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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와 이스라엘의 전쟁(삼하 2:12-32)

사울이 죽고 난 후, 다윗은 유다 지파의 왕이 된 반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결국 두 왕 사이에 전쟁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무엘하 2장에서는 다윗의 군대와 이스보셋의 군대 사이의 전투를 기록하고 있다.

몇 단계에 걸친 싸움이 기록되어 있는데, 첫 번째 전투는 각 진영에서 12명씩 선발하여 싸우는 전투였다. 그런데 그 싸움에서 양 진영에서 나온 군사들은 서로가 서로를 찔러 죽여서 모두가 한꺼번에 죽고 말았다. 이러한 결과를 보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전쟁은 양쪽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이다. 우리는 전쟁을 하려고 할 때, 이겨서 승리할 것을 기대하지만 사실 결과는 양쪽 모두의 피해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전쟁을 추구하기보다는 화평을 추구해야 한다.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기 때문이다(마 5:9).

두 번째로, 아사헬이 아브넬을 추격하다가 오히려 아사헬이 죽임을 당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 역시 전쟁의 폐해를 그대로 드러낸다. 나는 승리를 원하지만, 실제적인 결과는 내가 피해를 볼 수 있는 것이 전쟁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요압과 아비새가 아브넬을 추격한 이야기이다. 아비새는 도망가다가 요압에게 말했다. 결국 참혹한 결과가 생길 것인데, 언제까지 전쟁을 하겠느냐고 호소했다(삼하 2:26). 참혹한 결과가 생긴다는 것은 나를 쫓아오다가는 네가 줄을 수 있다는 협박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반대로 나를 쫓아와서 죽이는 그 일이 참혹한 결과임을 의미할 수도 있다. 사실 사사기 19-21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베냐민 지파를 몰살하려고 했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들이 잘못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 한 지파가 없어져 버릴 위기에 처했다. 그들이 베냐민 지파를 몰살하려다가 결국 이스라엘의 한 지파이며 형제들을 죽인 셈이 된 것이다. 그런 비슷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 것이다. 다행히도 요압은 그 이야기를 듣고 전쟁을 그쳤다. 형제와 싸움을 하고서 이기면 행복한 것이 아니다. 형제는 싸움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방법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은 유익하지도 않고,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도 없다. 우리의 대적은 우리의 이웃이 아니다. 이웃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오히려 우리의 대적은 우리로 하여금 미움을 가지게 하고 죄를 짓게 유혹하는 사탄이다(엡 6:12). 우리들에게 있는 영적인 싸움은 악을 행하는 자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들의 마음에 악을 행하도록 충동질하는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는 것이 영적인 전쟁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그냥 심판해버리실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셨다.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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