 자신의 아들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체코의 영화 다리(MOST)는 기차에 탄 승객을 구하기 위해 아들을 희생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런데 그건 영화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하신 분이 계시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셨다. 이것을 복음이라고 하는데, 로마서 1:17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기록한다. 여기서 말하는 의(義)는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인간들과 관계하시는 방식은 언약인데, 인간은 그 언약을 파기하고 말았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도 그 언약을 지킬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파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언약을 끝까지 지키셨다. 그게 하나님의 의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언약을 파기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이다. 단순히 선생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