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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는 배필(창 2:18-25)

많은 가정이 아프다. 서로 사랑하면서 위로해주면서 따뜻한 가정을 만들어가고 싶은데, 실상은 오히려 더 가정에서 상처받고 고통 가운데 지내는 경우가 많다. 도대체 왜 이런걸까?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세상에 완벽한 배우자는 없다. 모든 사람이 연약하고 부족한 게 있을 뿐이다. 성경적 관점에서 본다면, 사람은 타락한 존재일 뿐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게 하신 이유는 모두가 다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아담이 혼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와를 돕는 배필로 만들어주신 것이다. 만일 아담이 완벽한 인간이었다면 돕는 배필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우리들의 배우자가 연약하고 부족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채워줘야 하는 사명이다. 그런데 그런 사명을 사명으로 보지 않고 불만을 터트리는 것은 건전하지 않는 생각이다.

사실 완벽한 배우자를 갈망하는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다. 우리의 참된 위로와 소망은 오직 하나님에게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이 세상의 배우자에게서 그런 위로를 찾으려는 것은 우상숭배에 해당하는 것고, 그런 우상숭배의 결과는 항상 좋지 않은 결과만을 가져다 준다.

미신에서는 완벽한 배우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면 행복할 것이고, 나쁜 배우자를 잘못 만나면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완벽한 배우자를 찾기 위해서 사주와 팔자와 궁합을 본다. 그런데 크리스천들은 궁합같은 것을 보지는 않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내게 딱 맞는 배우자를 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배우자는 없다. 모든 배우자는 부족한 배우자이고,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그 부족함을 채워주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는 내가 갈망하는 조건의 배우자를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어떤 배우자를 하나님께서 주시든지 돕는 배필의 역할을 잘 감당할 힘과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옳다.

결혼이란 “부모를 떠나는 것”이다(창 2:24). 어렸을 때에는 부모의 권세 아래서 성장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결혼은 그 부모에게서 떠나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들의 가정에 참견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막 시작한 가정이 시행착오를 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참견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직접 실수도 해보고 잘못도 해보면서 성장하게 되어 있다. 사실 그들이 결혼하기 전에 아직 어린 아이일 때에도 참견과 간섭보다는 옆에서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다.

우리는 늘 실패한다. 좋은 가정을 만들고 싶은데, 우리의 바람과는 정 반대의 행동을 할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앞에 나가야 한다. 주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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